아름다운 사람
파리 패럴림픽 사격에서 2관왕 거머쥔 박진호 선수
- “꾸준히 발전하는 선수로서 한 발 한 발 희망을 쏠 것”
사격은 뛰어난 집중력과 섬세한 기술력을 겸비해야 하는 스포츠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제시간에 쏘지 못하거나 표적의 중앙에서 한참 벗어날 수 있다.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 두 번이나 금빛 총성을 울린 박진호 선수는 노력과 집념의 사나이다. 매일 기술을 연마하고 실수를 복기하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든다.
박진호 선수는 10월 25일부터 시작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혼성 공기소총 복사 개인전, 혼성 공기소총 복사 단체전 등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Q. 반갑습니다.
A. 안녕하세요? 강릉시청 장애인사격부 박진호입니다.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기쁨과 공항에서의 환영식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뒤로한 채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얼마 전 개관한 강릉시청 전용 사격장에서 강주영 감독님의 지도 하에 팀 동료들과 함께 훈련하고 있어요. 이번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남자 50m 소총 3자세 개인전 및 남자 공기소총 입사 개인전 등 총 6개 경기에 참가했어요. 저는 척수장애 및 기타 장애로 분류되는 SH1-C등급에 해당됩니다.
Q. 패럴림픽에서 2관왕을 차지했습니다.
A. 8월 31일 열린 남자 공기소총 10m 입사(R1)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는 정신이 없었어요.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얼떨떨했지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장내에 울리는 애국가를 듣고 나서야 ‘내가 금메달을 획득했구나’ 체감했어요. 하지만 남은 경기가 있었기에 감동과 축하와 기쁨은 딱 하루만 유지했습니다. 사격은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 스포츠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정돈된 마음가짐이 남자 소총 50m 3자세(R7)의 금메달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Q. 주변으로부터 큰 축하를 받았겠습니다.
A. 두 번째로 시상대에 오를 때 감사드릴 분들이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강릉시청에서 강주영 감독님을 만나 선수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사격 자세도 정확하게 교정되었고,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시는 덕분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거든요. 강릉시청 담당 계장님과 주무관님, 강릉시청 서포터즈분들도 현장에서 함께 기뻐하며 응원해 주셨어요. 팀 동료이자 아내인 양연주 선수는 인생 최고의 파트너입니다. 메달 소식을 듣자마자 아내는 “금메달 따서 목에 걸어준다더니 진짜 그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하며 감격스러워했어요.
Q. 사격을 시작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체육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2년, 낙상 사고로 척수가 손상됐고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정말 암담했어요. 체육인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막막했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 했지만 하고 싶은 진로가 아닌, 신체가 부자유한 상황에서 택한 진로이기에 마음에 와닿지 않았어요. 삶의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재활치료를 돕던 큰누나가 “장애인도 얼마든지 운동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전문 선수도 될 수 있다”고 말했어요. 누나의 다그침이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척수에 장애를 입으면 대개 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수개월씩 재활치료를 받는데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있을 때 사회사업과를 찾아가 할 수 있는 운동을 알아보았어요. 사격을 선택한 건 총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며 집중하다가 방아쇠를 당겨 표적을 명중시킬 때의 긴장과 해방감이란…. 정적이면서도 한순간에 폭발하는 부분이 짜릿합니다.
Q. 아내도 사격 선수라고 들었습니다.
A. 그렇습니다. 아내와는 같은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다가 만났어요. 제 권유로 아내도 총을 들었는데요. 표적을 향한 집중력,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신체 통제력 등 건강과 재활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아내에게는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제가 경기 도중 화약총 탄피를 깔고 앉는 바람에 엉덩이에 상처가 생긴 일이 있었어요. 그로 인해 3년 정도 욕창으로 고생했었지요. 당시 아내가 가정방문 간호사에게 치료 방법을 배워서 하루에 2~3회 직접 치료하며 회복을 도왔습니다. 4년 전 도쿄 패럴림픽에서 0.1점 차로 금메달을 놓쳤을 때도 아낌없이 응원해 주었지요.
Q. 소총 50m 3자세에서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A. 사격은 대표적인 멘탈 스포츠입니다. 신기록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온전히 나 자신에게, 자신이 만들어내는 사격 행위에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표적을 마주했을 때의 긴장과 점수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떨치기란 쉽지 않아요. 다른 선수들을 의식하지 않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노력할 수는 있어요. 저는 경기 때마다 ‘내 것만 하자, 그러면 결과는 따라온다’라고 다짐합니다. 2관왕에 오른 뒤 운동을 시작하면서 접했던 글귀를 되새겨 보았어요. ‘발전하려는 의지가 멈추면 도태가 시작된다’는 말인데요. 앞으로도 한 발 한 발 도전과 희망의 방아쇠를 당기겠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A. 재활과 건강을 위한 측면도 있었지만 ‘장애가 있어도 체육인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사격을 시작했어요. 갑작스러운 장애로 방황하다 시작했으나 지금은 사격 선수 아닌 저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격 선수로서의 제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선수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싶습니다. 사격은 정직한 종목이에요. 기량과 실력에 따라 공평한 결과가 나오는 만큼 매 경기 열심히 준비할 겁니다. 장애는 한계가 아닙니다.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문체부 발행, ㈜도서출판 점자 제작 협력 월간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12월 통권 206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