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와 ‘땅꺼미’, ‘보온병’과 ‘보온뼝’, ‘효과’와 ‘효꽈’.
1988년 제정된 현행 표준발음법 규정에 따르면 위 단어들의 표준발음은 ‘땅거미’ ‘보온병‘ ‘효과’로 표제어와 동일하다. 그러나 한국인 상당수가 이 단어들을 발음하면서 ‘땅꺼미’ ‘보온뼝’ ‘효꽈’ 등의 경음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인의 실제발음과 표준발음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표준어를 구사한다는 수도권 주민들도 잘못된 발음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립국어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수도권 주민 350명을 대상으로 265개 어휘의 발음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국어사전의 발음규칙 표기와 다르게 발음한 어휘가 65%에 달했다.
표준발음 규칙과 현실발음의 차이는 경음의 잘못된 사용 외에도 장음을 단음으로 발음하는 데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일례로 ‘김밥’과 ‘미술’은 ‘김:밥’ ‘미:술’로 발음해야 하지만, ‘김빱’ ‘미술’로 짧게 발음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문제는 사회생활을 더 해나가야 할 젊은층이 잘못된 발음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대 등 젊은층은 학력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잘못된 발음을 되풀이하고 있다. 50대 이상 장년층과 노년층은 비교적 장음과 평음을 잘 지키는 편이나, 젊은 세대일수록 사전 표기와 달리 단음과 경음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젊을수록 짧고 강한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발음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발음은 자연적으로 변한 것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개(犬)’와 ‘게(蟹)’는 표기에서만 차이가 날 뿐 현실발음에서는 차이를 드러내기 어렵다. 심지어 ‘된장찌개’와 ‘육개장’이 표준어이고 표준발음이지만, 식당 메뉴판에 ‘된장찌게’와 ‘육계장’으로 써붙인 경우가 많다. 또 ‘왠지’와 ‘웬 사람’에서 ‘왠’과 ‘웬’의 발음 차이도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표준발음과 현실발음의 차이는 언어사용자들의 잘못된 습관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맑게’와 ‘밟고’ 같은 단어가 대표적인 경우다. 발음은 각각 ‘말께’와 ‘밥:꼬’로 해야 하지만 ‘막께’와 ‘발꼬’라 하는 경우가 많다. 단어를 발음하고 나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표기를 보고 나서 발음하는 현상이 일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행 각급 학교 교재에 발음지도 항목 수가 크게 줄었고, 그 내용도 ‘길이’ 하나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발음지도에 대한 관심의 결여나 지도 소홀을 유발한다.
교육 관련 단체의 대책도 미진한 편이다. 표준발음사전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영어·불어·독일어권 등지에서는 이미 일상적으로 간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월에야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국가나 공공기관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 학자의 25년에 걸친 공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많은 단어들의 실제 발음이 국어사전에 실린 표준발음과 차이가 나는 괴리를 메우기 위해 발음 정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한다. 이는 ‘표준 발음법’이 현실발음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남기심 국립국어연구원 원장은 “언어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국어의 제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 표준어권을 비롯한 전국적인 발음 실태를 조사할 것”이라며 “표준어 규정과 실제 발음법에서 생기는 차이를 극복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 밝혔다.
물론 제대로 된 발음을 따라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공감을 사고 있다.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동안의 교육이 우리말 잘하기 교육에 소홀했다”며 “올바른 발음과 말하는 태도에 대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교사들이 정해진 어법에 따라 학생들이 표준발음에 맞는 말을 쓰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외국어인 영어나 중국어는 발음의 장단이나 고저에 신경을 쓰면서 교육하고 있지만 정작 국어 교육 현장에서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학생들이 토착어 운율에 거의 익숙해진 연후에 표준발음을 습득하게 되므로, 교사는 표준발음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발음 지도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언어생활에서 생기는 여러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말과 글의 작업이 계속돼 왔다. 조선어학회가 1933년에 한글 맞춤법을 만들고 1936년에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라는 표준어 목록을 내놓으면서 표기 단어의 차이에서 생기는 장애가 극복되기 시작했다. 발음의 차이까지도 최소화할 바탕은 1988년에 문교부가 내놓은 표준 발음법으로 마련되면서부터다.
표준 발음법의 대상은 음운과 단어다. 우선 음운을 발음할 때 자음 19개, 단모음(單母音) 10개, 이중모음 11개를 구별해 발음하고 긴소리와 짧은소리를 구별해 발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과 세대에 따라 개인이 이미 습득한 음운의 발음은 학습을 통해 고치기 어렵다. 예를 들어 ‘ㅅ’과 ‘ㅆ’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상도 사람이나 ‘ㅔ’와 ‘ㅐ’를 구별하지 못하는 세대는 대체로 이 음운들을 구별해 발음하지 못한다. 이미 굳어진 발음 습관이 노력으로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표준 발음법은 또 단어를 발음할 때 일정한 규칙을 따라야 하며 규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거기에는 어떤 예외들이 있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맑겠다’를 발음할 때 ‘맑’을 ‘막’ 대신 ‘말’로 발음하는 규칙을 따르도록 했고 ‘신문’을 ‘신문’ 대신 ‘심문’이라고 발음하는 규칙은 인정하지 않았다.
단어를 발음할 때 또한 지역과 세대에 따라 다른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흙, 여덟’을 많은 사람들이 ‘흑, 여덜’과 같은 형태를 기준으로 발음하고 있다. ‘흙이, 여덟을’를 ‘흘기’, ‘여덜블’로 발음하는 것이 표준발음이지만 현실발음에서는 ‘흑이(흐기), 여덜을(여더를)’이 우세한 것이다.
국민 모두가 표준발음을 따르는 이상(理想)은 실현하기 쉽지 않다. 음운을 발음하는 경우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단어의 발음에서도 현실발음과 달리 발음하는 것이 효과적 의사소통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 표준 발음법의 정신이 개인 간의 사적인 대화에서까지 표준발음을 사용하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적인 언어생활에서 발음 차이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할 따름이다.
2004.02.17 (화) 20:33
[우리말 바르게]<17>화법교육의 중요성
말하기·듣기교육 소홀 "대화가 없다”
갑:저 여자 누구야?
을:그건 왜 묻고 그래?
갑:물으면 안돼?
을:누가 안된대?
갑:근데 말이 왜 그래?
을:내 말이 어때서?
갑:몰라서 묻는 거니?
을:그럼 몰라서 묻지, 알면서 묻는 사람도 있어?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법한 상황을 설정한 대화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갑’은 얻고자 하는 정보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도 못했다. 한 사람이라도 자존심을 버리고 대화의 목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더라면 훨씬 생산적인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대화를 하면서 묻는 말들이 반복되면 언쟁으로 가고 있는 신호다. 이처럼 의문문이 수차례 되풀이되면 대화의 목적이 상실되거나 언쟁이 시작됐다는 신호로 보고 대화 방법을 바꾸는 게 좋다. 말을 평서체로 하거나 상대방의 이야기에 설명을 해주는 게 한 방법이다. 그러나 갑과 을은 이를 피할 방법을 찾지 않고 있다. 평상시에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응대하는 훈련이 안 됐다는 증거다. 화법 교육을 받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 ‘스피치’라 불리는 ‘말하고 듣는’ 생활의 총칭이 화법이다. 뜻이 담긴 말을 택해 소리내는 것이 말하기이고, 소리를 듣고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듣기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올바른 대화를 위해서는 화법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의사소통 능력 향상과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을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말하기 위주의 언어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국어의 네 영역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에서 화법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미흡했다. 교육적 차원에서 보면, 고등학교 과정에서 국어 과목의 말하기·듣기 영역의 심화 과정으로 화법이 정식 과목에 편입된 것은 1995년 제6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그나마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어서 독서나 작문 등 다른 과목에 비해 적게 채택되고, 실제로 수업을 하는 학교는 드물다.
대학에서의 화법 교육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대학교 사범대에 1962년 ‘국어 화법’이라는 강좌가 개설됐으나, 대다수 대학의 화법 강의 역사는 짧다. 상명대가 1995년 1학기부터 학부생을 대상으로 ‘대화의 기법’을 개설한 이래 숙명여대는 1995년 2학기부터 ‘실용 화법’이라는 강좌를, 중앙대는 1996년 1학기부터 ‘문장 작법과 화법’이라는 강좌를 개설한 정도다 .
서구의 교육 실태와 비교하면 국내 화법 교육의 부실 정도는 더욱 심하다.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습관적으로 말하기와 듣기를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효과적인 듣기에 노력하기는 고사하고 자기 표현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인 상당수는 제대로 된 화법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적인 문화 배경도 제대로 된 화법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 임칠성 전남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 되고 체면 의식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며 화법 교육 부실의 또 다른 원인을 진단했다.
그러나 대학을 비롯한 교육 현장의 교육 방향이 점차 실용성 위주로 가고 있고, 사회생활에서도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태도나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그만큼 화법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올바른 문장 구성을 위해 작문을 배우듯, 올바른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화법을 익혀야 한다. 이대규 전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개인적인 일상생활, 사회활동, 직업활동에 필요한 대화의 생산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화법 교육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화법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듣는 이는 말하는 이의 인격, 인간관계, 지적인 호소력과 연관해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법이 단순한 메시지의 전달과 이해가 아니라 의미의 공유 과정을 함께 하는 작업인 셈이다. 화법은 재주가 아니라 인격의 진솔한 표현으로도 설명된다.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화법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더 돈독해 질 수도 있고, 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자연스럽게 말을 배운다.
말의 소리와 의미를 익히고, 이를 통해 문법 체계도 만들어 가지만, 정작 이 말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요즘 청소년들의 대화에서는 욕설과 비방이 평상어나 인사처럼 사용되고 있고,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는 “빨리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가.” “게임 그만 하고 자.” 등과 같이 거의 일방적인 명령으로 되어 있으며, 부부 사이의 대화는 냉전과 열전 사이이다. 게다가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미성숙한 정치 현실까지를 보면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말을 못하는 나라인 것 같다. 이러한 대화 문화에 개인주의적이고 자기편의적인 경향까지 가세해서 동방지예의지국이 이혼율이 세계 수위를 차지하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결혼뿐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 곳곳의 많은 관계들이 금이 가고, 흔들리고, 깨어지고 있다.
이렇게 깨어지는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일차적인 요소는 대화이다. 대화를 회복하면 관계가 회복된다. 그러나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표어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화를 하자면서 서로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법 교육이 필요하다. 표정, 목소리, 자세 등과 같은 외적인 요소와 함께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귀담아들어주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형성되도록 교육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이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학교 교육과 함께 방송과 언론을 통한 일반인 화법 교육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함께 화법상담소 개설, 화법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침서 개발 등과 같은 국어 정책이 실용성에 바탕을 두고 시행되어야 한다. 노래연습실의 반만큼이라도 대화연습실이 생긴다면 우리의 모든 관계들이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구현정 상명대 교수
2004.02.24 (화) 18:53
[우리말 바르게]<18>한국어의 위상과 국외보급
해외동포들에 모국어 가르치자
인터넷의 발달과 세계화는 다양한 언어의 공존을 위협하고 있다. 영어가 전 세계 언어 영역을 급속하게 장악해 가는 가운데 아시아와 아프리카 언어들은 그 명맥마저 끊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다른 언어와 달리 한국어의 위상은 나쁘지 않다.
한국어 사용 인구는 중국어 스페인어 벵갈어 영어 힌디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의 뒤를 이어 12번째로 많다. 우연이지만 한국의 전 세계 교역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서울대 조동일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국어는 다수 언어가 쓰는 언어의 말석인 동시에 소수가 쓰는 언어의 선두”라며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언어다”라고 평가했다.
유재원 한양대 언어인지학과 교수도 “한국어는 쓰는 인구와 글자의 과학성, 경제력, 컴퓨터 등의 활용을 바탕으로 한 영향력 면에서 중국어와 일본어 등 동양어는 물론 영어 등 로마자를 쓰는 언어들과 견주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력 신장과 한국어의 위상 향상으로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몇몇 한국어 단어는 국제교류 덕택으로 국제어로서 당당히 이름을 떨치고 있다. 김치, 불고기, 재벌, 온돌, 빨리빨리, 화병, 차려, 경례, 시작 등이 그 구체적인 예다.
외국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미국과 일본, 중국 등 교민이 많이 사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1940년대부터 한국어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미국에서는 1962년 미국 뉴욕 한국어학교의 설립 이후 한국어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어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외 보급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들어 부쩍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다. 한국어 세계화를 위해서는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근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어 교육은 해외 동포들에게 모국어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용기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은 “10여 년 전부터 미국과 일본은 물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제3세계에서도 한국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한국어에 어느 정도 노출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국어 교육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동포와 한국어 수요자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는 재정적 지원과 외교적 지원이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김중섭 경희대 국제교육원장은 “급증하는 수요에 걸맞지 않게 한국어 교재와 자료들이 많이 부족해 한국어의 세계화가 확고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난이도와 빈도수를 고려한 등급별 한국어 표제어 사전 편찬을 비롯해 학습자에게 맞는 다양한 교재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동안 각 대학을 비롯해 문화관공부(국립국어연구원, 한국어세계화재단), 외교통상부(국제교류재단), 교육인적자원부(국제교육진흥원, 한국학술진흥재단,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 각종 기관이 우후죽순격으로 한국어 교재를 개발해 왔다. 한국어 교재 개발 기관이 난립하다 보니 외국인들이 통일된 한국어 문법을 습득할 수 없는 고충을 겪어왔다.
한국어 세계화를 담보해 낼 보다 쉬운 방법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에게 양질의 한국어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외교관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올바른 우리말을 가르치면 한국어 세계화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이다.
또한 해외에서 한국어 교육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능적 측면을 넘어 한국학과 문화 전반에 대한 종합적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한국어 원어민 교사들을 파견하는 등 교수진 수준을 높이면서 현지 동포와 외국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그동안 외국에 파견하는 한국어 교수진은 현지 언어를 전공한 교수 위주여서 제대로 된 한국어를 교육할 기본적인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
한국어의 위상을 높이고 국외 보급에 적극 나서기 위해서는 국내 학부형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데, 국내의 학부모들이 온통 자녀들의 영어 습득에 교육 열정을 쏟아붓는 건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세계 6000여 개의 언어 가운데 한국어의 위상은 어느 정도 될까. 이런 의문이라도 가져 본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인구 수로 보면 세계 10위권에서 약간 벗어난다. 그러나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 수나, 국가적 차원에서 고등학교의 외국어 교육에서 차지하는 한국어의 위상은 이보다 조금 더 높다.
나라나 지역에 따라 한국어의 위상이 다른데, 서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한국어의 비중이 매우 낮다. 그러나 중국, 일본, 호주, 베트남, 몽골 등에선 한국어가 5대 언어 안에 포함돼 있다. 이것은 즉 고등학교의 외국어 과목에 한국어가 포함되느냐 하는 것과 대학을 비롯한 외국어 교육기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숫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의 한류 열풍은 대단하다. 이때 한국어 교육을 착실히 잘 해줌으로써 이러한 한류 열풍을 내실 있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다.
전 세계에 한국어과를 운영하고 있는 대학 수는 55개국에 400개가 넘는다. 물론 중국어과나 일본어과에 비하면 아직은 열세지만, 일본어의 위상은 정지상태거나 오히려 하강하고 있는 데 반하여 한국어의 수요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최근 5년 안에 한국어과가 만들어진 대학만 30개가 넘고, 한 과에 학생이 적게는 300명, 많게는 800명까지이다. 그리고 한국어 강좌를 개설한 외국의 고등학교 수는 700개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게 한국어 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때에 한국어의 세계화 또는 국외 보급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인을 위한 간략화한 표준문법을 제정하고, 외국인을 위한 표준어 사전을 편찬해야 한다. 또한 한국문화를 알리는 자료와 부교재 개발에 적극 나서는 등 각종 사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04.03.02 (화)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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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르게]<19>방언을 살리자
"사투리엔 그 지역 특유 정서-역사 함축"
경상도:억수로 시원합니더.
전라도:겁나게 시원해버려라.
충청도:엄청 션해유.
표준어인 ‘정말 시원합니다’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로 바꿔본 것이다. 사람들은 표준어에 비해 사투리 어투에서 정겨움을 느낀다.
한 번 더, 표준어 문장인 ‘빨리 오세요’ 에 변화를 줘 삼도의 사투리로 바꿔보자. 경상도 사투리 ‘퍼뜩 오이소’를 비롯해 전라도 사투리 ‘허벌라게 와버리랑께’, 충청도 사투리 ‘빨리 와유’는 여전히 표준어에 비해 정겹다.
한국어는 이처럼 전라 경상 충청 함경 황해 평안 제주도 등 모든 지역의 방언이 모여 이뤄졌다. 그러나 전라도면 전라도, 경상도면 경상도 말씨 자체가 하나의 가치를 지닌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명제는 국어 생활에서는 잊혀진 지 오래다.
여러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지방어는 이처럼 사투리 혹은 방언으로 불리며 써서는 안 되는 말로 인식돼 왔다. 교육 당국이 만든 교육과정에서 방언을 비롯한 지역어는 틀린 말이자 사용하지 말아야 할 언어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성급한 개발독재의 문화적 성과에 길든 나머지 지방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허물어진 것도 방언이 고사한 원인의 하나였다.
이에 비해 서울말에는 없지만 세계화니 동양문화권 강화니 하며 우리말 사전에도 없는 외국어와 한자어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사실’을 의미하는 외국어 ‘팩트’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새를 잡는 그물’이란 뜻의 한자어 ‘작라(雀羅)’도 짧다는 이유 하나로 자주 쓰이고 있는 게 그 구체적인 예다.
방언의 사장은 언론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뉴스 등 표준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언론의 드라마와 만화에서까지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신분이 낮은 사람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에서도 촌스러움을 상징하는 손쉬운 장치로 사투리를 활용하곤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역사성과 삶의 정서가 담긴 수많은 토속어들이 서울말에 없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잊혀졌다.
그러나 최근 몇몇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에서 각 지역 사투리가 인기를 끌면서 방언이 옛날처럼 부정적 평가를 받는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다. 조규태 경상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학교 교육이 표준어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쓰기와 말하기 부문에서 표준어와 지역어를 동시에 가르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어인 방언은 정감 어린 언어라는 평가와 품위를 위해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할 기피의 대상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기피 대상이라는 선입견은 정부와 교육당국이 조장한 측면이 크고, 정감어린 표현이라는 말은 지역 관련단체와 학계의 주장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 방언이 양 극단 사이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계의 보다 진지한 노력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정부가 뒤늦게 지난 2월 말 지역어를 어문정책의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정부의 ‘방언 살리기’ 방침은 표준어 중심주의로 기피의 대상이 된 지역어의 위상을 온전히 복권시키고, 핵가족·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代)’가 끊길 위험에 처한 지역어의 현실 직시에서 비롯됐다.
이상규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화관광부에서 방언조사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하니 정부와 학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며 “방언은 지역사회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방언의 분포를 통해 전통문화의 분화 양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노인층이 거의 없으므로 가장 이른 시일 안에 전면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때, 사람들은 방언을 자기가 사는 고장의 문화로 생각하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다양한 방언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고, 영화에서도 특정 지역의 사실감을 얻기 위하여 방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언은 지역의 여러 가지 특징을 기반으로 생성된 언어이기 때문에 표준어와는 상당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방언에는 그 지역의 오래되고 다양한 문화, 전통,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고, 그 지역 사람들의 독특한 정서가 깊이 배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은 방언으로 하고, 글은 표준어로 쓰는 이중 언어 생활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는 각 지역의 방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국어의 표준을 정하기 위하여 서울말을 중심으로 거기에 각 지역의 방언을 부분적으로 포함하여 표준어를 정한 것이다. 따라서 방언은 자연스럽게 생성된 언어인 반면, 표준어는 국가의 언어를 대신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한 언어이다. 둘 다 한국어임에 틀림이 없다.
전북에서는 김장을 하기 위해 배추나 무를 사러 가면서 ‘짓거리 사러 간다’고 표현하고, ‘생지, 신 지, 묵은 지, 싱건지’라는 말을 훨씬 많이 쓴다. 이때 사용하는 ‘지’는 국어사전에는 ‘김치’의 방언형으로 해설이 되어 있지만 실제로 ‘디히’에서 온 고유어이다. ‘김치’는 오히려 ‘沈菜(침채)’에서 온 한자어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지’를 복수 표준어로 살려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소월, 백석, 채만식과 같은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 독자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방언을 사용했다. 자기가 자라면서 써온 어휘에 포함된 여러 가지 독특한 정서적 의미 때문에 방언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표준어를 사정할 때, 지역에서 많이 쓰는 방언을 고려하여 표준어로 채택해야 한다. 그래서 복수 표준어를 많이 만들어 어휘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표준어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방언에 대한 애정이 문화의 다양성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은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더욱 절실하다.
2004.03.09 (화)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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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르게]<20>실용문의 글쓰기
"뜻만 통하면…” 언어불감증 확산
“도서관 사물함 이용자는 중요 소지품 관리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라며, 열쇠 분실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서울 시내의 모 대학교 도서관 사물함 앞에 붙여진 공지문이다. 내용은 파악할 수 있겠으나, 앞부분은 능동문이고 뒷부분은 피동문이어서 문장 구조가 어색하다. 뒷 문장을 굳이 피동형으로 쓸 필요가 없는데, 피동형으로 표현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열쇠 분실이 되지 않도록’을 ‘열쇠를 분실하지 않도록’으로 바꿔줘야 바른 문장이 된다.
적절치 않은 단어 사용과 어법에 어긋나는 문장 표현은 대학이나 일반 기업체의 공지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부기관의 홈페이지에서도 잘못된 용례가 비일비재하다.
띄어쓰기나 문장 표현은 접어두더라도, ‘중견국가에 걸맞는’에서 ‘걸맞는’은 잘못된 표현이다. ‘걸맞다’는 형용사로서 관형사형 어미 ‘은’으로 활용되어야 하므로 ‘걸맞은’이 바른 표현이다.
이들 공지문은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문장이어서 나은 경우다. 국민생활 상당 부분에 관여하는 법원 판결문을 예로 들어보자.
“피해자의 집에서 용돈을 주지 않으면 가재 도구를 모두 때려부수겠다고 협박하여 이에 외포된 동인으로부터 7만원을 교부받아 갈취했다”
문장에 사용된 많은 한자어 중에 특히 ‘외포된’의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물론 용어가 생소하긴 해도 앞뒤 문맥으로 미루어 그 뜻을 간접 파악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단어 자체만 놓고 보면 얼른 이해가 안 된다. ‘두려워하다’는 뜻을 지닌 ‘외포(畏怖)’는 흔히 쓰이는 낱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 자체적으로 끊임없는 용어 순화 작업을 펼치고는 있으나, 법조문에는 아직도 일반인들이 선뜻 뜻을 이해하기 힘든 한자투의 어색한 문장들이 적지 않다.
이처럼 실용문에서는 적절치 않은 단어의 사용과 피동형과 능동형의 혼용, 잘못된 활용 등의 사례가 빈번히 나타난다. 일반 산문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과 비슷한 사례들인 셈이다.
실용문의 형태는 교과서와 법률문, 제품 설명서, 표지판, 벽보, 플래카드, 인터넷 홈페이지 등 다양한 종류의 문장에서 파악된다. 따라서 일상 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실용문의 실태를 분석하는 것은 바른 글, 제대로 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외국에서는 다양한 서식의 형태로 실용문이 널리 정착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다른 글들에 비해 실용문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국립국어연구원이 최근 펴낸 ‘실용문 실태 연구―인사말, 질의·응답문, 공지문, 보도자료’(양명희 외 지음)는 의미가 있다. 이 책은 현대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지문과 보도자료 등의 사례를 들어 실용문의 실제 사용법과 그 중요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남기심 국립국어연구원장은 “실용문은 언어 대중이 가장 많이 생산해 내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게 되는 글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글보다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제부터라도 실용문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정보화 시대의 영향으로 정부 부처와 기업 등 각 기관과 업체들이 잘못된 인사말과 소개글들을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기업의 공지문과 게시문 등은 완전한 문장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어 잘못된 문장이 유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단체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박종현기자/bali@segye.com
<기고>정확한 뜻 알수있게 쉬운단어 쓰도록
장소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실용문이란 실제 생활의 필요에 따라 쓰는 글이다. 정부 기관이나 기업체에서 작성하는 공문서, 매일 읽는 신문 기사, 유적지의 안내문, 전자제품의 사용설명서 등이 실용문이고, 개인의 편지, 일기 등도 실용문에 속한다. 근래에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실용문의 종류와 양이 많아졌는데, 각종 홈페이지에 실린 인사말, 공지문 등이 실용문에 속하는 글이고,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 등도 실용문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실용문은 실용문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실제적인 필요를 모두 충족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글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경복궁 근정전의 안내문에 나오는 ‘정전(正殿)’, ‘다포식(多包式)’, ‘익공(翼工)’ 등의 단어로 인해 안내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열에 하나뿐일까.
요리 전문가가 쓴 요리책에 “고등어는 3cm 길이로 어슷하게 썰어 쌀뜨물에 담가 살을 부드럽게 하고 짠기를 뺀다”는 설명이 있는데, 요리가 서투른 사람은 고등어를 얼마 동안 담가 두어야 하는가로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스스로는 요리책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고 생각되는데도 전문가 수준의 요리만큼 맛있지 않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전자제품의 사용 설명서를 들고 쩔쩔매다가 사용법을 제대로 익힐 수 없어서 포기해 버린 수많은 기능을 떠올려 보라.
이러한 문제 가운데 많은 부분은 실용문의 기본 성격과 목적을 잘 이해한다면 해소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두 가지 기본만 충분히 고려한다면 더 좋은 실용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근정전 안내문을 읽는 사람은 건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며, 요리책을 이용하는 사람은 대개 요리에 서투른 사람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처럼 어렵거나 불분명하게 작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명서대로만 하면 전자제품이 잘 작동되도록 만든 설명서가 진짜 설명서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실용문들이 기본 성격과 목적에 충실한 글이 되었으면 한다.
2004.03.16 (화)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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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르게]<21>영어 조기교육
"어릴수록 빨리 배운다" 근거 없어
“Good morning daddy.” “How are you? ” “My name is gildong.”
이제 4∼5세된 자녀가 발음과 억양은 서툴지만 영어로 몇마디 인사말이라고 하게 되면 부모는 기뻐서 어쩔줄 모른다. 마치 어법에 맞는 말을 배우기에 앞서 “아빠, 엄마 안뇽”하며 우리말을 하나 둘씩 구사하게 됐을 때의 신기함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아가 아이가 앞으로 영어를 잘 한다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맘까지 든다면 부모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몇마디 영어를 내뱉는 아이는 정작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을 알지 못한다. 부모는 “그거야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 텐데, 뭘”하며 무심코 지나친다.
요즘 유치원 어느 곳을 가더라도 특기 활동 가운데 영어를 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심지어 ××랜드, ××나라 등 원어민과 함께 영어에 친숙해지는 과정을 둔 종일반 유치원이 속속 등장하고, 영어 태교가 유행하는 등 한국은 그야말로 영어 조기교육 광풍에 휩싸여 있다.
이런 점에서 5세 자녀를 둔 주부 J(35)씨의 고민은 갈수록 태산이다. 아파트 알림판 곳곳에 붙은 영어 유치원 포스터와 “우리 애 발음이 미국 사람 발음과 거의 같아. 역시 말은 어렸을 때 배워야 돼”하는 이웃의 얘기에 자신의 아이가 혹시 경쟁사회에서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이런 고민은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행하는 영어교육은 효과가 있을까.
서울교육대학교 영어교육과 이완기 교수는 “언어는 사고와 생각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한창 국어적인 가치관과 사고를 길러야 하는 시기에 영어교육에 치중한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없다”며 “특히 상업성이 강한 사설학원에서 행하는 영어교육은 각색된 매뉴얼에 입각한 기능만을 강조하는 껍데기 교육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동덕여대 우남희 교수의 ‘영유아에 대한 조기 영어교육의 적절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만 4세아와 7세아의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실험의 평균 점수는 만 4세는 29.9점, 7세는 60.6점으로 어릴수록 영어를 빨리 배운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릴 때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히는 발음의 경우도 학부모들의 통념이 잘못됐음을 일깨운다.
우 교수는 “국어 발음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4세아 역시 우리말 환경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한국어에 없는 영어 발음 구사력은 7세아와 차이가 없었다”며 “7세아들은 교사가 발음을 수정해 주면 고치려는 노력을 하는 반면 4세아들은 똑같은 오류를 반복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뇌발달이나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영어 조기교육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뇌발달 측면에서 만 3세 이후 6세까지는 종합적 사고와 인간성·도덕성 기능을 담당하는 앞 뇌인 전두엽이 발달한다. 그러나 영어교육은 만 12세까지 발달하는 언어기능과 관련된 뇌인 측두엽의 영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6세 이전 덜 성숙된 언어중추는 쉽게 지치기 마련이고, 이때 영어교육은 아이에게 거부감은 물론 과잉학습장애증후군까지 유발할 우려가 크다는 것.
이완기 교수는 “국어를 잘 못하면 영어도 잘 할 수 없다”며 “창의성을 길러야 할 시기에 영어교육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국어연구원 최용기 박사는 “무심코 따라하는 영어 조기교육은 자칫 초등학교 취학 전 아동들의 사고나 가치관 형성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실생활에서 활용성을 찾기 어려운 어린 시기에 영어교육에 치중하는 것은 영어와 국어 능력 모두에 마이너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영어 조기교육은 한국과 다른 생활 모습에 익숙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문화 수용성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어를 어린 나이에 일찍 배우면 배울수록 좋다는 생각은 아무 근거 없는 추측이다. 외국어로서의 영어(English as a Foreign Language·EFL) 교육에 관한 한 조기교육이 반드시 효과적이라는 연구조사나 통계는 없다. 다만 제2국어로서의 영어(English as a Second Language·ESL) 교육에 있어 조기교육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입증돼 있는 정도다.
ESL은 미국이나 영국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상황을 말한다. 이 경우 유아기에 이민 와서 영어를 배운 아이가 청소년기나 장년기에 이민 온 사람보다 영어 구사력이 뛰어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유아기에 이민 와서 영어를 배우는 아동은 학습 동기가 확실하고 지속적으로 영어와 접하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영어를 더 잘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EFL은 전혀 다르다. ESL 학습자는 거의 모든 시간 영어를 듣거나 사용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 있다. 그러나 EFL은 하루 중 학원이나 학교의 영어 수업시간에만 영어와 접한다.
3세에 이민 온 20세 대학생과 15세에 이민 온 같은 나이의 대학생의 영어 숙련도를 비교해 보자. 상식적으로 3세에 이민 온 대학생이 휠씬 더 영어를 잘 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겠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본다. 왜 그럴까. 3세에 이민 온 학생은 17년 동안 영어를 학습했고, 15세에 이민 온 학생은 5년 동안 학습했기 때문에 그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EFL을 3세에 시작했다고 해서 20세까지 17년 간 꾸준히 학습했다고 볼 수가 없다. 기껏해야 하루 두시간씩 영어수업을 받는 정도라면 이것은 ESL의 경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미약하다.
EFL은 교육 환경과 학습 동기에 있어 개인차도 심하다. 그래서 15세에 시작했더라도 5년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한 경우가 3세에 시작했지만 17년 동안 하다 말다 한 경우보다 더 나은 교육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EFL과 ESL은 교육 환경, 교육 동기, 학습량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런데도 ESL 학습자에게 조기교육이 효과가 있다고 해서 EFL 학습자도 같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ESL과 EFL을 혼동, 일찍만 시작하면 좋다는 상업광고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외국어는 중학교에 가서 배워도 늦지 않다.
2004.03.23 (화) 17:31
우리말 바르게]<22>전문용어를 일상어로
'어려운 단어' 쓴다고 지식인 인가
“홍길동 과장, ××뱅크 프라이빗뱅킹센터에 들러서 파이낸셜컨설턴트(FC)에게 파생금융상품 투자 현황이 어떤지 좀 알아보고 오게.”
일상 생활을 하다 보면 쉬운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문 용어를 여과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프라이빗뱅킹(Private Banking)이다. PB로 표기하는 프라이빗뱅킹은 고액의 금융자산을 지닌 개인 고객을 상대로 자산관리, 세무설계, 부동산 등 차별화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금융 서비스를 뜻한다. 풀어 쓴 의미를 통해 일반 고객과 구분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엇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간결한 우리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종합자산관리 서비스 정도로 바꿔도 만족도는 크지 않다.
파생금융상품도 외국돈, 채권, 주식 등을 기초로 만들어 낸 금융상품으로, 이 분야 종사자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파생금융상품을 일상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사정은 포트폴리오(portpolio) 역시 마찬가지. 다양한 자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의미인 이 용어를 투자자산 배분이나 자산 꾸러미로 옮기는 것은 어떨지….
이처럼 전문 용어는 우리의 언어생활 속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의학 분야에서 비중격 만곡증(Nasal Septal Deviation)을 살펴보자.
비중격이란 비강(콧구멍에서 구강과 식도, 비강과 후두 사이에 있는 깔때기 모양의 근육인 인두에 이르기까지의 빈 곳)을 좌우 양측으로 구분하는 구조물을 말한다.
이러한 비중격은 휨 없이 수직상태를 이루는 게 정상이지만, 어느 한쪽으로 휘어 있는 경우를 일컬어 비중격 만곡증이라 한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투성이다.
물론 이런 전문 용어를 쉬운 생활 속의 언어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부단하게 진행되고 있고, 실제로 많은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견갑골(肩胛骨)이 어깨뼈로, 넓적다리뼈와 정강이뼈를 잇는 관절인 슬관절(膝關節)이 무릎마디로, 고관절(股關節)이 엉덩이마디 등으로 바뀐 것 등이 그렇다. 무슨 뜻인지 연상하기 어려운 원두증은 원숭이얼굴증으로, 아킬레스건이 발꿈치힘줄로 표현되고 있다.
영화 분야에서도 아카데미 레이쇼를 표준비율과 고전비율로, 블록버스터를 흥행대작으로, 미장센(mise-en-scene)을 장면화와 화면 구성으로 옮기는 등 비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한창이다. 경제용어에서도 회계 처리 시 많이 쓰이는 내용연수(耐用年數)가 사용가능연수로, 듀레이션(Duration)이 평균자금회수기간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익숙해진 일부 분야의 전문 용어는 도리어 국어의 입지를 뒤흔들고 있다. 축구에서 헤딩을 머리받기로,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농구에서 리바운드를 튄공잡기로, 골프에서 그린피를 입장료로 바꿔보지만, 이미 정착한 탓인지 언어 사용자들이 외면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발음이 이상하거나 낮춤말로 쓰일 때는 토박이말을 피한다는 입장에서 의학용어를 다듬고 있다. 설사를 ‘물똥’으로, 항문을 ‘똥구멍’으로 바꿀 경우 어감이 좋지 않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그러나 ‘물똥’과 튄공잡기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면 설사와 리바운드가 이상하게 들릴 리 만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전문분야 종사자들의 관성적인 언어 습관이 변하지 않는 데 있다.
국어심의회 국어순화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민 국민대 명예교수는 “향후 한글 전용 시대에 대비해서 전문 용어를 일상 언어로 바꿔가고 있다”며 “이런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미 쉬운 말로 전환된 각 분야의 전문 용어를 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컴퓨터나 정보통신 등 첨단 분야의 경우 언어 생성과 변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신속한 대응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국어학자들 사이에서는 전문 용어를 일상 언어로 바꾸려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시급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일찍이 전문 용어는 고전어로 만들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우선 풍부한 형태와 의미의 원천이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전문가의 교양과 풍모를 우아하게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연 언어로서의 일상어는 되도록 피했다. 일상적인 의미와 혼동하기 쉬웠고, 말하는 과정에서 전문 용어로서의 기능인지 아니면 일상어로서의 기능인지가 불확실해질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문가의 말과 보통 사람의 말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에게는 무척 불편한 문제였을 것이다.
또 고전어는 개별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여러 언어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 가능했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전문 지식은 특정한 지역의 특수한 의미보다는 보편성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고전어를 이용한 전문 용어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용어 문제에서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우선 교육의 광범위한 대중화이다. 고도의 정밀한 개념에서부터 간결하고 평범한 개념에 이르기까지 보통 사람들이 배우는 보통의 ‘지식’ 수준은 지난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전문적 의사소통’ 행위는 더 이상 전문가만 독점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말 문법에 대한 지식과 개념이 문법 학자에서 교사로, 학원 강사로, 작가로, 의학 용어는 의사에게서 약사로, 간호사로, 간병인으로, 환자로 역시 끝없이 뻗어 나가고 있다. 우리의 미래로 눈을 돌려 보자. 이제는 전문가 간의 의사소통 못지않게 대중 간 의사소통이 중요한 시기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전문 지식을 널리 교환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말에 전문 지식을 담아 둔다는 말이다.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동식물 이름은 일찍이 토착 어휘를 받아들여 일상어와 교류하게 됐고, 최근 들어 난해한 의학 용어도 대중화의 길에 들어섰다.
외국에서도 라틴어나 그리스어 중심의 전문 용어가 퇴조하고 있다. 컴퓨터 용어를 보라. 부팅(booting), 다운로드(down load), 서버(server) 등 대부분이 일상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의 생산과 재생산에 대중의 참여를 북돋우고 있다. 천재적인 발명가나 대학자에 의한 지식 생산보다는 대중 참여적인 지식의 생산과 확장이 더 큰 의미를 지닌 시대가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와 있다고 봐야 한다.
2004.03.30 (화) 17:20
[우리말 바르게]<23>'외래어로 얼룩' 간판들
세계화 구호아래 한글이름 냉대
POSCO, 공각기동대, 휀스에 기대지 맙시다, 김치찌게, aT센터, 헤어샵, 매니저룸, Fashion mode, XX파이낸스, XXPR, 호스텍글로벌, XX클리닉….
주변에서 흔한 기업명이나 상점 간판, 안내 표지판을 보면 우리 사회의 국어 경시 풍조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들이 점차 영어로 회사명을 바꾸는가 하면 국적불명의 명패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상은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현실이다.
사례를 보자. 대한민국 유수의 기업들이 ‘마늘 냄새’나는 명패 위에 ‘버터’를 잔뜩 바르고 있다. 포항제철이 POSCO로, 국민은행이 KB로, 케이티가 KT로 이름을 바꿨다. 이는 곧바로 국어 관련 단체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2002년 11월 당시 한글학회는 우리말 이름을 버리고 영어 이름을 쓴 국민은행과 KT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두 기업이 한글 이름을 버림으로써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있어 우리말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정신적 타격을 입혔다는 것이 소송의 알맹이다.
이런 움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들의 ‘이름’ 변경은 그칠 줄 모른다. 지난해 코스닥 등록 기업 가운데 회사 명패를 달리한 경우를 살펴 보자. 한국통신하이텔이 케이티하이텔로, 미창이 엠씨타운으로, 그루아이티에스는 GNT WORKS로 상호를 바꿔 달았다. 이에 앞서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 코스닥시장이 호황일 때 회사명을 영어로 바꾸는 기업에 외국인 투자자금이 몰려들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결국 상호명 변경 붐이일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세계화와는 무관한 우리 주위의 가게 이름에도 외래어 투성이다. 삼성카드가 지난해 8월 말 기준 명동 등 서울 중구의 카드 가맹점 상호명 2000여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상호명이 외래어인 업체가 전체의 53.1%나 차지했다. 특히 10대가 많이 찾는 의류나 잡화업종의 외래어 상호 비중은 67%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했다.
우리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어서 외국어의 느낌을 주는 경우나 우리말과 외국어를 혼용한 말이나 상표도 적지 않다. 모드니에(모든이의), 유니나(윤이 나), 나드리(나들이), 타미나(탐이 나), 누네띠네(눈에 띄네), 있다리아(이탈리아) 등등…. 이 가운데는 어법과는 무관하게 세인들의 눈길을 끌어 고부가가치 상표로 연결된 경우도 있다.
이와 함께 표기법도 문제다. 김치찌게는 김치찌개로 표기해야 맞다. 배터리 밧데리, 디지털 디지탈 디지틀, 데이타 데이터 등 지금 와서 표기법이 다르다고 해서 간판을 바꿔 달게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이런 와중에 한글학회의 ‘아름다운 우리말 가게 이름’ 선정 사업은 우리말을 가꿔 나가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섬마을 밀밭집, 솔내음, 하늘과 땅사이,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씨앗을 뿌리는 사람, 맑은 바닷가의 나루터,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돌실나이, 소꼴 베러 가는 날 등 정겹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넘쳐난다.
이밖에 만두벌판, 놀랄 만두하군(만두점), 뼈대있는 집(뼈다귀 해장국 전문점), 갈비생각(갈비 전문점), 광어생각(횟집), 의기양양(양곱창점), 아파트 파는 남자(공인중개사) 등 의미가 분명한 재치있는 우리말 상호가 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그렇다면 이노무스키(스키장비대여점), 떡도날드(떡+맥도날드) 등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여기서 어법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우리말을 발전시킬 대책은 어떻게 흘러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 유병한 과장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에서 한글맞춤법, 국어로마자 표기법,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외국어를 쓸 때는 한글과 함께 쓸 것을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벌칙조항이 없어 민간에 강행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벌보다는 우리말을 적극 활용하려는 국민들의 인식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디를 가든 쉽게 눈에 띄는 것이 간판, 각종 표지판, 안내판, 현수막이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들이다. 이들은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매우 제한된 공간에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압축해 사람들의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더구나 그 기능상 특징 때문에 어떤 종류의 글보다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게 된다.
그러니만큼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사람들이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소도시든, 대도시든 가릴 것 없이 거리에 나가 간판들을 보자. 골목골목마다 KT(케이티), KB(케이비), KTF(케이티에프), KT&G(케이티앤드지), LG(엘지), TG(티지), SK(에스케이), KCC(케이시시)라고 쓰인 간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마천루의 꼭대기에, 아주 멀리서도 한눈에 선명하게 볼 수 있을 만큼 웅장하게 내걸린 그 모습에 위압감마저 느끼게 된다. 한술 더 떠서 이젠 Let’s KT(레츠 케이티), Have a good time KTF(해브 어 굿 타임 케이티에프)란다. 어느 나라 공기업인지 모르겠다. 표지판이나 현수막은 어떠한가. 적힌 표현이 어법에 맞지 않거나 뜻이 불분명해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혼란을 낳고 우리말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안녕히 가십시요(→안녕히 가십시오), 어서 오십시요(→어서 오십시오)라고 적힌 표지판에서부터 노상적치물엄단(→길거리에 물건을 쌓아 두지 마시오), 안전의식개혁(→안전 의식 고취)이라는 공사 현장의 표지판까지….
나아가 Gangwon-do(강원도)를 Kang-won-do나 Gangwon Province로 적어 놓은 도로 표지판, 동굴 내의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연과 오물투기 행위는 하지 맙시다(→동굴 안의 환경이 깨끗이 유지될 수 있도록 담배를 피우지 마시고 쓰레기도 버리지 맙시다), 내가 좋아 가는 산에, 내가 먼저 산불 조심(→내가 좋아 가는 산, 내가 먼저 산불 조심)이라고 국내 최대 국립공원 안에 버젓이 내걸린 현수막도 있다.
용암동굴(熔岩洞窟)이 형성된 후 천정(天井)이 붕괴(崩壞)되고 낙반(落磐)됨으로써 생긴 현무암(玄武巖) 괴(塊)이다(→용암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생긴 현무암 덩어리이다)라고 설명한 세계에서 가장 긴 용암 동굴이라고 자랑하는 유명 관광지의 안내판까지 모두 볼썽사납다.
2004.04.06 (화) 16:42
[우리말 바르게]<24>교양국어 폐강위기
"학점따기 힘들다" 신입생 외면
문자언어를 포함한 언어는 인류문명의 소중한 전달도구다. ‘대학국어’와 ‘교양국어’ 등으로 표현되는 대학에서의 국어 교양과목도 지식과 지혜를 습득해 발전시키는 도구다. 때문에 학부와 대학원의 전공여부를 떠나 ‘교양국어’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과목이다. 그럼에도 최근 대학의 교양국어 과목이 강좌를 계속 개설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2004년 신학기에 각 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을 신청한 학생 수가 수년 전에 비해 월등히 줄어들어 대학 당국이 난감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서울대만 하더라도 ‘학문의 기초’ 영역에 개설된 ‘대학국어’ 강좌 79개 가운데 16개 강좌가 수강 인원 미달로 폐강됐다. 필수과목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국어가 학생들에게 수강 동인을 주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일부 신입생들은 “신입생 때 대학국어를 수강해야 보고서 작성 등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그러나 선배들이 3, 4학년 때 저학년생들과 함께 대학국어를 수강하면 상대적으로 학점 따기가 쉽다며 수강을 미룰 것을 조언했다”고 밝혔다. 이 이야기는 대학 교양국어 교육의 현장이 무너져 내리는 구체적인 예를 보여준다. 제대로 된 국어 교육이 학생들의 학업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긴요하다는 말은 별무소용이었다.
1980년 중반 이후부터 만연한 ‘교양 국어 불필요론’은 어느새 많은 학생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장기적으로 학문연구와 의사전달에 도움이 되더라도 당장에 학점을 따는 데 유불리만 따지는 학생들의 생각 때문이다.
대학 당국과 교수에 따라 수업에서의 강조점이 다른 것도 교양국어의 위기를 부른 한 원인이 됐다. 국어학사만을 강의하는 교수가 있는가 하면 문법론을 강조하는 교수 등 강사마다 강조하는 분야가 다르다. 더욱이 대학별로 교양국어 과정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적게는 300쪽에서 많게는 1000쪽이 넘는 등 너무 많은 분량이다. 일주일에 20쪽의 독서량에도 불평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이 같은 분량은 교양국어 강좌를 선택한 학생마저 질리게 만든다. 때문에 해당 교과서를 선택하더라도 고작 200여쪽에서 한 학기 강의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1950년대 이후 국내 대학의 교양국어 과목은 한정된 수업시간에 듣기 말하기 국어지식 문학 등 여러 영역을 배분함으로써 가장 기초적인 읽기와 쓰기 훈련이 부족한 채 졸업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이같은 현실은 선진국들이 지식과 지혜의 전달매체로서 대학 교양국어의 중요성을 높이 사는 것과 대비된다. 통칭 선진국에서는 의무교육의 초기단계에서부터 강조한 ‘읽기와 쓰기’ 훈련을 대학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미국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이 대학 교육을 이수하는 데 필요한 독해력과 작문력을 확인해 훈련하는 과정을 규정해 놓았다.
대학의 교양국어 현장이 무너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뚜렷한 교육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송기중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어문연구’(120호· 한국어문교육연구회 발간)에서 “미국 대학에서 ‘신입생 영어’ 과목을 개설하는 것은 대학 교양영어가 대학 교육을 이수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며 “미국 대학에서 작문이 강조되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또 “우리 대학의 경우처럼 교양인의 자질 향상, 정서 순화, 사고의 심화 등 거창한 목표보다는 가급적 단순하고 현실성 있는 교육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 교양국어의 교육 목적을 구체화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면 먼저 의미를 분명히 전달하고, 적절한 독서로 어휘를 늘린다는 등의 규정과 방침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
1980년대 이후 대학의 교양 국어(작문 포함) 과목은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비판의 핵심은 교양 국어의 내용이 고등학교 국어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것과 학생들이 교양 국어 과목을 수강한 후에도 여전히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교양 국어 과목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꾸거나 아예 폐지하거나 교양 국어의 시간 수를 줄이는 대학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일부 대학들이 교양 교육의 내실화를 기하기 위하여 교양 국어의 내용과 운영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개선을 위한 노력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교양 국어의 목표를 현실적 필요에 부응하도록 설정하려는 움직임이다. 한 학기 한 과목 속에서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현실적으로 대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즉, 교양 국어의 운영을 이론 강의에서 글쓰기 실습 위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다. 즉, 이론은 간략하게 다루고 연습문제 풀이와 글쓰기 실습을 통하여 문장을 정확하게 쓰고 문단을 조리 있게 구성하며 글을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학생들에게 많은 글을 쓰게 하고 학생이 쓴 글에 대하여 철저하게 첨삭지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많은 글을 쓰도록 하는 것만으로 작문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쓴 글에 대하여 문제점을 지적해 주고 수정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작문 능력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교양 국어를 전담할 인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임 대우 강사제, 또는 강의 전담 교수제 등의 도입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교양 국어 교육이 좀 더 책임 있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학원에서 교양 국어를 담당할 인력을 별도로 훈련시키거나 교육시키는 일이 없었다. 이제 대학원에 교양 국어 강의 관련 과목이 개설되어 훈련을 받고 나간다면 막연한 상태에서 교양 국어를 담당하게 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넷째는 체계적이고 실용성 있는 교재를 편찬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몇 대학에서 교양 국어(또는 작문)의 교재를 새롭게 개편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고 대학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교양 국어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이고 교양 국어 무용론은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 당국이 지원해 주어야 할 사항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강좌당 수강 인원을 30명 이내로 줄여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첨삭지도를 보조할 실질적인 강의 전담 조교제(T.A.제도)를 도입해 주는 것이다.
2004.04.13 (화)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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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르게]<25>연재를 마치며
"언어는 민족의 살아있는 역사"
인터넷를 비롯한 정보통신의 발달로 언어의 생성, 발전, 소멸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국어 파괴에 대한 우려는 비단 국어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에게서도 나왔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에 대한 관심은 독자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었다. 본지 지면에서 ‘우리말 바르게’라는 연재물을 싣자, 경향 각지의 독자들은 도로의 이정표에서부터 방송사의 앵커 멘트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우리말 사용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내왔다.
국문학자를 비롯한 국어 전문가들도 국어 파괴 현상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글을 쓸 때 일부러 어긋난 표기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는 현실임을 고려하면 올바른 표기법을 제정해 언어대중이 이를 따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국어 관련 법규를 통합해 단일한 법안을 도입하는 일이 필요하다. 포괄적으로 다뤄야 할 법령에는 국어정책 수행을 위한 제도를 비롯해 올바른 국어 사용을 위한 제도, 국어 진흥과 보급을 위한 제도 등이 포함된다. 이는 우리말 사용을 강제하는 기능보다는 올바른 우리말을 지키고 전승하려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 같은 장치를 통해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 교육의 강화가 중요하다. 학교의 국어교육이 입시용에서 탈피해 문화국민이 되기 위한 언어문화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또 국어교육은 학교교육만이 아닌 평생언어교육, 사회언어교육, 매체언어교육, 영상언어교육 등 평생교육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제도 개혁에 정부와 교육계의 역할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정부는 국민이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는 분위기 조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의 각종 발표 자료에서 순우리말 표현을 살리고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는 사람을 둬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참고할 만하다.
국민의 우리말 사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언론인의 우리말 사용 능력도 지속적으로 높여야 한다. 특히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매체인 방송사의 언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방송인을 대상으로 국어교육을 실시하고 방송사와 전문가 단체로 구성된 ‘방송언어순화위원회’를 운영해 국어 오용 사례를 시정해 나가야 한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했다. 또 단순한 시청률 경쟁을 지양하고 국어를 더욱 친숙하게 사용하도록 각종 국어 교양 프로그램을 늘리는 문제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물론 올바른 국어 교육 강화에 힘을 보태는 데는 신문사도 예외일 수 없다. 신문에서 최종적으로 우리말을 바로잡고 다듬는 교열 업무를 강화해야 한다.
국어에 정보화 마인드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다. 문화관광부 등 관련 단체가 민간에서 활성화된 문자 정보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한글과 워드, 훈민워드 등 각 문서작성기의 서로 다른 코드를 하나로 통일해 언어대중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
이와 함께 분단 상황에서 국어 통합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한국어 언어대중이 남과 북으로 크게 갈린 상황에서 우리말 사용 환경 개선은 남한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만 우리말 사용 환경을 강화해서는 장기적으로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남북한이 같이 쓸 수 있는 공동 국어사전을 편찬해 민족어를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민간 연구기관과 정부의 정책적 협조로 가능하다. 이들 단체에는 학계와 출판사, 국어연구기관 등이 모두 포한된다. 물론 제대로 된 국어사전은 일반인들의 국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된다. 제도적인 면 못지않게 물질적 환경 구비도 중요하다. 구현정 상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화법상담소 개설, 화법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침서 개발 등과 같은 국어정책이 실용성을 바탕으로 시행돼야 한다”면서 “노래연습실의 반만큼이라도 대화연습실이 생긴다면 국어 사용 환경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국민의 한국어 사용환경 개선과 함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고려하는 정책도 긴요하다. 외국인을 위한 간략한 표준문법을 제정하고 외국인을 위한 표준어 사전을 편찬하며, 한국문화를 알리는 자료와 부교재 개발에 적극 나서는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두 정책적인 면보다도 일반인들이 어색하더라도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송민 국민대 교수는 “어디서나 예절 감각에 합당한 표현을 써서 만인에게 통하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은 개인의 발전에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557돌 한글날 알림그림(포스터)이 떠오른다.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네 어귀의 풍경, 전봇대와 전선줄, 올망졸망한 한글 간판, 어찌 보면 정겹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언어가 처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광화문에는 투박한 광고탑 대신에 ‘ㅎ’자 모양의 산뜻한 조형물이 낮과 밤을 밝혔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했다.
이것이 또한 우리 언어의 잠재력이자 가능성이라 한다면 비약일까.
국어가 처한 현실, 즉 안으로는 우리가 늘 쓰면서도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고, 밖으로는 치열한 자국어의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소리 없는 언어 전쟁의 와중에 있는 우리 언어 현실,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의 국어 정책은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책의 큰 변화는 무엇보다도 ‘규범주의적 무질서’에서 ‘질서 있는 다원주의’로의 언어 정책의 틀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겠다. 국민들의 언어생활과 함께 호흡하면서 우리 말과 글의 내연과 외연을 확장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계속 보완되고 발전되는 민족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방적 규범 정책을 바탕으로, 그간 정책 대상 영역에서 소외되었던 비규범 영역과 새로운 언어 현상들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입법을 추진 중인 국어 기본법 제정안의 여러 장치, 즉 ‘어문 규범 영향 평가 제도’와 ‘국어문화지수’ 개발을 통해 규범과 실제 언어생활과의 괴리를 좁혀 주고, ‘국어 상담소’ 운영과 ‘국어능력검정 제도’ 등을 통해 국민 개개인의 국어 지식과 국어 사용 능력의 증진을 도모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 언어가 문화의 형성과 진보라는 밑바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언어 순화뿐만 아니라 신조어에 대한 신속한 대응, 지역어의 발굴과 활용, 국제적 전문 용어의 신속한 정비 등 문화적 창조의 기반인 언어 자원을 확충해 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말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남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 등 모국어 사용을 바탕으로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연계망을 구축하고, 국어 환경을 정보화 환경에 친화적으로 조성하고 날로 비중이 커지고 있는 세계 언어 정보 처리 산업 분야(시장 규모: 2004년 1545억달러 예상)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998년부터 10개년 계획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21세기 세종계획의 3단계 사업(2004∼2007년)의 효율적 추진에 주력할 것이다.
"<19>방언을 살리자 "에서 박종현 기자가 "표준어 문장인 ‘빨리 오세요’ 에 변화를 줘 삼도의 사투리로 바꿔보자. 경상도 사투리 ‘퍼뜩 오이소’를 비롯해 전라도 사투리 ‘허벌라게 와버리랑께’, 충청도 사투리 ‘빨리 와유’는 여전히 표준어에 비해 정겹다."라고 했는데, 난 하나도 정겹지 않습니다.
첫댓글 *.*
"<19>방언을 살리자 "에서 박종현 기자가 "표준어 문장인 ‘빨리 오세요’ 에 변화를 줘 삼도의 사투리로 바꿔보자. 경상도 사투리 ‘퍼뜩 오이소’를 비롯해 전라도 사투리 ‘허벌라게 와버리랑께’, 충청도 사투리 ‘빨리 와유’는 여전히 표준어에 비해 정겹다."라고 했는데, 난 하나도 정겹지 않습니다.
전라도 사투리 ‘허벌라게 와버리랑께’는 박종현 마을의 사투리이지, 전라도 사투리가 아닙니다. "후딱 오랑께" 또는 "싸게 싸게 와 야!" 라고 한다면 몰라도.
전남 무안, 신안지역에서 쓰이는 " 허벌나다" 는 '굉장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예문: 어저께는 괴기를 허벌나게 많이 잡었어(= 어제는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잡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