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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소공동체활동으로 얻어지는 기쁨
서 마리아 추천 0 조회 64 18.06.02 14: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소공동체 - 가장 확실하게 전교 할 수 있고, 자기 성화의 지름길이다.

 

나는 대구 출신이면서, 직장은 서울이고, 집은 수원교구 관할이었기에 이웃을 사귀는 것이 참 무리가 많았다. 출퇴근도 혼자 승용차를 가지고 다니니까 더 어려웠다. 그러나 성당에서 사목위원으로 뽑아주어서 다행이었고, 성당이 좁은 비탈길로 언덕위에 경사가(30˚가까이)심하여서 노인들이 오르기에는 무리가 많아서 차량봉사를 하였더니,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우상(?)이 되었다. '93년도 신도시 분당구가 형성되기전 5개 본당신부님들께서 '소공동체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였고, 우리 주임신부님께서 우선적으로 평일 미사 열심히 나오는 사람들 중심으로, 지구장(10개지구), 구역장,반장 이란 직책을 부여하고 말씀나누기 교육부터 실시하면서 월 1회씩 전체 나눔및 교육을 실시했다.

첫번째 반모임이 시작될때는 사목위원을 파견했고, 절대 가서 훈수들거나 나서지 말고, 진행상황을 기록만 해 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게 참 잘 안되더군요.

                                                   (왜? 그렇게 아는 것이 많은지!)

난 교육분과장이면서 반장을 맡았죠.대부분이 낮에 하고, 직장인들을 위해 밤에 하겠다고 했었죠. 그러면서 방학이나 토요일에 하면 함께 참석을 하였습니다.

 

 ▶우선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훈련을- '아, 그러셨군요.' '아, 힘드셨겠습니다.' '어머나 좋았겠습니다.' "아, 행복했을 것 같네요."는 리엑션만  뭐 자기가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섣뿔리 절대 나서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옆 사람의 고충을 주로 듣는 것으로, '아 저사람은 이런 고충이 있구', '아 저분은 저런 고충이~' 이러면서 마지막에 폐회 기도에 그분 고충을 넣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유기도를 참 못합니다.그리고 소공동체 기도문을) 절대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절대 나서지 말라는 언질을 줍니다. 예를 들어  시어머니와 고부갈등문제를 하소연 했는데 섣불리 며느리 편만 들다가 시어머니는 불호령이 떨어지죠. 그래서 절대 발설하지 말고 친구와 가까이 할때도 항상 어르신도 배려하면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교육을 시켰지만 안될 때가 많았습니다.그러나 마음으로 정말 다가가서 배려를 잘 하면서 중재를 잘하는 분도 많았습니다.

저의 경험만 말하겠습니다.

저는 카운슬러 교육도 받았기에 듣는 훈련이 좀 되었다고 자부했지만 잘 못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사례1> 형제 반장으로 정해진분의 사례: 40대인데 결혼 3년차 라는데 아기가 없었어요. 그리고 형제분이 퇴근 후 교우들과 좀 만나고 싶어 하는데, 부인이 꼭 못나가게 막고 자기가 대변을 다 합니다.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둥(?) -참 여러가지로 갸우뚱 했습니다.

-그러나 가끔 '아구찜을 해놨으니 내려오시라.' 하기도 하여 가보면 '스킨 스쿠버로  해양건설을 하는 직업'이라 자기들끼리 해산물 채취를 해서 요리를 잘 한답니다.그런데 어떤 말이라도 하려면 여자가 나서서 "못합니다. 안되요. 피곤해서 안되요!" 자릅니다. 갸우뚱하게 생각하던 중 한 몇달간 소식이 없어요.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그러던중 한번은 부인이 전화를 해서 그냥 막 우는 거예요. "왜 그래요?" 아무리 물어도 그냥 울기만 합니다.

「남편이 이 아래 치킨 집에서 직원들과 회식을 하다가 주인과 언쟁이 벌어졌고, 주인이 경찰을 불러서 의경이 왔는데, "넌 뭔데 새파랗게 젊은 놈이 이렇게 어른들 한테 함부로 대하냐?" 하면서 뺨 한대를 때린 것이 화근이 되어 '공무집행 방해'로 구속이 되고, '국선 변호사를 대 주겠다'고 했는데, 이 부인이 "당신은 벌 좀 받아야 돼!" 마다 했답니다. 그게 3달이나 구류를 살고 검찰청에 넘어갔는데 면회도 안 시켜 준답니다.」

 

 참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국선 변호사도 아주 유명한 분이고 우리아파트 뒤에서 터파기공사를 잘못하여 무너질 염려있어 재판을 하는데, 그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해주어 승소하게 된 변호사인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남편을 힘들게 하느냐?' 고  따졌더니 남편은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자기는 여고를 나왔는데,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다 둘이 교제하고 결혼을 했지만'남편의 무식이 덜어날까봐, 그러노라고 했습니다.'

 내가 막 야단을 쳤죠. "그래도 한 기업의 대표고, 구치소에 갖혀 있으면 자기 손으로 아무것도 못하는데 어떻게 자기 감정만 얘기 하느냐?"

"당장에 그 분 변호사에게 찾아가라고!" 아니면 경찰서에 가서 방법을 알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라 했지요. 그런 후 한남동 꼰벤뚜알 수도원마당에 모셔진 성모상 앞에서 엎드려 절하며 어머니 정말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하염없이 빌었다네요. 3일 후 남편도 출소 했고요.

그 후에 형제반장도 열심히 잘하셨고, 이내 임신이 되어서 세아들의 어머니가 되었고, 곤지암 부근 전원주택에서 잘 살고 있는 경황을 알려왔습니다. 

 

사례2-1> 바람피는 두 남편

 ◎ 첫번째 남편-기계설비를 하는 자격이 있어 큰 기업에 부장급이었고 아들이 중1이었는데 상당히 입시율이 센 명문중학교에서 수석만 한다는데 키도 크도 아주 잘생겼어요. 그런데 남편이 얼마전부터 회사앞 Beer- Holl  마담과 바람이 나서 승용차도 새로 뽑아서 그집 아들(친아들과 동갑)과 그 마담을 태우고 돌아다니다가 사고도 나서 자동차가 반이나 부서지고 음주운전이라 벌금이 600만원 나왔어요. 한다.그 당시 우리아파트 값이 800만원 정도였으니 어느정도 였는지? 참 어이가 없었다. 다행이 상대편에 다친 사람은 없었고 그냥 개울에 쳐박았나 봐요. 집으로 고지서가 날아오니 알게 되었어요.한다.- 부인(36세)은 이혼하겠다고 하는데 내가 극구 말렸어요. 저렇게 잘 생긴 아들 가슴에 상처를 주겠느냐?고 이 남편도 어릴때 어머니가 미제물품 장사를 하느나 매일 남편 혼자서 집지키고 외톨이가 되어 사회적응을 잘 못한다고 한다. 지금 화에도 친정오빠가 상무라나? 전무라나? 해서 보살펴 주니까 그나마 고위직에 있는데 헤어져야겠다고 하기에 극구말리면서 기다려 주는 것이 엄마의 미덕이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주말에 처량한 기분이 들 것같아서 가끔씩 드라이브도 하면서 시골 외딴 성당에 들어가서 성체조배를 하면서 싫컨 울게도 하였더니 2년 뒤에 완 전히 돌아와서 여자는 직장에 나가고 남편이 살림을 다 산다고 했어요, 어쩌다 마트에서 마주치면, "아이구!  아드님이 어쩌면 그렇게 미남이냐?" 하면서  칭찬을 늘어지게 하면 히죽히죽 웃으면서 좋아했어요. 기술 자격증으로 가끔씩 나가서 돌보고 오나봅니다. 그 아들 지금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있을 거예요.

 

 사례 2-2> 미남이자 24세에 행정고시 Pass 하여 우리나라 국영기업체중에 제일 Hot 한 곳에 과장으로 있는데 고향 경남쪽 대도시에서 부인은 피아노를 전공하는 예쁜 사람인데 한 고향에서 눈이 맞아 결혼을 하려니까 여자쪽에서 모두 반대를 하여 여자쪽 친정에서 서울에 있는 은행에 취직을 시켰더니 몰래 결혼을 하여 아들 둘을 낳고 우리동네에서 살았어요. 큰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작은 아이는 1학년, 이 부부는 우리성당에서 혼배성사도 받고 구역별 성가대회에도 같이 출연하여 우리 구역이 1등을 했지요. 그래서 자주 술도 나누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여자가 손목의 동맥을 자르고 죽으려고 난리가 났대요.

몇년동안 가족이 모르는 수당을 타면 몰래몰래 경매를 했답니다. 자동차 시트 속에 돈을 숨겨놓고 통장도 숨겨놓고 나중에 부인이 한 적금통장까지 훔쳐가고 말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다 성탄을 앞둔 어느날 혼비백산이 되어 아들 둘과 함께 저희집으로 기겁을 하면서 왔어요." 빨리 좀 숨겨달라고! 저 사람이 칼을 들고 죽이려고 한다"고, 끝까지  전화를 해대는 남편을 계속 따돌리면서 다음날 까지 버티다가 차를 가지고 나갔다는 제보를 받고 얼른 부인의 친정인 대방동으로 데려다 주었지요. 회사에서도 너무 빚쟁이한테 쪼들리는 눈치고 회사앞 음식점에서 까지 돈을 빌려쓰고 해서 권고 사직을 시켰고, 치구들이 하는 변호사 사무실에 사무장을 시켰지만 그 버릇을 없앨 수가 없었고 정신분열증 비슷한 증세를 보여서 친구변호사가 '자네 위가 상당히 안 좋은듯 하니, 내친구 유명한 의사가 있는데 사무실에서 진단을 좀 받아봐!" 정신과 의사를 모시고 진단하여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했는데 너무나 못견뎌 하니까 집에 있게 했고.중학교 아들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했지만 걷잡을 수 없어 이혼 하고 시골에 내려가 있는데 끝까지 고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아들들은 아빠를 닮아서 서울의 그 유명한 K 대를 나와서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있을 거예요.

 그래서 난 이 반모임을 통해서 내 자신이 많이 성장할 수 있었고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저의 친정아버지 임종직전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혼자 돌봐드릴분이 안계셔서 40일 전에 경기도 저의 집으로 모셨고, 임종 3일전에 셰례를 받으시고 그 당시 본당식구들이 700여명정도 신앙생활 했는데 거의 다가 연도를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반장을 한 덕분이고 반장으로서 자동차로 하는 봉사, 죽음 직전에 있는 분들에게 대세를 드린 적도 있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많이 드렸기에 참 행복하고 내가 어려운때 형제자매들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는 자매들과 형제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죠. 더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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