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추천하셨던 이별없는 세대! 찾아보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올려드립니다.
우리는 유대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깊이는 나락이다. 우리는 행복도 없고, 고향도 없고 그리고 이별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가느다랗고, 우리의 사랑은 잔인하며, 우리의 젊음엔 젊음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한계도, 주저함도 없고 보호받지도 못하는 세대다. 유년 상태의 보호 울타리에서 쫓겨나, 이 세상으로 내팽개쳐진 우리들. 쫓겨나 있다 하여 우리를 경멸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런 세상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진 바람이 우리 가슴에 소용돌이 칠 때, 우리 가슴을 붙들어줄 신들을 우리에게 함께 주지는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신이 없는 세대다. 우리는 유대도 없고, 과거도 없고, 인정도 받지 못하는 세대니까.
그리고 이 세상의 모진 바람은, 우리의 발과 가슴을 뜨겁게 북적대며 어른 키 높이로 눈 쌓인 거리에서 방황하는 떠돌이 집시로 만들어놓은 이 세상의 모진 바람은, 우리를 이별 없는 세대로 만들어놓았다.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다. 우리는 이별을 체험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방황하는 우리의 발길이 헤매는 도중에 집시처럼 방랑하는 우리의 가슴엔 끝없이 이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우리의 가슴을 하룻밤 동안 묶어두어야 한단 말인가? 밤은 아침의 이별을 준비해두고 있는데. 우리는 이별을 참아내고 있는 것인가? 우리와는 달리 시시각각 이별을 맛보아온 그대들처럼 우리가 이별을 체험하고자 하면, 우리의 눈물은 불어나 강물이 되고, 그 어떤 둑으로도ㅡ그게 비록 우리의 조상들이 만든 둑이라 하더라도ㅡ막아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대들이 겪었던 식의 이별, 거리 곳곳에 일 킬로미터 간격으로 산재해있는 이별을 체험해볼 힘을 우리는 결코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가슴이 침묵한다고 해서, 우리의 가슴엔 소리가 없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의 가슴은 유대나 이별을 말로 떠들지는 않는다. 우리의 가슴이 우리에게 행해지는 모든 이별을 은밀히 슬퍼하는 너무나도 커지고, 그래서 그대들은 밤이면 침대에 앉아 우리들을 도와달라고 신께 기도할지도 모른다. 그대들의 이별에 비하면 우리의 이별은 훨씬 많기도 하니까.
따라서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다. 우리는 이별을 부인하고, 아침이면 잠자면서 이별을 그냥 내버려둔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면, 이별을 막고, 아낀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와 헤어지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별을 아낀다. 마치 도둑처럼, 우리는 서로 슬그머니 도망친다. 고마움 없이 고마워하며, 그리고 우리는 사랑만 취하고 이별은 남겨둔다.
지속도 없고, 이별도 없는 만남, 우린 그런 만남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별처럼. 별들은 서로 다가와서, 광속처럼 짧은 순간 잠시 나란히 서 있다 다시 멀어진다. 흔적도 없이, 유대도 없이, 이별도 없이.
우리는 스몰렌스크의 성당 아래에서 만나 부부가 된다. 그러다 우리는 슬그머니 떠나간다.
우리는 노르망디에서 만나서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가 된다. 그러다 우리는 슬그머니 떠나간다.
우리는 핀란드의 호수에서 하룻밤 만나서 연인이 된다. 그러다 우리는 슬그머니 떠나간다.
우리는 베스트팔렌의 한 농장에서 요양객으로 서로 만나서 즐기고 회복된다. 그러다 우리는 슬그머니 떠나간다.
우리는 도시의 어느 지하실에서 배고프고 지친 사람으로 만난다. 그래서 실컷 잠만 자다 슬그머니 떠나간다.
우리는 세상에서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 서로 만난다. 그러다 우리는 이별을 피해 몰래 떠나간다. 우리에겐 유대도, 머무름도, 이별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다. 우리는 가슴의 절규가 두려워 도둑처럼 슬슬 도망가는 그런 세대다. 우리는 귀향이 없는 세대다.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에겐 우리의 가슴을 맡길 만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별도 없고, 귀향도 없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도착의 세대다. 아마도 우리는 새로운 별 위로, 새로운 삶 속으로의 도착으로 가득 찬 세대일 것이다. 새로운 태양 아래서. 새로운 가슴으로의 도착으로 가득 찬 그런 세대, 아마도 우리는 새로운 사랑, 새로운 웃음, 새로운 신에게로의 도착으로 가득 찬 세대일 것이다.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모든 도착이 우리 것임을.
<이별 없는 세대>, 볼프강 보르헤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