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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복(六福)
박 완 서
인사부를 다녀서 기사 대기실로 돌아온 양순호 기사는 대기실 전화를 이용하려다 말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그는 사옥을 돌아다보았다. 칠 년째 몸담아온 회사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근무해 보긴 통틀어 반년도 안 될 것이다. 그나마 수습기간을 뺀 대기 발령중의 근무란 출근부의 도장이나 찍고 나면 온종일 자리를 비워도 누구 하나 탓할 사람이 없었으니 근무랄 것도 없었다.
까마득한 높이로 직립한 사옥은 새삼스럽게 위엄 있고 비정해 보였다. 칠 년 동안이나 그 회사 사람이었으되 그 속의 컷속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 앞을 지나다니는 행인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래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쓸쓸하게 어깨를 추슬렀다. 샘물같이 상쾌한 바람이 가로수를 흔들고 그의 실크 넥타이를 어깨 너머로 휘날렸다. 정장이 보기 좋고도 쾌적한 계절이었다. 열사의 나라에서 꿈에도 그리던 이 땅의 사계 중에서도 가장 좋은 때였다
순호는 어쩌다 하는 정장이나마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입어보질 않아서 어색하고 거북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의 부재 중 그의 넥타이를 사서 모으는 게 낙이자 취미였고, 그가 국내에서 휴가중이거나 대기중엔 아침마다 손수 그걸 그의 목에 매주고 싶어했다. 그가 없는 동안 아내가 들여놓은 대형 자개장은 문짝 하나가 대문짝만했는데 그 뒤에 걸린 반짝거리는 난간엔 아내가 모은 넥타이가 첩첩 걸려 있었다. 그는 그게 도대체 몇개쯤이나 되는지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이삼십 개쯤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백 개가 넘어 보이기도 했다. 다만 매일 갈아매도 그걸 골고루 한 번씩도 매보기 전에 또 떠나게 되리라는 사실 하나만이 확실했다.
그렇게 많은 넥타이는 그에겐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을뿐더러 돈관리에 영악하고 빈틈없는 아내답지 않은 낭비였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넥타이를 볼 때마다 아내의 기다림과 참을성의 부피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연에시절처럼 앳되고 열렬해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으니 노상 낭비만은 아닌 셈이었다. 그건 넥타이이기 전에 사연도 농후한 연애 편지였다.
아내는 아침마다 그중의 하나를 신중하면서도 망설이는 손끝으로 골라내서 그의 목에 감고 알맞은 길이를 서투르게 대중해가며 매듭을 만들었다. 아내가 미처 그 일에 익숙해지기 전에 그는 떠나야 했으므로 아내의 솜씨는 칠 년이 여일하게 서툴렀다. 그러나 서투르다는 건 곧 신선감이기도 했다. 그들의 사랑은 해마다 신선하고 미진했다. 마치 영겁을 두고 되풀이되는 이별로 말미 암아 영겁을 두고 신선하고 미진한 견우와 직녀의 사랑처럼.
넥타이를 다 매고 수줍게 감겨오는 아내의 팔의 따뜻하고 나긋한 감촉은 신혼여행 때처럼 짜릿하고 눈빛은 잡념 없이 절절했다.
“여보, 우린 언제나 남들처럼 매일 아침 이러면서 살죠?”
이런 아내의 탄식을 그의 입술로 막으면, 아내의 입술은 언제나 첫키스 때처럼 미숙한 듯하면서도 충분히 감미로웠다.
그의 노모(老母)는 젊은 부부가 일 년이면 열한 달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걸 마치 자기 죄처럼 몸 둘 바를 모르면서 노상 이렇게 중얼거렸다.
“천상의 벌을 받은 견우 직녀도 아니겠다, 내 아들 며느리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젊으나 젊은 것들이 허구한 날 독수공방일꼬. 하긴 가난한 것도 벌이겠지만 그게 어디 걔네들 쥔가 내 죄지.”
가진 거라곤 모자가 온갖 고생 다 해 얻어낸 공대(工大) 졸업장 하나밖에 없이 맨손으로 결혼한 외아들이 십 년 안에 이만큼 살게 된 게 순전히 해외 근무 덕이라는 걸 노모도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젊은 부부에게 얼마나 못할 노릇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늘 며느리 앞에 기가 죽어 지냈다. 결코 넉넉할 수 없는 용돈도 한푼을 허투루 쓰지 않고 꼼꼼히 챙겼다가 가까운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 바치고는 정성껏 빌고 또 빌었다.
“부처님 은덕 하해 같으사 이 몸에게 그 아들을 점지하시어 양씨가의 대를 끊을 뻔한 대죄를 면하게 하시더니 그 자식에게 수와 복까지 주시어 이만큼 살게 되었나이다. 예서 뭘 더 바란다면 욕심이 지나쳐 천벌이 내릴까 두렵사오나 점지하신 자식이오라 부처님 자비만 믿고 이 늙은 게 세 살 먹은 어린것처럼 응석 부리옵니다. 물욕일랑 더이상 부리지 않겠사오니 그저 이 늙은게 아침저녁 내 자식이 내 집 드나드는 걸 낙으로 삼고 살게 해주시고,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춘 며느리 독수공방 면하게 해주십소사. 비나이다, 비나이다, 두 손 모아 비나이다.”
이렇게 노모는 부처님 아니라 목석이라도 감동시킬 만큼 마디마디 사무치게 빌었다. 남들 같으면 단산을 하고도 남을 마흔줄에 백일불공 드리고 간신히 점지받은 외아들이라 노모는 그 자식이 잘되는 것도 못 되는 것도 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의 일이라는 일종의 체념으로 아들에게 지나치게 욕심 부리지 않기를 스스로 엄하게 경계해왔건만도, 일흔 고개가 내리막길로 접어들고부터는 행여 외아들이 자신의 죽음에 종신 못 할까봐 문득문득 사위스럼고 두려운 나며지 그렇게 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예쁘곡 탐탁한 집을 오밀조밀 꾸미고, 없는 거 없이 갖춰놓고 사는 건강하고 화목한 양씨가의 사람들에게 부족한 게 있다면 그건 가장이 직업상 일 년이면 열한 달이나 집을 비우는 일밖에 없었다.
투명한 공중전화부스는 세 채가 나란히 서 있었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도 각각 서너 명씩이나 되었다. 한낮의 도심은 금속성인 소음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순호는 차례를 기다리는 게 지리하다기보다는 그 소음과 대항해가며 고래고래 악을 쓰고 또 아내의 연약하고 기품 있는 목소리를 알아들어야 할 일이 난감해서 비실비실 그 앞을 지나쳤다.
기쁜 소식이나 되면 또 몰라. 그는 이렇게 자조하듯이 중얼거리다 말고 흠칫 놀라면서 발걸음이 더욱 불확실해졌다. 그럼 그게 기쁜 소식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는 지금 막 국내 발령을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것도 지방이 아닌 서울이었다. 그의 회사는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였지만 현장은 거의 중동 쪽에 몰려 있었다. 국내 현장은 몇 안 될뿐더러 대부분이 지방 벽지 아니면 항만이었다. 이번 지하철 공사에 그의 회사가 참여하지 않았으면 토목기사의 서울 근무는 거의 가망이 없는 일이었다. 여북해야 순호와는 외가 쪽으로 먼 인척관계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데면데면하게 굴던 인력관리 담당의 권이사가 다 발령을 받고 난 그에게 특별히 아는 척을 하면서,
“축하하네. 자네 자당 어른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할 지경이 었다.
그러나 그때 그는 왠지 축하를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덩달아서 기쁜 척하기도 힘겹고 어색했다. 그의 노모나 아내뿐 아니라 그 자신도 여직 껏 수없이 해외 근무를 지긋지긋해하면서 국내 근무를 간절히 소망하는 말을 입 밖에 냈었다. 벽지 근무라도 국내로 떨어지면 이까짓 손바닥만한 땅덩이에서 마음만 먹었다 하면 매일, 게을러도 일 주일에 한 번씩은 가족과 만날 수 있고, 아내를 현장으로 불러내릴 수도 있으니 좀 좋으냐고 벽지 근무하는 동료를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막상 국내 발령이 떨어지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여직까지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말로 나타낸 게 아니라, 미리 입 밖에 낸 말에 속마음이 동의하는 척한 데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자신이 한 말을 전적으로 배반해왔음을 이제야 알아내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권이사의 축하의 말에 가까스로 기쁜 척을 하다 말고 문득 권이사에게 국내 근무를 취소하고 해외 근무를 연장시켜줄 것을 애결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
사에선 인사문제를 권이사 혼자 즉흥적으로 다룰 수 있게 돼 있지도 않거니와, 또 권이사 역시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월권을 하려고 할 인품도 아니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도 자신의 인사문제를 사돈의 팔촌보다 약간 가까운 인척관계를 믿고 낙관하거나 든든하게 여긴 적조차 없거늘, 하물며 인사 청탁 같은 건 엄두도 못 내본 일이었다. 생전 안 하던 짓까지 하마터면 할 뻔하게 고대하던 국내 근무가 그에게 뜻하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었다.
그는 방황하는 것처럼 정처 없이 걸어서 번화가를 벗어났다. 그는 자신의 표리부동성(表裏不同性)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게 넌더리가 났다. 언어의 장벽 때문이겠지만 그는 모슬렘처럼 속 모르겠는 족속은 없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작 속 모르겠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의혹을 되풀이했다.
주택가 모퉁이 과일가게엔 포도가 한창이었다. 그는 그것을 보자 비로소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내하고 한 약속이 생각났다.
“이따 전화 걸 테니까 준비하고 있다가 나오구려. 안성 포도원에나 가서 하루 놀다 옵시다.”
해외 공사 끝마치고 귀국해서 여권 반납하고 대기중인 기간의 출근이란 휴가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거의 매일 아내를 시내로 불러내서 외식도 하고, 산책도 하고 가까운 교외로 나가 마음 내키면 외박도 했다. 그는 열심히, 거의 초조해 보일 만큼 열심히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 못다 한 사랑과 의무를 한꺼번에 만회하려 들었다. 아내는 묵은 부채 받아들이듯이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그걸 받아들였고 노모 역시 이렇게 그를 부추겼다.
“집 걱정, 애들 걱정일랑 말고 에미 데리고 다니면서 실컷 호강도 좀 시켜주고 재미도 좀 보게 해야 한다. 에미가 워낙 참을성이 많아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그게 헐 노릇이냐. 남들 재미있게 사는 거 보면 부럽고 눈꼴사나웠던 적이 아마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게다. 요새 세상은 예전 같잖아서 좀덜 드러내놓고 재미들을 봐야 말이지. 못 그러는 게 바본걸. 그 동안 못 해준 거 보충해주는 셈만 치고 그저 흠빡 잘해줘라, 알았지?”
아내에게 국내 공사로 발령이 난 사실을 알리는 일을 주저하느라 깜빡 잊고 있던 안성 포도원행 약속이 생각났다고 해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울적했고 막연히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과일가게 전화를 빌려서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여직껏 막연했던 게 베일을 벗듯이 분명해지는 걸 느꼈다.
그가 정작 두려워하며 의심하고 있던 건 아내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아내의 마음도 밀월처럼 짧고 달콤한 그의 휴가기간 동안 아침마다 수십 개나 되는 넥타이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의 목에 감하주면서 정겹게 하던 말,
“여보, 우린 언제나 남들처럼 매일 아침 이러면서 살죠?”
를 배반하고 그의 국내 근무를 반기지 않을까봐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힘 안 들이고 이심전심으로 아내의 마음에 그가 동의할 수 있을 때라든지 그의 마음에 아내가 동의해줄 때처럼 살아가면서 기쁠 때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아니었다. 아내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같이 있을 때는 입 밖에 내서, 떨어져 있을 때는 편지로 써서, 일구월심 함께 살고지고 수없이 되풀이한 말과는 딴판으로 속마음은 장차 매일 함께 살게 된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으리란 확실한 예감이 그를 초라하고 불쾌하게 만들었다.
“여보, 전화 늦어서 미안해. 안성 갔다 오긴 너무 늦은 시간 아닐까? 그래도 하여튼 시내로 나오구려. 이 근처 어디서 점심 먹고 영화나 한 편 보고 같이 들어갑시다.”
“안 돼요. 나갈 준비 다 하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준빈 무슨 준비?”
“옷 말예요. 교외 나갈 옷으로 어떻게 시내를 돌아다녀요?”
“원 별 소릴 다·…·그럼 난 넥타이 매고 어떻게 교외를 나가누?”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나요 뭐.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안성 가서 맛있는 청포도 사다주마고 벌써 약속해놓았단 말예요.”
아내의 응석이 조금도 귀염성스럽지 않고 그를 피곤하게 할 뿐이었다. 그는 가까스로 짜증을 억제하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까짓 청포도야 시내에도 얼마든지 있어. 참 이 집에도 있군. 여긴 과일가게야.”
“그럼 지금 회사에 있지 않단 말예요?”
아내의 목소리에 고무공 같은 탄력이 생겼다.
“응, 벌써 퇴근했어.”
“근데 왜 인제사 전화 걸어요? 무슨 일이 있었군요.”
“무슨 일은…… 그저 산책을 좀 했을 뿐이야.”
“산책을요? 혼자서요?”
“혼자가 아니면, 예쁜 아가씨 라도 꿰차고 있을까봐?”
그는 짐짓 야비하게 낄낄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군요. 전 못 속여요. 오늘 발령났죠? 그쵸?”
“당신 그걸 어떻게 알았지, 집에 가만히 앉아서? 설마 양순호 발령났다고 호외가 돌았을 리도 없고…….”
“때가 됐잖아요. 그놈의 회사에서 사람을 한 달 이상 놀린 적이 어디 한 번이나 있었어야 말이죠.”
“벌써 그렇게 됐던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당신하고 재미 보고 단꿈 꾸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더니 벌써 그렇게 됐구먼.”
그는 자조하듯이 쓸쓸하게 말했다.
“어디예요, 여보?”
민감한 아내는 그의 쓸쓸한 마음을 단박 알아차린 듯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글쎄 여기가 어디쯤 되나? 종로에서 안국동 사이쯤 되나 몰라?”
“여보, 농담할 때가 아니란 말예요. 발령 난 데가 어디냐니까.”
“누가 발령났다고 했어?”
그는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다. 아내의 궁금증은 현재의 그의 거처가 아니라 앞으로 임지일 뿐이라는 사실이 불현듯 그를 역정스럽게 했다. 침침한 가겟방에서 내다보이는 바깥은 눈부셨다. 길바닥으로 내놓은 대나무 광주리 속에서 알알이 반짝이는 탐스러운 청포도송이를 보며 그는 느닷없이 육사(陸史)의 시 중의 두어 구절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띄엄띄엄 떠올랐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입시공부 할 때 억지로 외구 풀이한 적이 있을 뿐 시를 가까이 할 기회도 없었거니와 그럴 성품도 아닌 그에게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떠오른 이런 시구는 이상하게도 그로 하여금 자신을 남처럼 떨어져서 바라보게 했다. 남처럼 바라다본 그는 모래알처럼 작고 의지가지없이 외로웠다. 어디로 불려 달아날 것도 같고 흔적도 없이 잦아들 것도 같은 허망한 느낌 속에서 아내의 목소리 만이 또렷하고 기승스러웠다.
“말씀 안 하셔도 알아요. 우리가 어디 한두 해 산 부분가요. 이런 일도 어디 한두 번 겪은 일이구요? 전 기가 팍 죽은 당신의 전화 목소리 듣자마자 또 중동으로 발령 떨어졌구나 하고 단박 알아차린걸요. 저도 실망했어요. 이번엔 혹시나 국내에 남게 되지않을까 기대했었는데. 그렇지만 여보, 우리가 실망한 게 또 어디 한두 번인가요? 우린 매번 잘 이겨냈지 않아요?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기운을 내요, 여보.”
실망 좋아하네. 아내의 목소리는 실망은커녕 희망에 들떠 있었다. 아내 역시 속 다르고 겉 다르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한층 의기소침해서 물었다.
“그럼 전에도 내가 이랬었단 말요?”
“그럼요, 당신은 발령만 받고 나면 집 떠날 때까지 어찌나 칭얼거리는지 젖먹이 떼어내기보다 더 어려웠는걸요. 당신 마음 알아요. 처자식이랑 집에 대한 당신의 애착을 제가 왜 모르겠어요? 제가 이런 힘든 고비를 어디 한두 번 겪었나요. 전 뭐 당신만큼 속 안 상하는 줄 알아요?”
아내의 목소리에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신바람과 기름이 오를수록 그는 발밑이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듯한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당신 너무 말이 많군. 빨리 나와주지 않겠어?”
그는 가냘프게 애걸했다.
“옷 갈아입고 곧 나갈게요. 기다려요.”
“어디냐고 또 안 묻는군.”
“어디건 중동 땅 아닐 리는 없잖아요? 여하튼 그놈의 회사 중동의 오일 달러 좋아하는 건 못 말린다니까.”
그는 쫑알거리는 아내의 말 중에 오일 달러 소리가 게울 것처럼 듣기 싫어서 얼굴을 찡그렸다.
“당신이야말로 오일 달러 좋아하는 거 못 말리겠군.”
“뭐라구요?”
“아냐아냐,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중동 땅보다는 서울 땅 어디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가 아닐까 싶어서…….”
그는 아내의 수다가 또 도지기 전에 얼른 거기서 멀지 않은 양식집 이름을 대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너무 오래 전화를 건 사례 겸 해서 청포도를 한 관 샀다.
그는 점심때가 겨워 한산한 양식집의 구석자리에서 아내를 기다리면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과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사이의 정결하고도 막막한 공백을 채울 말을 생각해내려고 고심 했으나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그 공백은 아득하고 탁해지더니 나중엔 그 둘 사이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처럼 무의미한 따로따로가 돼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를 많이 기다리게 해놓고 나타난 아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기름져 보였다. 그녀는 열심히 이별의 슬픔을 과장하려 하고 있었지만 그 동안 길들여진 이별의 기쁨을 완전히 포장할 만한 것이 되진 못했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칠 년 동안에 거둔 건 이별의 기쁨뿐이고 그걸 가질 수 없게 된 후의 결혼생활에 대해선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암담하게 했다. 그는 아내를 오다가다 만난 여자처럼 망연히 바라다보았다.
“당신 너무 안돼 보여요.”
아내가 상갓집에 들어선 문상객처럼 심심한 동정을 서둘러 가장하면서 말했다.
“그래?”
그는 새삼스럽게 흠칫 놀라면서 손바닥으로 자기의 얼굴을 쓸었다. 아닌게 아니라 한 움큼으로 오그라든 얼굴이 까실하게 만져졌다.
“집 떠나기 싫어하는 거, 해가 갈수록 나아지는 게 아니라 당신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더라. 제 생각을 해서라도 기운을 내요, 네, 이렇게…….”
아내가 시범을 보이듯이 활짝 웃었다.
“나이가 있잖아. 아침저녁 아이들 재릉도 보고 싶고, 마누라 시중도 받고 싶어. 사표를 내면 냈지 그쪽으론 다시 안 나갈 거야.”
“당신 마음 알아요. 이별은 당신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피차 괴롭긴 마찬가지예요. 괴로움을 이기는 법 하나 가르쳐드릴까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번에 마지막으로 집 떠나면 다신 떠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더 좋은 건 이번이 마지막인 게 아니라 전번이 마지막인 게 아니겠어?”
“아이, 이럴 땐 당신 정말 어린애 같더라. 참 이번엔 어디예요? 이란? 이락? 사우디? 바레인? 아랍? 예뗀? 아니면 저쪽으로 한참 더 가서 리비아?”
“당신, 그쪽 지도가 휜하구료?”
“그럼요, 제가 그쪽에 대해 모르는 게 있는 줄 알아요? 당신이 가 있는 곳인걸요.”
아내가 의기양양 뽐내는 것처럼 말했다. 그는 아랍 토후국에 있을 때 아내로부터 받은 편지의 한 구절이 생각나면서 입맛이 써졌다.
‘어제 신문을 보고 전 밤새도록 잠을 못 잤어요. 이곳에선 고속도로 공사중 굴이 무너져서 사람이 여럿 죽고 다친 큰 불상사가 있거든요. 죽은 사람보다 살아서 울부짖는 유족들이 더 불쌍해서 혼났어요. 신문에선 왜 그 불쌍한 아내나 어머니의 사진을 그렇게 크게 찍어서 내는지 모르겠어요. 참 악취미예요. 여보, 굴 뚫을 때 조심하세요. 당신이 직접 곡괭이를 들고 굴을 뚫진 않는다는 건 알지만, 당신은 아랫사람 일 시켜놓고 자긴 편안히 앉아서 이래라저래라 말발만 앞세울 성미가 아니 잖아요. 그렇지만 굴 뚫을 땐 절대로 앞장서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굴을 아무리 뚫고 싶어도 산이 있어야 뚫을 게 아닌가. 아내가 그가 일하는 고장에 대해 아는 지식이라는 게 고작 그 정도였다. 그가 그쪽에서 일하는 동안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더위가 아니라 산(山)이 없음이었다. 벌써 오래 전 미칠 듯이 산이 그리운 고장에서 받은 아내의 철딱서니 없는 이런 편지 사연이 지금 새삼스럽게 소태된 것처럼 그의 입맛을 고약하게 했다. 그의 이런 못마땅스러운 표정까지를 아내는 해외 근무에 넌더리가 난 그의 응석으로 받아들이고 한층 부드럽고 다정해졌다.
“여보, 예전엔 사람의 행복을 다섯 가지로 쳐서 오복이라고 했다지만 요샌 하나를 더 추가해서 육복이라는 거 당신 알아요? 모르실걸요. 해외복(海外福)이 바로 그 여섯번째 복이래요. 요새 사람들이 얼마나 해외에 나가고 싶어 걸신이 들렸으면 그런 말이 생겨났겠어요? 그런데 우리 남편은 해외로만 도는 게 불만이니 세상은 참 고르지도 못해. 남자로 태어나 마음껏 넓은 세상 구경하고 돈도 많이 벌고·…·그건 모든 세상 남자의 꿈이에요, 얼마나 멋있어요. 당신은 참 멋있는 남자예요.”
의기소침해 있는 남편을 부추기기 위해 의식적인 선동이 가미된 거긴 하지만 보다 많이는 아내의 본심이 드러난 거기 때문에 아내의 어떤 다른 말보다 실감 있게 들렸다. 남편이 국내 근무로 돌아 아침저녁 남편 시중드는 걸 낙으로 살고 싶다는 아내의 소망이 다만 입술 끝에 달린 말장난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점점 더 떨칠 수 없는 게 돼가고 있었다. 아내가 ‘해외’ 라는 말을 발음하는 솜씨는 절묘했다. 마치 새알 초콜릿을 혀끝에 놓고 녹이는 것 같은 얄팍하고도 달콤한 도취가 스며 있었다.
아내의 ‘해외’ 는 결코 그가 칠 년 동안 전전한 지겹도록 광활하고 삭막하고, 허구한 날 무턱대고 달아오르는 모슬렘의 땅이 아니었다. 아내의 해외는 남편이 일 년에 한 번씩 귀국해서 풀어 놓은 선물보따리 속에서 나오는 작고 섬세하고 견고한 색색가지 미니카, 화려한 페르시아 융단, 스위스제 다용도 칼, 스웨덴제 버너, 독일제 카메라, 미제 컬러TV, 일제 녹음기, 중국제 청심환, 공항 면세점용 양주 등을 잠탕으로 복합해서 추상화시킨 아름답고 빛나고 매혹적인 그 어떤 거였다.
아내는 그 추상적인 세계를 지키기 위해 남편이 몸소 겪은 구체적인 해외에 대해선 오히려 외면하려 들었다. 알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의식적으로 피하기까지 하려 들었다. 귀국할 적마다 그의 피부는 옹기그릇처럼 타고, 그의 또다른 보따리 속엔 해뜨렸다기보다는 고열에 녹아나다시피 한 더러운 내복과 작업복이 하나 가득 들어 있었건만 아내는 그걸 손수 정리하면서도 그 내력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그런 것들이 숨긴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낼 낌새만 보여도 아내는 그의 입을 틀어 막다시피 했다.
“저도 다 안단 말예요. 당신이 말 안 해도 다 안단 말예요. 말로 하면 피차 더 비참해질 뿐이에요.”
이러면서 실상은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해외란 어차피 가보지 않은 사람들 공통의 추상적인 세계였다. 보다 중요한 건, 그의 오랜 부재는 그가 남편이라는 사실까지도 하나의 추상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거였다. 아내는 혼자서 그리워하고 또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멋대로 조작한 추상적인 남편에게만 탐닉하느라 남편의 실상은 마냥 외면하려 들었다.
그는 아내가 만든 추상적인 자기로부터 구체적인 자기를 만회해야 할 시기가 마침내 온 것처럼 느꼈고, 그러기 위해선 우선 무자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태중의 태아가 완숙해서 드디어 태중을 탈출코자 할 때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해지는 것처럼.
그는 정감을 철저히 배제한 메마른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라비아, 아프리카 대륙을 다 더듬어도 소용없어요. 난 오늘 국내로 발령 이 났으니까. 당신 기뻐해주구려. 국내에다 또 서울이거든. 내일부터 출근이오. 지하철 공사 강남 구간으로…….”
그는 말을 마치고도 아내의 얼굴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자타에게 공평하게 가장 무자비할 수 있는 방법은 직시(直視)라고 생각했다.
크나큰 충격과 실망을 즉각 얼버무리거나 적당히 속일 수 있을 만큼 음흉하지도 요망하지도 못한 아내의 얼굴은 단박 핼쑥해지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럼 그게 영전인가요, 좌천인가요?”
아내의 목소리는 가놀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게 지금 뭐 그리 중요한 문제요?”
“남자에게 그게 안 중요하면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
아내의 목소리가 발끈 표독해졌다.
“영전도 좌천도 아닌 포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소. 오랜 해외 근무에 대한…….”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앞으로 봉급은 어떻게 되죠?”
“해외 수입이 없어지니까 거의 반감이 되겠지.”
“봉급이 줄다니 말도 안 돼요. 집에서 출퇴근하면 당신까지 아침마다 용돈 달라고 손을 벌릴 게 아녜요? 적금이랑 곗돈이랑 당신이 이삼 년간 더 고생하면 다 끝나는 건데…… 적금은 해약이라도 한다지만 곗돈은 어떡허죠?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고 말다니.”
“적금 해약한 돈으로 겟돈 부으면 될 걸 가지고 뭘 그러우? 우리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삽시다.”
“어머머, 이이 좀 봐. 내가 무슨 욕심을 부렸다고 이래. 지금 붓는 돈만 다 목돈 되고 나면 더 욕심을 부리라고 고사를 지내도 안 부려요.”
아내는 침까지 튀기며 상스럽게 굴었다.
“몇 년 전에도 당신은 그렇게 말했잖소. 그땐 양옥집 하나만 장만하고 나면 절대로 더는 욕심 안 부리겠다고 맹세를 했었지.”
“기억 력도 좋으셔라. 세상 물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니뭐니 해도 돈은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벌어놓아야 한다구요. 안 그러면 두고두고 후회 할걸요.”
“우리가 젊어서 진작 못 해놓은 걸 후회할 게 어디 그뿐이겠소? 남남끼리 더불어 살면서 하나가 되기 위한 결혼이란 것도 말요, 각자의 껍질이 조금이라도 더 얇은 젊었을 때 시작했어야 힘이 덜 드는 건데, 우린 껍질이 굳을 대로 굳은 이 나이부터 새삼스럽게 시작해야 하니 앞으로 얼마나 어렵겠소! 하긴 그것보 생각하기 나롬이지. 이 나이에 신혼이라니 그것도 나쁘진 않구려.”
“저 지금 농담할 기운 아네요.”
“나도 마찬가지요. 그럼 우리 일찌거니 집으로 들어갑시다. 청포도 벌써 샀으니 아이들 실망시킬 것도 없고, 어머니는 내가 서울로 발령난 거 아시면 얼마나 기뼈하시겠소? 당신은 이것저것 출근 준비를 좀 해줘야겠소. 점퍼랑 작업복이랑 워커랑 저쪽에서 가져온 거 아직 쓸 만하겠지? 정 못 쓰겠는 건 새로 장만하지 뭐.”
“그러니까 여보! 정말 당신은 그 거리 막벌이꾼 같은 차림으로 우리집 그 예쁜 대문을 조석으로 드나들겠다 이 말이죠? 맙소사, 뻔뻔스러운 남자! 아이 창피해.”
아내가 아롬답게 굽이치는 자신의 머리에 매니큐어도 요염한 두 손을 깊숙이 쑤셔넣으며 진저리를 쳤다.
순호는 그런 아내를 절망과 연민이 엇갈린 착찹한 시선으로 말없이 바라다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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