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서예문화예술학과 여태명 교수(가운데)가 전공과정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서예 강의를 하고 있다. 1989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원광대 서예과는 2년 연속 정원 미달로 폐과 통보를 받았다. 조용철 기자 |
#1.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사범대학 제2부속중학교(우리 고등학교에 해당). 중국을 방문한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이 서예실습 시간을 함께했다. 펑 여사는 미셸에게 붓을 쥐는 방법을 알려줬으며 미셸은 붓글씨로 ‘永(영)자를 써 펑 여사에게 선물했다. 펑 여사도 능숙한 솜씨로 『주역』에 나오는 ‘후덕재물’(厚德載物·후덕한 덕으로 모든 만물을 포용한다)을 써서 미셸에게 건네줬다.
#2. 지난해 11월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인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의 한 초등학교.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 대사가 부임한 지 열흘 만에 이곳을 찾아 5학년 서예수업을 참관했다. 케네디 대사는 학생들과 함께 붓으로 ‘友(우)’라는 한자를 직접 썼다.
중국에서는 서법, 일본에서는 서도라 불리는 이웃나라 서예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핑퐁외교’로 개혁·개방의 문을 연 중국은 동방문화의 진수인 서예를 외교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셸이나 케네디 대사는 ‘감성외교’의 수단으로 서예를 택했다. 서양인 여성이 동양 학생과 함께 한자를 쓰는 장면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일본도 ‘서예외교’라면 중국에 뒤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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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3국의 서예문화는 이처럼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의 서예만 위기에 봉착했다. 계명대와 대구예술대의 서예과는 이미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대전대·경기대도 현상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김광욱 계명대 교수는 “서예과와 같은 순수예술 분야는 경제논리에 좌우되는 대학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가 버겁다”며 “문화융성을 중시하는 정부 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서예과의 잇따른 폐과 사태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고 봐야 한다. 여 교수는 “무엇보다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전통문화의 경시 풍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글자는 쓰는 것이 아니라 치는 것으로 개념이 바뀌면서 쓰기문화는 크게 후퇴했다. 서예가 살아남기 더욱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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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예의 명맥을 잇는 데 앞장서온 원광대 서예과의 폐과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대학들은 원광대 측에 폐과 철회를 요청하는 서신을 전달했으며 일본의 ‘서도(書道)미술신문’은 폐과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천전롄(陳振濂) 중국 저장(浙江)대 교수는 “놀랍고도 유감스럽다”며 “전통문화를 지키고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샤오화(鄭曉華) 런민(人民)대 예술학원 당위서기 겸 상무부원장도 “서법(서예의 중국식 용어)은 동양문화의 정수”라며 “동아시아의 경제 번영과 국력 신장으로 세계 각국이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나온 폐과 조치는 철회돼야 할 것”이라고 요청했다.
서예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원광대 서예과 설립에 영향을 받아 잇따라 대학에 서예과가 들어섰다. 1999년 저장대를 필두로 지금까지 70여 개 대학이 원광대 모델을 따랐다. 21세기 들어 미국과 함께 세계 2대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통문화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군사·경제 대국에 걸맞은 문화대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원광대 서예과에 유학 중인 장커(張克·37)는 “중국에서는 초·중·고교에서도 많은 학교가 의무적으로 서예교육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에서 서예는 고대 주(周)나라 때부터 이미 육예(六藝)의 일종으로 중시됐다. 동진(東晉)의 ‘2왕(二王)’인 왕희지와 왕헌지 부자는 명필 중의 명필이다. 당(唐)나라 구양순과 안진경, 송(宋)의 소식과 황정견, 원(元)대 조맹부, 명(明)대 동기창과 문징명, 청(淸)대 유용과 등석여도 서예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이다.
하지만 중국 서예는 전통문화를 부정한 1960~70년대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암흑기를 맞았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다시 전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90년대 말에야 서예가 옛 영화를 되찾기 시작했다.지금은 한자·공자(孔子)와 함께 서예가 중화 문화 3대 요소의 하나로 받들어지고 있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더 이상 서예 퇴조 현상을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500만 서예인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최재천(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중심으로 서예계는 지난해 11월 ‘서예진흥정책포럼’을 여는 등 서예진흥법 입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관은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먼저 학교나 학원에서 서예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나 지도자 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학예사는 또 “한글 전용 문화가 확산되는 것도 서예의 퇴보와 큰 관계가 있다”며 “한자도 우리 문화의 주요한 부분으로 인식해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성교육과 힐링이란 측면에서도 서예는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운영하는 아산서원(峨山書院)에서는 모든 원생이 서예를 배우고 있다. 원광대 서예과는 폐과될 위기에 처해 있지만 교양과목인 ‘생활서예’는 수강생이 100명이나 된다. 2012년 개설된 이 강좌는 이 학교 최고 인기 과목 중 하나다. 김수천 교수는 “학생들에게 서예 기법을 별도로 가르치지는 않는다”며 “그저 붓 가는 대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붓 잡는 법부터 획을 그려가는 방법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교육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인 ‘양지양능(良知良能)’을 배우는 것이다. 학생들은 “글씨를 쓰니 마음을 집중하게 되고 집중을 하게 되니 진지함이 흘러나왔다”거나 “사람을 경건하게 만들고 마치 블랙홀처럼 빠져들게 하는 힘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수강생들은 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보석을 찾게 됐다” “지친 마음을 달래준 힐링 타임”이라며 만족해했다.
서구에서 출발한 미술·음악·향기 치료보다는 늦었지만 동아시아적 정서를 반영한 서예치료가 각광을 받고 있다. 김수천 교수는 “손과 팔꿈치를 사용하는 서예는 혈액순환을 돕고 단전에 힘을 실어주는 효과가 있으며 참선과 명상 같은 몰입을 가능케 해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국 학예사는 “서예만큼 인성교육에 좋은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특히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인성교육진흥법(일명 ‘이준석 방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된 지금 서예는 최고의 인성교육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자부한다.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인성 붕괴를 예방하고 기본 윤리와 도덕성을 회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예는 또한 과거사·영토 문제 등으로 동아시아에서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해 한·중·일 30인회는 “일본과 중국에서는 각각 쇼도(書道)·수파(書法)라고 부르는 서예를 통해 우리 문화의 공통분모를 찾자”고 뜻을 모으기도 했다.
중국에서 전수된 우리 서예문화는 삼국시대에 이미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중원고구려비, 백제의 무녕왕릉지석과 사택지석비, 신라의 단양적성비와 진흥왕순수비, 통일신라의 문무왕릉비와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등에 새겨진 필적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의 서법을 이어받으면서도 단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창의성을 더한 명필가들이 많이 탄생했다. 통일신라의 최치원·김생, 고려의 탄연·이암·공명왕, 조선의 안평대군·이황·한호·김정희 등이 대표적이다. 해동서성(海東書聖)이라 불렸던 김생은 왕희지에 비견되기도 했다. 한석봉은 중국과 한국의 서풍을 융합해 석봉체를 창안했다. 추사는 고전에 근거하면서 독자적인 추사체를 개발한 독보적인 존재다. 이론은 물론 실기에서도 최고인 추사는 오늘날까지 우리 서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한국 서예의 입지는 날로 좁아만 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일본의 ‘서예외교’가 보여주듯이 전통문화는 얼마든지 부가가치 높은 문화콘텐트로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런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서예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버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묵향에 젖어 몰아(沒我)의 경지에 빠져들던 서예의 진수를 다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이나 찾아올까.
첫댓글 원광대 서예과 여태명 교수는 서예와 전각을 두루 익힌 참 서예인입니다.
1990년 경 서울 인사동 한국전각학연구회(회장 정문경) 연구실에서 가끔 뵈었고,
수안보 전연세미나에 같이 참석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서예술의 부활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