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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안의 풍경 1
내가 사는 동네 유성 땅은 알다시피 온천지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삼국시대 때는 진터라 칭하여 백제병사들이 훈련을 하면서 병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 전해오는 말이 있고 조선시대 태조, 태종이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겼다는 글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이 상업성을 갖고 온천공을 뚫은 것은 일정시대 때로 당시 이 사람 땅을 밟지 않고는 한양에 오를 수 없다던 공주갑부 김갑순이 지금의 유성호텔을 그럴싸하게 진 것에서 비롯된다. 이후 지금의 군인휴양소 자리는 이승만 박사나 박대통령이 수없이 다녀갔고 이외의 역대 대통령들이 한번 정도는 이곳 유성을 찾았다고 알려져 있고 지금의 리베라 호텔 그 자리 또한 과거에 만년장으로 불리며 꽤나 소문난 자리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이 지역의 특질을 늘 맛보며 20년 가까이 살면서도 정작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문드문 그것도 마지못해 년에 대여섯 번 이곳을 찾았던 것인데 요즘 들어 어쩌다 잘못된 삐끗한 허리의 통증을 자연스레 풀어볼까 하여 거의 두 달 이상을 이곳에 출근하는 폭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경우는 옛날 자존심 강하던 시절 그러니까 작은 고추가 매울 수 있다는 고귀한 진리(?)를 믿지 않던 시절의 콤플렉스로 인하여 그런 개방된 전나의 곳에 가는 것을 우선 주저하게 되었고, 더불어 안경을 벗으면 시야가 뿌연한 안개 속이라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 영 기분이 말씀이 아니었던 것에 기인해서 그 동안은 돈 절약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의 교차로 인한 병 예방 차원도 된다고 자위하며 아파트 욕조를 떳떳이 사용하고 살아온 것이다.
전나의 상태로 상대방이 어떤 사람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를 어림짐작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몸에 문신 같은 표식이나 젊은 친구가 일부러 빡빡 대머리를 한다거나, 근육질에 태양에 그을린 살의 명암에 따른 팬티 경계선등 몇몇 형태를 제외하면 도대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곳에선 다분히 근육질의 몸매와 생식기가 큼지막한 친구가 노소를 막론하고 어깨가 펴져있다. 동물적인 원초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욕탕에서의 우열의 서열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 인간에게 이성의 실체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결국 철학의 문제라 할 것이다.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라는 데 대하여 감정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동물성을 부정하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신체 기능에서 많이 닮아 있을 뿐 아니라 본능적인 식욕과 성욕을 가진다. 즉 동물성을 전적으로 부인하기는 힘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아의식과 이성, 그리고 상상력은 동물존재의 기본 특색인 '조화'를 파괴하였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자기의 존재를 문제로서 의식하는 유일한 동물이며, 그는 그 문제로부터 도피할 수 없는 몸으로서 스스로 그것을 풀어야 한다. 일단, 인간은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강한 환경 적응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나 인간은 사고하는 능력을 가졌기에 따라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면 그 환경을 고치기도 한다. 생각을 통하여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동물성을 초월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은 여러 생리외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예술 활동을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유희라는 것은 이렇게 생리적 필요와 직결되지 않은 인간의 활동들을 가리킨다. 인간은 이성을 지녔기에 그 사회생활을 동물의 것과 매우 다르게 하였다. 인간의 사회는 그 관계가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하며 교분의 범위가 넓다. 많은 개성적인 사람이 각 각 사회 속에서의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매우 많은 형태의 사회적 관계를 이루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회성과 이로부터 나오는 언어, 문화, 윤리는 역시 인간만의 중요한 특질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특질들 역시 그 하부에서 인간이 고도의 사고력을 가진다는 것과 깊이 관련됨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간 본질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가 나오게 된다. 흔히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은 보기에 따라서 약하고 작은 존재일 수 있으나 그런 인간이 광대한 우주를 인식의 대상으로 삼을 뿐 아니라 안으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즉 인간은 스스로의 목적과 판단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자율의 능력을 가진다.
이제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본다. 분명 세상에서 나와 똑같은 존재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즉 나는 나만의 고유한 특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존엄하다 하여 그것을 믿고 마냥 만족하고 있을 수 없음을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 자체로서 완벽한 존재일 수 없으며, 다만 가능성을 지닌 존재일 뿐이다. 그 가능성이 존엄의 근거는 될 수 있겠으나, 이제 진정한 존엄은 바로 나 자신의 노역 가운데에 나타난다고 믿게 된다. 나는 존엄한 나를 위해 나의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살고 있는가.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논리는 동물의 세계에 국한 된 것이 아니고 자연의 섭리이고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기초한 약육강식은 인간이 만든 이성적 틀에 의해 그 방식에 맞춰 제조되어 경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번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업의 합병이나, 구조조정 등의 표현들이 새삼스럽게 적자생존하고 결부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삶의 우열이 아마 자연법칙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살펴보면 인간 스스로 계급적 의식이나 신분적 차등심리를 갖거나 갖기를 바라고 때론 조장도 하고 한편으로 그런 울타리를 두르고 사는 것에 만족해 하는 것은 다분히 인간의 존엄성의 개념과는 상충되는 것으로 어차피 인간은 성선과 성악이 함께 상존하는 동물성을 겸비한 한계적 굴레 덩어리로 보아진다. 나 역시 그 한계 속에 머물고 있음을 발가벗은 마음속에서 번번이 느끼게 된다.
욕조를 나와 옷장 속에서 옷을 끄집어 내 입는 순간 난 그들의 사회 얼굴을 곧바로 알아차릴 것만 같았다. 욕탕 안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200 2 유월 )
(목욕탕안의 풍경2)
어릴 적 내 살던 곳 안양은 시내 편에 목욕탕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일요일 아침 9시경이면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거의 없었다. 기름보일러가 없던 시절이라 나무나 조개탄을 이용했을 것인데 11시가 넘으면 벌써 물이 식어 늘 주인과 온탕 밸브 열어놓는 것을 가지고 아저씨들은 실강이를 했었다. 그 시각 쯤 때 구정물이 그대로 욕조에 배서 손으로 만지면 벽에 달라붙은 찌꺼기가 둥둥 물살을 탔다.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도 옹색한 욕탕이었는데 나는 그곳을 중학생이 되어서 그것도 겨울철에만 갈 수 있었다. 실밥 터지면 꿰매서 쓰던 이태리 타올 손 주머니가 그 당시 막 나오던 무렵 출입문 옆에 선 조그만 물통 하나 들고 빈구석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 붉은 피 색깔이 돌도록 박박 문질렀던 그 추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당시엔 때밀이는 없었다. 이발소도 안에 없었고, 구두닦이가 문밖에서 구두를 거둬다가 연실 침을 튀기며 깡통에 몇 조각 넣은 장작개비에 불을 지펴 껌뎅이를 풀어썼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내가 물리치료차 다니는 이곳은 온천 일번 가답게 그럴듯하게 잘 꾸며져 있다. 때밀이는 일요일 날 스페어까지 해서 총 네 명이고, 만원하는 이발소, 87도를 언제고 유지하는 습식사우나, 43도의 큰 온탕,46도의 열탕,38도의 작은 온탕, 아이들 딱 놀기 좋은 냉탕 하나, 5개의 샤워기, 3m하강 직격 폭포수가 네 개 그리고 야외 노천탕과 천연 음용수에 주차는 3시간이 허용된다. 과거처럼 꼭두새벽에 기어들어가야 좋은 자리에 따뜻한 국물을 챙기는 것도 아닌 지금에 그곳 풍경은 시각별 요일별 천태만상이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목욕탕의 풍속이 있다. 명절 무렵 그곳에 가면 늘 북적대는데 정겨운 아버지와 아들이 등을 서로 밀어주는 풍경을 유독 많이 보게 된다. 조상을 맞이하기 위해선 몸이 정갈해야 한다고 다들 똑같은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조상께 또 잘 보여야 할 것이 후손이라 생각을 하는지 아들의 몸 구석을 훝는 아버지 손끝이 여느 때완 또 틀리는 것이 바로 그때이다.
전보다 훨씬 더 넓어진 등판을 땀 뻘뻘 흘리며 닦아내면서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는 때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이 놈이 그 새 이렇게 컸나”그리고 다 닦았다 싶으면 말 대신 등짝을 세게 후려쳐 신호로 알린다. 아들놈도 아프다는 시늉은 하지만 정작 아파하는 기색은 없다.“ 아빠 할 차례야.”
아마도 조상님은 그런 느낌을 더 갖추라 하였을 것이다. 차려진 예식보단 준비하는 동안의 마음과 정성의 소중함. 가족의 정감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명절 때 나는 그곳에 가면 그 시절 나를 그렇게 다루던 팔 힘 무척이나 억셌던 아버지가 떠오르고 만다. 목욕을 다하면 호떡을 사주고 먼저 가라 하시고는 아버진 옆집에 이발소를 향하시곤 했었다.
하지만 동생과 나는 가지 않고 번갈아가며 아버지 이발이 어느 정도 됐는지 창가를 기웃하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이발을 마친 아버진 추운 겨울 날 동생 감기 걸리게 한다고 큰소리로 역정은 내셨지만 표정은 그러하지는 않았다. 가는 길 아버진 어김없이 삼베과자를 더 사주신 것을 봐서는 아마도 아버진 또 다른 느낌을 우리에게 갖았던 것 같다.
이후 난 아버지가 병색이 완연하여 당신을 제대로 닦지 못 할 무렵 그것도 너 댓 번 목욕을 해드린 기억이 있다. 내 어릴 적에도 존재 했을 아버지 엉덩이에 붙은 큰 점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난 아버지와 어린 시절 추운 겨울 철 중학교 때 잠깐 그것도 명절 무렵에 같이 한 것이 고작이니 흔한 목욕인데 그렇지만도 못한 목욕이 되고 만 셈이다. 이제 돌아가신 후에 잘 보이겠다고 뽀득뽀득 몸을 닦는 내 염치가 좋기도 하다며 아쉬워할 뿐이다.
아무래도 이번 명절은 두 아들놈 데리고 내 몸 구석구석 씻겨 달라 해야 할까보다. 왠지 그래야 훗날 명절에 꼭 남겨질 기억들이 그놈들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을 것만 같다. 내 등짝 끝 모서리에 난 사마귀도 함께 꼭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목욕탕안의 풍경2)
내 어릴 적 안양 시내 편에 있던 목욕탕은 일요일 아침 9시경이면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거의 없었다. 기름보일러가 없던 시절이라 나무나 조개탄을 이용했을 것인데 11시가 넘으면 벌써 물이 식어 늘 주인과 온탕 밸브 열어놓는 것을 가지고 아저씨들은 실강이를 했었다. 그 시각 쯤 때 구정물이 그대로 욕조에 배서 손으로 만지면 벽에 달라붙은 찌꺼기가 둥둥 물살을 탔다.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도 옹색한 욕탕이었는데 나는 그곳을 중학생이 되어서 그것도 겨울철에만 갈 수 있었다. 실밥 터지면 꿰매서 쓰던 이태리 타올 손 주머니가 그 당시 막 나오던 무렵이었는데 출입문 옆에 선 조그만 물통 하나 들고 빈구석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 붉은 피 색깔이 돌도록 박박 문질렀던 그 추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당시엔 때밀이는 없었다. 이발소도 안에 없었고, 구두닦이가 문밖에서 구두를 거둬다가 연실 침을 튀기며 깡통에 몇 조각 넣은 장작개비에 불을 지펴 껌뎅이를 풀어썼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내가 물리치료차 다니는 이곳은 온천 일번 가답게 그럴듯하게 잘 꾸며져 있다. 때밀이는 일요일 날 스페어까지 해서 총 네 명이고, 만원하는 이발소, 87도를 언제고 유지하는 습식사우나, 43도의 큰 온탕,46도의 열탕,38도의 작은 온탕, 아이들 딱 놀기 좋은 냉탕 하나, 5개의 샤워기, 3m하강 직격 폭포수가 네 개 그리고 야외 노천탕과 천연 음용수에 주차는 3시간이 허용된다. 과거처럼 꼭두새벽에 기어들어가야 좋은 자리에 따뜻한 국물을 챙기는 것도 아닌 지금에 그곳 풍경은 시각별 요일별 천태만상이다.
겨울날 일요일 아침은 잠시 과거를 연상시키는 소동이 때론 벌어지기도 하지만 여느 때 아침은 유흥지에서 밤새 퍼진 술독을 빼고 잠을 청하기 위해 모여든 취객들의 쉼터가 된다. 그들이 너저분하게 욕탕 바닥에 누워 잠든 새 할 일없는 돈 조금 있는 노인들의 편안한 공간이 동시에 제공되는데 목욕료 4000원이란 것이 생각해보면 돈 없는 노인들한테는 엄청 큰 돈일 텐데 매일같이 취미삼아 드나드는 노인네가 있기도 하였다.
거기에 때밀이에게 매일같이 몸을 맡겨 안마를 하는 것을 보면 마냥 부럽기도 한 노릇인데 한편으론 때밀이를 벗 삼아 시종일관 떠드는 노인의 축 늘어진 어깨에 윤택한 살점이 사라진 뒷모습을 보자면 돈도 별개 아니고 세월이 삼켜간 인생의 윤기가 덧없어 보이기도 하였다.
그 시각이 지나면 병원에 들렸던 환자들이 다리를 절고 허리를 굽히고 나타나 몸 땜질을 시작한다. 나 역시 요즘 그런 명목으로 자주 그곳을 찾게되는 것인데 물리치료비 치고는 싼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몸을 지져댄다.
그때는 유성의 밤을 지배하는 형님들이 하나둘씩 퍼런 용을 데리고 나타나 목욕을 한다. 마치 그들의 용에게 물을 주기위해 잠시 들리는 것 인양 30분도 제대로 안채우고 그곳을 뜨는데 이곳 또한 그들의 관할구역으로 잠시 순찰 나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후엔 유성의 특성에 맞게 관광객이 주를 이루는데 특히 전국에 지사 등을 갖춘 회사들의 집합이 전국에 딱 중간에 위치해 있다는 특성으로 바로 이 유성 바닥에서 많이 펼쳐진다. 그러기에 그 시각 그 욕조 안엔 지사장이 그득하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목욕탕의 풍속이 있다. 명절 무렵 그곳에 가면 늘 북적대는데 정겨운 아버지와 아들이 등을 서로 밀어주는 풍경을 유독 많이 보게 된다. 조상을 맞이하기 위해선 몸이 정갈해야 한다고 다들 똑같은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조상께 또 잘 보여야 할 것이 후손이라 생각을 하는지 아들의 몸 구석을 훝는 아버지 손끝이 여느 때완 또 틀리는 것이 바로 그때이다.
전보다 훨씬 더 넓어진 등판을 땀 뻘뻘 흘리며 닦아내면서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는 때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이 놈이 그 새 이렇게 컸나”그리고 다 닦았다 싶으면 말 대신 등짝을 세게 후려쳐 신호로 알린다. 아들놈도 아프다는 시늉은 하지만 정작 아파하는 기색은 없다.“ 아빠 할 차례야.”
아마도 조상님은 그런 느낌을 더 갖추라 하였을 것이다. 차려진 예식보단 준비하는 동안의 마음과 정성의 소중함. 가족의 정감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명절 때 나는 그곳에 가면 그 시절 나를 그렇게 다루던 팔 힘 무척이나 억셌던 아버지가 떠오르고 만다. 목욕을 다하면 호떡을 사주고 먼저 가라 하시고는 아버진 옆집에 이발소를 향하시곤 했었다.
하지만 동생과 나는 가지 않고 번갈아가며 아버지 이발이 어느 정도 됐는지 창가를 기웃하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이발을 마친 아버진 추운 겨울 날 동생 감기 걸리게 한다고 큰소리로 역정은 내셨지만 표정은 그러하지는 않았다. 가는 길 아버진 어김없이 삼베과자를 더 사주신 것을 봐서는 아마도 아버진 또 다른 느낌을 우리에게 갖았던 것 같다.
이후 난 아버지가 병색이 완연하여 당신을 제대로 닦지 못 할 무렵 그것도 너 댓 번 목욕을 해드린 기억이 있다. 내 어릴 적에도 존재 했을 아버지 엉덩이에 붙은 큰 점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난 아버지와 어린 시절 추운 겨울 철 중학교 때 잠깐 그것도 명절 무렵에 같이 한 것이 고작이니 흔한 목욕인데 그렇지만도 못한 목욕이 되고 만 셈이다. 이제 돌아가신 후에 잘 보이겠다고 뽀득뽀득 몸을 닦는 내 염치가 좋기도 하다며 아쉬워할 뿐이다.
아무래도 이번 명절은 두 아들놈 데리고 내 몸 구석구석 씻겨 달라 해야 할까보다. 왠지 그래야 훗날 명절에 꼭 남겨질 기억들이 그놈들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을 것만 같다. 내 등짝 끝 모서리에 난 사마귀도 함께 꼭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목욕탕안의 풍경 3) 인간이 자율적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때론 그 자율적인 행동이란 것이 기상천외한 것이 되어서 조물주조차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 한 두 껀이 아닐 것이라고 평소 믿고 있다. 목욕탕 안에 별도의 밀실로 존재하는 사우나탕이 바로 그런 일종중 하나가 아닐까싶다. 이 사우나란 것이 87도가 넘는 가혹한 밀실 안에 스스로 갇혀 모래시계의 시간 더딤을 하염없이 원망하며 온몸에 물기를 쥐어짜는 자기학대를 하는 행위이고 보면 조물주가 이를 본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말이다. 이런 사우나는 대부분 핀란드식 사우나로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그곳 사람들에게는 걸맞는 행위일 것이란 생각도 해 보는데 우리 같은 환경에도 쉽게 정착한 것을 보면 몸에 좋다하면 뭐든지 소화시키는 국민성이 발동한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하여튼 세계적 목욕탕 문화는 우리나라에 다 들어와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먼지바람 날리는 아랍의 후예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냈다는 목욕탕, ‘함맘’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아랍 이슬람 문화의 기둥이 되어 왔으나 우리에게는 어쩐 일인지 '터키탕'으로 잘못 알려졌고 이미지 또한 좋지 않게 되어 버렸다.'터키탕'이 알려진 것은 15세기 비잔틴 제국을 쓰러뜨리고 일약 이슬람의 강자로 부상한 오스만 투르크가 함맘을 보다 웅장하고 아름답게 짓고 발칸반도를 비롯한 그들의 세력권에 이를 확산시킨 다음부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터키탕'으로 알려진 함맘은 그때나 지금이나 해괴하지도 음란하지도 않은 곳이다.깨끗하고 건전한 휴식 공간이며, 생의 활력을 재충전하는 사막속의 공중목욕탕일 뿐이다.그러던 것이 언제부터 퇴폐 문화의 상징으로 변모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내가 이 가혹한 현장에 돈까지 들여가며 도전장을 낸 것은 바로 한 달 전이다. 다들 수건 한 장씩 걸치고 들어가 축 늘어진 채로 나오면서도 ‘아! 이제 살 것 같네.’를 외치는 것을 보면서도 어쩌다가 한번 들어갔다가 30초도 못 버티고 튕겨져 나와야했던 쓰디쓴 경험이 있었기 때문 그 동안 감히 엄두를 못 냈었다. 사우나를 공략키 위해 나에게는 전략상 어떤 불의의 상황을 대비키 위한 방편으로 사우나 바로 옆에 위치한 듯한 냉탕과 수건 두장이 필요했다. 대부분이 냉탕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나 역시 오들오들 오금이 저릴 때까지 냉탕에서 꼭꼭 참고 버티다가 수건 한 장은 머리위에 쓰고 또 다른 한 장은 예비용으로 손에 감싸고 솔 향이 고온의 습분과 더불어 뿜어져 나오는 적지를 향하듯 ‘돌격 앞으로’를 감행하였다. 나의 버티기는 우선 상대가 필요했다. 상대적 삶에 익숙한 인간에겐 자기 자신에 국한된 절대적 자율적 행위에 앞서 상대적 비교우위가 앞서는 법이다. 나는 기름기 잘잘 흐르는 뱃짐이 꽤나 나가 보이는 사람을 눈여겨 두었다. 둘이 거의 동시 입장을 하였기에 공평성에 있어서도 무리가 없었다. 혹 자리 배치에 따른 가혹조건의 차가 찜찜해서 그와 옆에 해서 안쪽으로 다가앉았다. 나의 그런 게임은 단계를 높여 계속되었다. 열흘 정도 지나다보니 이젠 대적 상대가 별로 없는 듯싶어졌다. 미친 짓 같기도 하여 코웃음도 나왔지만 승자의 축배를 노천탕에 앉아 음용수로 들며 즐기는 낙까지 생겼다. 그리고 이틀쯤 지나서였을 것이다. 어디서 본 듯한 중년신사가 한사람 나보다 그것도 먼저 들어왔는데 도시 나갈 생각도 않고 그 안에서 팔굽혀펴기부터 갖은 잔재주를 보기 좋게 해보이고 있었다. 곤혹스러울 정도로 더워서 그가 누군지를 따져 볼 정신도 없이 기진맥진으로 버티다가 급기야 백기 들고 나오고 말았는데, 그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그는 여유있게 걸어 나왔다. 알고 보니 그는 사물함 열쇠를 전해주는 이 욕조의 지배인이었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 부합되게 살기 위해 얼마나 적응을 잘하는가? 인간이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강한 환경 적응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지만 인간은 사고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면 그 환경을 고치기도 하고 처해진 위치에 순응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이 경우 단순 체력적 비교 우위라기 보단 적자생존의 논리로 해석됨이 올바를 것이다. 과거에 누구의 소설이던가. 화려한 외출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아주 가상적 인간의 삶에 대한 순응력을 묘사했던 글이 떠오른다. 기업가인 공도희란 주인공은 잘 나가는 회사의 여사장 신분이었는데 어느 날 뜻 하지 않게 잘못되어 난파선에 휩쓸리게 되고 아주 외딴섬에 갖히듯 살게 된다. 옛날을 그리며 바둥대지만 단절된 세상은 알아줄리 없고 시간이 흐름과 더불어 그 주인공은 그 동안 지켜온 사회 속 부귀영화를 스스로도 지우게 된다. 결국 그 주인공은 바닷가의 아낙네가 되어 못났다싶은 남정네한테도 여인으로서의 질투를 느끼며 살아간다. 지금 40이 넘은 이 나이에 나의 적자생존의 의미는 무엇일까? 갈수록 자신 없어지는 세상살이에 언뜻 아득하게만 들린다. 난 그날 이후론 사우나 버티기의 비교우위의 대상 대신에 모래시계를 선택했다. 부질없이 딱 두 번 밖에 못 뒤집는 실력으로 모래시계와의 시간 싸움을 시작한 것인데 이날 이때껏 한번 들어가서 세 번 이상 모래시계를 내리 꽂은 적이 한번도 없다. 대상이 사물이니 전과 같이 스릴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하다. 좀 더 편해지려면 조바심 나는 생리를 아예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습관처럼 굳어버린 경쟁심리는 늘 존재하여 나를 힘들게 하고 지금에 와서는 나를 우울하게도 한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여 눈에 잘 띄는 하얀빛 사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자연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인간의 역사 또한 물리적 약육강식은 아닐지라도 잔혹한 우열 의식의 세계 속에 적자생존은 이어져 내려온 것은 아닐까. 병들고 굶주려 주는 아프리카 난민들 말고도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존재들이 의외로 많다. 세상은 갈수록 인정머리가 없다. 돈을 못 벌거나 정신이 따르지 못하거나 질주하는 세상에 공포에 떠는 삶들은 모두 낙오를 각오해야 할 존재들이다. 사회는 아주 냉소적이니 미소한번 보내고 하차하기가 무섭게 달려 나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으면서 서둘러 떠나고 말 길이다. 소외된 인간들을 생각해보자니 지구의 이상적 사회론은 경쟁이 아닌 나눔의 터전일 듯 느껴진다. 똑같이 벌고 똑 같이 나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배급제가 나오고 지배와 피지배가 대두 될 것이고 자본과 농민의 착취가 나올 법한 말이다. 그래서 그 기아에 허덕이던 시절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그쪽에 빠지면 나오지를 못했던 모양이다 이상적 허구에 매달린 채 노천탕에 앉아 있노라니 해 저물어 적자생존의 갈림에 내가 바로 서 있는 듯싶다. 아마도 인간은 적자생존의 절대적 우의를 위하여 그렇게 맹목적으로 투쟁을 하다가 결국 적자생존의 룰이 적용되지 않는 곳으로 실려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재미없고 스릴이 없어 살 맛이 없다며 허망해 할지 모른다. 인간은 원래 피를 보기 좋아하고 경쟁하기를 원초적으로 좋아했던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희망의 낙원 그곳엔 적자생존이란 간판이 내 걸리지 않는다면 그저 좋겠다. 나는 요즘 적자생존이란 말이 너무도 두렵다. |
(목욕탕안의 풍경 4)
물을 데워 목욕을 적당히 잘 하려면 물 타기를 잘해야 한다. 너무 뜨겁다하여 찬 물을 많이 부으면 금세 식어 애를 먹이고 또 너무 찬물이 적으면 발 담그기도 어려워진다. 사우나 열 찜질도 마찬가지다. 몸의 감각이 무뎌지도록 저온에서 고온으로 옮겨 다니며 열 교환을 잘해야 수증기 찜질을 잘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숨구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고달프다 할 정도로 몸을 어리벙벙하게 하는 이런 물 타기는 우리 인생살이의 곳곳에 배어 있다. 그야말로 정치, 경제, 사회 각 방향에서 열렬히 활동 중이다.
아마도 시중에서 제일 흔한 말이 주식시장에서 쓰는 물 타기란 말일 것이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주식을 만회해 보겠다고 지속적으로 한 주식에 대해서 떨어질 때마다 사들이는 아주 고전적인 방식이다. 적자 폭을 줄여보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는 희석 식 의미인데 고집 세고 집착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적극 활용한다. 외줄타기같이 위험성이 높아 그러다가 낭패를 보는 수가 꽤나 많다.
도시 한복판에 서서 사방을 둘러봐라. 모든 것이 섞여있다. 섞어도 구분이 안 된다. 뉴스에 일년에 한 두 번은 꼭 등장하는 것이 물 먹인 소 이야기이고, 휘발유에 물탄 얘기다. 그것 말고도 양주에 물 타기, 한약에 물 타기, 오염물질에 물 타기, 외국산을 국산과 섞어 알 수 없는 조기에 갈비하며 오히려 안 섞여지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보니 원액에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선사하기 위해 쓰이는 커피, 차 같은 정상적이고도 기본적인 물 타는 것마저 어떨 땐 꺼림직 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물이란 속성과 연관되어 부풀리기, 희석시키기를 현상적인 물 타기가 있는 반면에 그 의미를 원용한 교묘한 심리적인 수법 또한 세상사에 비일비재하다. 정치에서는 어느 한 쪽이 공세에 밀리면 맞서는 공작내지 물 타기가 곧 잘 출현한다. 이러한 공세와 수비는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 식으로 변하기가 쉬운데 그런 방식의 심리전술이 잘 먹히는 모양이다.야당의 대변인은 말투 자체부터 도전적이며 폭로적인 듯한 톤 오른 목소리를 내야하고 여당은 조목조목 한톤 낮은 목소리로 안정이 깔린 합리성을 목소리로 내야하는 것 또한 심리적 물 타기에 해당된다고 보아야한다.
한때는 이데올로기까지 물 타기에 적용되었다고 하는데 소위 말하는 총풍, 북풍, 양심선언 같은 부류의 것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살포 내지 재생산되기도 하였다. 이런 방식은 사회에서 그대로 전용되어 개인, 집단간에 많은 재생산을 하고 특정집단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무기로도 지금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사실 우린 건국 이래 어울려 하나되는 물 타기가 제대로 안되어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시련 속에 이날 이때까지 살고 있다. 물 타기란 섞인다는 관점에서 동질성 회복과도 같은 좋은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섞여서 중화도 되고 때론 제 색깔이 탈색되기도 하고 그래서 전체의 색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데 우리 민족은 물 타기에 익숙하지 않다.
끼리끼리 모인다 하는 표현은 물 타기의 상반되는 의미로 사회에선 받아들일 수 있는데 우린 특정 목적을 위해 사회 속 어디엔가 포함되는 끼리가 되기도 하지만 전혀 사는 방식이 다른 사람하고도 끼리 속에 섞이는 물 타기도 동시에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불어 끼리끼리 산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어떤 물 타기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쥬스가 담긴 컵. 그 안에 담긴 쥬스의 미립자는 서로 의지하여 한 몸체로 녹아서 형체조차 알아볼 수없이 맛으로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독특한 개성 그대로 원액 자체로 존재할 수도 있고 물의 조건이 미지근하여 어쩔 수 없이 녹지 않는 껄끄러운 덩어리로 버림받거나 격리 수용될 처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의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있지만 결국 그것들이 모여져 전체 맛의 특성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처럼 개개인 내는 목소리가 큰 민족도 드물다. 섞이면서 아우성이고 안 섞이기 위해 삿대질에 비아냥이다. 한 목소리로 동질의 노랠 부른 적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잘 녹아든 쥬스 같은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씹히는 맛 알알이 원액의 성질에 가깝다 할 것이다.
전체의 맛은 쥬스에서는 원액이 한결 손해나는 느낌도 아니 들고 맛도 상큼하여 깔끔하다 싶은데 국민이 전체 하나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추측을 하곤 한다. 전체도 괜찮고 개인도 강한 사회를 구성하기는 매사 어렵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보수와 개혁으로 나누어진 보안법도 제대로 된 지역 균형 발전이냐 하는 행정수도 문제도 쥬스 한잔 마시며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느끼기에 따라선 '우리가 남이냐 '하는 소리가 아주 지엽적이기도 하면서 거국적인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해도 단일민족이다. 정말 우리가 남인가..
한참 사우나를 즐겼더니 목이 칼칼하다. 난 휴게실에서 원액에 씹히는 맛이 있다는 비싼 쥬스를 제쳐놓고 잘 녹은 값이 싼 쥬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