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영화] 2014-02-03>
'연기의 神'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추모하며…그의 출연작 BEST 10
피플 | 무비라이징
Philip Seymour Hoffman
(1967~2014)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그야말로 날벼락과 같았다. 평소 스캔들 하나 없을 정도로 사생활적인 문제도 없었을뿐더러 연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였다. 그런 그가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많은 뒷이야기들이 무성하게 들리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그가 출연하며 보여주었던 연기적 열망을 떠올려 볼 때, 우리는 그를 열정적인 배우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올해 47세, 1991년 연기 데뷔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헐리웃의 조연 전문 배우로 활약하며 매출연마다 향상된 연기력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몇 편의 주연작을 통해 아카데미와 유수의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휩쓸며 '연기의 神'이라는 호칭을 얻기까지 이르렀다.
돌이켜 본다면 어쩌면 그를 약물 죽음에까지 이끌게 한 '깊은 내면 속 고통'이 그의 연기력의 뒷받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연기한 [마스터]의 '랭커스터'를 떠올려 본다면 그 자신이 누군가의 '구원자'였지만 어쩌면 그것은 본인을 향한 '구원'을 의미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연기를 통해 잠시나마 평안을 느꼈을 그의 소중했던 순간을 추억하며 '명배우'에서 '전설'이 된 그를 되돌아볼 시간을 가지려 한다. 고통스러운 순간 속에서도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선사해 줬던 만큼 이제는 고통 없는 그곳에서 평안함과 안식을 느끼기를 기원한다.
1. 트위스터(1996)
감독 : 얀 드봉
출연 : 헬렌 헌트, 빌 팩스톤, 캐리 엘위스, 제이미 거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알게 된 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 "설마 [트위스터]의 그 사람?"이 아니었나 떠올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하다 [트위스터]의 조연 '더스티'란 사실을 알았을 때 남모를 미소를 지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 / 제작을 담당하고 [스피드]의 얀 드봉이 연출한 토네이도 재난 영화 [트위스터]는 메인 남녀 주인공의 과거사와 충격적인 특수효과로 어두운 재난물로 기억될 수 있었지만, 유머스럽고 인상적인 조연진들의 활약으로 유쾌하면서도 역동적인 재난 영화로 기억할수 있었다.
그 선봉에 선 배우가 다름아닌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이었다. 90년대 비디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똘끼'(?)있는 '백인 얼치기'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시종일관 유쾌한 유머,행동을 보여주며 극의 흐름을 재미있게 만들었다.
친구인 남자 주인공의 약혼녀를 자기 차에 태워 남자친구의 과거사와 자연재앙의 위험성과 같은 분위기 깨는 멘트를 날리다가, 라이벌 과학자들의 차 운전을 방해하기 위해 "키스 좀 하게 해줘"라며 운전석에 달려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동료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는 현실의 친구이자 듬직한 형과 같은 존재였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으며 남다른 인간미를 선보였던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더스티'는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재난물 속 캐릭터와는 너무나도 다른 친숙함을 가진 캐릭터였다.
어쩌면 이때부터 헐리웃 제작자들은 그의 발전 가능성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최신작을 통해 그의 연기적 성향을 알고 있는 팬들은 영화속 그의 유머러스한 연기에 의외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2. 부기 나이트(1997)
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 마크 월버그, 줄리안 무어, 버트 레이놀즈, 돈 치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부기 나이트]를 통해 마크 월버그는 문제의 물건(?) 덕분에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덩달아 마크와 함께 연기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도 단 한 순간의 장면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극 중 게이 '스코티'를 연기한 그는 주인공 에디(마크 월버그)를 짝사랑하며 가슴앓이 까지 하고 있다.
스코티는 파티가 열린날 에디에게 자신의 차를 보여주며 자랑하다가 좋아하는 에디의 표정을 보고 충동적으로 사랑한다면서 키스한다. 당황하던 에디는 그의 행동을 제지하고 친구로서의 관계를 강조하며 그를 떠나게 된다. 자신의 충동적 행동이 실수였음을 인정한 스코티는 자신을 탓하며 차에서 울기 시작한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마치 이성에게 고백하다 차인 모든 사람들의 심경을 대변한 듯한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이 영화에서 금발의 장발 헤어스타일과 몸에 꽉 낀 의상으로 스스로 섹시한 게이임을 자랑하고 게이 특유의 내면 심리를 선보이며 강인한 인상을 남긴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이후 여러 헐리웃 영화에서 게이 전문 배우로 출연하게 된다.
3. 해피니스(1998)
감독 : 토드 솔론즈
출연 : 제인 아담스, 존 로비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딜란 베이커
때로는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추악하고 비정상적인지를 보여준 [해피니스]는 세계 영화팬들과 비평가들마저 손꼽아 마지않는 숨겨진 걸작 중 하나다.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침체된 분위기이지만 이상하리만큼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출연진들의 연기가 이러한 영향에 한몫했는데, 그 중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활약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보기와 다르게 이웃집 여성들에게 음란전화를 걸며 성적 쾌락을 즐기는 '앨런'은 현대인의 이중성을 대변하고 있다.
소심한 성격에 외모적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잘못된 성적 충족 방식에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 속 자아의 슬픈 자화상 그 자체였다. 콤플렉스에 빠져 사는 무기력한 변태적 현대인의 초상은 성적 소수자를 주로 연기했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또 다른 전문적인 분야나 마찬가지였다.
4. 플로리스(1999)
감독 : 조엘 슈마허
출연 : 로버트 드 니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또 다른 게이 출연작품 중 하나로 일부 매니아들은 [플로리스]속 그의 연기를 역대 최고의 게이 연기로 칭하기도 했다. 남성적인 군인사회에 길들여진 월트(로버트 드 니로)에 맞서 자신의 여성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게이 '러스티'는 이후의 게이 캐릭터의 귀감이 되었다.
그는 이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여성에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의상과 목소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이 작품을 통해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루 갖춘 배우라는 극찬을 이어받게 된다. [플로리스]는 그 자신의 본연의 연기의 시작과도 같은 지점이었다.
5. 올모스트 페이머스(2000)
감독 ; 카메론 크로우
출연 : 빌리 크루덥, 패트릭 퓨지트, 프란시스 맥도먼드, 페어루자 볼크,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록스타를 동경한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음악 칼럼니스트를 꿈꾸던 소년은 자신이 존경하던 비평가 '레스터 뱅스'(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를 만나게 된다. 래스터는 소년은 그토록 꿈꾸던 록음악의 세계로 인도하는 선구자 이자 잔혹하면서도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 준 '어른' 이기도 했다.
6. 카포티(2005)
감독 : 베넷 밀러
출연 :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캐서린 키너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카포티]는 요절한 작가 트루먼 카포티를 실제로 살려낸 것처럼 너무나 생생했다. 단정하고 바른 그의 외형적인 모습에 가냘픈 목소리를 지닌 여성성을 고루 갖춘 그의 모습은 그동안 그가 연기한 게이 연기의 종합과도 같았다.
때로는 여성스럽지만 일에 있어서는 자신의 본능을 끄집어내는 작가 정신에서는 카리스마를 표출하기도 한다. 연약해 보이는 한 인간이 잔혹한 살인마와의 인간적인 대화를 통해 진실을 이끌어내고 그의 죽음 앞에서는 여인처럼 흐느끼며 오열하는 모습은 소름이 돋아날 정도였다. 이 영화로 그는 생애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7. 찰리 윌슨의 전쟁(2007)
감독 : 마이크 니콜스
출연 : 톰 행크스, 줄리아 로버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여성스러운 면모와 콤플렉스에 시달린 현대인의 초상을 주로 연기한 호프만은 [찰리 윌슨의 전쟁]에서는 다혈질에 성급한 CIA 스파이 '거스트 애브라코토스'를 연기했다. 거침없이 욕설을 뱉어내며 상대를 몰아세우거나 유리창을 깨며 분노를 표출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색달랐다.
게다가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뱃살과 초췌한 민머리를 드러낸 외형적 모습은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그러한 그의 노력은 아프가니스탄을 소련의 침공에서 구해낸 결정적 역할 중 하나가 되었다.
8.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전에(2007)
감독 : 시드니 루멧
출연 :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에단 호크, 앨버트 피니, 마리사 토메이
영화의 오프닝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그의 아내로 출연한 마리사 토메이의 거침없는 '정사'로 시작된 영화는 이상하리만큼 불길한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부유해 보이지만 약에 취한 주인공과 서로 바람난 남동생과 아내, 게다가 남동생은 이혼남에 아이 양육비 까지 모든 게 절실한 상황이다. 그
런 이들에게 어느 날 거액을 가질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이 찾아온다. 바로 부모님이 경영하는 보석상을 터는 것. 이러한 방법을 계획한 사람은 다름아닌 형 역할을 한 호프만이었고 그는 자신의 동생을 연기한 에단 호크를 이 비극적인 순간으로 인도하는 '악마'가 되어버린다.
호프만 본인이 연기한 형 '앤디'는 탐욕 속에서 이성을 잃어버려 가족을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면서 어렸을 적 상처를 품고 사는 남성 인간의 치부를 상징하고 있다. 정상적이지만 비정상적 삶을 살아가는 가족사회의 붕괴를 그린다는 점에서 전자에서 설명한 [해피니스]의 21세기 버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9. 다우트(2008)
감독 : 존 패트릭 셰인리
출연 :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이 영화 줄거리와 배경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오직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만 있어도 영화는 알아서 진행된다." 그만큼 [다우트]는 남성과 여성을 대표하는 두 천재 배우들의 열연만으로도 보는 즐거움과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보수적 가치관을 지키려는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와 가톨릭 학교의 변화를 촉구하는 플린 신부(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대립은 두 배우의 일관적인 표정과 대사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메릴 스트립이 강력한 '창'이라면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견고한 '방패'와도 같았다.
조용하면서도 성스러움을 지닌 가톨릭 학교가 두 인간의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추악한 의심 속에 빠지게 되어 서로에게 상처로 남게 되는 결말은 인상적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립 연기를 선보인[다우트]는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에게 대표적인 필모그래피로 남겨질 최고의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10. AND..마스터(2012)
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 호아킨 피닉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폴 토마스 앤더슨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만남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의 연출작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에 연달아 출연해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그가 이제는 유작과도 같은 [마스터]로 영화팬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떠난 과정은 너무나도 드라마틱 했다.
영화 속에서 종교 지도자 같은 위엄과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프레디'(호아킨 피닉스)의 구원자로 열연하는 그의 연기는 스크린 밖 영화 팬들까지 홀리게 할 정도였다. 때로는 자애로운 종교 지도자면서 비이성적인 '프레디'의 조언자이자 친구로 다가가려는 호프만의 연기는 너무나도 친숙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호아킨 피닉스와 함께 선보인 앙상블 연기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오랫동안 헐리웃 영화의 다양한 조연 연기를 해오던 그가 주연 배우의 연기를 어떻게 살려줄지를 보여준 정석연기의 사례로 남을 정도로 [마스터]속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영화의 중심과도 같은 존재였다. [마스터]는 그의 부재가 헐리웃과 영화계에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일깨워줄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상징하는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