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19 배산산책1만보 모은사답사
아침산책길 모현동을 출발 배산 연주정에 오른후 하산길에 배산체육공원 부근 모은사를 답사하였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조동화는 마을금융기관 새마을금고 청원경찰을 퇴직할 시간이 찾아오는구나.
넥타이를 메고 구두와 깔끔한 복장으로 출퇴근하던 일, 추억으로 흘러가고 등산복에 편리한 복장으로 삶을 여행하겠지.
아침마다 걷는일 오늘도 걷기운동 1만보 실천하며, 규칙적인 생활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또한 지나가리라." 유명한 격언이 생각난다. 세월은 흘러가리라. 자연의 순리이기에 받아들이며 사는것이 인생살이 아니던가.
좋은것도 슬픈것도 다 지나가리라. 이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일도 한순간에 지나가는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무엇이든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아 이젠 "다 잘 될 거야"
내일은 내일데로 새로운 날이 밝아오겠지.
배산체육공원부근에 암자보다 작은 절 모은사가 있다.
절의 중심이라할수 있는 대웅전이 없고 극락전현판이 눈에 띠었으며 종각은 설치되여 있었다.
극락전 전면부에는 극락전현판과 모은사현판이 좌우로 걸려 있으며, 우측벽면에는 4개의주련이 설치되여 있다.
모은사 극락전 기둥에 세로로 주련(柱聯)의 글씨가 무슨내용일까?
주련은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로
기둥(柱)마다 시구를 연달아 걸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원래는 좋은 글귀나 남에게 자랑할 내용을 붓글씨로 써서
그냥 기둥에 붙이거나 혹은 얇은 판자에 새겨 걸었던 것이
후대에 발전하여 지금은 일정한 양식을 갖춘 주련으로 발전했다.
법당에 걸려있는 주련은 판 위 아래에 연잎이나 연꽃,
혹은 당초 무늬를 새겨 다듬고 그 가운데에 글귀를 적는데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로 써 넣어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 한 특징이 있다.
내용은 부처님 말씀이나 선사들의 법어가 주 내용인데
주련은 부처님께 다가가기 위한 또 하나의 관문이다.
극락전 현판아래 주련은 다음과 같다.
若人有身解(약인유신해)와 及以諸大願(급이제대원)이면
具足深智慧(구족심지혜) 하야 通達一切法(통달일체법)이로다
만약 사람이 믿고 이해하며
모든 큰 서원이 있으면
깊은 지혜를 갖추어서
일체 법을 다 통달하리라.
배산 모인사의 극락전은 우측 벽면에 4개의 주련이 설치된것으로 보아 대웅전의 역할을 하는것 같다.
세로로 된 글씨는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분 없으시고
온 세상 둘러보아도 비교할 분 없네.
이 세상 모든 것 내가 다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부처님같으신 분 없네.
모은사 유일한 시설물 종각이 세워져 있어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종각의 제작년도는 기미년 단기4312년 서기1979년 8월로 글자 세기어져 있으며, 비사벌 불교미술연구원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아 모은사도 1979년경 절이 세워지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우리나라 종단은 크게 3개 종단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태고종, 천태종으로 나눌수 있는데 모은사는 태고종에 속한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산은 서울 조계사이며, 천태종은 총본산은 충북단양의 구인사이고, 태고종의 총본산은 순천의 선암사가 총본산이다.
태고종은 종단내에서 대처승을 인정하는 종단으로 결혼을 해도 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모은사에서 제작한 2023년 달력에서 발췌한 불교 경전에 있는 좋은말 모음
☛애욕은 늪과 같고 꽁꽁 묶인 밧줄과 같고 시퍼런 칼날과 같다.
애욕은 험한 가시덤불에 들어가는 것과 같고 성난 독사를 건드리는 것과 같고 더러운 시궁창과 같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 할 길도 없다.
☛마음은 그림을
잘 그리는 능숙한 화가와 같아서
그림을 그리듯이
갖가지 세상만사를 만들어 낸다.
☛“나쁜 짓을 멀리하고 선행을 쌓아라.
좋은 일을 하는데 게으르면 마음은 저절로 나쁜 짓을 즐기게 된다.
☛세상에는 욕심을 채우려고 애쓰다가 목숨을 마치는 사람이 많다.
자기집 창고에 황금이 태산처럼 쌓였다 한들 욕심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조동화는 무신론자이나 종교의 관점에서 불교의 내세가 어떤세상일까 탐방했다고 보면 맞는말일까?
조동화의 벗님들!
덧없고 부질없는 삶의 여로에서 좋은일 많이 하시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서 행복합시다.
▼<익산서부새마을금고 청원경찰 조동화의 모습이여!
조동화는 오늘의 삶에 만족하며, 금고 청원경찰의 일을 끝낼시간 2/20 하루 남았구나.
모현동과 송학동의 고객님을 좋은인상으로 맞이하며 시간은 흘러갔구나.
내가 언제 와이샤츠에 넥타이메고 구두신고 몸치장을 하고 다니겠는가.
조동화가 신고 있는 구두가 파리가 앉으면 낙상할 정도로 반짝 반짝 광채가 나는구나.
이 구두는 수년전에 사서 몇번 신고 신발장에 넣어 두었다가 금고 청원경찰로 입사하여 신게 되였지요.
고객님들을 밝고 고운 인상으로 맞이하는 금고 청원경찰의 자세가 좋아보인다.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어 99섬 가진사람이 1섬 갖은 사람의 것을 빼앗을 욕심이 가득한 것이 사람의 욕심이라니 다 덧 없고 부질없는 일이여.
나이가 들어 저승길에 간 친구도 있고, 은둔생활하는 나의 벗님들이 대부분인디 조동화는 12명의 마을금고 직원들과 마주하며 지낸시간이 감사할 따름이여.
다시올수 없는 시간 그려려니 긍적적 사고방식으로 3월의 새봄을 맞이하자.
행복이 뭐여.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면 그게 행복인거여.
행복해 지려면 욕심을 줄이고 매사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되야.
좋은일 실천하고 감사하자.>
▼<작은 배산아래 모은사의 전경이여.
모은사는 태고종에 소속되여 스님이 가정을 가지고도 주지스님이 될수 있다.
배산체육공원을 지나 작은 배산을 거쳐 배산 정상 연주정에 오르려면 모은사 절을 거쳐야 되는데 오늘따라 모은사를 답사하고자하는 생각이 들어 모은사를 답사하였지.
작은 절인지는 알았으나 절의 면적이 작아 중앙의 작은건물과 좌측의 살림건물, 우측에 종각이 있어 절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모은사는 염불소리가 그치치 않는 것을 볼 때 불자들은 꽤 되는 것 같았다.
염불은 주지스님이 직접 목탁을 두두리며 하기도 하지만, 음향시설 스피커에서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울려 퍼진다.>
▼<모은사에 세워진 종각은 1979년에 설치되었다.
불자들이 시주하여 세워졌으므로 시주한 불자들 명단이 빼곳이 세겨져 있다.
불자님들이 현세의 세상을 떠나 내세를 걱정하여 좋은세상에서 행복한 세상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겠지요.
지옥과 천당이 있다면 천당으로 가는길을 찾는 것은 인간의 소망이리라.
절에서 매일 종을 치는 것은 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고통 속의 중생들을 구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절에는 필수적으로 종각이 있다.
범종은 ‘맑은 소리의 종’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불공드리기 전 아침에 28번, 저녁 때 33번을 치도록 돼 있다.>
▼<익산 배산 모은사의 종각에는 南無我彌陀佛(나무아미타불)의 불교용어가 세기어져 있다.
나무아미타불(南無我彌陀佛)의 뜻을 풀어보자.
나무아미타불을 한자로 '南無阿彌陀佛'라고 씁니다.
그러나 이 한자에는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말 'namas amita buddha'의 음(音)을
그대로 한자로 표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도말 namas는 귀의(歸依)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amita는 mi(측량하다)라는 동사의
현재수동분사 mita(측량되어지는 것)에 부정어 a가 붙어서
되어진 말로써 그 뜻은 '측량되어질 수 없는 것' 입니다.
[아미타경]은 이러한 amita의 뜻에
amitayus(측량할 수 없는 수명=無量壽)의 뜻이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광명이란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고
수명은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합니다.
그러니 나무아미타불은
한량없는 지혜와 자비를 가지신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인 것입니다.(무한한 생명과 지혜를 지닌 부처님께 귀의한다)>
절(寺)이란?
절(寺)은 불교의 건축물로, 승려가 상주하며 불상을 모시고 불자들이 종교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모이는 곳을 말한다. 사찰(寺刹), 사원(寺院)이라고도 하며, 드물게 정사(精舍)라고 하기도 한다.
죽림정사(竹林精寺)가 최초의 절인데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기거하며
수행하고 설법하던 장소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절은, 부처님이 탄생하고 성불하고 설법하고 열반을 보이신 곳이
곧 절이라 할 수 있으며 부처님께 예경을 드릴 수 있는 곳,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는 곳 모두가 절이다.
따라서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들이 상주하는 곳,
즉 삼보가 있는 공간이면 들판이나 산 속, 어느 곳이나 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절에 대한 다양한 명칭들이 통용되고 있다.
앞에 고유명사를 붙여서 `사(寺)' `암(庵)' `정사(精舍)' `총림(叢林)' 등의 명칭을 쓰는 경우가 그것이다.
오늘날 절의 명칭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사(寺)'는 원래 중국 관청 부서의 명칭인데
중국에 불교를 전한 서역 스님을 외국인을 접대하는 홍려사(鴻臚寺)에서 접견했기 때문에
스님이 머무는 곳을 자연스럽게 `사(寺)'라 부르게 됐으며
`암(庵)'은 일반적으로 혼자 수행에 힘쓰는 조그만 절을 의미한다.
`정사(精舍)'는 절을 가르키는 범어 `아란야'나 `승가람' 등을 한역 한 것이다.
총림(叢林)은 숲처럼 많은 스님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말하는데
보통 선원 (禪院)과 강원(講院), 율원(律院) 등 3원을 갖춘 곳을 말한다.
그러나 종합수도원으로서의 격을 말할 뿐 절의 명칭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만족
세상에는 자기의 욕심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주 적고 욕심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도 흔하지 않다.
그저 욕심을 채우려고 애쓰다가 목숨을 마치는 사람이 많다.
설사 하늘에서 보물이 비처럼 쏟아지더라도 욕심 많은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른다.
자기 집 창고에 황금이 태산처럼 쌓였다 한들 욕심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 사주경(四洲經) – 욕심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만족이다.
죽지 않을 만큼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고 잘 곳이 있다면 최소한의 소유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바로 그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다.
사실 최소한의 소유만 보장이 된다면 누구에게나 행복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최소한의 의식주의 해결, 그 이상을 가지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불행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사실 의식주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사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몫은 보다 많이 벌고 쌓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마저도 소유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을 위한 나눔과 자비를 실천하는데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죽을 때 까지 욕심을 채우고 채우고 또 채우기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은 설사 하늘에서 보물을 비로 뿌려 주더라도, 창고에 황금이 태산처럼 쌓였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또 다른 욕심을 채우면서 죽어 갈 것이다.
이 말이 다른 미련한 사람들 이야기 같겠지만 사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에 이런 욕심충족의 삶을 끝장내고 만족과 청빈의 삶으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남은 생은 더욱 비참해지고 말 것이다.
참된 부자는 욕심을 많이 성취한 사람이 아니라 욕심을 많이 놓아버린 사람이며, 소유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만족이 많은 사람이다.
만족할 줄 모르면 설사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하더라도 흡족하지 않지만,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가난해도 사실은 부유하다.
만족함을 아는 것, 지족이야말로 행복의 지름길이요, 인류를 살아 온 모든 성인들의 어진 벗이다.
-법상스님-
무소유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며, 시냇물은 흐르고 바위는 서 있다.
꽃은 새소리에 피어나고, 골짜기는 나무꾼의 노래에 메아리친다.
온갖 자연은 이렇듯 스스로 고요한데, 사람의 마음만 공연히 소란스럽구나.˝
˝소창청기(小窓淸記)˝라는 옛 책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자연은 저마다 있을 자리에 있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 자리를 지키지 않고 분수 밖의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고 그들이 몸담아 사는 세상 또한 소란스럽다.
돌이켜보면 행복의 조건은 여기저기 무수히 놓여 있다.
먹고사는 일상적인 일에 매달려 정신을 빼앗기고 지내느라고
참된 자기의 모습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우리가 이 풍진 세상을 무엇 때문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내 몫의
삶인지를 망각한 채 하루 하루를 덧없이 흘려 보냈다.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것저것 챙기면서 거두어들이는
일을 우선 멈추어야 한다.
지금 차지하고 있는 것과 지닌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소원했던 친구에게 이 가을날 편지를 쓴다든지 전화! 를 걸어 정다운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일은 돈 드는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따지려는 각박한 세태이기 때문에,
돈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 행복해지는 비결이다.
가을밤이면 별빛이 영롱하다.
도시에서는 별 볼 일이 없을 테니 방안에 별빛을 초대하면 어떨까 싶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아무나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주거공간에서
혼자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라면, 시끄러운 텔레비전
스위치를 잠시 끄고 전등불도 좀 쉬게 하고,
안전한 장소에 촛불이나 등잔불을 켜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한때나마 촛불이나 등잔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주 고요하고 그윽해질 것이다.
===법정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