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히브리서 5:11~6:3
오늘 본문 말씀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의 주제에서 벗어나서 편지를 받는 히브리인 성도들에게 그들의 영적인 안일함에 대한 책망과 배교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단락의 일부입니다. 본래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가 편지를 받는 히브리 기독교인들이 자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서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그들이 편지 속에서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을 설명하고자 할 때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영적 이해력이 부족함을 절감하였기에 하던 말을 멈추고 주제를 잠시 바꾸어 그들로 하여금 영적인 몰이해가 가져오는 영적 위험을 경고하면서 그들의 영적 성숙을 촉구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 본문 말씀의 경고와 교훈은 비단 당시의 히브리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매우 시의 적절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이 말씀을 잘 받아서 우리의 영적 유익을 도모하는 복된 시간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아브라함이 동방의 왕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쳐부수고 소돔 성에 살던 조카 롯과 모든 포로들을 다 구출하여 돌아왔을 때에 셀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맞이하여 그들을 대접한 후에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이렇게 빌었습니다.
“쳔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이에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약탈물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심을 알고 그의 축복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에게 십일조를 바쳤던 것입니다. 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때 나타난 대제사장이었고 아론의 제사장 반열이 생기기 전 오백년 이전 사람이었습니다. 족보도 없고 갑작스럽게 툭 하니 튀어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돌아가서 다시는 등장하지 아니한 자로서, 아론의 반차가 아닌 유다 지파의 일원으로 태어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 지파의 왕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시편 110편을 노래할 때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맹세로써 그를 멜기세덱의 반열에서 태어나사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시편 110편 4절의 말씀,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이처럼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론과 같이 레위지파의 반열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특별한 반열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신 분이라는 것을 설파하는 중인데, 그러한 사실을 편지로 쓰다가 멜기세덱에 대하여 그가 할 말이 많이 이지만 그 편지를 받아 읽고 듣는 사람들이 듣는 것이 둔하여 설명하기 어렵다고 난감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당시 편지를 받는 회중들이 비록 히브리인 기독교인들은 듣는 것이 둔하였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가르쳐주는 가르침에 대하여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둔하다’는 이 헬라어 단어 ‘노쓰로스’라는 단어는 ‘느리다, 게으르다, 꾸물거리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히브리서 저자의 가르침에 대하여 알아듣기를 못하고 이해력이 더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그들이 머리가 똑똑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초신자라서 배운 것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또한 그들에게 좋은 선생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이렇게 영적인 배움이 느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성장이 더딘 이유가 다른 데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그 다음 12절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놀랍게도 그 히브리 기독교인들은 초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꽤 시간이 흘렀던 신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사도들에게서 배운 충성스러운 일꾼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하여 자세히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2장 4절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그들은 단지 말씀만 받은 것이 아니요 성령께서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이 나타남을 보았고 성령의 은사들을 경험한 바도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많은 것을 보고 듣는 기회를 가졌으므로 마땅히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마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현실은 하나님 말씀의 초보적인 진리를 다시 받아야 할 영적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을 어른들이 먹는 단단한 고기나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고 다만 어머니의 젖이나 빠는 어린아이와 같은 지극히 유약한 신자라고 비유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어린아이와 성인의 음식 비유를 가지고 계속하여 그의 책망을 이어갑니다. 13절과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젖을 먹는 자는 어린아이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지식을 알지 못합니다. 체험적인 신앙의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확신이 없고 흔들립니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의 무게를 견디며 싸워 이기지 못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서 이단과 사이비가 내미는 달콤한 유혹 뒤에 숨겨진 미혹의 덫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비진리와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진리인 줄 알고 열정을 내어 달려갑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에 세상에서 쓰라린 고난과 역경을 겪어오면서 내면 인격을 강하게 닦아온 선배 세대와 어르신 세대들은 또 다른 고난과 역경이 닥쳐오더라도 지혜롭게 분별하며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고난과 맞서 끝까지 저항하여 끝내는 이겨냅니다. 그러나 마음이 심약하고 분별력이 부족한 인생의 어린아이들은 조그만 시련과 역경을 만나면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러나 강인하고 분별력 있는 인생의 성인들은 고난을 잘 이겨내면 그 만큼 성장하게 되고 고난 뒤에 더 풍부한 축복이 뒤따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압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고 진실되고 그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그 말씀을 체험적으로 믿고 시련과 역경과 유혹과 맞서 싸운 성숙한 자는 점점 영적으로 강인해지고 지혜로워지고 분별력을 갖추게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 견고히 붙들게 되고 삶의 여정에서도 아무리 환경과 여건이 불확실하고 도리어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모욕과 실패와 손해가 날 것 같을지라도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굳게 그 말씀을 붙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선한 길과 악한 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와 실패의 길을 잘 분별하여 바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세상 사람들은 갖지 못한 매우 민감한 영적인 지각이 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엘리야가 세상을 떠날 때 엘리사가 스승에게 구하기를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열왕기하 2:9)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간구대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영적 감각을 깊이 주셨으니, 그는 멀리서도 그의 사환이 돈을 훔쳐 감추는 것도 알아내고 더 멀리 아람 왕 벤하닷이 군인들을 보애어 침공하는 길목도 환히 미리 알고 대비하게 해주었습니다. 미래의 일도 미리 알고 하사엘의 미래와 민족의 미래를 다 알고 그를 성심을 다하여 섬긴 수넴 여인의 집안을 위하여 그들이 겪을 대 기근을 미리 알려 주어 대비하게도 해주는 등 영적인 깊은 지각을 갖고 모든 일들을 행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성숙해진 사람은 육체적 감각과 정신적 감각과 영적 감각이 잘 훈련을 받아서 좋고 나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들을 잘 분별하는 자리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신앙 연조가 오래 되었다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영적인 어린 아이로 머물지 마십시오. 인격과 신앙과 성령 안에서의 지혜에 있어서 성숙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아는 데 머물지 말고, 가슴으로 알고, 체험적으로 그 말씀을 경험하여 환경을 뛰어넘어 내가 붙잡은 그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굳건하게 서서 믿음으로 전진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취지로 격려하는 말씀이 6장 1절로부터 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이 말씀은 도의 초보, 곧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는 신앙적 지식과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것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서 6가지로 요약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들’,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영원한 심판’, 이 여섯 가지로 히브리서 저자는 신앙의 기초적 진리로 요약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기초적인 초보를 버린다는 것과 이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라는 말씀은 기본 진리를 외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중요한 지식과 신앙의 토대이므로 버려서는 안됩니다. 다만 이 기초적인 신앙의 abc만으로 만족하고 안일하게 그 자리에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더 완전한 데, 더 성숙한 신앙과 인격의 자리에까지 성장하도록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만 주일에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렇게 하면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안일한 신앙 생활을 하면서 영적 성숙을 이루지 못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가 가진 달란트를 가지고 섬기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힘을 다하여 이 구원의 진리를 전하여 내 가족과 이웃과 동료들을 살려내고 더 깊고 끈질기게 기도하여 성령의 은혜 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다른 이들을 영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는데도 여전히 세상에 마음이 끌려 흔들리고 죄의 달콤함에 마음이 끌린다면, 영적으로 심히 미약한 상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그들의 결국이 결국 허망한 것이고 그들의 수고가 무익한 것이고 많은 재물과 성공과 인기를 얻는다 해도 끝내는 다 잃어버리는 것임을 알고서, 자족하며 감사하며 분수를 지키며 마음의 진정한 평화와 만족을 누리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성숙과 성장을 하지 않으면 사실은 매우 위험합니다. 듣는 것이 둔하고 보는 눈이 어둡고 영적인 귀가 닫혀 있으면, 자꾸만 잘못 보고 잘복 듣고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속게 되고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세상 유혹에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분별력을 잃어버려서 결국 큰 손해와 쓰라린 상처를 겪게 되고, 끝내 세월을 헛되이 낭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영적 성숙과 참된 평안과 주님 주시는 평화와 성공을 누리지 못하고 영적인 어린 아이 상태에서 머물거나 4절 이하에서 히브리 저자가 경고한 대로 배교의 길로 미끄러져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려서 안일한 자리에 머물지 말고 성숙한 자리로 나아가기를 굳게 결심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신앙 연조만 오래 되었다고 자족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젖만 먹는 어린아이 신자라면 그것처럼 하나님 마음을 걱정시켜드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각오합시다. 우리 모두 영적으로 진보합시다. 인격이 더 성숙해집시다. 더 겸손하고 더 지혜롭고 더 사랑으로 섬기는 자로 살아갑시다.
마지막으로 6장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부족한 우리가 이러한 성숙과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힘과 결심만으로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주님이 은혜 주시면 우리는 이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인격의 성숙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영적으로 분별력을 가지고 선악을 잘 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과 진정한 행복의 길을 잘 판단하여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지극히 복된 은혜를 주셔서 어린아이 신자에서 성숙한 신자로 만들어주시고, 의의 말씀을 경험하여 연단을 받은 심령의 지각을 가진 자로서, 우리 인생의 선악을 잘 분별하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삶에 진정한 복과 은혜를 누리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