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낭자 찾아 칠백리길 - 섬진강 중,하류 - 계사탐매 2부
일 시 : 2013년 3월 10일 ~ 12일
장 소 : 전남 곡성군 섬진강 중류 - 광양군 다압면 하류까지
섬진강 상류에서 야영을 한지 근 한달여가 되었는데, 이제 또 길을 떠나 섬진강의 중, 하류를 살펴 보기로 한다. 매화 피었다는 남녘의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어 인파에 밀리기 전에 한번 둘러 보자고 떠난 여행이었다. 이번 일정은 광양을 지나 하동에서 남해로 건너가 하루 일박하고, 금산 정상을 등정한 뒤에 가천 다랭이 마을을 일주하고 하동 금오산 정상에서 또 일박하는 코스로 잡아 보았다.
길을 떠나면서 매화를 질리도록 관조해 보자는 생각을 했으니, 나름 가슴까지 설레이는 탐매길이 되었다.
- 섬진강 초입에서 첫 홍매를 만나 탄성을 질렀다 -
‘매화서옥(梅花書屋)’ 또는 ‘매화초옥(梅花草屋)’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흔히 둘레에 눈송이처럼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서재에서 선비가 앉아 글을 읽거나 매화를 바라보는 정경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본래 '매처학자(梅妻鶴子)'로 유명한 송대의 임포(林逋, 967~1028)를 소재로 한 것이다.
그림 1. 전기, <매화초옥도>, 19세기 중엽, 종이에 엷은 색, 32.4× 36.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매화를 아내로, 학을 아들로, 사슴을 심부름꾼으로 삼다
화정선생(和靖先生)이라는 시호로 더 알려진 임포는 자연을 이상향으로 삼아 벼슬과 가족을 뒤로 한 채 절강성 항주 서호의 고산에 초옥을 지어 매화를 심어 놓고 20년 동안 은거하면서 마을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학과 사슴을 기르며, 술을 마시고 싶으면 사슴의 목에 술병을 걸어 사러 보내고, 손님이 오면 학이 하늘로 날아올라 알렸다고 한다. 집 주변에는 매화를 심어 감상하고 시를 지으며 세월을 보냈다.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으며, 사슴을 심부름꾼으로 삼은 사람이라 하였다. 이와 같은 임포의 고사(故事)에 따라 매화는 은둔처사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림 2. 전기, <매화서옥도>, 1849년, 삼베에 엷은 색, 97.0× 33.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임포의 고사와 연관 짓지 않아도, 매화는 고려시대 이래 시화의 주된 소재일 정도로 많은 문인과 학자, 화가들이 애호하였다. 매화를 사랑한 학자로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 대표적이다. 그는 매화를 매형, 매군으로 의인화하여 인격체로 대우하였다. 죽는 날 아침에는 “매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였을 만큼 매화를 아꼈다. 어몽룡(魚夢龍, 1566~1617?)과 오달제(吳達濟, 1609~1637)는 고결한 매화 그림으로 이름이 높다. 임포의 고고한 삶을 동경하는 선비들도 많았는데, 그 중에서 황기로(黃耆老, 1521~1575 이후)는 매학정을 지어 뜰에 매화를 심어 완상하였고, 학을 기르며, 호를 또한 고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많은 선비들이 매화를 사랑하고 임포의 삶을 동경하면서 그를 소재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려졌는데 대표적인 예가 매화서옥도이다. 특히 조선 말기에 많은 화가들이 앞 다투어 그릴 정도로 매화서옥도가 유행하였다. 당시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등을 중심으로 청나라의 문사들과 많은 교유가 있었는데 이때 매화서옥도류의 회화가 전래되면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매화서옥도를 남긴 화가들이 대부분 김정희파라는 점에서도 짐작된다. 매화서옥도가 유행하면서 화가에 따라 임포보다는 자신을 나타내거나 친구와의 우정을 표현하는 내용으로도 많이 그려졌다.
전기(田琦, 1825~1854)의 [매화초옥도](그림 1)도 화면 오른쪽 아래에 적힌“亦梅仁兄草屋笛中”이라는 글귀로 알 수 있듯이 초옥의 주인인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1879)과 그를 찾아가는 전기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전기는 김정희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웠으며 김정희파에서도 사의(寫意)적인 문인화의 경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구사한 화가로 평가된다. 눈 덮인 흰 산, 잿빛 하늘, 눈송이 같은 매화, 산속 초옥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친구를 기다리며 피리를 불고 있는 초록빛 옷의 오경석과 화면 왼쪽 하단에 거문고를 메고 벗을 찾아가는 붉은 옷차림의 전기의 모습 등 구성이 매우 짜임새 있으며 색채의 대비와 조화 또한 매우 뛰어나다. 산뜻하고 참신한 표현 속에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이 담겨 있다.
같은 주제로 비슷한 구성이면서 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진 작품도 있다. 긴 화면에‘Z'자 구도로 경물을 배치하였고, 상대적으로 산수의 비중이 큰데 간결한 필치로 눈 내린 물가의 쓸쓸한 풍경에서 점점이 눈송이처럼 화사하게 매화가 핀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제화시(題畵詩)와 관지(款識)가 있어 1849년에 그렸음을 알려준다.
雪意園林梅己花 西風吹起鴈行斜 溪山寂寂無人跡 好問林逋處士家 己酉夏日
눈 내린 숲에 매화가 피었거늘, 서풍이 불며 기러기가 날아가네. 산은 적적하여 사람 자취 없으니, 즐거이 임포처사의 집을 묻네.
- 기유년(1849) 여름
두 그림 중에서는 표현이 보다 대담하고 자신과 오경석을 그린 [매화초옥도]가 나중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전기는 1854년 3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는데, 이 두 그림 외에도 여러 점의 매화서옥도를 남기고 있어 짧은 생애 동안 그가 얼마나 ‘매화서옥’이라는 화재를 즐겨 다루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림 2. 전기, <매화서옥도>, 1849년, 삼베에 엷은 색, 97.0× 33.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곡성 기차마을을 지나 만났던 섬진강 초입의 하늘과 강이 완전히 코발트 빛이다 -
- 봄의 전령사가 흘러 내려가고 있다 -
- 화신花信을 찾아 남녘으로 흘러가고 있다 -
- 이쁜 한옥팬션을 만났다 -
- 겹매인 매화가 금둔사의 홍매와 종種이 같아 보인다 -
- 신축한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데, 강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
- 오토 캠퍼촌 -
- 압록에 이르렀다 -
- 압록 오토캠핑장 -
- 구례 사성암이 있는 오산을 배경으로 섬진강이 화개로 흘러 내려 간다 -
- 아름다운 봄날을 연출하고 있다 -
- 이곳에서 여름을 한번 지내 보리라 생각한다(구례상수도사업장 부근) -
- 산수유가 노랗게 물들어 초봄을 노래하고 있다 -
- 문수골 뒤로 지리능선이 보인다 -
- 초봄 하오 -
- 한가함 -
- 화개장터에 이르렀다 -
- 남도대교 -
- 강변의 어느 정자 -
- 기하학적으로 특이한 건축물 -
드디어 매화의 고장인 광양군 다압면에 이르렀다 -
- 강변에서 백매단지를 만났다 -
- 어느 매화분재밭 초입에는 바위에 매화를 새겨 놓았다 -
- 홍매 -
- 청매 -
- 홑홍매 -
梅 詩
- 閔思平
凍醪自酌兩三杯 찬 막걸리 두 세잔을 혼자 마시고 나니
동료자작양삼배
終日觀梅首不回 종일토록 매화 보느라 머리도 못 돌린다
종일관매수불회
天遣淸寒伴幽獨 하늘이 맑고 찬 날씨 보내어 고독을 짝하라고
천견청한반유독
故敎未許一時開 짐짓 한번에 다 피지 못하게 하네.
고교미허일시개
梅 花 詩
- 宋代 王安石
墻角數枝梅 장각수지매 담 모퉁이 매화나무 몇 그루
凌寒獨自開 능한독자개 모진 추위 견디고 홀로 피였네
遙知不是雪 요지불시설 멀리서 보아도 눈이 아님을 아는 것은
爲有暗香來 위유암향래 어둠속에 날아오는 향기 때문이라네
梅 鳥 圖 詩
- 정약용 -
翩 翩 飛 鳥 펄펄 나는 저 새가
息 我 庭 梅 우리 집 매화가지에 쉬는 구나
有 烈 其 芳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惠 然 其 來 즐거이 놀려고 찾아왔다
爰 止 爰 棲 여기에 올라 깃들여 지내며
樂 爾 家 室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華 之 旣 榮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有 분* 其 實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
* 맺을분 =초두머리+賁 惠 然 = 고마워 하는 모양
* 매화가지에 쉬고 있는 새를 보며 꽃이 활짝 피고 조금있으면 열매가 많이 달리겠으니 함께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봄날을 노래하는 시이다.
이 시는 다산선생님이 강진으로 귀향가서 부인이 보내 준 치마폭으로 딸에게 적어준 詩이다. 말로 다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다압면소재지를 지나며 바라본 섬진강 -
- 물빛이 너무 싱그럽다 -
- 저 고운 흰모래를 보아라 -
- 어느 분재가게가 보여 잠시 차를 멈춘다 -
- 홍매의 군무 -
- 여러 종의 매화가 팔려 나가기를 고대하고 있다 -
- 수양백매 -
學士樓下梅花始開
- 金宗直
學士樓前獨立仙 학사루 앞에 홀로 선 신선
학사루전독립선
相逢一笑故依然 서로 만나 한 번 웃으니 옛날같이 의연하여라.
상봉일소고의연
肩輿欲過還攀慰 가마가 지나려 함에 다시 붙잡아 위로하니
견여욕과환반위
今歲春風太劇顚 올해 봄 바람은 너무 심히 부는구나
금세춘풍태극전
梅 花 三 更
詩 이 외 수
그대 외로움이 깊은 날은 밤도 깊어라
문 밖에는 함박눈 길이 막히고
한 시절 안타까운 사랑도 재가 되었다
뉘라서 이런 날 잠들 수 있으랴
홀로 등불가에서 먹을 가노라
내 그리워한 모든 이름들
진한 눈물 끝에 매화로 피어나라
白 梅
- 김상옥
피는 다 붉은 줄만 알았는데
유독 李次頓의 피는 하얀 젖빛이었다.
이차돈은 신라 官憲의 손에
붙들려 살생을 당한 줄 알았는데
천년이 엊그제 같은 오늘
녹슨 철사처럼 헝클린 가지 끝에 옮아,
그의 피는 다시
하얀 잿빛으로 맺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그윽한 피는
있는 듯 없는 듯 울려퍼저
이 핏망울의 꽃내음은
그의 法問을 생방송으로
잡음 하나 없이 걸러내는 것이었다.
< 시집 '墨을 갈면서'에서 >
- 매화의 명인 광양의 홍쌍리家에 이르렀다 -
- 정약용의 매화시비가 서있다 -
賦得堂前紅梅부득당전홍매
부득당 앞 붉은 매화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窈窕竹裏館 요조죽리관
牕前一樹梅 창전일수매
亭亭耐霜雪 정정내상설
澹澹出塵埃 담담출진애
歲去如無意 세거여무의
春來好自開 춘래호자개
暗香眞絶俗 암향진절속
非獨愛紅腮 비독애홍새
대숲 속 깊은 곳에 들어앉은 집
창 열면 보이는 매화 한 그루
눈서리 정정하게 잘 이겨내고
속세의 티끌 벗어 말쑥하구나
세월 가도 별난 뜻 없어 보이더니
봄 오는 게 좋은지 절로 피었네
매화 향기 진실로 속세 떠났으니
붉은 뺨 하나만 사랑할 것 아니리
▶ 窈窕(요조): 유심하다. 깊숙하고 그윽하다.
▶ 亭亭(정정): 훤칠하다. 늘씬하다. 빼어나다.
▶ 澹澹(담담): 물결이 일렁이는 모습
▶ 塵埃(진애): 티끌
▶ 暗香(암향): 매화의 별칭
▶ 腮(새): 뺨. 볼. 여기서는 ‘새’로 읽음
- 이곳 홍쌍리가의 시아버지가 1917년에 심었다는 원조매 - -
- 내력 -
- 가문을 훌륭하게 일군 사례가 있는 곳 -
- 장터를 방불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
- 바위의 조각 -
- 키를 쓰고 소금구걸을 나선 아해 -
- 앞으로는 섬진강을 끼고 지리능선이 조망된다 -
- 전기의 매화서옥도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
- 거문고 들고 매화를 칭송하러 찾아올 누군가가 그립다 -
조선 말기의 매화서옥도
매화서옥도로 전기의 그림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의 작품이다. 조희룡은 같은 김정희파이면서 자신보다 한참 후배인 전기를 매우 아꼈으며, 전기의 작품만큼이나 독창적인 매화서옥도를 남겼다. 대표적인 두 작품이 있는데 간송미술관 소장품이 나중에 그려진 것으로 판단되며 회화적 완성도도 높다. 두 그림 모두 산속의 매화에 둘러싸인 서옥과 그 안의 인물을 그렸는데 활달한 필치에 먹빛과 담채가 어우러진 참신한 화풍이 눈에 띈다. 추사체를 방불케 하는 글씨도 그림에 잘 어울린다. 조희룡은 매화서옥도 외에 새로운 화풍의 뛰어난 매화 그림을 많이 남겼으며, 거처를 '매화백영루(梅花百影樓)'라고 이름 짓고, 호를 매수梅叟라 할 만큼 매화를 사랑한 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