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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자기선언-9
나는 참 포도나무
본문/요한복음15:1-16절
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세계 3대 거짓말 중의 하나가 장사꾼의 거짓말입니다. “밑지고 판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업을 하는 상인의 바람은 우선적으로 이익에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교육자의 바람은 제자를 길러 내는 데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으로 학문을 깨우치고 성숙한 모습으로 일어서게 될 다음 세대에 대한 비전이야말로 교육자가 헌신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또 농부의 사람은 열매에 있습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의 폭염을 견디면서 긴긴 나날을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이유는 가을의 열매에 대한 수확의 비전 때문입니다. 꽃은 호화롭고 아름다운 매력이 있지만, 농부의 궁극적인 기대는 꽃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사실 성경은 꽃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종종 꽃은 순간적인 가치에 몰두하는 인생의 허무에 비유되고 있습 니다. 시103:15절 이하에 그것입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6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그리고 약1:10절에도 꽃에 대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베드로전서1:24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꽃을 구하는 세대입니다. 궁극적인 열매인 생의 보람이나 지정한 의미보다도, 한 순간의 쾌락과 만족을 구하는데 급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본문배경
요한복음 14장의 마지막 절을 보시면 예수님게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31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여기”는 바락방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하고 계십니다. 그 설교가 마무리 될 무렵 예수님께서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조금 넘어가서 18: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예수님께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14장에서 예수님은 유명한 다락방 강화를 마치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18장에서는 예수님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십니다. 그분은 기드론 시내의 건너편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락방에서부터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기까지, 그 사이에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 사이에도 말씀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잇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틀림없이 예수님께서는 길을 거닐면서 말씀을 계속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떤 길을 따라서 걸으셨을지는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다릅니다. 우리는 다음 두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가능성/다락방-성전-기드론 시내-겟세마내동안
예수님은 이제 마지막 걸음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성전에 들르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때는 마침 유월절 명절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문은 유월절 명절기간 동안에는 항상 열려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밤이었을 것입니다. 유월절 명절의 밤이면,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을 것입니다. 휘영청 밝은 달 빛이 열린 성전 문을 비추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통과하시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금으로 장식된 포도나무 그림이 문에 새겨진 것을 보시고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나는 포고나무요” 너희는 가지니....(5절)
두 번째 가능성/다락방-언덕길-기드론 시내-겟세마내동안
예수님께서 만일 성전에 들르지 않으셨다면 다락방에서 나오셔서 계속 언덕을 내려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기 직전에 주변에 있는 포도원을 보셨을 것입니다. 요사이 같으면 아름다운 선율이 생각나는 조용한 환한 이 달밤에 예수님께서는 알알이 영글어 가는 포도나무를 바라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예수님은 어느 길로 가셨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하신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이 선언은 요한복음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일곱 번째의 자기선언 즉 “I am”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한 우리의 삶의 능력과 변화를 증언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포도나무는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처럼 역사의 걸음을 걸어왔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사5:2)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탄식하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또한 예레미야서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렘2:21절)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질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마태21:33절 에보시면 포도원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있는 포도원 주인이 열매를 거둘때가 되어 종을 보내 수확한 것들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러나 주인의 부탁으로 포도원을 관리하던 농부들은 열매도 변변치 못했고 욕심도 생겨서, 주인이 보낸 하인들을 매번 죽여 버렸습니다. 이 비유의 마지막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1:4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스라엘 민족은 열매 맺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제 새로운 백성을 만들어 이들을 통해서 열매를 맺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이 새로운 백성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요 교회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백성의 위대한 출발점이 될 제자들을 3년간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그 제자들의 곁을 떠날 시각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인식하시면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핵심 예수님의 마지막 자기선언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은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과 교회에 기대하시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들은 어떻게 맺어집니까?
열매의 종류
성경에서는 열매를 두 가지 의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인격적인 열매입니다.
인격적인 열매란 주님을 닮은 열매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신다면 당연히 그 주님의 생명이 주님의 인격으로 나타나게 됩니다.본문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그리고 11절에도 나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절도 같은 맥락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이것이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열매입니다. 주님은 사랑과 기쁨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인격을 기대하십니다.
인격적인 열매에 대한 다락방 강화의 이 유명한 메시지는 요한13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3장에는 사랑의 열매가 중점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요한13:34-35절을 보십시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어지는 14장에서는 평안(평화)의 열매를 말씀하셨습니다.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리고 15장과 16장에서는 특별회 기쁨의 열매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6:23-24절입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사랑,기쁨,편안, 이 세가지는 사실상 바울 사도가 성령의 열매를 이야기한 그 순서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갈5:22절에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답게 삶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야 합니다. 주님이 사랑이듯이 우리의 삶도 사랑이어야 하고, 주님이 참 기쁨을 가지고 사셨듯이 우리도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해야할 것입니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운 하늘의 평안을 지니고 사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그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인격의 집은 다른 외적인 것들보다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가진 우리는 어떤 탐스러운 열매보다도 먼저 영적인 변화와 인격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한 살의 나이가 더 올라갑니다. 그리고 장유유서는 유교전통을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소중하게 지켜지고 있는 문화입니다.
유대인들, 특별히 초대교회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닮는 것과 나이와의 연관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그만큼 하나님의 성품을 더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인격적인 변화가 없을 경우에는 나이를 헛 먹은 것이라고 하여 심히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요한서신를 비롯한 서신서들을 보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한 가지 큰 두려움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앞에 설 때에 부끄러운 인격으로 서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흘러간 시간에 비례하여 저와 여려분의 인격도 성숙하여 졌습니까? 만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이 주님을 더욱더 닮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신앙 연륜에 합당한 인격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늘 자문해야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둘째/증거의 열매입니다.
본문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가서 핍박도 받고 박해도 받고, 어려움도 당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2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보혜사 성령님께서 그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위로자요 돕는 자이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됩니까?
요한복음 15장에서 말씀하시는 또 한가지 열매는 바로 증거의 열매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가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거라신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거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을 통해서는 얼마만큼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내가정, 내직장, 내 이웃에게 내가 믿고 있는 이 그리스도를 얼마나 드러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맨족이 저지르는 민족적인 중요한 과오 가운데 하나는 선민의 특권을 강조하면서도 선민의 의무는 회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다는 특권에만 열중했을 뿐, 그 하나님을 나타내고 전하는 일에는 열심과 관심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를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그런 열매를 맺고 살아왔습니까? 주께서 여러분들에게 기대하시는 열매를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맺어가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밤 늦게 어떤 사람의 집 대문을 두드리고 들어간다면 아마도 무례한 인간으로 취급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례나 오해보다 죽어가는 한 생명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더 가치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혜롭게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10장에서 12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내보내실 때 주님은 다음과 같은 권면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6절)
그러므로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의 영광과 하나님의 생명의 부요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계속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열매맺는 방법
지금까지 열매의 종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열매를 맺을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로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본문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본문의 다른 표현으로 빌리자면 주님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본문4절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러분 오늘 교회나온다는 것이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증거가 아닙니다. 진짜 여러분 주님께 붙어 있는 믿음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상황속에서 일희 일비하는 그런 삶은 주님께 붙어 있는 자가 아닙니다. 구원의 뜨거운 확신이 있습니다.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비극중에 하나가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몇일전에 CBS 방송국에서 교회안에 명목상의 신자가 50%가 넘는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고 저는 봅니다.
마13장에 4가지 마음밭의 비유를 보시면 열매맺지 않는 자는 다 가시밭과,돌짝밭과,길가와 같은 밭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교회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매는 말씀의 씨를 마음에 밭아 그것을 발아시켜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똑같은 말씀의 병행구절이 누가복음에 있는데,
누가복음18:8저에 보시면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믿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밭에 씨를 발아시켜 열매는 맺는 신자는 극히 더물 것입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절)
영원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 문제를 예수님게서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시고, 진짜 죄에서 사면받아 죄 문제를 해결하고, 주님을 마음으로 믿어, 나의 구주와 임금으로 모시고 살아감으로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자만이 느낄 수 없는 주님께 붙어 있는 축복의 사실을 체험할 것입니다.
신앙 고백한다고 해서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찬송도 곧장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주님에게 붙어 있다고 증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친구라는 별명을 가진 밥 존스 목사님은 사단이 쳐서 죽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때에 주님게서 그에게 질문하는 질문은 바로
사랑하며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요한 13장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계명의 말씀 입니다. 이러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면 우리가 주님앞에 섰을 때에 우리는 심판대에서 버림받을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안에 항상 거해야 합니다.
본문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본문은 우리가 주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항상 주님안에 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거한다”는 단어는 15장에만 해도 11번이나 등장 합니다. 또 요한복음서 전체를 통해서 마흔번이나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거(居)한다“는 단어는 영어 성경에는 remain [riméin](남아있다,없어지지 않고 있다.) 으로 되어 있지만 본래 의미는 지속적으로 그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를 신뢰하다가 내일은 멀어지는 삶이 아닙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변해도 내 신앙을 흔드는 어떤 세력들이 있더라도, 어떤 위험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이 신앙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끊을수 없습니다.
롬8:35절에 이 사실을 확증적으로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8절)
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계속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의 형식적인 관계만 맺는 수준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계속해서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뢰하되 마지 못해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거하라!“
한 지붕 밑에서 한 솥밥을 먹고 살지만 진정한 교제가 없이 서로의 존재만을 확인하며 사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지금 세기의 이혼소송 중에 2차 선고가 내려진 SK 노소영, 최태원 부부가 그럴 것입니다. 이들은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에 볼품없는 기업이었으나 88년 결혼해서 청와대의 비호를 받으며 비자금까지 회사자금으로 흘러들어오고, 급기야 혼외자식까지 만들어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데 국민들에게 얼마나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본인은 정작 잘 알지 못하는 기업가의 가정을 보게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가정들이 이땅에 많습니다.
이들은 아침에 얼굴 보고 헤어집니다. 저녁에 와서도 한지붕 아래에 두 사람이 살아갑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의미마저, 상실되어 무덤덤한 부부생활이 지속 될 뿐입니다. 이것은 하숙 생활에 불과합니다.
”거한다“는 말은 그냥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다.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놀랍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함께 거하는 곳에는 사귐이 있고 대화가 있고 정말 다이나믹하게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 예수님께서 참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되신 사람이 ”거한다“는 단어에 담긴 뜻입니다. 그분은 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한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나를 주관하시어 지배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또한 본문에는 주님의 말씀의 두가지 역할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첫째역할/죄에서 깨끗케 함입니다.
본문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이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알고 즉 복음을 알고 십자가에 달리신 대속의 읂총을 받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둘째 역할/삶을 지배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죄를 깨끗케 하는 것에서만 멈추지 않습니다. 7절을 보시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나를 깨끗케 한 이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를 지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삶과 인격과 모든 것을 참으로 지배하기 원합니다. 즉 우리의 삶속에서 참으로 주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주여“라는 고백이 실감나지 않을때가 있으면 기도할 때 종종 이렇게 바꾸어서 예수님께 기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주인님!“
오늘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가 참으로 저와 여러분의 주인이되셨다면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실이 기쁘고, 감사하먼서, 이 그리스도를 계속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열매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앙 자체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고민과 갈등과 좌절과 방황과 눈물과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그리고 내 안에 거하시는 이 주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 안에 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만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할 때 환경이 아니면 어떤 사람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또한 원하지 않는 환경이나 사람으로 인하여 그 사역을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신다는 분명한 소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지 말라는 분명한 지시와 사인이 있다면 우리는 즉시 하는 일을 그만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역의 근간이 되어야 합니다.
지나간 날들 동안 어떤 사건이 나를 낙심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의욕을 좌절 시킬 때도 있습니다. 어떤 유혹과 곤란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붙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한다면 그분의 분명한 부르심을 안다면 우리는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이 신호가 없이 우리가 무엇을 한다면 결국 그일은 자신의 종교성이나, 개인적인 노력일뿐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내안에 거하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 말씀으로 네가 지배를 받으면 열매를 맺으리라.“
우리가 인격적인 면에서 주님을 닮아가고, 부족한 나를 통해서 이웃들이 주 앞에 돌아오는 이런 변화의 열매를 기대할 수가 있다면 우리는 놀라운 생애를 엮어가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영적 세대들이 있다고 요한일서1장에 있다고 합니다.아이들,청년들,아비들,자녀들....
여러분들은 이 구분 가운데 어떤 부류에 속하십니까? 영적인 나이에 맞는 열매를 맺었다고 주님 앞에 고백할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세월만큼, 여러분의 삶 속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자비와 양선과 오래 참음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제자들을 이끌고 기드론 시내를 향해 내려가시면서 주님은 그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5절)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와 새로운 삶을 찾게 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 하시고 계십니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나의 가족과 지인들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영적인 마음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지나온 여러세월을 교회에 출입하면서 예수님을 자랑하지 못하고 숨어살듯이 교회에 나오고 빠져나가는 신자들은 신앙의 뿌리부터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포도나무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붙어 있을 가지들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바라십니다. 남은 세월 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야할 그 뜨거운 사명이 여러분 속에 불타오르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구언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6시간 이상이나 고통당하시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큰 사랑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은 오늘도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 주님을 믿고 신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에 온갖 위로와 축복과 선언에 뿌리를 내려서 주님을 의지하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보혜사 성령으로 너와 함께 하겠다. 나를 증거하라 나를 나타내라.“
다함께 기도합시다.
주여 탐스럽고 싱싱한 열매를 주님앞에 드릴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단순하게 교회출석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실제로 경험하고 말씀생활과 기도생활로 내가 주님안에 주님이 내안에 게신 것을 실제적이게 하시고 어떤 환경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는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증거하는 열매맺는 삶 살기를 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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