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 길을 찾아온 병문안
임병식 rbs1144@daum.net
일전에 나와 갑장인 숙부가 집을 다녀갔다. 숙모와 함께 아내의 병문안을 하러 온 것이었다. 7년 전 둘째가 결혼할 때 다녀간 후로 참으로 오랜만의 발걸음이었다. 그때도 아내는 병중이었으나, 다시 마주한 환자의 얼굴을 살피던 숙부는 전보다 훨씬 여위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줄곧 침대에만 누워 있으니 나아질 턱이 있겠느냐는 나의 말에 숙부는 “안타깝고 마음이 많이 아프네”라며 짠한 진심을 전했다.
그사이 숙모는 준비해온 봉투를 꺼내 아내의 손에 쥐여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무표정했다. 예전 같으면 한사코 사양하거나, 못 이기는 척 받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건넸을 사람인데 말이다. 반응 없는 아내를 지켜보는 마음은 더욱 아리고 쓰렸다.
숙부는 발걸음이 늦어진 것을 내내 미안해했다. 늘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서울에서 남녘 끝 여수까지 내려오는 길이 어디 쉬운 일인가. 생업도 있고 거리도 멀어 나서기가 어려웠을 것이니 나는 연신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숙부와 나는 어릴 적 한동네에서 같이 자랐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친척지간인 줄도 모르고 ‘너냐 나냐’ 하며 어울려 놀았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삼촌에게 그리 말하면 안 된다”고 꾸짖으셨는데, 당시엔 그 주의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동무처럼 어울렸다. 그러다 촌수를 가릴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이별이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께서 두 남매를 데리고 경기도로 이사를 가셨기 때문이다.
일곱 살 적, 할아버지의 출상 때 꽃상여에 지폐를 꽂아두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반면 여섯 살 터울의 내 아우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갓난아기가 무슨 인지 능력이 있어 그때를 기억하겠는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후실로 오신 할머니께서 낳은 남매 중 둘째가 바로 숙부였다.
내 기억 속 할아버지는 늘 병석에 계셨다. 홍옥 사과를 ‘능금’이라 부르며 드시곤 했는데,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아셨는지 한 조각 떼어 주시던 손길이 기억난다. 할아버지는 두상이 둥글고 크셨다. 백부님이나 아버지, 숙부와는 조금 다른 골상이었다. 하지만 후손 중 고모님과 형님만은 할아버지를 쏙 빼닮아 얼굴이 동그랗다. 특히 고모님은 할아버지의 판박이다. 얼굴뿐 아니라 넉넉한 풍채와 불룩한 배까지 닮은 것을 보면,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
숙부는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았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연고 없는 객지에서 고생하며 공부도 제때 마치지 못했다. 막노동을 전전하다 뒤늦게 배운 운전으로 택시를 몰았으나, 심한 척추측만증 탓에 그마저도 오래 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숙모가 생활전선에서 근검절약하며 기반을 닦은 덕에, 이제는 집도 마련하고 노후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번 길에 숙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려온 듯했다. 먼저 고향 보성 마을에 들러 유일하게 남은 사촌 형님 내외를 만났다고 한다. 숙부를 통해 들은 고향 소식은 서글펐다. 나보다 네 살 많은 사촌 형님은 청력도 어두워진 데다 치매 증세가 있고, 형수님 또한 허리디스크로 휠체어에 의지하고 계신단다. 세월의 무상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하기야 철부지였던 나와 숙부도 어느덧 희수(77세)가 되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숙부는 나의 처지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간병하는 내가 건강해야 하니 몸을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했다. 숙부는 폐를 끼치기 싫다며 미리 예약해둔 호텔로 떠났다. 나는 서운한 마음을 저녁 식사 대접으로 대신 달랠 뿐이었다.
이날 나는 새삼 친척의 의미를 되새겼다. 누가 이 먼 길을 달려와 위로를 건네고 내 손을 잡아주겠는가. 무심한 듯 보여도 늘 마음 한구석에서 서로를 걱정하며 손 내미는 이들이 바로 친척이 아닐까 한다. 맹위를 떨치는 더위 속에 찾아와준 숙부가 고맙기 그지없다. 차가 꼬리를 감추고 사라질 때까지, 나는 흔들던 손을 차마 내려놓지 못했다.(2022)
첫댓글 무심한 새월을 생각합니다 아니 무상한 세월이라 불러야겠어요 사모님께서 많이 쇠약해지셨다는 말씀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먼 길 마다하지 얺고 병문안 오신 숙부님 내외분을 통해 뒤돌아보신 아득한 시절의 추억들도 왠지 무겁게 다가옵니다
벌써 중복이 다가왔군요 예사롭지 않은 무더위에 부디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문병차 찾아온 숙부와 숙모님을 만나 모처럼 회포를 풀었습니다. 먼길 마다않고 찾아주신 발길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