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將帥)의 길, 목사의 길
지난 2005년 주말 저녁, 남성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드라마였던 불멸의 이순신 장면중에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은 이순신을 소개하기를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2월 진도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전에 다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2월 13일 정읍을 떠나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지금의 여수)에 부임했다.”(다음 백과 참조)
당시의 관행으로 볼 때 파격적 인사였으며 선조 임금의 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후부터 왜침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동분서주하며
침입에 대비한 준비를 합니다.
무엇보다 장군을 힘들게 했던 부분을 드라마에서는 상세하게 보여주는데,
그중에 관습과 타성에 젖은 부하 장수들의 무사안일주의 사고방식과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왜적의 침입시 바다에서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장군의 논리에 부하들은 반발하며
난상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불멸의 이순신 43회 분에 등장합니다.
“바다위에서 싸우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수군이 바다에서 싸우지 않으면 어디에서 싸운단 말인가“
“바다에서 싸우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해안을 방비할 방법이 있을것입니다.”
“일 리가 있습니다. 바다에서 싸우는 것은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만 해도 보십시오. 파도가 조금만 높으면 제대로 서있을수 조차 없지 않습니까
헌데 무기를 들고 싸우다니요. 언감생심입니다. 영감. 재고를 해보시지요.
달리 방도를 찾아보시는것이.”
“바다에서 싸우는 것 외엔 방도가 없소. 정해년을 생각해 보시오
왜군이 조선땅을 밟는 시각부터 전라도 일대가 초토화되다 시피 했지 않소이까
단병접전에 너무도 강한 왜군이오 그런 군사들이 수십만에 이르고 있다 하오이다.
그들의 상륙은 결단코 막아야 하오. 그 길은 오직 하나 바다에서 적을 돌려보내는 길 뿐이오”
“허나 그 군사들이 모두 조선으로 향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조정에서도 전란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러니 축성조차 중단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예 그러지라 류성용 대감도 그거에 찬동했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지라”
“조정의 중론이 맞기를 나도 누구보다 바라네. 전란이 일어나지 않아
우리의 준비가 무용지물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네.
허나 우리는 모두 조선의 장술세. 적침의 조짐이 단 한치라도 보인다면
그 방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장수의 길일세.”
적침의 조짐이 한 치라도 보인다면 비록 무용지물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튼튼한 방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장수된 자의 길이라는
대사가 참 와 닿았습니다.
자주 국방을 위한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을 수 있는 이가 진정한 장수이고
장군의 길이라 한다면, 이 시대속에 목사의 존재의의는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봅니다.
참 목자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에 이미 해답이 있음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요한복음 10:14-17)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