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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조선사 연구회
 
 
 
카페 게시글
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6.25 전쟁의 숨겨진 진실
김덕성 추천 0 조회 918 05.05.24 02:11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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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05.24 04:38

    첫댓글 여지껏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와 지식을 있는 그대로 믿을만한게 얼마나 될런지........

  • 05.05.24 08:46

    수고하셨습니다.

  • 05.05.24 12:32

    굉장한 자료입니다. 말씀대로라면 6.25는 미국, 소련 및 대한민국 초기의 군 수뇌부(이들은 거의 일본군 출신 친일파로 중국대륙에서 온 화교가 많음.)의 합작품이겠군요. 영-미-아쉬케나짐(소련상류층에도 다수 포진)들의 세계제패전략과 맞물려 만들어진 전쟁에 무고한 600만명이 희생된데 울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 05.05.24 14:03

    내용적으로 오류가 너무 많이 존재하는 군요. 1949 년의 38 선에서의 크고작은 전투횟수는 글의 언급보다 훨씬 많았으며 미군정보보고서에 의하면 도발은 주로 남측에 의한 것이었으며 북쪽은 수세적이었고, 남쪽은 공세적이었읍니다.

  • 05.05.24 14:06

    그리고 38 선 남측의 지휘관들의 출신지가 이북이란 점을 감안하고, 그들이 출신배경이 주로 친일지주계층이고 이북에서 내쫓긴점을 감안해야 겠지요. 1950 년 조미전쟁 발발전에 대만은 본토세력으로 부터 수세적이었지 공세적이아니었읍니다. 실례로 1950 년 5 월인가 6 월에 대만의 장개석은 서울을 다녀갔읍니다.

  • 05.05.24 14:09

    그 이유는 서울에 이른바 (대만)중국임시정부 수립을 요청하기 위해서 였으며 이승만은 거부했읍니다. 또한 그해 대륙세력은 대만상륙을 준비하고 있던 상태였읍니다. 조미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대륙과 대만사이를 봉쇄한다는 발표를 하였으나 7 함대가 실제 출동되지는 않았읍니다.

  • 05.05.24 14:13

    대만의 장개석 정권이 본토상륙할 정도로 군사력이 강했다면 대륙에서 쫓겨나지는 않았겠지요, 그당시 홍콩은 중국보다는 영국의 영향력하에 있던 나라가 아니던가요 ? 이런 가정은 어떨까요 ? 당시에 3 차세계대전을 할수 있는 여력이 있던 나라가 어디이겠읍니까 ?

  • 05.05.24 14:16

    참고로 종전후 소련이 강대국으로 부상할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련의 전신이랄수 있는 제정러시아는 알라스카를 미국에 팔아야 할정도의 나라였으며, 소련이 강대국이 된건 자체역량보다는 유럽의 열강이 1,2 차세계대전으로 피폐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 05.05.24 14:19

    조미전쟁에서 전쟁전 미국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군요. 1949 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무력분쟁에 중재를 섰던 미국이 1 년후에는 왜 개입을 했을까요 ?

  • 05.05.24 14:22

    이승만의 경우 조미전쟁이 없었다면 실각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며, 대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대륙세력의 대만상륙을 저지시킨건 조미전쟁의 발발이었지 그역이 아닙니다. 대만이나 한반도남쪽에서 조미전쟁 발발전에 무수한 인명이 학살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른바 근대국가를 강제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 05.05.24 14:23

    마지막으로 북이 전면전을 예상한 시점은 8 월 15 일 이었읍니다

  • 작성자 05.05.25 00:20

    김원태 님께서 오류를 지적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몇 권의 책만으로 다이제스트 하다 보니 한계가 드러나는군요. 저로선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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