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만리장성
* 사진- 만리장성
피곤이 썰물처럼 밀려온다.
모두들 그대로 죽은 듯이 잠이 든다.
오후의 따가운 햇볕이 얼굴을 태우니 비로소 깨어난다.
모두 몰골이 말이 아니다.
머리는 불에 그슬려 봉두난발이고, 옷은 나뭇가지에 걸려 여기저기 찢어져 있다.
정신을 차리고 어젯밤 전투장을 찾아보니,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어젯밤 지난 온 곳을 더듬어 보니 다만 산 아래 큰 물줄기 두 개가 합쳐져서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분간조차 어렵다.
정신을 차리고 성벽을 올려다본다.
두 길이 넘는다.
중부는 속으로 ‘아하 이게 장성이구나’하고 느낀다.
수련 기간에 먼 발취에서 보았던 장성이다.
그렇다. 만리장성에 다다른 것이다.
난하의 하류 동쪽의 200리 거리에 있는 진황도의 산해관 山海關에서 시작된 만리장성 萬里長城.
난하의 하류를 거쳐 조선하의 상류를 지나 유주 (현재의 북경 북쪽)을 거쳐 영정하 상류 쪽으로 계속 서진 西進하여 하서회랑의 끝, 돈황 남쪽의 가욕관 嘉峪關까지 연결되어있다.
명나라 때까지는 대부분이 토성으로 건축되어있었다.
그 만리장성의 남쪽 성벽 아래에 서 있는 것이다.
서 있는 지점은 아직 모른다.
조선하의 상류 정도로만 짐작된다.
그러고 보니 지난겨울 배로 이주할 당시 장영에게 들은 내용이 얼핏 생각난다.
좌측에서 내려오는 물길은 백하 白河 즉, 선하 鮮河고, 우측에서 내려오는 강줄기는
조하 朝河라고 설명하던 얘기가 떠오른다.
두 물줄기가 합쳐서 조선하 朝鮮河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부여 예족들의 본향 本鄕이다.
조선하의 중류에서부터 상류 부근까지 밤새 이동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산 아래쪽으로는 갈 수가 없다.
적병들이 득실거릴 것이다.
그렇다면 성벽을 넘어야만 하는데 너무 높다.
그때,
저 멀리 산 아래에서 병장기인 듯 약하게나마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와 인기척이 들린다.
아마 적의 추격병인 듯하다.
급한 대로 죽은 고목을 옮겨 사다리 모양을 내어 칡덩굴을 엮어 밧줄을 만든 후, 고목을 디디고 칡 넝굴을 밧줄 삼아 손으로 당기며 성벽 위를 올라갔다.
다행히 성 마루를 지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신나라가 망하고 후한이 들어섰으나 아직 여기까지는 힘이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무주공성 無主空城이다.
엉성한 고목 사다리도 성벽 위로 끌어 올렸다.
추격병들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다.
성벽 위에 올라서 바라보니 먼저 성벽의 두께가 엄청나게 넓다.
말 세 필이 동시에 다닐 수 있는 넓이다.
좌우로는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지형에 따라 꾸불꾸불 계속 연결되어있다.
북쪽을 바라보니 성채 城寨를 받치고 있는 험한 산세를 조금만 지나니 끝이 보이지 않는 초목지가 넓디넓게 펼쳐져 있다.
말로만 듣던 세외지역 歲外地域이다.
말 그대로 세상 바깥의 또 다른 세상이다.
험준한 산세 정상 부근에 이처럼 높고 튼튼한 성벽을 쌓아 놓았는데도 흉노족들은 걸핏하면 장성을 넘어 들어와 노략질과 약탈행위를 일삼았다니 도저히 이해되질 않는다.
흉노족들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신 神적인 존재란 말인가?
가파른 높은 절벽 위에 흙과 바위로 굳건히 쌓아 놓은 두 길이 넘는 성벽을 넘어오다니, 지키는 병사가 없다 하더라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수비병들의 화살과 투석을 피해가며 말과 함께 성벽을 넘어 오간다.
가히 상상조차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불과 수년 후에는 이중부 자신이 만리장성을 마치, 자기 집 마당 드나들 듯이 자유자재로 넘어 다니며 들락거리게 된다.
- 만리장성 萬里長城
만리장성은 흉노족 등의 유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고대 진시황 때 기존의 성곽을 토성 土城과 석성 石城으로 잇고, 부족한 부분은 새로이 축조하여 만든 거대한 성곽이다.
이후 명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지속적으로 보수. 개축 및 신축하여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이라 부르지 않고 장성(중국어 정체자: 長城, 간체자: 长城)이라 부른다. 현재 남아 있는 장성의 유적은 허베이성(河北省) 산해관(山海關)에서부터 간쑤성(甘肅省) 가욕관에 이른다.
- 이 구간이 진나라 때부터 명나라까지의 실제 장성이다. 그런데, 동북공정을 하면서 그 구간을 오뉴월 엿 가락 늘리듯이 계속 늘리고 있는 중이다.
고구려가 쌓은 요하의 천리장성 千里長城을 넘더니(아니, 지금의 하화족은 천리장성을 만리장성의 부속 성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요동반도를 지나, 현재는 한반도의 평양까지 그 길이를 연장시키고 있다.
지도상의 연장은 약 2,700km이지만, 기복이 있거나 중첩 重疊된 부분을 고려한다면 총길이 5,000~6,000km에 달한다.
“不到长城非好汉.” “부도장성 비호한”
"장성에 가보지 않은 자, 사내 대장부(好漢)라 할 수 없다."
- 마오쩌둥 (모택동)
7. 조선하 朝鮮河
중부는 사태가 급한지라 만리장성과 흉노족에 대한 경외심은 일단 접어두고, 추격병을 따돌리려고 밤새 북서쪽으로 도주하였으므로, 아군의 진영이 있는 동쪽 방향으로 이정 里程을 잡고 동료들과 발걸음을 빨리했다.
오리 정도 가니 성벽에서 보았던 물줄기 상류가 가까이 보인다.
상류 지점이라 물줄기의 폭이 아주 좁아 보인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모양새가 조하 朝河의 상류로 짐작된다.
그런데 뒤쪽의 인기척은 계속 들려온다.
오후보다 더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아마도 중부 일행을 포착한 듯했다.
저 멀리 뒤돌아보니, 한 무리의 병사들이 성벽 위로 올라오고 있다.
고민하던 이중부와 일궁은 의론을 하여, 조하를 지나자 곧 성벽을 포기하고 장성의 북쪽 벽을 타고 내려갔다.
그런데 길이 없다.
황혼이 내린다.
가시덤불과 험한 바위들이 길을 쉽게 터주질 않는다.
장검으로 가시덤불을 자르고 헤쳐나가며, 저녁 무렵부터 내내 그렇게 고생하면서 15 리를 걸었다.
가시덤불이 뒤 덮은 좁고, 험난한 바위틈 새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고생하니, 평탄했던 성벽 위를 걸을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비상식량으로 육포 肉脯를 대부분 소지하고 있어서 이, 삼 일은 버틸 것 같다.
그런데 뒤쪽의 추격병들도 중부네 일행을 따라 성벽에서 내려와 계속 추적하는 낌새다.
덤불을 헤치며 없든 길을 만들며 가야 하는 앞선 도망자 보다, 이미 만들어 놓은 길을 뒤따라가는 추적 병들의 추격 속도가 더 빠를 수밖에 없다.
병사수도 추격병들이 배 정도 더 많은 것 같다.
이제는 추적 병들의 말소리도 어슴푸레 들려온다.
이 각을 더 가니 뒤쪽에서 소리친다.
“기다리시오”
이젠 똑똑히 들린다.
아니, 보통 적을 상대하거나 추격을 한다면 ‘꼼짝 마라’ 아니면 ‘항복하라’고 강압적으로 소리칠 것인데, ‘기다려’라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어투도 부드러우면서도 절제된 낮은 목소리다.
억양도 동이족 말투 같다.
이미 위치가 노출되었으니 부상 당한 몸으로 이제 더 이상 도망가기도 어렵다.
한바탕 전투를 벌이던지, 항복하던지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뒤쪽을 단속하며 가던 일궁이 뒤돌아보며 어둠 속으로 용기를 내어 크게 소리친다.
“거기는 누구요?”
“우린 박달골 수비군이오”
“어. 그래요, 우리도 박달촌 병사요”
잠시 후, 10 명의 병사가 나타난다.
박달촌 아군들이다.
해천이 앞서 온다.
제일 뒤에는 팽이가 부상병을 부축하며 오고 있다.
그런데 모양새가 중부 일행들보다 더 처참해 보인다.
전형적인 패잔병의 몰골이다.
먼저 부상자들이 많았고 부상의 정도가 더 심하였다.
등에 화살을 맞은 자, 팔이 부러진 병사. 얼굴에 화상을 입은 자 등 태반이 큰 부상병들이었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대단한 정신력이다.
그들 중, 중부의 선봉 돌격대로 함께 행동한 2명의 병사도 보였다.
지난밤 도주 중에 부상으로 미처 따라오지 못했던, 낙오한 병사가 해천의 병사들과 재합류하여 뒤따라온 것이다.
인솔자는 해천이었다.
해천 역시 성한 모습은 아니다.
왼쪽 어깨와 팔 두 곳에 화살을 맞아 응급조치로 왼팔을 천으로 감아 어깨에 묶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간밤에 얼마나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지 보지 않아도 훤하다.
접전이라기보다 일방적인 학살 虐殺이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도피해온 것이 용하다.
중부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해천 백 부장님, 죄송합니다. 우리만 살자고 먼저 도망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아닐세, 자네의 판단이 옳아서, 그나마 전멸은 면한 것 같네.”
“면목 없습니다”
“아니, 앞서 자네들이 길을 터주어 포위망을 뚫었으니, 우리도 그나마 이렇게 피신 할 수 있었네”
해천의 설명이 이어진다.
적들은 열흘 전 피해를 본 동이족들이 복수의 기회로 그믐밤을 타서 기습할 것을 예측하고, 이미 대비해 놓은 것이라 한다.
이틀 전, 백여 명의 병사들이 강 하구로 내려간 것도 속임수였다.
낮에는 세작들을 속이기 위하여 하류로 이동한 것처럼 보이고 밤에는 다시 어둠을 틈타 은밀히 돌아와 기습에 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천의 군사들이 강을 건너가자, 강 쪽으로 병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였다.
기습군들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전멸시킬 작전을 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적군이 파놓은 덫에 완벽히 걸려든 것이다.
그나마 중부 일행이 아군의 진지가 있는 강 쪽으로 후퇴를 하지 않고, 산 쪽으로 도망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것이다.
산으로 도피하면서 보니 강 건너 아군 진지에도 큰불이 난 것을 목격했는데, 아마도 아군의 진지도 무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습격병들을 함정에 빠뜨려 전멸시켰으니, 그 여세를 몰아 강 건너 동이족의 본진까지 쳐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중부는 자신이 처한 처지도 잠시 잊고, 한준과 모용 사부의 안위가 걱정된다.
해천은 앞서가는 패잔병들이 아군인 중부의 선발대 같기는 하여도 확신이 없었으며 또, 뒤따라 추격해오는 적병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다 보니 지금에야 겨우 조우 遭遇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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