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곡리 마애여래좌상 /경북 문화유산자료
- 경북 문경시 산양면 봉정리
완만한 경사의 바위면에 감실을 파고 새긴 높이 340cm, 폭 210cm의 마애불, 연화대좌 위에 양손을 가슴 앞에서 모으고 앉은 형상이다.
얼굴은 고부조(高浮彫) 기법으로 제작되었으며 머리와 상반신, 하반신의 비율이 같다. 무릎 아래 부분은 불분명하여 미완성으로 여긴다.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주위에 절이 있었을 것으로 여기나 관련 기록은 없고, 반암사(盤岩寺)가 있었다는 이야기만 있다.
고려중기 작품으로 여긴다.
이 마애불 아래엔 계단식 집터가 있어 절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은 든다. 불상 전체가 완성된 느낌은 아니다.
반곡2리 마을회관에 주차,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간다.
끝집 오른편 앞에 있는 집 옆으로 오솔길이 있다.
오솔길을 따라 직진하면 사람이 살았던 터가 있다. 축대가 보인다. 내가 제대로 못 찾아서 자세히 올린다.
봉서리 삼층석탑 /비지정 문화유산
- 경북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
반곡리에서 수루재를 오른다. 봉서사를 지나면 길 옆 자연석 위에 삼층석탑이 있다.
신라탑이란 설명, 일제강점기 때에 왜인이 부쉈다고 한다.
받침돌 갑석과 1층 몸돌을 덮어놓아서 제대로 볼 수 없다. 자연석 위에 있으며 지붕돌만 제것인 것 같다.
삼층석탑에서 계속 오르면 봉천사가 나온다.
봉천사 입구에 보호수인 소나무와 병암송이란 정자가 나온다.
봉천사에서 보는 경치가 좋다.
가지고 다니는 자료에 있다. 봉천사 입구, 차로 가면 15분 걸린다. 100여m 내려갔지만 더 이상 길이 없어 돌아왔다. 차로 간다.
기시감, 기시감이 아니다. 예전에 와서 헤맸던 곳이다.
작은 저수지 둑에 주차하고 걷는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오르는 길이 있다. 20m쯤 오르면 관음상과 마애불이 있다.
봉정리 석조 관세음보살입상 /경북 유형문화재
봉정리 마애약사여래좌상 /경북 유형문화재
대승사 윤필암(大乘寺潤筆庵)
-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대승사의 산내암자인 윤필암은 고려후기인 1380년(우왕 1) 승려 각관(覺寬)과 김득배(金得培)의 부인 김씨(金氏)가 창건하였다.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사찰로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기문(記文)을 썼다.
일제강점기 때 선승 경허가 대승사와 윤필암에 머물면서 선풍을 진작시켰다.
몇 년 전에 왔을 때 산문이 닫혀 있어 절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이라 산문이 열렸을 것 같아 다시 왔다.
사불전, 법당 안에 불상이 없다. 사불산에 있는 사불암이 보이도록 하였다. 전에 았을 때 사불암을 봤다.
사불암, 사면석불 /경북 유형문화유산
사불전 뒤 바위에 윤필암 이형삼층석탑(경북 문화유산자료)이 있지만 올라갈 길이 없다.
윤필암 삼층석탑 /경북 문화유산자료
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이다.
사불선원, 1931년부터 비구니 사찰로 전환, 지금까지 전통을 잇고 있다.
대승사 윤필암 신중도 /경북 유형문화유산
가로 114cm, 세로 158.5cm로 일반 신도가 시주하여 그렸고 1820년 부처님오신날에 봉안했다.
화승 두찬(斗贊)이 책임자로 참여한 유일한 그림이다. 두찬은 사불산 화파(문경 대승사와 김용사에서 활동한 화승)의 신겸(信謙)의 제자다.
대승사 윤필암 후불도 /경북 유형문화유산
가로 274cm, 세로 280cm로 비단에 채색. 1830년(순조 30) 화승 무경당 관주(無鏡堂觀周)가 책임자로 여러 화승과 함께 그렸다.
사불산 화파 퇴운당 신겸(退雲堂信謙)의 화풍을 이었다.
관음전, 신중도 후불도는 이곳에 있다.
삼성각
대승사 묘적암(妙寂庵)
대승사의 산내암자이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신라말기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말기에 나옹(懶翁)왕사가 출가한 사찰이다. 나옹 혜근은 경북 영덕군 창수면이 고향이다.
나옹이 묘적암을 찾아 요연(了然)선사를 뵙고 중이 되기를 청하였을 때, 요연은 “여기 온 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다.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습니다마는, 보려 하여도 볼 수가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나옹은 답했다.
요연은 자신도 알지 못하니 다른 고승을 찾아가 물어볼 것을 권하였다.
뒷날 나옹이 도를 깨닫고 묘적사로 돌아와서 회목 42그루를 심었으며, 나옹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묘적암을 찾아왔다.
묘적암은 조선후기까지 불교의 성지(聖地)로 여겨져 많은 수행자가 찾았다.
1668년(현종 9) 성일(性日)이 중건하였고, 1900년 취원(就圓)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윤필암에서 멀지 않다. 걸으면 15분쯤. 차로 오르는 길도 잘 포장이 되었다.
절은 단출하다. 가진 자료에 부도가 있어 보러 왔다. 하루가 끝나는 시간, 여신도 한 분이 내게 차를 같이 마시자고 권한다.
주지실엔 주지와 여러 신도가 앉아서 차담을 하고 있다. 오늘 수고에 대한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다.
나처럼 나그네도 있다. 30년만에 묘적암을 찾았다는 분(70세 넘어 보인다)은 옛 이야기를 한다.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법당에 들어가 적은 금액을 시주하였다. 권하여 차를 마신 고마움에 대한 내 성의일 뿐이다.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진영 /경북 유형문화유산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25.5㎝, 가로 81.5㎝. 나옹화상진영은 1803년에 수화승 신겸(愼兼)이 그렸다.
사진 오른편 부도, 동산당 일초(東山堂一超)선사(근래) / 왼편은 동봉(東峰)화상(조선말 부도)
인터넷 찾아보기를 하여도 자료가 나오질 않는다.
당호를 모르겠다. 묘적암에 나옹왕사 부도가 있다고 하는데 미처 몰라서 못 찾았다. 3기말고 더 있는 것 같다. 다음에 다시~!
대승사 마애여래좌상 /경북 유형문화유산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묘적암 갈 때 안내판을 봤다. 내려오는 길에 들렀다. 고려시대 마애불이다. 높이 6m.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각각 두 줄의 평행한 음각선으로 나타내고 그 주변을 화염문으로 처리하였다.
불신 밑에는 만개한 칠엽연판(七葉蓮瓣)을 음각선으로 조각하였다.
암석 가까이에는 평평한 판석이 약간 튀어나오게 얹혀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석불상의 머리 위에 개석(蓋石)을 얹는 형식과 상통한다.
2025년 5월 5일 부처님오신날
첫댓글 열정이 대단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