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나이, 떡국 나이 - 문하 정영인 수필
올해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미역국 나이보다는 떡국 나이로 나이 세기를 살가워 한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나이 대보기를 좋아하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덜 그러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묻는다.
나이에 따라 관계와 호칭이 정해지고, 서열과 높임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혹은 ‘**생이나 **띠’ 식으로 말하고, 상대편이 알아서 나이를 가늠하게 하기도 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한다지만,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 하는 것도 나이 대보기를 기준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한국인의 나이 셈법은 유달리 복잡하다. 세는 나이, 만(滿) 나이. 연(年) 나이, 보험 나이, 애먼 나이 등. 우리 딸은 12월 중순경에 태어났다. 낳자마자 한 살 먹고, 다음 정월에 떡국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니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안 돼 두 살을 먹게 되었다. 생명을 존중하는 천주교에서는 사람의 생명 출발을 수태하면서부터 생명의 출발로 본다. 10개월이 지나면 거의 일 년이 되기 때문에 세는 나이가 타당하다고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과학적인 신(神)의 소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낳자마자 1살을 먹는 것이 옳은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나무의 나이테는 만 나이로 계산한다. 1년이 지나야 나이테가 한 줄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처음 만나면 나이 대보기부터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선 사회적인 서열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 특히 호칭이 달라진다. 어르신이거나 자네, 혹은 젊은이, 어린 것이 등.
나이 대보기를 잘못하면 곤란한 경우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아가씨를 아주머니라고 했다가 처녀에게 칼부림을 당하기도 한다. 지인 하나는 밤에 아파트 골목에서 담배 피는 중학생들에게 나이를 물어 보면서 야단을 쳤다. 그 녀석들은 뒤 쫓아와서 벽돌로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을 갔다. 그 친구는 한동안 고생을 했다.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는 그 외 담배 나이 술 나이, 군대 갈 나이 등 나이 대보기 문화가 유달리 발달한 나라다. 정부는 ‘새해 떡국이 나이가 아니라 생일 미역국을 먹을 때마다 나이를 먹는 것’이라고 만 나이 홍보를 하지만 아직도 국민의 3명 중 2명은 세는 나이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도 팽팽한 미역국 나이보다는 느슨한 떡국 나이가 살갑고 그리 쓰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떡국 나이가 더 한국인다운 것 같다. 문제는 나이를 미역국으로 먹든 떡국으로 먹던 나잇값을 제대로 하느냐가 문제다. 우리는 해마다 생일 나이든 떡국 나이든 어김없이 나이를 먹어 간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막을 수 없는 운명이다. 누구의 노래처럼 가는 세월 잡을 수 없고 오는 세월 막을 수 없다. 인간들은 막무가내로 가는 세월 잡으려 하고 오는 세월 막으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잣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잡고 막은 세월의 시간을 요양원에서 보낸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냥 가는 세월 잡지 말고 오는 세월 막지 말자. 그냥저냥 나무가 나이테 먹듯이 자연스럽게 살다 보면……. 어쨌거나 우리는 떡국 나이도 먹고 미역국 나이도 먹으며 오늘도 살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