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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접근권 관련 국가배상 공개변론 진행 중인 대법원 대법정 전경. ⓒYTN 유투브 동영상 캡처
장애인의 권리를 당사국에서 제대로 지키는지를 심의하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2014년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첫 심의하고, 그해 10월 3일 최종견해를 내렸다. 이후 8년이 지난 2022년 8월 24, 25일 양일간 2·3차 대한민국 국가보고서 병합심의 후 9월 9일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최종견해를 내렸다.
8년이 지났는데도, 1차 최종견해를 지키지 않은 것들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2·3차 최종견해에서도 1차 때와 똑같은 내용의 권고들이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는 장애인의 시설 접근권 문제도 있었다. 2022년에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바닥면적 50㎡ 이상으로 강화됐지만, 여전히 바닥면적, 건축 시기, 수용 규모 등에 따른 사실상의 시설 접근권 제한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시설 접근권이 미보장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게 계속되니, 장애계에서는 대법원까지 가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따져보기로 한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에 시설 접근권 관련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이 오랫동안 미개정되어, 장애인 접근권이 침해되는 건 국가 책임인지에 대한 공론장이 대법원 대법정에서 있었다.
원고 측인 공익법단체이자 사단법인 두루의 이주언 변호사는 ‘장애인등편의법’이 입법 목적 미달성으로 접근권을 차단해, 모법의 위임범위를 일탈했다며, 늦어도 3년 안에 개정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애계 요구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에도, 2022년 관련 소송에서 시행령 무효란 판결이 내려진 이후에야 바닥면적 관련한 ‘장애인등편의법’ 조항이 개정되었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아울러 피고측이 주장하는 시설주와 소상공인의 부담과 관련한 객관적 실태·인식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음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역시 소상공인과 시설주의 부담을 들먹거리며, 소매점 접근권 권리와 관련해선 활동보조서비스와 온라인 마트 이용 등 대체 수단이 많고, 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는 권고일 뿐만 아니라 공공시설과 작업장 접근성 강화 내용이라며 반박했다. 여기에 더해 공공시설부터 단계적으로 개선해 편의시설 설치율이 89.2%까지 상승했다는 식으로 정부는 시설과 건물 접근성을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를 들은 오경미 대법관은 장애인 접근권이 온라인 주문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건 장애인은 집에만 있으란 말이냐며, 이 접근권이 활동지원으로 쉽게 치환되는 권리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피고 주장에 일침을 놓았다. 이외에도 교통약자 이동권 90% 이상 보장이지만, 시설 접근권 5% 미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장애인 접근권 관련 국가배상 공개변론에 앞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 법조계, 시민사회단체 등이 연대해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법무법인 미션의 정다혜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장추련 Youtube 동영상 캡처
피고 측에서 시설주와 소상공인 부담을 주장하는데 과연 그럴까?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제2호에선 ‘접근성’과 ‘합리적 변경’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한다. 먼저 접근성 의무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건데, 다시 말하면 집단에 대한 권리이자, 사전적 권리이다. 특정 장애인의 요구 전, 사전적으로 시설과 서비스에 갖추어야 하는 권리며, 표준화가 가능하다.
이 접근성 의무는 사전에 국가가 최소한의 기준을 정해놓고 하는 거라, 지키지 않으면 ‘차별’이요, 과도한 부담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접근성을 거부할 수 없다. 최소한의 기준이 정해지기 전의 시설과 서비스는 기준 마련 뒤엔 마련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준 마련 뒤의 시설과 서비스는 이 기준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두 경우 다 ‘과도한 부담’이란 말을 해선 안 된다,
‘합리적 변경(Reasonable Accommodation)’이라 함은 접근성이 다 갖추어져도, `장애 상태 등에 따라 접근성만으로 권리를 누리기 어려운 경우가 어떤 사람에게 생길 수 있다. 이때 그 사람은 권리를 누리기 위해 맞춤형으로 뭔가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게 사람의 장애 상태와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기에 ‘합리적 변경’은 개별적 권리요, 표준화될 수 없는 내용의 권리인 것이다.
쉬운 예로, 모두의 접근을 위해 건물에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턱을 없애는 게 접근성의 의무라면, 어떤 개인에겐 접근성이 갖추어진 건물에서 일해도 장애 상태 등에 따라 A라는 사람은 공기청정기, B라는 사람에겐 특수 책상이 필요할 수 있는데 그게 A와 B에겐 ‘합리적 변경’인 거다, 이 ‘합리적 변경’의 경우엔 ‘과도한 부담’이란 말이 들어갈 수 있지만, 당사자와의 논의 속에 조정해 즉각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의무이며, 단계적 적용이란 말이 나올 수 없다.
Reasonable Accommodations(합리적 조정/변경)에 대한 예를 나타낸 그림.. ⓒ미국 상무부(U.S Department of Commerce)
그러면 이제 50㎡ 이하의 소매점이나 편의점, 식당 등과 관련해 얘기해보자. 그곳에 턱이 있어,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 이용인들이 그곳에 접근할 권리가 미보장된다면, 장애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접근하도록 턱을 제거하고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 턱 제거, 경사로 설치와 관련해 ‘장애인등편의법’에 최소 기준이 마련돼 있고, 그렇다면 턱과 경사로 등은 접근성 의무와 연관된다.
그런데 턱을 제거하고,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의 접근성 의무가 과도한 부담이다? 바로 전에 과도한 부담이라는 걸 핑계로 접근성 거부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턱을 제거하고 경사로를 설치해 장애인이 소매점, 편의점, 식당 등에 접근하는 거와 관련해 소상공인이나 시설주의 과도한 부담을 이유로 경사로 등의 편의시설 설치를 거부하거나 설치의무를 면제해선 안 된다는 거다. 그러면 소상공인의 과도한 부담이라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럼에도 소규모시설의 경사로 설치, 턱 제거 등과 관련해 과도한 부담 이야기를 하는 건 협약에서 말하는 접근성에 대한 국가의 이해가 부족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장차법 등에 합리적 변경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 이게 실은 접근성과 합리적 변경이 혼재되어 정의되었기에, 접근성도 과도한 부담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게 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까 소매점 접근권과 관련해선 온라인, 활동보조 서비스 등의 대체 수단이 많다고 정부 측이 주장했다. 그러나, 활동보조 서비스의 경우 예산으로 제한하는 것은 물론, 서비스 종합지원 조사표가 장애인의 욕구, 선호, 의지를 반영하는 게 아니기에, 활동보조 시간이 부족한 장애인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정부에선 활동보조인이 소매점에 가서 휠체어 이용인이 필요한 물품을 사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런데 가득히나 활동보조 시간 부족한데,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난 이후에 휠체어 이용인이 뭔가 사고 싶은 게 있어 소매점에 들렀다고 치자. 활동보조인 없고, 여전히 턱이 있는 50㎡ 이하의 소매점이 많은 게 현실인 이 시점이라면 휠체어 이용인들은 그냥 집에 있던지, 소매점에서 아무 것도 사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수없이 맞이하게 되는 거다.
턱을 제거하고, 경사로 등을 설치하면 휠체어 이용인들이 이를 통해 스스로 소매점 안까지 들어가서 시설에 접근하고 그 안을 이동하도록 하는 게 이들에겐 진정한 접근권의 보장인 것이다.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이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이들에겐 접근권 보장의 일환이라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이런 발상도 결국은 협약 이해 부족에서 생기는 것일 테니 말이다.
‘2023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현황조사’에서 나온 연도별 대상시설의 설치율 및 적정설치율. ©보건복지부
정부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 89.2%까지 상승시키는 등 장애인의 접근성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 이는 대한민국 전체건물 약 7백 만여 개가 아닌 약 2~3%의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에만 조사했기에, 전수조사라 할 수 없고 차별을 용인하는 조사에 불과한 건 변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소규모 편의점이나 식당 등의 턱 때문에 휠체어 이용인 등의 장애인들은 스스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고 싶은 물건 사거나, 먹고픈 음식 먹는 것 등을 사실상 차단당하는 상황인 것 또한 수십 년째 여전하다. 이런 현실인데,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 정부의 주장을 생각하면 거의 궤변 수준에 가깝다고 본다. 접근성 보장 안 되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있으니 군소리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정부가 그렇게 말하진 않지만, 그런 느낌이 정부 말의 뉘앙스에서 느껴진다.
이외에도 서경원 대법관은 소송의 파급효과도 문제라며, 지체장애인 21만 명에게 100만 원씩 배상한다면 총 2100억 원에 필적한다는 국가 측 염려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금액이 얼마나 필요한지 염두에 둔 게 있느냐고 원고 측에 물었다. 배상이 이뤄져야 하는 건 당연한 건데, 국가가 염려한다? 이걸 생각해보면 애초에 시설과 서비스를 유니버설하게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설치했다면 국가 측에서 염려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만큼 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 시 차별로 인해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양산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법의 전문 용어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이번 공개변론을 통해 느끼게 되는 건 장애인 접근권 미보장은 국가에 장애인권리협약의 개념 이해와 협약 훈련은 물론 협약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차별을 용인하는 실태조사를 함은 물론, 시설과 서비스를 유니버설하게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설치하는 게 애당초 어려울 수밖에.
그래서 ▲국가는 장애인권리협약의 개념 이해부터 시작, 협약을 훈련하고, ▲장차법에 접근성과 합리적 변경에 대한 개념을 분리해 따로 명시하고, ▲모든 건물에 대해 장애인 편의시설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시설과 서비스를 유니버설하게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설치하기 위해 고민하는 건 물론 ▲편의시설에 대한 독립적 모니터링을 지속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접근권과 이동권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하나의 과정인 만큼 ‘장애인등편의법’과 ‘교통약자법’을 통합하는 게 필요하고, 통합법의 담당 주체는 국토교통부가 나섰으면 한다. 실질적인 접근권과 이동권의 보장은 물론 장애 주류화를 위해서 말이다. 아직은 국토교통부가 장애 인식이 별로 높지 않은 등의 관계로 ‘장애인등편의법’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고, 통합법 추진은 아직 이뤄지지는 않고 있지만 말이다,
대법원에선 이번 공개변론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대법관들끼리 토론을 거쳐 2~4개월 내에 선고할 것이라 한다. 그래서 2~4개월 후의 선고에 귀추가 주목된다. 부디 이번 공개변론을 계기로 인권적 관점의 선고가 나와 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을 시혜와 동정이 아닌 말 그대로 권리인 그런 세상이 하루속히 오길 바란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