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한옥 시인의 시집, 『사랑이 깊어 내가 아프다』, 문학과사람, 2024년 7월 30일 간행.
■ 손한옥 시인의 사랑은 시 세계를 이루는 토대이자 시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다. 가족을 비롯해 인연들을 품는 시인의 사랑은 쓸쓸히 비를 맞고 있는 그림자에 우산을 씌어줄 정도로 자애롭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 오백 년 보고 또 보고 싶어 할 만큼 지순하다. 시마(詩魔)에 씌어 무당이 작두를 타듯이 백 편의 사랑 시를 짓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사랑한다」) 암송하고, “하늘의 별도 달도 서너 말씩 따가지고”(「구름의 방향」) 오려고 온몸을 헌신한다. 그 지심(至心)으로 몸이 아프기도 한 시인은 사랑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자고 한발 물러서지만, 사랑은 초봄의 뜰 안에 심은 청갓처럼 푸릇푸릇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에서 한 치 앞을 잊고 살아가도록 이끄는 동반자가 된다. 연두색 봄비를 맞으며 움튼 사랑이 어느덧 유록(柳綠)을 지나 시집 곳곳을 초록으로 채웠다. “사랑하는 누구라도 곁에 서면 좋”(「삼복에 겨울 코트」)다고 인연들을 감싸 안는 시인의 사랑은 지상에서 가장 선하면서도 아름답다. 시인과의 동행에서 맨 끝까지 이탈하지 않을 사랑이여, 영원한 도반이여.
― 맹문재(시인 · 안양대 교수)
■ 시집 속으로
사랑이 깊어 내가 아프다
손한옥
눌러진 울음 사이에 걸린
이별의 아픔을 견디는 방법
말 같지 않은 말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말로 위무하던 시간
자꾸 깜빡이는 눈으로 번쩍이는 레일만 바라본다
연착 없는 열차 당도하고 충혈된 눈동자
창문이 두꺼워 다행이다
코비드로 가린 마스크가 다행이다
11호 차 D 6번
역류하는 눈물
홀연히 돌아가는 사랑이여
별나라 엄마와 아버지와 오빠를 재생하던 기억들
이제 나는 다시 어둠의 바탕에 불을 지펴
홀로 일어서야 하는 날들
가락국 김해와 안양 땅의 멀고 먼 여백
한결로 내 무게를 떠받치고 운행하는
이탈할 수 없는 혈의 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