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산맥 정상에 서다
케네스 강/글무늬문학사랑회
록키 산맥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서쪽지역을 남북으로 뻗으며 장엄하게 솟아 그 위용을 뽐내는 산맥이다. 캐나다의 서부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뉴멕시코 주까지 실로 4,800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있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콜로라도 주의 엘버트 (Mt. Elbert) 산으로 그 높이는 해발 4400 미터에 달한다. 거의 백두산과 한라산을 더한 높이이다.
미국 유학시절 나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광활한 북미대륙을 여기저기
많이 여행하였는데, 그 당시 콜로라도 주의 수도 덴버 (Denver) 를 지나면서 때가 되면 다시 이곳을 찾아 록키산맥 중턱 우거진 숲 속에 드넓게 자리잡은 미국 공군사관학교 (U.S. Air Force Academy) 와 록키산맥의 최고봉인 엘버트 산을 꼭 한번 와보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리고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재작년 6월 초 마침내 그 기회가 찾아 왔다. 콜로라도 주의 6월은 초여름 햇살이 따갑지만 매우 상쾌한 계절이다. 로스앤질리스를 떠난 유나이티드(United) 항공 국내선 여객기가 콜로라도 스프링스 (Colorado Springs) 라는 아름다운 도시의 국내선 공항에 사뿐히 내려 앉는다. 미국인 친구 뚱보 Matthew 가 나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인구 40만이 넘지 않는 아름답고 인정 넘치는 도시이며 콜로라도 주에서는 덴버 다음으로 두 번째 큰 도시이다. 이 도시 자체의 고도가 해발 2천 미터 정도이니 실제 산 높이가 해발 4천 미터라 해도 우리가 올라야 하는 돌출 높이는 2천 미터라고 보면 된다.
먼저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명물인 공군사관학교를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미국의 다른 사관학교, 즉 West Point 육군사관학교와 Annapolis 해군사관학교 등은 17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공군사관학교는 육군에서 독립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70년이 되지 않았다 한다.
참고로 West Point 육사는 1802년에, 그리고 Annapolis 해사는 1845년에
각각 설립되어 그 동안 걸출한 미국의 지도자들을 수없이 배출하였다고 하니 유구한 역사를 잘랑할 만도 하다.
조식 후 우리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가지를 벗어나 차로 약 1시간 정도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록키산맥 중턱을 왼쪽으로 끼고 달려 마침내 아름다운 공군사관학교 정문초소에 도착했다. 거기서 방문목적과 신분증을 확인하고 또 10분 이상을 차로 달려야만이 마침내 사관학교 방문자 센터 (Visitors Centre) 가 나타난다. 차로 달리는 내내 월남전과 한국전 등에서 위용을 떨쳤던 B-29 폭격기, B-52 폭격기, F-51 무스탕 전투기들이 띄엄띄엄 전시되어 있다.
이토록 광활한 캠퍼스에 6월초는 졸업시즌이라 서 그런지
기숙사에 잔류하는 생도들만이 삼삼오오 대열을 지어 절도 있게 걸을 뿐 대부분 사관생도들은 휴가 중이었고, 졸업식에 미국 대통령이 방문할 계획이어서, 내일부터는 사전예약 되지 않은 모든 방문객들은 출입이 통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찾아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튼 공군사관학교 방문기는 다음 기회가 있을 때 써 보기로 한다.
그 다음날 아침 호텔 밖으로 나오니 장엄한 산봉우리가 저만치 하얀 눈을 이고 6월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버티고 있다. 아 저 산을 올라야 되는구나. 우리는 두꺼운 겨울점퍼와 운동화 모자 장갑을 준비하고 궤도열차가 출발하는 스테이션까지 가서, 세계 각처에서 온 등산객들과 함께 기다리니 드디어 곧 궤도열차가 도착하였다.
궤도열차는 느린 속도로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창문을 통해 양 옆으로 기암절벽들과 곧게 자란 미루나무 소나무 전나무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멀리 호수도 보인다. 환상적이다. 붉은색 사암괴석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북미 최고봉을 오르고 있다.
마침내 궤도열차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해발 4000 미터, 나머지 400 미터는 우리 힘으로 올라가야 한다. 높이 400 미터이지만 완만한 산길로는 1 킬로가 넘는 거리 이다. 고교시절 기하학 시간에 피타고라스 삼각비를 공부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초여름인데도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튼 죽을 힘을 다해 산을 오른다. 마침내 록키산맥 정상이다. 사철 눈이 녹지 않는 이곳 정상에서 아름다운 콜로라도를 감상할 시간은 얼마 없이 곧 떠나는 궤도열차를 타야만 한다.
내려 갈 때는 걷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영하 25도…산 정상이 그렇게 추울 줄은 몰랐다. 아…마침내 록키산맥 정상에 올라와 두 팔을 펴고 심호흡을 하며 사방을 내려다 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뜨거운 감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