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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를 찾아서1 -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성모님을 따르는 ‘피부의 수도자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가 교구내 각 수도회의 영성 향기를 찾아가는 기획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아직도 많은 교구민들이 교구에 어떤 수도회가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수도자들이 어떤 기도를 하고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수도회 카리스마를 찾아가는 이번 여정에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 26).
그 어머니의 아들들이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에 살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지부장 김광수 신부)가 한국(수원교구)에 진출한 것은 1996년. 어느덧 식구가 한국사제 3명, 필리핀 사제 1명, 부제품 예정자 1명, 유기 서원자 4명, 수련자 1명의 대식구로 불었다.
그런데 이 남자 수도회…. 좀 생뚱맞다. 화장품을 판다. 구멍가게 수준이 아니다. 기미 주름을 없애고 피부 노화를 방지한다는 노아젠 아이오일, 기초 화장을 위한 클렌징 밀크, 여성용 스킨, 로션, 영양크림, 아토피 피부 질환 아동을 위한 산성비누…. 화장품 종류만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이 수도회는 직접 기업을 설립하고 공장과 연구소를 운영한다. 일반 기업과 교류협력 계약을 체결하고, 돈도 주고 받는다. ‘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한 수도자들이 도대체 이래도 되는 거야?’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 내막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전.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에서는 한센병(나병)을 비롯한 각종 피부병이 창궐해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았다. 특히 가난한 한센병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이탈리아의 ‘루이지 마리아 몬티’(Luigi Maria Monti, 1825~1900)는 피부과 의사와 간호사 등 동료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이러한 사랑 실천은 수도회 설립의 필요성으로 이어졌고, 결국 1857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님을 어머니이며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가 설립된다. 이후 직접 피부 전문 병원을 설립하고 피부병 관련 신약을 개발하는 등 지난 150여 년간 피부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탈리아인들이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수도자들을 ‘피부의 수도자들’(Frati della pelle)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이후 아름다운 신앙 삶과 봉헌생활의 모범으로 2003년 11월 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다.
이처럼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의 첫 출발은 피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고통 받던 가난한 이들에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유럽 대륙에서 점차 한센병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 게다가 많은 가난한 이들이 의료 보장 제도를 통해 이제는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가 아니라도 적절한 피부과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는 사도직을 일부 전환, 피부 관련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을 빈민구제 등 복지활동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무료 종합병원 운영, 제3세계 빈민지원, 청소년, 장애인 복지시설 운영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에서도 화장품 판매 수익금이 전액, 청소년 및 장애인 교육을 위해 사용된다.
이탈리아 본원의 경우, 로마에서 제일 유명한 피부 전문 종합병원을 가지고 있는 등 탄탄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제 막 싹을 틔우는 단계. 한국 지부는 우선 창설자(몬티)의 정신에 따라 병자들의 치유와 고아 그리고 버림받고 소외된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회헌 1-3). 무엇보다도 ‘마리아의 아들’임을 잊지 않는다. 회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항상 함께 하신 성모님의 모범에 따라 사도직을 전개, 인류 구원 사명에 참여한다(회헌 109). 하지만 일과 기도의 중심은, 성모가 그러했듯이 언제나 그리스도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언제나 “예”로 응답하신 성모님의 모범을 수도생활의 지표로 삼고 있으며, 언제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수도자적 봉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회헌 6 참조).
사도직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우선 창립의 뿌리이기도 한 의료 분야를 빼놓을 수 없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소속 성직자 및 수사들은 의사, 약사, 간호사, 특수 분야 전문가, 원목 수사신부들로 구성되어 환자들과 함께 그들의 봉헌된 삶을 살아간다.
둘째는 교육 분야. 전문적으로 양성된 교육자 수사들이 초등학생에서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인성교육과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 종합교육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셋째는 사회복지 분야다. 한국지부에선 이미 ‘바다의 별’이라는 정신지체 장애인 생활시설 및 직업 재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수도회 부설로 몬띠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2년 전 로마에 갔다가 우연히 70세의 한 의사 수사님을 만났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한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성직자로 사제 직무에 매달리면 의료 봉사라는 소명에 소홀할 것 같아 평생 동안 평수사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느덧 나이 70이 됐지만 앞으로도 제가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이웃 나라 알바니아에 의대를 세우고,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무료 의료를 확대하고 싶습니다. 이 일은 제가 해야 할 일이면서 동시에 우리 수도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카리스마를 찾아서 2 -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사랑’에 일생을 걸다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Oblates of Mary Immaculate O.M.I, 창립 1816년).
생소하게 들린다. 전임 교구장 김남수 주교의 요청에 의해 교구에 진출한지 벌써 18년이나 지났지만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이름 9자를 알고 있는 신자가 많지 않다.
70여 개국에 진출해 선교활동
하지만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수도회라고 해서, 외국교회에서도 그런 것은 아니다.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가 진출한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에스키모인들이 사는 북극에서 호주 토착민, 파라과이 원주민들에 이르기까지 70여 개국. 회원 수만 4500여 명이다. 오블라띠의 영성을 따르는 신심 단체도 전 세계적으로 30여 개에 이른다.
그 선교 수도회가 교구청 지척인 이목동에 위치해 있다. 교구에서 걸어서 가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 거주하며 사목하는 사제는 이탈리아, 스리랑카, 인도, 한국 등 6명. 이들은 오늘도 오블라띠회의 영성을 위해 기도하고 일한다.
그 카리스마를 요약하라면 ‘선교 수도회’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봉사, 영혼의 구원을 위해 온전히 헌신한다”는 것이다. 복음선포가 존재의 이유인 셈이다.
그 도구는 ‘사랑, 사랑, 사랑’이다. 이는 창설자인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 성인(1782~1861, 프랑스)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성인은 선종 당시 “여러분 가운데에서 사랑, 사랑, 사랑을 잘 실천하고 밖으로는 영혼의 구원에 힘 쓰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성인은 더 나아가 이런 말도 남겼다. “주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따라서 복음화의 도구가 사랑이라면 그 대상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성인은 수도회 첫 번째 목적을 농촌 지역 등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음 전파와 평신도 양성을 위한 본당 영적 피정 지도 등으로 삼았으며 신학교 운영과 청소년 사목 등 다양한 사도직 분야로 확대해 갔다.
수도회 회원들이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기 위해 일생을 걸고 기도하고 실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한국의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회원들을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에 가야 한다. 지난 20년 가까운 시일동안 회원들은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작업을 벌여, 현재 노숙자 무료급식소와 외국인 노동자 사목, 소외 계층 청소년 사목, 병원사목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출 청소년 결손가정 아동, 가정 폭력 피해 청소년 등이 언제든지 찾아와 쉴 수 있는 청소년 쉼터 및 아동 그룹 홈(안나의 집), 청소년 자립관(에우제니오의 집)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식사 한 끼 편하게 할 수 없는 노숙자와 홀몸 노인 등을 위해 일일 평균 500여 명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IMF 당시 모두들 노숙자와 실업자 문제에 대해 골몰하고 있을 때, 청소년 노숙자 문제를 이 사회에 처음으로 제기한 것도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회원들이다. 이밖에 오블라띠회는 이를 통해 남한은 물론 북한과 중국 선교 방안도 함께 모색하고 있다.
또한 평신도 영성지도, 젊은이 사목 강화 구상과 함께 끊임없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사랑으로 오블라띠회의 카리스마를 한국 교회에서 펼친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성직자와 수도자를 위한 피정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증거
수도자들이 주로 ‘현장’에 있다고 해서, 기도까지 소홀할 순 없다.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라는 명칭 자체가 ‘원죄 없으신 마리아 봉헌 선교 수도회’라는 뜻이다. 그래서 회원들은 늘 마리아를 항상 어머니로 여기고 살아가며, 마리아의 삶을 따르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다.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를 설립한 에우제니오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오블라띠인의 삶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다. 재산, 가정, 현세에서 안주할 수 있는 모든 부귀 영화를 버리고 선교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예수님을 따르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생활 안에서 증거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한다. 오블라띠인의 삶은 인간 공동체를 위한 삶이다.”
5월 26일 경기도 한 도시에 위치한 청소년 그룹홈을 찾았다. 복지시설이라면 있어야할 간판도, 안내 표지판도 없다. 각기 사연을 안고 이곳으로 흘러 들어오는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나 직장에 나간 시간.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의 한국인 신부가 반갑게 맞는다. 로만칼라 하지 않은, 편안한 티셔츠 차림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맘씨 좋은 이웃 청년의 모습이다. “우리는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할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수도회 회원들의 헌신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희생의 길을 따라 걷겠다며 지난 3월 1일 2명의 청년이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에 입회했다.
카리스마를 찾아서 3 - 천주교 사도회(팔로티회)
부름받은 그대여 사도직에 눈떠라
1835년 1월 9일, 성 빈센트 팔로티(1963년 시성)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세례받은 모든 이를 나의 사도로 만들어라.”
170여 년 전, 당시로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다. 평신도도 사도가 될 수 있다니…. 12사도의 뒤를 잇는 것은 교황과 주교, 그리고 그로부터 위임받은 성직자들이 아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열리지 않았던 시대에 세례받은 모든 이, 즉 평신도까지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앞서가는 인식이었다.
하지만 계시로 내려온 말씀을 거스를 순 없다. 성인은 계시 3개월 후 바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동등한 입장에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사도직을 실천하는 ‘천주교 사도회’(Society of Catholic Apostolate, 이하 팔로티회)을 조직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보다 130여 년 앞서 ‘평신도 사도직’의 영성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삶의 자리에서 사도로 살아야 한다
팔로티회를 만든 성인은 이렇게 말한다.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불림을 받았기에 각자 삶의 자리에서 사도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여 하느님 나라를 확장해야 하는 선교 사명이 있고, 이미 신자가 된 이들의 신앙을 쇄신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불을 되살려 그리스도와 일치하게끔 이끌고 친교로서의 교회를 살아가도록 일깨워야 한다.”
시대를 예견한 그리스도의 계시,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팔로티 성인의 인식은 정확했다. 130년 후, 교황 요한 23세는 팔로티 성인을 두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나아가야할 평신도 사도직 영성을 한 세기나 앞서 실천한, 진정으로 이 시대에 필요한 성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인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했다. 이후 바오로 6세 교황도 “빈센트 팔로티 성인이 교회로 하여금 평신도의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하고 준비하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빈센트 팔로티를 따르는 회원들의 활동을 두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한 평신도에 관한 문헌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평신도 사도직’ 외길을 달려온 ‘천주교 사도회’(이하 팔로티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90년. 전 수원교구장 고 김남수 주교의 요청으로 수원교구에 가장 먼저 발을 들였다. 어려움이 많았다. 지난 8년간 10번이나 셋방살이를 전전해야 했고, 현재 자리를 잡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수도원 건물도 연립 주택이다. 미사도 지하실에서 봉헌한다. 1994년 착공한 ‘하느님 자비심의 피정의 집’(강원도 홍천군 남면)은 아직까지 ‘공사 중’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미약하지만, 보편 교회 안에선 팔로티회가 갖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다. 현재 41개 국에서 2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폴란드 교회에선 3대 수도회 중 하나에 들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자랑한다. 폴란드 회원만 700여 명에 이른다. 세례받은 모든 이들이 각자의 삶의 위치에서 달란트를 맘껏 발휘하다 보니 활동 영역도 피정센터, 청년 신앙생활 활성화, 자원봉사 교육, 약물 중독 치유 프로그램, 출판사 및 방송국, 사회복지 병원, 시설 등 모든 영역을 망라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선종을 앞둔 이들이 하느님 자비심에 의탁하도록 돕는 등 ‘하느님 자비심 신심 전파’에 열심이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기도’ 등 관련 기도문을 무료로 배부하고 있으며, 자비의 하느님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전한 마리아 파우스티나 성녀 일기 책자를 무료로 보급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매주 금요일 ‘하느님 자비심의 신심미사’를 봉헌하고, 매월 첫 목요일 밤 10시부터는 ‘자비로우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다락방 모임’도 갖는다. 또 매일 오후 3시에 수도회에서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함께하는 성시간’과 성체강복를 갖고 있다. 분당 수도원 입구에는 아예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오아시스’라고 써 놓았다. 강원도 홍천의 ‘하느님 자비심의 피정의 집’에선 매월 첫 토요일에 성모신심미사 및 하느님 자비심과 관련한 밤샘 성체조배를 실시한다.
‘하느님 자비’에 의탁하는 카리스마
팔로티회 안동억(프란치스코) 신부는 “목마른 이들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수도원 입구에 예수님의 오아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며 “하느님 자비에 의탁하는 많은 평신도들이 스스로의 사도직에 눈을 떠 삶의 자리에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카리스마가 ‘평신도 사도직’인 팔로티회에서 왜 유독 ‘하느님의 자비’에 몰두하는 것일까. 매일 오후 3시 분당 연립주택 수도원 지하실에서 열리는 ‘성시간’에 참여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카리스마를 찾아서 4 - 한국외방선교회
필요로 하는 어느 곳이든 가겠습니다
일요일 오후 5시30분. 다른 사람들은 바다와 강, 산으로 떠났는데 여기 이 청년들은 모여 기도를 한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어느새 차분히 가라 앉았다. 선선한 기운이 기도방 안으로 휘어돈다. 세상이 적막에 잠긴 듯 조용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세상을 향해 시원히 가슴 열어젖힌 청년들이 젊음과 패기, 열정, 의지를 모두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한다. 세속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청년들 얼굴 하나하나에서 행복이 엿보인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 167 한국외방선교회(총장 김명동 신부) 신학원. 외방선교를 꿈꾸는 30여 명의 신학생들이 해외선교사의 꿈을 키우며 살아간다. 한국외방선교회 사제가 되려면 일반 교구 사제의 그 기간보다 2년이 더 소요된다. 신학교 2학년 수료한 뒤 군복무를 바치면, 교구 신학생과 달리 별도의 수련 1년 기간(영성의 해)을 거쳐야 한다. 3개월간 해외 선교현장에 나가 직접 선교 체험하는 것도 이 시기다. 수련기간 후 신학교 생활을 계속한 신학생들은 대학원 2년 마치고 또 해외선교실습(OTP) 1년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현재는 캄보디아와 중국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총 7명이 선교 실습과정을 거치고 있다. 해외선교를 해야 하는 만큼 영어는 기본이다. 그래서 신학원에는 영어 강사가 상주하고 있다. 하지만 영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선교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려면 중국어, 캄보디아어 등 현지어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사제가 되면, 이제 본격적인 선교사의 삶이 시작된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사제가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야 한다. 현재 한국외방선교회는 대만,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6개국에 50여 명의 사제들을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철저히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사목하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현지인들의 삶에 동화되지 않으면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선교사 없이 신앙을 받아들인, 하느님 사랑 듬뿍받은 아시아 맏이 교회가 이제는 이렇게 그 자녀들을 아시아 및 세계 곳곳에 파견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외방선교의 결실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6월 3일 선종한 고 최기선 주교가 첫 씨앗 뿌렸고, 전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와 현 정진석 추기경의 노력으로 한국외방선교회가 해외선교 전문 단체로 주교회의의 공식 인준을 받았다.
선교회 영성(카리스마)은 파견된 예수 그리스도 영성과 바오로 사도의 선교 영성, 순교자 영성 등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여기에 한국외방선교회의 ‘플러스’ 고유 영성은 ‘감사’와 ‘보은’이다. 창설자 최재선 주교는 생존 당시 신학교 신입생들을 위한 격려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세계 복음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고, 가톨릭교회 보편성의 근본이고 특히 오늘날의 시대가 뒷받침하고 세계교회가 절실히 희망하는 바이다. 한국교회가 과거 약 200년 동안 수없이 받은 은혜에 답례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다”(1989년 3월).
최주교는 또 “다른 국가에서 사제가 부족하든 말든, 그들의 양성비야 있든 없든,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는 과거에 받은 무수한 은혜를 너무도 모르는 배신행위”(최재선 주교 회고록 27쪽)라고 까지 말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외방선교회 신학생들과 사제들은 늘 ‘감사’의 삶을 살아간다. 하느님께 감사하고, 한국교회에 도움 준 다른 많은 교회들에게 감사하고, 외방선교 발전을 위해 함께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감사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 캄보디아 오지에서,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서 그들은 그렇게 은혜 갚기에 나서고 있다.
“말과 언어 풍습이 생소한 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선교사들이 ‘어려움이 곧 은총’임을 체험합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지내고 나면 선교사는 한층 영적으로 성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련장 양금주 신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와 풍습이 다른 곳에서 하느님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며 기도를 부탁했다.
벌써 창립 33년이다. 조금은 지치고, 힘들 법도 하지만 한국외방선교회의 열정은 아직도 초창기 그대로의 모습이다. 6월 8일 파리 노틀담 대성당에서 열린 파리외방전교회 350주년 미사에 참석한 양금주 수련장 신부는 아시아 각국 성직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혹시 성직자가 필요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신학원을 나와 세상으로 향했다. 산속 맑은 공기에 행복해 했던 몸이 이내 탁한 공기로 불편해 한다. 마음도 함께 답답해진다. 도로는 서해안으로 나들이 다녀오는 차들로 가득했다. 평소면 10분 거리인 수원역까지 1시간 넘게 걸렸다. 집으로 오는 내내 청년들의 기도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