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7-14
보여주기 위해 / 김철한 목사
사람을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보다 더 큰 사람을 키우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다. 사람을 훈련하여 키워내려면 보여주기가 제일 중요한 원리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이론이 그럴 듯 해도 보여주기만큼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 예수님이 사람을 키우는 원리도 보여주기에 있고 바울도 디모데에게 보여주기를 강조하고 있다. 딤전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하였다. 믿는 자에게 본이 된다는 것은 영어로 Example, 따라하는 모범이 되라는 것이다. 즉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의 알파벳을 배울 때 펜멘십 노트를 놓고 따라 그려가므로 글씨를 배우는 모범 예가 되라는 것이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선지자가 되었다. 밭에서 소를 몰다가 부름 받은 엘리사가 엘리야 보다 더 큰 능력의 선지자가 되었다. 그 비결 역시 선생님의 삶을 잘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가르침을 따라 선생님의 보여주는 삶을 눈여겨 보았기 때문에 갑절의 능력을 행하는 선지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엘리야의 직임이 제자 엘리사에게로 이어진 것은 철저히 보여주기 학습의 원리 때문이었다.
1. 갑절의 영감을 받은 것은 바라봄으로 되어졌다. (왕하2:10)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쫓았다. 길갈에서 베델로, 베델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요단을 건너가기까지 쫓아갔다. 선생님의 영감을 구하기 위해 선생님의 뒤를 따르던 제자에게 선지자 엘리야가 물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본다’는 말이다. 네가 보면 일이 이루어진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엘리사는 보는 것을 중요시하고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왕하2: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사는 스승의 승천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회오리 바람으로 승천하는 스승의 모습을 계속 본 것이다.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보일 때까지 계속 본 것이다. 보면 이루어진다는 약속을 신뢰하고 보기 위해 눈을 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보았기 때문에 영감을 갑절로 얻었다.
2. 선지자직을 계승할 것을 바라봄으로 되어졌다. (왕하2:13)
하늘을 바라보는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보았다. 그것을 주워가지고 돌아온 엘리사는 요단 언덕에 섰다. 엘리사는 선생님의 옷을 줍게 되었을 때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었다. 이젠 스승의 옷을 물려받았기에 제자의 옷은 필요 없게 되었다.
옷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사람의 신분이다. 선생님의 옷을 집어들게 된 것은 이제 엘리사가 선지자로 세워졌다는 의미다. 선생님의 선지자직이 엘리사에게로 계승되었다는 의미다. 옷에는 선생님의 눈물과 땀이 담겼다. 선생님의 기름부으심이 있는 옷이다. 우리는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만져도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은 알고 있다. 이는 기름부음의 손수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스승의 기름부으심이 있는 옷이 이젠 엘리사에게 주어졌다. 엘리야의 능력이 엘리사에게로 양도되었다는 뜻이다. 선생님을 오직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승천할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름부음이 있는 옷을 주울 수 있게 한 것이다.
제자는 바라보아야 한다. 회오리 바람도 바라보고 승천하는 스승도 바라보고 스승의 옷자락 떨어지는 자리까지도 바라보아야 한다. 직위와 신분의 계승은 보여주기와 바라보기로 되어진다. 모든 것을 바라보므로 내 것이 되고 배우는 것이 된다. 엘리야의 기름부음이 엘리사에게로 전이된 것은 그의 묘실에 있는 엘리사의 뼈에도 남아 있었다. 왕하13:21을 보면 죽은 자를 엘리사의 묘에 던져 넣을 때 시체가 뼈에 닿아 회생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처럼 기름부어진 옷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낸 것은 바라봄으로 되어졌다.
3. 가로막힌 요단을 건너는 것도 바라봄으로 되어졌다. (왕하2:14)
왕하2:14을 보면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친다. 물을 칠 때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는 요단 강을 건넌다. 이와 같은 행동은 왕하2:8에 엘리야가 요단을 건널 때 행한 모습이다.
성경을 보라.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엘리사는 본대로 흉내냈다. 겉옷을 가지고 선생님이 보여준대로 했더니 강이 갈라졌다. 이렇게 보면 가르친다는 것은 보여주기다. 배운다는 것도 보이는 것을 바라보므로써 배운다. 믿음을 가르치고 헌신을 가르치고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하는 것은 훈계보다 보여주기다. 설교보다 보여주기다. 말 한 마디, 태도 한 가지, 사건을 대하는 자세 등 모두가 보여주기다.
어느 통계를 보면 중, 고등학생들의 담배 흡연자가 50%라고 발표되었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담배 안피우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빠가 안피우는데 우리가 왜 피워요?”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참으로 감사하였다. 보여주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교회 성도들이 CM에 모이지 않는 것을 두고 “왜 안보이세요?”라고 물어보면 CM 식구들은 “권사님, 집사님도 참석 안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참석 안하면 어때요?”라고 한다. 보여주지를 못했다는 얘기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로 돌아가서 성도들에게, 자녀들에게 보여주기를 통해 똑바른 신앙인을 키우자.
요새 책 한 권이 우편물로 왔다. 이채윤이 지은 「록펠러,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란 책이었다. 그 책을 보면 록펠러는 최고의 억만 장자로 현대의 빌 게이트 보다 더 큰 부자였다.
록펠러는 시카고대학 등 24개 종합 대학과 12개의 단과 대학을 지었고 4,928개의 교회를 지어서 드렸다. 그는 자서전에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비결을 말하는데, 세 가지의 유산 때문이라고 하였다.
①십일조 생활의 유산이고
②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 드리기의 유산이고
③교회의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유산이다.
이것은 모두 어머니가 가르쳐 준 것이고 어머니가 직접 보여준 것이었다. 가령 록펠러가 6세 때 어머니는 처음 20센트의 용돈을 주었다. 그러고는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고 2센트가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그것은 헌금 봉투에 담아 주었다. 어머니는 그것이 십일조라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물질이 생겨질 때마다 가장 먼저 십일조를 떼어야 함을 언급했다. 어머니는 그의 삶의 실천을 위해 돈 주머니 2개를 만들어주었다. 그때부터 록펠러는 언제나 십일조 주머니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십일조 원칙을 지켰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이후에도 어머니의 십일조를 위한 주머니 교육을 따라 기업 안에 별도의 십일조 전담 부서를 마련하고 40명의 직원을 두었다. 어머니가 교회를 가고 어머니가 예물을 구별하고 어머니가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어머니의 신앙 생활을 바라 본 그대로 록펠러는 배웠고 그대로 살아드려 훌륭한 억만 장자로, 크리스챤으로 쓰임받는 것이다. 록펠러 재단과 록펠러 의학 연구소는 전 세계에 기여하는 재단이 되었고 그가 세운 시카고대학은 설립 이래 100년 동안 52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람을 키우는 원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①사랑하라.
②공을 드려라.
③관심을 가져라.
④들어주라.
⑤필요를 채워주라.
⑥함께 놀아주라. 등등 다양한 가르침이 있다.
이 원리를 누가 아니라고 할까? 그러나 보여줄 수 없는 내 마음의 구조를 가지고 보여줄 수 없는 사랑과 경건, 능력을 가지고 보여주려 할 때 얼마나 힘이 들까? 경건이 없는데 경건하게 보여주려 할 때 종교적 정신과 영으로는 안된다. 내 안에 성령이 와야 한다. 내 안에 능력이 임하고 내 안에 사랑이 임하여 내부 기어 장치가 바뀌어야 한다. 그때 진정한 크리스챤의 삶을 보여주기가 된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자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보여주어야 한다. 고되고 힘든 날에도, 잘 되고 복이 넘치는 날에도 신앙을 물려주어야 할 자녀가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바라보는 그들을 위해 내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크리스챤이 되자. 내 안에 원망, 불평, 비난, 방종과 같은 혼돈의 영이 물러가고 감사와 찬양, 친절과 온유, 겸손과 정직과 같은 질서의 영이 넘치는 크리스챤이 되자.
우리 모두 은혜와 능력을 받아 참된 신앙을 보여주는 5월을 만들자. 교회는 세상을 향해 믿음을 보여주고 성도는 자녀들에게 믿음을 보여주고 목사는 회중들에게 믿음을 보여주고 임원들은 섬김을 보여주자. 새가족은 임원들이 섬기고 임원들은 목사님들이 섬기고 사랑을 보여주면 보여준대로 교회의 영성이 자리잡는다. 가정의 영성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다. 맑은 물 같은 신앙으로 흘러내려 교회의 맑음이 세상도 맑게 하는 샘의 근원이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