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22장에서부터 욥31장까지는 욥과 그의 친구들간의 세번째 변론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22장에는 엘리바스의 세번째 변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어조로 욥의 맹목적이고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에 대해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는 욥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말을 듣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1. 죄인으로 정죄함
1) 욥의 죄가 더없이 악함
엘리바스는 욥의 선행이나 지혜로운 것이 하나님께 대해서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욥이 극심한 고난 속에 있는 것은 분명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지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욥의 범죄가 다른 일반적인 죄보다도 극악한 것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당한 고난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서도 확신에 찬 어조로 욥을 비난한 것입니다.
a.죄 아래 있는 인간(롬3:10)
b.영향을 받지 않으심(욥35:6)
2) 까닭 없는 범죄
욥을 죄인으로 몰아세웠던 엘리바스는 이제 가상적인 욥의 범죄 행위를 나열합니다. 그는 욥이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지 아니했다고 하였습니다. 엘리바스가 나열한 이러한 종류의 악은 매우 사악한 행위에 해당됩니다(참조, 레6:2). 앞서 언급한 이러딴 악한 행위는 욥이 실제로 저지른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엘리바스의 가상적인 욥의 범죄 행위의 나열이기 때문에 무고에 해당합니다.
a.과부의 소를 볼모 잡음(욥24:3)
b.원수가 주릴 때 먹여야 함(롬12:20)
3) 사실이 아닌 정죄
엘리바스는 욥이 자기의 권세로 가난한 자의 재산을 빼앗으며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였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이러한 비난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의롭고 순전한 삶을 살았습니다(참조, 요11:8). 엘리바스의 욥에 대한 판단은 그가 자업자득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나온 것입니다. 즉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지고 자신이 숨긴 그물에 그의 발이 걸렸다는 식의 논리입니다. 욥에게 임한 고난은 죄악에서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a.과부를 압제하는 자의 심판(말3:5)
b.악인의 팔은 부러짐(시37:17)
2. 의인과 악인
1) 욥의 말을 과장하는 엘리바스
엘리바스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심을 언급한 후 욥의 말을 비난하였습니다. 즉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며 빽빽한 구름이 하나님을 가렸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지 못하시고 하늘을 걸어다니실 뿐이라고 했습니다. 욥이 이런 말을 했다는 엘리바스의 주장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자기의 논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을 과장하는 것 또한 악인의 술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a.장막 안의 빛이 어두워짐(욥18:6)
b.하나님이 듣지 못하신다 함(시59:7)
2) 하나님을 거부하는 악인
악인은 선보다 악을 사랑하여 의를 말함보다는 거짓을 말합니다(참조, 시52:3) 죄의 길을 걷는 자는 영적 소경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기를 원하는 인간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대상을 찾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몇 가지 변화를 갖게 됩니다. 말씀을 들어도 감상적으로 듣는 잘못에 빠지게 되고(참조, 겔22:32), 들은 말씀을 곧 망각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죄악 된 길을 고집하게 됩니다.
a.항상 악할 뿐인 마음의 계획(창6:5)
b.주의 때에 나타날 징조(눅17:26-27)
3) 승리하는 의인
엘리바스는 악인이 멸망 당하는 것에 대해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향해 비웃으면서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비웃음와 조롱은 악인들이 받아야 할 보응임에는 틀림없습니다(참조, 시2:6) 악인의 세력이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참조, 시37:35) 같으나 결국 의인이 복을 받고 악인이 징벌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시기하기보다는 그 형통이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의인의 승리를 믿는 것이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a.성도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요14:23)
b.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시2:12)
3. 하나님과 화해하라
1) 불의를 멀리하라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고 권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엘리바스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방법에 관해 언급하였습니다. 즉 너는 하나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엘리바스의 권면은 사실 욥에게서는 타당하지 않지만 죄인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되는 말씀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불의의 도구가 되기보다는 의의 도구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a.하나님의 불(욥1:16)
b.하나님은 공의를 굽히지 않으심(욥8:3)
2) 참 보배는 하나님이심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는 오빌의 금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에 욕심을 가지고 그것을 자랑거리로 여기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의 자랑은 예수님 한 분이어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나 학벌이나 경륜까지도 예수님 안에서 배설물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엘리바스의 지적은 욥에게는 적당하지 못한 말이었지만 대부분의 신앙인에게는 적절한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만이 참 보배입니다.
a.여호와를 경외함이 보배(사33:6)
b.모든 것을 갖는 비결(고후6:10)
3) 욥을 위로함
이제까지 욥의 회의주의 및 불신앙의 소치를 비판하던 엘리바스는 위로자의 자세로 돌아가 연거푸 하나님과의 화해를 권합니다. 그는 만약 욥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더 이상 두려운 분이 되지 않고 기쁨과 소망의 근원이 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욥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며 장래가 형통할 것이며 하나님의 빛이 그의 길을 비추어 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영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a.하나님을 신뢰해야 함(히11:6)
b.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심(시37:4)
결론
엘리바스는 욥이 범하지도 아니한 가상적인 죄들을 나렬하면서 욥을 정죄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속에 있는 것들 즉 인격이나 신앙, 교양, 도덕성 가치관 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을 많이 하는 것과 입술을 잘못 사용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은 덕스러운 말을 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을 멀리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