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빌립보서 4:11~13
저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말 중에는 욕심(欲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욕심대하여 우리말 국어사전에서는“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은 것을 탐내는 마음”을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뜻에서 볼 때 이 세상에는 자기의 욕심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로 대부분의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욕구불만”이 있습니다. 자기의 소유가 넉넉하든 넉넉하지 않든 상관없이 항상 습관처럼 자기는 무언가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불평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자기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욕구불만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전해오는 사자성어에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대탐대실(大貪大失)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많은 것을 탐내다 더 큰 것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욕심에 마음눈이 가려진 사람들은 자나깨나 자기의 과도한 욕심을 채우는 일에 혈안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성경의 진리는“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판단하는 기준에 맞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지나친 욕심은 하나님나라와 너무 상반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뜻에서 사도 바울은 오늘의 본문 11절에서“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소유의 형편과 사정이 어떠하든, 때로는 가난과 배고픔과 궁핍이 있더라도 그 자체를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이미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깨달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지나친 세속적 과욕은 금물입니다. 때로는 부족함이 있더라도 스스로의 자족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아멘.
/....같은 맥락의 말씀으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기독교의 진리로 살았던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독교의 진리에 근접한 유명한 명언을 하나 남겼습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넉넉한 소유자가 아니라 가장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자가 진정한 부자, 라는 것입니다” ...../ 매우 의미있는 명언입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자족에 대한 말씀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이미 영원히 영존하는 하나님나라를 소유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직 단 하나, 그 하나님의 나라로 자족하고 만족하는 비결을 배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현재의 형편과 삶이 건강하든, 병들었든, 아니면 부자든 가난하든, 또는 배가 부르든, 배가 고프든 이런 저런 고통하는 실패의 아픔이 있더라도 그런 것들을 돌파하고 초월하는 상태에서 자족하고 만족하는 비결을 비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진리의 깨달음과 은혜가 여러분들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여러 능력 중에는 자족의 능력이 있습니다. 현재 자기의 형편과 사정이 어떠하든 전혀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능력은 중병을 고치고 온갖 기적을 행하는 능력 보다 더 소중하고 값진 능력일 수 있습니다. 아멘으로 받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많이 부르는 찬송 중에는 549장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가 3절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처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이 찬송은 슈몰크(B. Schmolck)라는 독일 출신의 목사님이 만든 찬송가입니다. 이 목사님은 어느 날 한 순간에 집에서 일어난 화재로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 엄청난 고통과 아픔의 슬픔을 얼마나 컷겠습니까? 그래서 그 슈몰크 목사님은 그런 슬픔을 가슴에 품고 549장의 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자기의 고통과 슬픔의 현실을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이 찬송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처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 엄청난 고통과 슬픔 중에도 결단코 하나님이든 누구든 원망하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족과 만족으로 자기의 애통함을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해로 받아주십시오.../ 저는 요즘도 종종 주변의 어떤 사람과 인사 말을 나눌 때, 요즘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으면 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날마다 천국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천국이라는 말의 한자어는 하늘 천, 자에 나라 국, 자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진리가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자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천국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날마다“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자유함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물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내놓고 자랑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흔한, 좋은 집이나, 땅이나,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심지어 타고 다니는 자동차까지라도 내놓고 자랑할만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물으면 예, 날마다 천국으로 삽니다”라는 대답을 합니다. 무슨 자랑이나 위선이나, 거짓이나 가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순순한 사실의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진실에 대하여 아마도 저 세상의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이미 천국의 비밀과 신비를 깨달은 사람들은 지금 제가 말하는 그 말의 뜻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보통의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돈이 있고, 땅이 있고, 큰 집이 있고, 고급한 자동차가 있고 등등.. 많은 것들이 있어야 그런 것들을 통해서 평안의 위로와 소망과 행복한 자유의 만족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높고 깊은 그 하나님나라를 깨닫고 그 깨달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직 단 하나, 영원히 영존하는 천국이 내 안에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것으로 자족하고 만족하는 삶을 누립니다. 이런 은혜의 삶이 여러분들에게도 항상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