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3:8-12. 영원한 생명 얻기를 원하시면.
오늘 말씀은 거룩한 삶의 필연성 인식과 실천적 권면의 끝부분입니다. 8절은 성도간의 형제 사랑으로 대하라고 하시고 9절에는 인간관계에서 세상에서의 삶,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가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레마를 마음에 받아 새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십니다.
8절에서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성도의 삶은 이 땅의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고 하십니다. 즉 성도는 그리스도의 한 공동체로서 먼저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고통을 나누어지는 삶, 또한 서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는 것은 무엇입니까?
'호모프로네스'는 '같은'을 의미하는 '호모이오스'와 '마음'을 의미하는 '프렌'의 합성어로 '한 마음의''잘 조화 된' 의미의 단어로 어떤 일에 한마음이 되라는 것이 아닌 조화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체휼' '쉼파데이스'로. 함께라는 '쉰'과 '고통을 받다''파스코'의 합성어로 '함께 동참하여 고난을 받는' 혹은 '공감을 나타내는''서로 마음이 통하는'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믿음의 공동체의 한 지체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고통을 공감하고 자신의 일처럼 나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좋은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히4:15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즉 동정하셨으니 우리도 동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전12:25,26절에 사도바울은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아멘
다음으로 '형제를 사랑하며''필라델포이'는 '사랑''필로스'와 '형제''아델포스'의 합성어로 단순히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힘입어서 주의 자녀가 된 공동체는 반드시 형제의 사랑을 나누라고 명령하십니다. 베드로는 벧후1:7절에서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내 가족이 어려움에 빠지면 고통을 느끼고 함께 하려고 하는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순종할 때 사랑은 가치가 있고 성도들의 인내를 강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네번째 단어는 '불쌍히 여기며''유스폴랑크노이' 이 형용사는 '좋은'과 '마음'이 만나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의미는 '동정심이 있는''자비로운''인정 많은' 뜻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엡4: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리스도인의 덕목중에 '용서'가 필수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 하실수 없는 중에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하심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안에서 '용서'하라 하십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시고, 즉 우리 형제의 허물을 용서한 것처럼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형제자매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겸손하여''타페이노프로네스'는 '겸손'과 '마음'이 합성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이 친히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는데 빌2:6-9,절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면 낮은 마음으로 형제를 섬기며, 분열이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행6:1절에서 초대교회에서는 헬라파,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또한 여자와 남자의 갈등이 있었고 노예와 자유인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바울도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냉냉하고 각박해 질수록 가슴이 따뜻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무장하고. 또한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이며 우리가 그의 길을 따라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재림때에 나타나는 현상이 불법이 성행할 것이라 했으니.(마24:12),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지키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은 그날에 주를 뵈옵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고 하셨습니다.
9절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5:39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44절에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고 눅6:27,28절에"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바울도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 이는 믿는 공동체안에서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이같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억울할 때, 분할 때, 보복하고 싶은 것이 본능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말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로서 신원해 달라고 요청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된 성도라고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악한 자에게 복을 빌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을 위해 그러셨을까요? 절대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그것은 또한 우리가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복이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우리는 구원을 이미 받았지만, 그러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한다면.
또 바울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영광된 날을 사모하십니까?
10절에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소망한다면 혀를 금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악담과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야고보가 말씀하시길.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는 악을 좇아 내야하며.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구원을 잃을 것입니다. 잠12:18절에 말씀합니다.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이어 19절에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그러면 악한 말이 뭘까요?
윤리 도덕적인 말입니까? 그 부분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거역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하는 일들입니다.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노인분께서 전도를 하셨습니다. 젊은 분이 정중히 여기서는 안하셨으면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큰소리로 지생명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함부로 말한다고 큰소리를 치셨습니다. 젊은 사람은 계속해서 그냥 가셨으면 조용했으면 하고 말씀을 드리는데 큰소리로 저를 위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하나님을 믿는 나도 그 모습이 보기 싫다면, 오히려 기독교를 더 욕먹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므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십니다.
11절입니다. 악에서 떠나 화평을 좇으라고? '떠나'는 명령형입니다. 그리고 화평을 구하라 하십니다. 화평케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는다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12절에서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의인을 향하신다고 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주의 말씀을 붙들고 의지하고 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신11:12절에 말씀하시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또한 신32:10절에는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또한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하십니다. 야고보는 5:16절에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삼상1장에는 한나의 신음소리도 들으시고 응답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십니까?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믿음대로 살아가십시오. 말씀 따로 삶 따로 하지 마시고 열매를 보여 드려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었다고 분명히 야고보는 말씀합니다.
또한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도 좇아 가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칩니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말씀을 피상적으로 받으시면 그리고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설때에 무어라 하실까요? 마25장에서 반드시 선인과 악인을 갈라내어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마25:46, 요5:29, 갈6:8, 계22:12)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대하16:9)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딤전5:24,25)
말씀을 마칩니다.
선을 악으로 갚으면 사탄의 모습이고, 선을 선으로 갚으면 인간의 모습이고, 악을 선으로 갚으면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말씀은 늘 우리에게 사랑과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불법이 성행하는 이 시대에 믿음과 사랑으로 악을 이기시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그곳에 서시기를, 또한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