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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너희 믿음대로 되라 (마태복음 9장 27~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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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알아보면서 우리 각자가 모든 면에서 온전한 회복을 구하며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창세기 35장 말씀으로 우리가 가야하는 신앙의 길을 멈추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앙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당연히 안 되고, 신앙의 길을 잘가다가 딴 길로 벗어나 방향을 읽거나, 목적지까지 계속 가지 않고 중도에 주저 앉아 있어도 안 됩니다. 약속하신 그 장소인 벧엘까지 나아가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거기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는 진정한 회복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신앙의 인생 길과 방향 그리고 목적지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고, 오늘은 신앙인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회복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믿음을 회복해라,” 이런 말씀을 너무 자주 듣는 이야기라서 듣기 싫다, 귀찮다,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새겨 볼만한 명언 중에 변화에 대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By changing nothing, nothing changes –Tony Robbins)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회복을 하겠다고 내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거짓과 불의와 불순종과 완악함을 적극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으면, 내 믿음에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의 회복은 무언가 바꾸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며 아무것도 바꾸기를 바라지 않는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지금 현재 시점으로 무엇인가 내게 믿음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굳이 그렇게까지 필요한 것 같지 않으신가요? 각자 생각과 판단에 차이가 있으실 겁니다. 자, 믿음의 회복은 왜 필요한가요? 믿음의 회복이 필요한 시점은 언제 일까요?
제가 쌀짝 방향을 바꾸어서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일상에서 예수님(하나님, 성령님)이 가까이 계신 것 같으신가요? 멀리 계신 것 같으십니까? 예수님과 감정의 교류, 느낌, 생각함, 물음, 들음, 받음, 이런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지고 계신가요? 아니면 어떤 느낌도 감정도 없이 바쁘게 지내는 일상이 전부이신가요?
만약 예수님이 나에게서 멀리 계신 것 같다고 느끼시는 분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엔진이 멈추고 고장이 난 것입니다. 관계가 틀어지거나 소원해지면 예수님이 내 삶에서 잘 느껴지지 않게 되고, 나도 예수님에 대해 별 관심을 두고 살아가지 않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그래도 무감각하게 그냥 그렇게 지내고 다시 예수님을 찾아 보겠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문제는 꽤 심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 예수님과 나의 관계의 정도를 제대로 진단해 봐야 내가 믿음의 회복의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믿음의 회복이 필요한 이유는,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관계를 다시 복원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우리는 헛된 인생을 그야말로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진단 결과 내가 믿음의 주인과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무언가 해야 되겠구나,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구나 라는 자각이 일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회복의 출발점은 바로 예수님과 나 사이의 관계의 자각에서 시작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의 회복시점을 자각하고 그때를 잘 붙잡은 믿음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의 회복이 이루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27절을 읽어 드립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아멘.
아니 매번 꼭 믿음을 회복하려고 애써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 불편한 점이 없는데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27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거기에서 떠나 가실 새” 라고 했는데, 떠나시려고 하는 거기가 어디인지는 불문명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경로를 추정해 보면 아마도 예루살렘 방향으로 가시고 있던 길 가에서 두 맹인을 만나신 듯 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길가를 걷고 계신 예수님 일행을 두 맹인이 따라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워낙 병자들을 치유해 주신 일이 많기 때문에 이 장면도 특이 사항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고침 받고 싶어하는 열망이 넘쳐나서 이런 행동을 했는가 보구나 라고 가볍게 넘어 갈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장면에서 맹인 두 사람이 얼마나 믿음의 회복을 바라고 있고, 자신들이 믿음의 회복을 이룰 시점이라는 확고한 자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맹인들의 행동을 발 보세요. 크게 세 가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① 예수님이 어디를 떠나서 급히 지나쳐 가시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② 예수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앞이 안 보이는데도 급히 따라 갔습니다.
③ 예수님이 들으시도록 소리를 질러 불렀습니다.
이 장면에서 믿음의 회복을 이루려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자각하는 행동 세 가지가 보이십니까? 알아차리고, 따라가고, 소리지르는(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지만 점점 멀리 떠나려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감각(느낌)을 민감하게 갖는 것이 깨닫는 행동입니다.
절대로 예수님을 놓치지 않고 반드시 붙잡으려는 시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 깨닫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나를 봐 주시도록, 내 이야기를 들어 주시도록 요청(간구)하는 것이 깨닫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서 점점 떠나가시고 있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저 멀리 가시고 계셔서 모습이 안보일 것 같은데도 따라가 붙잡으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이 사실상 삭제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각불능 상태입니다. 이래서는 믿음의 회복을 왜 이루어야 하며, 내가 믿음의 회복을 이룰 시점에 이르렀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과의 관계는 더 급격하게 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맹인들의 행동에서 믿음의 회복을 위해서 취해야 하는 깨닫는 행동을 보셨다면, 우리는 정말로 맹인과 같이 즉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그런 자각적인 행동을 즉각적이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시도하라고 오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감감하고 무관심한 자각의 본능과 잠들어 있는 감각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맹인들의 행동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기서 맹인들은 당연이 앞을 못 보는 육체적인 장애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왕으로 오시는 예수여, 구원자로 오시는 그리스도 메시아 구세주시여)라고 부르면서 누구보다도 깨어 있는 영적 영안이 활짝 열려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회복 시점에 이르렀다는 자각이 일어나면 이렇게 영안이 열립니다.
얼마나 그들의 마음 안에 밝은 빛이 충만해 있었는지, 제자들 조차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그들은 깨닫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눈이 안 보였지만 마음의 눈은 청결하여 영광의 광채를 훤히 보고 있었던 겁니다.이것이 깨어있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이고, 그렇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소리를 지르며 따라갔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 라고 하셨습니다.
앞을 훤히 보는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실제로는 영안이 닫혀서 깜깜한 어둠 가운데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믿음의 회복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느 누구라도 영적 맹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미 다 보인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본다고 자랑하고 다녔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육체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였을 뿐입니다. 그들이 믿음의 회복을 해야겠다는 자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평생토록 영적 맹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말씀 인 것처럼 보이는 27절의 말씀 안에 믿음의 회복에 대한 자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음을 깨달으셨다면, 우리 모두도 맹인들의 심정이 되어서 떠나가고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차리고, 따라가고, 부르고, 급기야는 붙잡는 자적극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면 깨닫는 은혜, 영안이 열리는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며 소리친 맹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28절을 읽어 드립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아멘.
맹인들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소리를 질렀지만 예수님은 어느 집으로 들어가 버리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가서 결국에는 예수님을 만나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믿음의 회복에 대한 깨달음이 일어나면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는 시점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맹인에게 묻습니다. “내가 이 일(눈을 고쳐 보게 하는 일)을 해 줄 것을 너희들이 믿느냐”, 예수님의 관심사는 그들이 따라오고 소리질렀던 그 수고와 열심을 칭찬하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에게 믿음의 회복에 대한 진심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나아온 행동이 믿음에 의해서냐, 아니면 고침 받겠다는 맹목적인 의지 때문이냐를 확인하시려고 했습니다. 진짜 믿음의 회복을 위한 깨달음에 의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온 사람만이 믿음의 회복을 얻는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맹인들의 대답은 거침이 없고 확고 했습니니다. “네, 주님 저희들은 주님이 행하실 일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확실하게 믿습니다. 저희들은 오직 믿음이 가득해서 주님 앞까지 온 것입니다.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짧게 대답한 것을 제가 확대해석 한 측면이 있지만 맹인들은 정말 이러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이미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음을 다 알고 계셨겠지만, 그들의 입술로 믿음을 가지고 나왓다는 사실을 고백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맹인들 스스로가 고백(스스로말하게)함으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쳐주셨습니다. 29절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아멘.
예수님은 믿음의 회복을 바라는 맹인들의 눈을 만져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겪고 있는 가장 아프고 힘들어서 고침 받아야 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고쳐 주십니다.
그것이 상처든, 실패든, 건강이든, 나약함이든 상관 없이 모든 부분을 만져 주시고 고쳐 주십니다. 믿음의 회복을 원하며 나아온 자들에게는 이렇듯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강건케 되는 은혜가 풍성하게 주어집니다.
왜 믿음의 회복이 필요 하나구요? 바로 예수님의 만져 주심으로 인해 나의 모든 심령이 평안을 얻고 나의 모든 육체가 강건해지는 전 인격적이고 전 육체적인 회복을 경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의 만져 주심을 경험 한다면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인생의 어려움이 일 순간에 해결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주님은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맹인들의 눈을 만져 주시면서 “너희 믿음 대로 되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그들의 입술로 이 일(고쳐주시는)이 행하여 질 것을 믿는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이 믿고 말한 그대로 되리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고쳐 주시는 것은 예수님이시지만, 고침 받을 당사자의 믿음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에 우리에게 오셔서 “너 나에게 왜 나아 왔니?” 라고 물으시면, “그냥 나왔는데요. 엄마가 가자고 해서 왔는데요. 시간이 되어서 의무적으로 나왔는데요. 꼭 왜 나왔는지가 필요 하나요?” 라는 식의 대답으로는 믿음의 회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네 주님!,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믿음을 회복하러 나왔습니다. / 믿음의 주인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 제 믿음이 연약해서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려서 평안과 담대함을 회복하러 나왔습니다. / 믿음의 회복을 주시려는 자각이 일어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소리치며 달려왔습니다. / 세상을 보는 눈은 잘 보이는데 주님을 도대체 볼 수 없어서 영적맹인의 신세를 벗어나 보려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 이번에 주님을 놓치면 영영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절박한 마음으로 죽기살기로 나왔습니다. /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런 표현들이 “주여, 그러 하오이다, 능히 주님이 나를 회복 시켜 주실 것을 굳게 믿나이다”라고 고백한 맹인의 대답에 다 들어가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대답을 듣기 원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나왔으면 이런 믿음의 회복을 구하는 고백들을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냥 왔다 그냥 돌아가는 헛된 발검을 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 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맹인에게 고백을 요구하신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 물으실 것이고, 그 각자의 마음과 믿음이 진실한지를 확인하신 후에, 그 믿음 대로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믿음의 자각이 없으면 아무런 믿음의 회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너희 믿음 대로 되라”. 이 얼마나 명료하고 확실한 약속의 말씀입니까?
믿는 그대로 다 이루어 주신다는 이 사실을 체험하고, 경험 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최상의, 최고의 믿음의 회복을 이루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맹인들은 주님을 만나 일생일대의 회복의 경험을 갖게되는 은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인생입니다.
우리도 능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러면 “너희 믿음 대로 되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가슴에 새기고, 맹인의 심정으로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알아차리고, 따라가고, 부르짖는 행동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시작하기만 하면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만남의 역사, 회복의 역사는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이 그 시작의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인 30, 31절을 읽어 드립니다.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아멘.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두 맹인은 앞을 보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육체)로 보게 되는 감격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믿음 대로 된다는 사실을 겪고 난 후에 육신의 눈 뿐만이 아니라 영의 눈도 한층 밝아져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담대히 증언할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지닌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엄히 경고 하시며 삼가 아무에게도 (고침 받았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온 땅에 퍼트렸습니다. 이 일은 그들이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혹은 그들의 입이 경박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믿음의 주인을 직접 만나 아루 만져 주시고 고침을 받고 복음과 믿음의 실체를 체험한 그 주체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을 증언하지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회복을 이룬 후에 강력한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기록입니다.
오늘 우리는 맹인이 눈을 뜬 사건을 통해서 믿음의 회복을 이루려는 자각(깨달음), 믿은 대로 되어진다는 실제적인 체험, 그리고 내가 만나고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증거하는 제자로 살아가는 과정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믿음의 회복을 위해 깨닫는 출발점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맹인들과 같이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① 내게서 멀어져 가는 예수님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② 예수님을 놓치지 않고 서둘러 따라가려고 해야 합니다.
③ 예수님이 소리를 들으시고 멈추어 서시도록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런 행동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만남의 기회가 찾아 올 것인데, 그 때에 진심의 마음으로 나의 믿음을 고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는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영적 어두움에 갇힌 저를 줄씽히 여기시고 믿음의 회복을 이루어 주옵소서.” 간절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 고백이 진실되다면, 그 다음으로 반드시 예수님의 만져 주심과 모든 면에서 평안의 은혜를 주시는 회복의 체험이 강력하게 일어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모두에게 영적 눈들이 밝아지는 은혜가 입혀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거기까지 이르시면 그 체험을 다른 분들에게 공유 하세요. 그리고 듣는 분들도 그렇게 해 보시라고 권유해 보세요.
“내 믿음 대로 되리라”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주체할 수 없는 은혜 충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웃과 세상에 표현하셔서 예수님을 증언하고, 증거하는 제자로서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주님과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항 주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마보시고, 주님 곁에 항상 가까이 머물러 있으십시오. 주님과 함께 있는 한 우리는 모든 면에서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상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회복을 이루어야 한다는 성령의 인도 하심과 깨달음의 은혜가 주어져서, 우리가 아직 밝은 빛에 거하지 못하는 영적 맹인인 것을 인정하고, 오직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 믿음의 회복을 온전히 이루어 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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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연약한 믿음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믿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붙잡고, 일생동안 동행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