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화산섬 쉬르트세이의 개척자
1963년 11월 초, 아이슬란드 남쪽 해안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수심 약 130미터의 북대서양 해저 화산이 분화하면서 시뻘건 마그마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얕은 해저에서 발생한 물기둥의 수압과 밀도로 인해 화산 폭발과 분출은 억제되거나 소멸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용암 축적 과정이 반복되고 해수의 가열로 생긴 수증기까지 더해져 심한 폭발이 잦았다.
11월 6 일부터 8일까지 아이슬란드 키르큐바이야르클라우스투르의 지진 관측소는 레이캬비크에서 남동쪽으로 140킬로미터 지점에서 진도 1의 약한 지진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감지했다. 11월 12일, 해안 도시 비크의 주민들은 온종일 코를 찌를 듯이 역한 황화수소 냄새에 시달렸다. 11월 13일, 우수한 성능의 온도계측 장치가 설치된 청어잡이 어선 한 척이 해저 분화 지점의 온도가 주변 수온보다 섭씨 2.4도 가량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63년 11월 14일, 협정 세계시 기준 오전 7시 15분, 항해 중이던 트롤 어선 일레이푸르의 요리사가 위치를 정확히 알기 힘든 바다 한가운데 어느 지점에서 연기 기둥이 피어오르는 것을 처음 발견하고 모든 선원에게 알렸다. 선원들은 조난된 선박이 있다고 판단하고, 구조하러 가까이 다가갔다가 우연히 폭발하는 분화를 접한 최초 목격자가 되었다. 같은 날 11시, 화산재가 온 바다를 뒤덮고 연기 기둥이 수 킬로미터 높이까지 피어오르며 세 분화구에서 각기 분화가 진행되었다. 그날 오후, 세 분화구는 한 차례의 폭발로 하나의 분화구로 합쳐졌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좌표상 북위 63.303도 서위 20.605도에 길이 500미터 이상, 높이 45 미터의 새로운 섬이 생겨나 베스트마나에이야르 제도에 추가 되었다. 그 신생 섬은 쉬르트세이로 명명되었는데, 이는 스칸디나비아 신화 속 불을 다루는 불의 거인 수르트르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언젠가 수르트르가 불의 검을 휘두르며 쉬르트세이섬을 삼키러 귀환할 것이다. 분화는 1967년 6월 5일까지 계속되었다. 그 당시 쉬르트세이섬의 최대 면적은 약 2.7제곱킬로미터였다. 분화가 끝난 후에는 해양 침식이 일어나 섬의 면적이 꾸준히 줄어들어, 2012년에는 섬 면적이 이미 절반 수준(1.3제곱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쉬르트세이섬의 운명은 예견된 듯하다. 섬은 거친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서서히 줄어들어 약 1세기 안에 자신이 태어난 물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쉬르트세이섬은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과학사에 길이 남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 진귀한 자연 그대로의 천연 실험실 덕분에 최신 연구 장비와 기술을 이용해 불활성 불모지에서 완전한 생태계 조성으로까지 이어지는 섬의 모든 구성 요소에 관한 연구가 사실상 최초로 이루어졌다. 대규모 해저 분화로 새 화산섬이 만들어지는 것은 근래에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새 화산섬의 탄생 과정을 정밀 조사한 결과, 용암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 그 섬은 다른 해저 분출의 경우와 다르게 일시적으로 사라질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과학계는 생명 정착과 성장 단계를 추적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1965년 쉬르트세이섬은 화산 분화가 본격적으로 활발히 진행 중인 상태에서 학술연구를 이유로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고, 극소수의 과학자를 제외하고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화산재, 부석[화산 분출물 중에서 지름 4밀리미터 이상의 다공질 암괴로, 속돌 또는 경석이라고도 함], 모래와 용암은 생명체에게 침략당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화가 연달아 진행 중일 때, 봄은 이미 와 있었고 봄이 되자 곧이어 식물들이 속속 찾아들었다. 1965년 봄, 이 섬의 첫 관다발식물[유관속식물 또는 관 속식물이라고 하며 관다발이 있는 식물군을 말함]인 카킬레 아르티카[서양갯냉이속의 종]가 쉬르트세이섬의 모래 해변에서 자라났다. 카킬레 아르티카는 놀라운 식물이다. 작은 키에 수수하고 수줍어하는 듯 생겨 외관상 주목받지 못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대담성을 지닌 외유내강형이다. 카킬레 아르티카는 위도에 상관없이 생존 가능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개척자이자 진정한 바다의 늑대였다. 해안선을 따라 서식하며 담수원 없이 생존할 수 있고 바다로의 긴 여행도 가능하다. 카킬레속에 속하는 모든 종은 사실상 염생식물이다. 여기서 이탈리아어 'alofita'는 소금을 뜻하는 그리스어 'alas'와 식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phyton'의 합성어다. 이 식물들은 다른 종은 생존하기 어려운 열악한 조건에서 해수로 자랄 수 있는 해부학적•생리학적인 특별함을 모두 타고났다.
게다가 카킬레의 진화는 화려한 단계를 거친다. 조물주의 경이로운 설계로, 필요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생존 키트가 장착되었다. 제임스 본드를 돋보이게 해주는 '본드카' 애스턴 마틴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카킬레속 식물들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생할 수 있는 생존법을 터득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번식법은 이 식물에는 흔한 일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매우 특별한 방식이다. 즉 씨앗이 여물면 열매가 둘로 나뉘어 열린다. 반은 발아의 희망을 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아 가능성이 큰 어미나무 가까이 떨어져 모래 속에 묻힌다. 나머지는 바다에 실려 멀리 보내진다. 부력이 아주 뛰어난 씨앗들은 해류가 해안가로 데려다줄 때까지 바다에서 수년간 생존이 가능하다. 카킬레 아르티카가 쉬르트세이섬으로 가는 경주에서 다른 모든 (동식물) 참가자를 당당히 제치고 1등을 차지한 배경이다.
쉬르트세이섬의 식민지화에 관한 통계 조사에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예컨대 일부 식물의 씨앗을 그 섬으로 옮긴 운반체가 물고기의 알이라는 걸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 말
해, 라자 바티스[홍어과 동물]의 알주머니가 다양한 초본종의 씨앗들을 예기치 못한 손님으로 맞이해 그 섬까지 운반해주었다. 이러한 독창적인 운송수단 외에도 대부분 씨앗은 바람, 물 또는 조류에 의해 운반되어 섬에 도착했다. 한 예로 혹한을 좋아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참새인 흰멧새는 스코틀랜드에서 아이슬란드로 이주할 때, 씨앗들을 자신의 소화관인 모래주머니를 이용해 안전하게 섬까지 옮겼다. 모래주머니는 조류 위의 일부분으로 먹이를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흰멧새는 씨앗들이 순조롭게 발아할 수 있도록 안전한 운반체가 되어 섬의 식물 확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1967년 전 세계에 분포하는 아름다운 관목인 폴리곤움 마컬루사[마디풀속의 종]와 습지 서식 다년생 식물종인 흑사초가 쉬르트세이섬으로 오게 된 경로다. 주로 어류를 잡아먹는 같매기 등의 바닷새들도 가끔 식물성 먹이를 섭취한 뒤 이 외딴 불모지에 씨앗들을 운반함으로써 쉬르트세이섬의 새로운 종 상륙에 적극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쉬르트세이섬을 지나가며 상공에서 배설물을 떨어뜨리는 거위들 역시 뛰어난 운반책으로 밝혀졌다. 거위들은 섬에 천연 비료를 입힌 다양한 종자들이 정착해 최상의 조건에서 발아하도록 도왔다.
섬에서 기록된 모든 종류의 관다발식물 중 9퍼센트는 공기 중의 바람, 27퍼센트는 바닷길, 나머지 64퍼센트는 조류에 의해 운반되었다. 1998년 말, 목본종의 첫 개체인 살릭스 필리시폴리아[버드나무속의 종]가 마침내 그 섬에 뿌리를 내렸다. 섬이 생긴 지 45년이 지난 2008년 쉬르트세이섬에는 69개의 식물종이 조사되었으며, 그중 30종은 섬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매년 2~5개꼴로 새로운 종이 계속 도착하고 있다.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중에서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임희연 옮김
신혜우 감수
그리샤 피셔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