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사랑채 옆에는 조그만 마루가 하나 딸려있다. 우리 형제들은 어렸을 적부터 이곳을 사랑마루라고 불렀다. 사랑방 옆에 딸린 작은 마루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직접 집을 짓고 그곳에 마루를 내어 살아생전에 요긴하게 사용하던 곳이다. 저녁마다 등잔불을 밝혀놓고 긴 곰방대를 입에 문채 돗자리를 짜고 새끼를 꼬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의 일상이 펼쳐지는 독립된 공간이었다. 점심을 드신 뒤 목침을 베고 편하게 낮잠이라도 주무실 때면 참으로 아늑해 보이기도 했다.
사랑방 옆에 마루가 딸리는 것은 충청도와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가옥형태다. 사랑채 옆에 달아놓은 일종의 툇마루였다. 우리 집은 튼ㅁ자형의 집구조로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지어졌다. 본채에는 안방 윗방이 나란히 붙어 있고 이어서 대청마루가 있고 그 옆에 사랑채가 연결돼 있는 형태다. 그리고 그 끝에 조그만 사랑마루가 놓여 있다.
이곳은 우리들에게도 둘도 없는 비밀의 공간이었다. 우리는 수시로 이곳에 모여 다양한 놀 거리를 만들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봄철에는 칡뿌리를 캐다 잘라먹고 여름에는 참외를 서리해와 들킬세라 숨어서 먹던 공간이다. 가을철에도 옹기종기 모여서 알밤을 까먹던 기억이 새롭고 겨울철에는 썰매나 팽이를 깎기도 했다. 사시사철 소일꺼리를 제공해주던 아지트 같은 곳이다.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아름다운 추억들이 줄줄이 머리를 비집고 올라온다. 사랑마루는 그렇게 퍼내도 줄지 않는 샘물 같은 추억의 보고인 곳이다.
사랑마루 주변은 비밀의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꽤나 운치도 있었다. 바로 앞에는 잘 가꾸어진 화단이 자리하고 있어 사시사철 다양한 꽃들을 피웠다. 특히나 봄철에는 라일락이 그윽한 향기를 드리우고 자목련 또한 도도한 자태로 우리들을 현옥시켰다. 나무 주변은 하얀 백합이 순결한 자태로 고개를 숙이고 있어 늘 서정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가끔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음악을 들으며 라일락 향에 취해 릴케나 바이런의 시를 탐닉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랑마루는 대를 이어 아버지의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떤 연유인지 별로 이곳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그곳에서 당신의 아버지가 떠올라 그랬을 수도 있다. 그 뒤로 얼마 동안은 선반 위에 할아버지가 돗자리 짤 때 사용했던 고드래돌과 왕골로 만든 실타래 몇 개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이런 것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나중에는 아버지가 쓰던 대패나 작은 연장 몇 개만 얹어져 있었다. 그 뒤로는 아예 미닫이 유리창을 달아 허드레 창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뒤로 주인 없는 성처럼 사랑마루의 존재는 거의 내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다.
그런데 올 여름방학이었다. 방치된 시골집에 잡초라도 제거하려고 들렀다 우연히 사랑마루를 둘러보게 되었다. 당연히 허드레 물건이 쌓여있든가 텅 비어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생뚱맞게 부피가 큰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가 구석에 뽀얗게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의아해서 살펴보니 아버지가 생전에 구입하신 것이었다. 겉에는 가죽으로 씌워져 손잡이 까지 달려있고 당시에는 최신식 모델로 꽤나 값이 나갔던 것이다. 15년여 만에 다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고 어떻게 저것이 지금까지 치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까 신기했다. 구입한 것으로 치면 20년이 훌쩍 넘은 물건이다.
당시에 우리들은 그것을 휴대용 전축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그런 휴대용 전축이 한참 유행할 때였다. 들이나 산으로 놀러 나가면 너 나 할 것 없이 들쳐 메고 나갔다. 여기저기서 크게 틀어놓고 남녀가 뒤엉켜 관광버스 춤을 춰대던 때였다.
처음 휴대용 전축이 우리 집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것을 구입하고 몇 개월이 지난 뒤였다. 우연히 사랑마루에 들렀을 때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순간 우리 집에 이런 것이 있었나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누가 사다 놓고 듣지도 않고 방치해 놓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던 아버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머니가 듣기 위해 사다 놓은 것은 더더욱 아닌 듯했다. 설령 아버지가 샀다고 해도 안방에 놓고 들을 일이지 사랑마루에 처박아 놓을 이유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분명 여기에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당시로서는 좀 비싼 가격대의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평소 누구보다 검소하고 계획성 있게 생활하시던 당신들이다. 아무리 음악을 듣고 싶었다고 해도 고가에 선뜻 구입했을 리가 만무했다. 처음에는 앞 개울가로 놀러왔다가 놓고 간 것을 주워왔던가, 아니면 차에 싣고 가다가 떨어트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흠집 하나 없고 거의 사용하지 않은 상태다보니 그런 추측도 아귀가 맞지 않았다. 또 다른 추측은 노래를 듣고 싶어서 사기는 했는데 조작법이 까다로워 방치해 놓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어느 날 에둘러 아버지한테 휴대용 전축 얘기를 꺼냈다. 좋아하는 노래있으면 테이프를 구입해 드릴테니 심심할 때 들으라고 권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의외였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남에게 얘기하듯나는 들을 일 없으니 너나 갖다 들어라하시는 거다.
나를 주려고 샀으면 미리 모델이나 기능에 대해서 물어봤을 분이다. 그리고 벌써 가져가라고 전화라도 했지 사랑마루에 처박아 놓을 리가 없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아도 선뜻 마음에 짚이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나갔다가 우연히 답을 얻게 되었다. 저녁 무렵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마을 쉼터를 둘러보는데 마침 아버지 친구 분들이 막걸리를 들고 계셨다. 모처럼만에 인사라도 드리고 술 한 잔씩 따라 드리려고 다가갔다. 그런데 한 분이 뜬금없이 나를 보자마자네 아비가 장사꾼한테 속아서 산 전축 좀 가져와 틀어라하시는 거다. 어찌 말투가 평소 말투와 다르게 놀리는 듯한 뉘앙스가 풍겼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잠시 생각해보니 사랑마루에 처박혀 있는 휴대용 전축이 떠올랐다.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우리 집에 무슨 전축이 있고 속아서 사다니요하고 되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휴대용 전축을 구입하게 된 사연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당시에는 떠돌이 박물장수처럼 마을을 돌아다니며 약이나 불량한 가전제품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한테 아버지가 휴대용 전축을 샀다는 것이다. 그것도 속아서 말이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요즘에도 나이 드신 노인들을 상대로 건강식품이라고 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아 사회 문제로 이슈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평소 아버지와 어머니는 쉽게 이런 수법에 넘어갈 분이 아니셨다. 오히려 주변 분들에게 못 사게 설득하던 분이다. 단언컨데 속아서 사신 것은 아니고 무슨 사연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데 아버지라고 넘어가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반적으로 장사꾼들이 자주 써 먹는 고전적인 수법 중에 하나가 당신 같은 분은 돈이 없어서 이런 것을 살 수 없다고 은근히 무시하는 거다. 그 말에 남자들은 자존심이 상해서 보란 듯이 물건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피해 의식을 가지고 계신 시골 분들한테는 절대적으로 통하는 수법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런 수법을 꿰뚫고 계셨기 때문에 분명 속임수에 넘어간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 날 여기에 대한 궁금증을 우연한 자리에서 아버지를 통해 직접 듣게 되었다. 아버지 친구 분 중에 떠돌이 장사꾼 물건을 잘 사시는 분이 계시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도 일단 배짱 있게 할부로 사고 본다. 그런데 어느 날 쉼터에 떠돌이 장사꾼이 휴대용 전축을 팔러 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 친구 분이 보란듯이 할부로 구입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도 물건이 좋다고 부추긴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충동적으로 구입하실 리가 없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장사꾼이 아버지한테 새로운 수법을 쓰신 것이다. 아저씨는 돈은 좀 있어 보이는데 남자로서 배짱이 없어서 못살 것 같다고 한마디 던진 것이다. 이에 아버지가 자존심이 상하시고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보란 듯이 그것도 현찰로 사신 것이다. 나보다 못사는 친구도 배짱 있게 사는데 왜 못사나 싶어서였다고 했다. 장사꾼의 고도의 심리전술에 낚인 것이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사리분별이 확실하시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분이다. 동네에서 큰 일이 발생하면 아버지한테 자문을 구하고 평소 아버지 말이라면 모두 인정하고 잘 따랐다. 그런 아버지가 잘 알면서도 전축을 샀다면 장사꾼의 속임수보다 친구 앞에서 힘없고 능력 없는 남자로 보이기 싫으셨던 심리가 더 작용했을 것 같다. 남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본래 친구들 앞에서 기죽기 싫어하고 힘이나 배짱을 과시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장사꾼이 이런 남자의 가장 중요한 감정 영역을 건드린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그런 것까지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단지 친구 앞에서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에 스스로가 상처받고 싶지 않은 자격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소 당신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지니고 배짱과 뚝심으로 어려운 집안을 건사해 오신 가장이었다.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셨고 출중한 외모에 운동신경까지 남달랐던 분이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많은 식구를 건사하느라 품었던 뜻을 평생 펼치지 못하셨다. 평생 가정을 먼저 생각하고 절제하며 다른 생각을 못하신 것이다. 가끔 술이라도 한잔하시면 푸념처럼 내뱉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어떻게라도 성공해서 한자리 했을 텐데……. 하시던 분이다. 말은 안 해도 피해 의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아버진들 자존심이 없고 배짱이 없었겠는가. 누구보다도 남자다웠던 분이다. 그 순간 친한 친구 앞에서 평소 당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나한테 구입하게 된 이유를 얘기했다는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피력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우리 집 휴대용 전축이다. 구입해서 듣고 안 듣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 마지막 자존심의 산물이었다. 아버지가 남겨 논 유형의 마지막 유산처럼 느껴졌다. 평소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괜히 객기를 부렸다는 생각이 들어 사랑마루에 처박아 놓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10여 년이 넘었다. 아버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이제 거의 없다. 그런데 사랑마루 한쪽 구석에서 아버지의 굳건한 자존심이 지금껏 살아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놓여있는 휴대용 전축은 용도 폐기된 낡은 그런 물건이 아니다. 평생 동안 굳건히 우리 집을 지탱하고 건사해 오신 아버지의 분신이었고 자존심이자 사랑 그 자체였다. 나는 무심코 전축의 플러그를 꽂았다. 아직도 10여 년 전에 꽂혀있던 테이프에서 신기하게 이미자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동안의 긴 세월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세월에 치어 아름다운 추억을 잊고 아버지의 기억도 지워가고 있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마루 구석에서 지금껏 따스한 사랑의 온기를 지닌 채 홀로 버텨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멍하니 서서 노래를 듣고 있자니 처음 휴대용 전축을 사들고 오셨을 아버지의 마음이 읽혀졌다. 나도 이런 것쯤은 살 수 있을 만큼의 여유와 배짱 있는 남자라며 스스로 자랑스럽게 들고 오셨을 것 같다. 돌아가시고 10여년이 흐른 지금 먼지가 뽀얗게 쌓인 사랑마루에서 따스한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본 것이다. 당신도 남들 앞에 자존심과 배짱을 내보이고 싶었던 평범한 한 남자였다고 생각하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돌아오는 내내 당신께서 생전에 유일하게 흥얼거리시던 이미자의 섬마을선생 노래 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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