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코스 걸음은 정릉 방향으로 걸어 명상길로 들어섰다. 실금 같은 비가 내리는 듯하더니 금세 멎었다. 호젓한 숲길이 서서히 펼쳐졌다. 하늘을 다 가릴 만큼 초록이 우북하게 차올랐다. 사부작사부작 걷기에 딱 좋은 숲길이었다. 전날 내린 비가 숲의 숨을 깨워놓은 듯했다. 비릿하고 싱그러운 내음이 올라왔고, 좁다란 계곡마다 물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뻐꾹, 뻐꾹~” 뻐꾸기 소리가 번질 때마다 숲이 눈곱을 떼고 더 생동생동 깨어났다. 꽃이 물러난 자리마다 초록이 잎맥을 펼쳐 볕뉘 새들어올 틈이 없이 숲이 촘촘해졌다. 잎들은 저마다 빛을 받으면서도 서로의 자리를 밀어내지 않았다.
“조와 조, 조원과 조원 사이 거리를 충분히 두세요.”
안전을 챙기던 총괄대장님이 촬영감독처럼 보였다. 조밀하게 붙어 걷지 말고 명상하듯 걸으라는 무언의 액션 사인이 내려온 셈이었다. 나도 입을 시침질한 듯 다물었다. 합죽이가 되어 걸으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2026년 100인 원정대 지원하고 손나팔 불어 여기저기 손나팔 아니 대놓고 통보하고 다녔다. 5월 말일까지 토요일 모임은 어떤 자리도 나라는 인물은 불참이니 그런 줄 알라고. 나의 스케줄도 다 돌려 놓았다. 원정대 걷는다고 미리 설친 걸 바람이 꼬질렀을까? 결과는 미선발이었다. 30여 년 전 나는 ‘세상은 요지경’을 불렀던 신신애와 도봉면허시험장에서 나란히 운전면허 시험을 치렀다. 그녀도 떨어지고 나도 떨어졌다. 100인 원정대에 지원하며 그때의 참담함을 다시금 맛보았다. 10조 뒤에서 원정대 테두리 바깥 몸으로 2회차까지 따라 걷다가 3회차에 테두리 안의 자격을 부여받아 내 이름이 씌인 명찰을 걸고 9조 원정대가 되어 걷기 시작했다.
바람에 스치는 초록 잎들이 아이들의 손바닥처럼 팔랑였다. “우여곡절 끝에 완주가 엄지발가락 앞까지 이르렀으니 잘했어요.” 싱그러운 초록 잎들이 손뼉을 치며 건네는 말 같았다.
정릉탐방소를 지나 도로 쪽으로 내려서자 풍경은 다시 도시로 기울었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서울의 여느 얼굴과는 조금 달랐다. 낡은 외벽, 오래된 간판, 빛바랜 글자들이 건물마다 비뚜름하게 매달려 있었다. 도시의 속도에서 한 걸음 비켜선 풍경. 이름 하나, 글자 하나에도 손때 묻은 시간이 눅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 아날로그적인 광경이 이상하게도 정감이 가고 마음이 누그러졌다.
걷는다는 것은 그렇게 체온의 온도로 사물을, 풍경을 가까이 살피는 일. 차로 빠르게 달리면 놓치고 말 것들을 천천히 바라보는 편안함이 내면을 그윽하게 한다. 걷기는 사람들에 휘둘리고 통장 잔고 숫자에 애면글면하는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소유하려는 욕망도,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허기도 어느새 호로록 빠져나가 홀쭉해진다. 나는 그 홀쭉함이, 그 가붓함이 으서지게 좋다.
북한산 성북 구간에는 길 이름부터 바람이 스몄다. 솔샘길, 솔샘공원, 흰구름길. 이름만 읽어도 이마에 서늘한 바람이 닿는 듯했다. 성북구에 예술가와 문인들이 많이 살았고 지금도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 영향이 길 이름 지을 때도 몇 방울 닿은 걸까. 성북생태체험관 언저리를 지나 흰구름길로 들어서자 오르막과 내리막이 숨바꼭질하듯 이어졌다.
능선이 조금 순해졌다 싶을 무렵, 구름전망대가 나타났다. 서울둘레길 3코스에서 만났던 피아노 모양의 불암산전망대가 문득 떠올랐다. 후미 우리 9조는 구름전망대 아래서 고개를 한껏 젖히고 꼭대기에 오르는 투박한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올라갔다 내려오는 대원들, 차례를 기다리며 질서 있게 오르는 대원들이 한 줄의 리듬처럼 움직였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좋은 곳이라 조별 인증사진 미션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 조 차례가 되어 구름전망대에 올랐다. 올라서자마자 “과연!”이라는 부사가 저절로 나왔다. 북한산 능선,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능선이 도미솔미 운율 이루듯 펼쳐졌다. 산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한 장의 큰 능선처럼 이어져 있었다. 사람도 어쩌면 저 산들처럼 떨어져 살면서 보이지 않는 능선으로 이어져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근사하네!” 감탄 날리고 얼른 내려가려 몸을 틀었다. 탐방객들이 계속 올라오니 닁큼 자리를 내주는 게 예의다 싶어서였다. 청일점 우리 9조 조장님이 소리쳤다.
“어딜 가요? 9조 사진 찍고 내려가야지요!”
아차, 나는 또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일상에서 자주 벌이는 일이다. 풍경 하나에 정신이 팔려 내 순서도 내 역할도 놓치는 건 다반사인 허당! 그래도 100인 원정대에서 걸어보니 크게 흉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 기다려주고 불러주면 배시시 웃으며 그 자리로 움직이면 되니까.
‘빨래골’ 방향을 알리는 안내판을 놓쳤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데 한눈을 파느라 스쳐 지나갔다. 빨래골은 옛 궁녀들이 빨래하러 찾아왔던 곳이라 한다. 혼자 상상했다. 궁궐의 높은 담 안에 묶여 있던 마음들이 산골짜기 물가에서 방망이를 두드리며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켰을까. 물소리 속에 방망이 소리가 섞이고, 한숨도 내려앉았을 것이다.
이어진 내리막길은 흙길이었다. 숲이 우거졌고 발바닥은 흙의 안부를 받으며 내려갔다.
화계사(華溪寺) 입구에서 20코스가 시작되었다. 화계사, 꽃과 시냇물이 어우러져 아름답다는 이름을 가진 절. 입구 숲길로 들어서자 잣나무와 소나무 향이 마음을 가만가만 어루만졌다.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된 순례길이었다. 이준열사묘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 묘, 광복군 합동묘지 등 애국열사 묘역을 알리는 안내판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서울둘레길 중 20코스는 의미가 남달랐다. 숲의 아름다움 안에 역사의 숨이 함께 깃든 길이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남긴 결심과 희생이 오래된 뿌리처럼 나무 그늘 아래 깊이 스며 있었다.
4·19묘지전망대로 오르는 역사의 순례길 양옆에는 곳곳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었다. 굵은 줄기와 짙은 솔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소나무들은 길을 지키는 수호사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말수가 줄었다. 입을 시침질하고 마음을 여미는 구간이었다. 전망대에 오르자 4·19민주묘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 아래 펼쳐진 묘역은 고요했다. 고요 안에 오래전 거리로 나섰던 이들의 숨결이 어떤 메시지를 주는 듯한데 아둔한 내가 알아들을 재간이 없었다.
곧게 뻗은 나무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군데군데 깊은 상처를 품고 있다. 가지가 부러진 자리에는 옹이가 생기고, 바람에 휘어진 줄기는 그 방향 그대로 단단해진다. 상처를 지우지 않고 품은 채 나이테를 늘려가는 나무처럼 사람 역시 아픔을 안으로 삭이며 저만의 깊이를 가진 단단한 존재가 되어간다.
순례길을 지나 솔밭근린공원에 닿았다. 100인 원정대는 배낭을 내려놓고 다릿심을 풀었다. 천여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는 공원에는 오래 버틴 것들의 기품이 있었다. 그곳이 한때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였고,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개발을 막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소나무 그늘이 더 깊게 느껴졌다. 지켜낸 숲에서 쉬는 이들이 있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아빠와 아이는 배드민턴을 쳤다. 솔밭근린공원에는 오월의 느긋한 오후가 흐르고 있었다.
쉼을 마친 100인 원정대는 다시 행렬을 이루었다. 손병희 묘소를 지나 걷는데 우이계곡 물소리가 들렸다. 오르막이 이어졌다. 앞선 행렬에서 조금 뒤처진 고령의 원정대원이 길 한쪽에 비켜서서 스틱을 짚고 숨을 고르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멈춰 선 몸에는 힘겨움이 묻어 있었다. 오래 쉬지 않았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시더니 놀라울 만큼 빠른 걸음으로 대열을 따라붙었다. 뒷모습을 보는 순간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마음속으로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보내드렸다.
3월 14일부터 시작한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의 길은 매주 달랐다. 같은 서울인데도 소리의 주파수가 달랐고, 나뭇잎 흔들리는 데시벨이 달랐고, 자연이 살 오르는 냄새와 햇살의 각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은밀한 변화를 더듬더듬 알아차리는 일은 전신으로 즐기는 내면의 축제 같았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생각의 파편들도 걷는 동안 얼추얼추 맞추어졌다. ‘세쎄쎄’ 하듯 연결되다가 뜻밖의 통찰 하나를 꿩알처럼 툭 낳아주기도 했다.
우이동 만남의 광장에 도착해 16기 100인 원정대가 모여 앉았다. 앞자리에는 회차마다 응원의 깃발처럼 펄럭이던 플래카드가 처음으로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이 마음 뭐지?’ 갑자기 감정이 굽이지려 꿀렁꿀렁했다. 공중에서 펄럭이던 플래카드가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소임 다하고 마지막 의식만 남겨둔 것처럼 비쳤다. 걸어온 시간이 한꺼번에 와르르 내려앉았다. 나는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다. 애국가가 나와도 그렁그렁해지고, 원고에서 큰따옴표와 작은따옴표가 뒤집힌 걸 발견해도 빵~ 웃음보가 터진다.
방재형 총괄대장님이 애쓰신 강사님들 앞으로 나오게 하더니 한 말씀씩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강사님마다 얹어주는 말씀, 말씀이 뭉클했다. 졸업식 예행연습 같았다. 내가 원정대 테두리에 온전히 들어오지 못하고 끄트머리에서 고양이처럼 살곰살곰 따라가던 첫날, 의붓자식이라 내치지 않고 세심히 챙겨주신 정영진 강사님, 조원들끼리 낯가림을 허물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구간 오르막길에 지쳐 모두가 헉헉댈 때 향이 확 번지는 오이와 당근을 지퍼백에 그득 담아와 9조에 통째로 내놓으신 박상기 강사님, 어렸을 때부터 성장하며 봤던 풍경, 손가락 크기로 자른 나무를 대청마루 한쪽에 소복이 다듬어놨다가 동네 사람들이 부탁하면 일을 보시다가도 아버지가 도장을 새겨줬던 나무 이름을 알고 싶었는데, ‘회양목’이라 알려주신 김병철 강사님, 후기 써 올린 대원 한 사람 한 사람과 사진을 남겨두고 싶다며 분위기를 재밌게 치살려주신 변재수 강사님... 그 외 헌신적으로 이끌어주신 강사님들의 애쓰심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조용필은 언제나 마지막 무대를 빛나게 하는 원리로 미루시는지 차미숙 서울둘레길 센터장님과 홍종길 팀장님께는 마이크가 건너가지 않고 노성춘 선생님께로 갔다. 회차마다 출석체크를 하고 구간마다 전체 살림을 도맡으며 사진 예쁘게 담아주신 그 짙은 노고를 16기 100인 원정대원들은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아직 끝난 것도 아닌데 마음이 지레 앞질러 가 끝자락을 알아채 쿨럭이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주책'이다. 자꾸 눈이 지짐지짐해져 애꿎은 하늘 쪽을 올려다보았다.
또 고마운 대상 중에 우리 9조 대원들을 빼놓을 수 없다. 늦게 합류한 나를 살갑게 맞이하고 간식도 나누어준 물방울처럼 맑은 마음을 가진 대원들. 뿐인가? 어쭙잖은 후기에 진정을 꾹꾹 고봉밥처럼 담아 댓글을 달아주신 대원님들, 5조 안종익 대원님은 ‘달디단 밤양갱’ 같은 후기를 기다린다며 10회차에 ‘밤양갱’을 진짜 주시기에 덥석 받아 맛나게 먹었다. 봉산전망대에서 ‘더위사냥’을 주신 5조 대원님께 뵙고 폴더폰 접듯 굽혀 인사 드려야는데 해단식 전에 자수하시어 인사 받으시면 좋으련만.... 그 감사함 잊을 수 없다.
조원들이 차례로 나와 현수막에 소회를 한마디씩 적었다. 글씨를 쓰느라 공처럼 만 등 위로 3월 14일부터 걸음을 뗀 시간이 무늬를 그리며 지나갔다. 바윗길, 꽃길, 오르막 계단, 더위가 달려들던 아스팔트 길, 서로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었던 순간들이 플래카드 위에 겹겹이 내려앉았다.
이제 한 회차만 치르면 16기 100인 원정대는 해단식을 한다.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울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