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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語
이 어인 청천(靑天) 벽력이며 육월비상(六月飛霜)로 교계(敎界)의 초덕(卓德) 종단(宗団)의 거목(巨木)이 넘어졌도다.
국가원수(国家元首) 급서(急逝)에 뒤이 또다시 우리 태고종(太古宗) 육백만(六白万) 종도(宗徒)의 인도자(指導者)인 남허대화상(南虛大和尙) 세록(世綠)이 다하여 육심유삼(六十有三)의 속납으로 갑자기 사세열반(辞世涅槃)하다니 이 무슨 변고( 変故) 인가?
노납(老納)의 귀를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일찍히 남허대화상(南虛大和尙) 동진출가(童真出家)하여 강원의 사•대교(四•大敎) 와 종입전문(宗立專門)을 졸업(卒業) 도일(渡日)하여 구지대학교학부(駒迟大学敎学部) 졸업(卒業) 하고 법정(法灯)을 밝히고 법당(法幢) 세운 후(後) 지간금(至干今) 종단행정(宗団行政)
전염(專念)하여 태고종(太古宗) 등록후(登錄後) 초대종회의장(初代宗会議長) 과 종무총장(宗務総長) •종무원장(宗務院長)을 역임 하였다.
불조(仏祖)와 종조(宗祖) 법통법맥(法通法脈)을 이어받아 전법륜(転法輪) 사자(使者)로서 법성(法成)을 수호(守護) 하던 남허대종사(南虛大和尙)는 이제 우리와 유명(幽明)을 달리하여 관(棺)속에 누워있으니 이무슨 여순(予盾)이며 이무슨 역리(逆理) 인가?
오호통재(嗚呼痛哉)라. 망구십(望九十)의 노납( 老納)은 노구(老躯
) 법당(法幢)을 지키고 있는데 역부력강(年富力強)한 남허화상(南虛和尙)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사고팔고(四苦八苦)가 불조(仏祖)의 교법(敎法)이라고는 해도 법의 일대손실 (一大損失)이요 종도(宗徒)의 비탄지극(悲嘆之極)이라 온후(溫厚)한 상호(相好) 성음(声音)을
금세(今世)에서는 다시 접(接)할 수 없으니 弥陀刹(미타찰)에서나 다시 대(対)하리.
원(願)하옵컨대 본사(本師) 석가모니의 불(仏)의 자비(慈悲)과 서방교주 아미타불(西方教主 阿弥陀仏)의 대원(大願)으로 오종(吾宗)의 하옵컨대
남허대종사(南虛大宗師)의 영가(靈駕)를 가호(加護)하시어 안양정토(安養淨土)에 상품연태(上品蓮台) 인도왕생(引導往生)케 하옵소서.
남허보살(南虚菩薩)의 영(英) 또한 피토(彼土)에서 호종호법신( 護宗護法神)이 되어 우리 태고종(太古宗)과 육백만종도(六百万宗徒)들을 수호(守護)하소서.
끝으로 종하( 宗下) 사부(四部) 대중(大衆)에게 하노니 지도자(指導者)를 잃은 비통(悲痛)은 비록 크지마는 열반(涅槃)하신 대덕(大徳)의 뜻을 받들어 종단(宗団)이하므로 화합단결(和合団結)
법성수호법(法城守護) 불법홍포(仏法弘布)에 정진(精進)할진 저.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釈迦牟尼仏)
나무아미타불(南無阿弥陀仏)
한국불교태고종(韓國佛敎太古宗)
1976년 11월6일
정조(宗正) 국묵담(鞠默潭)
永訣辞(영결사)
오늘 세존입멸( 世尊入滅) 2천 5백 2십 3年11月6日 본종(本宗)
전총무원고 남허대종사( 前総務院長故 南虛大宗師)
영전(靈前) 삼가 영결(永訣)의 말씀을 올리자니 먼저 가슴에 스미는 애도(哀悼)의 정(情)이 앞서서 비탄( 悲嘆)을 금(禁) 할 수 없읍니다.
였던
종단(宗団) 지도자(指導者) 남허(南虛).
학덕(学徳)을 겸비(兼備)하시고 탁월(卓越)한 논(綸)을 지니신 스님의 원만(円満)하신 모습과 온화(温和)로운 성해(声咳)가 아직도 우리의 눈에 선하고 귀에 들리는듯 합니다.
총무원사무실(総務院事務室)이나 이 법륜사(法輪寺) 법당(法堂)
에 오늘도 어디엔가 스님이 계신 것만 같습니다.
스님에게서 전수(伝受)받은 이 꽃에는 아직도 스님의 체온(体温)이 남아있는 듯도 하여 이 가사(袈裟)를 수(収)하고 있는 소납(小納)의 마음은 터지는 듯이 슬프기만 합니다.
63 세의 한창 일할 수 있는 년세(年歲) 에 무엇이 급하여 6백만( 사부(四部大衆) 을 뒤로 두고 그리도 빨리 세록(世綠)을 훌훌히 가셨습니까? 가을 바람 낙엽(落葉)만 떨어져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스산하게 하고 있습니다.
유소시(幼少時)에 금강산(金剛山) 유첨사(榆帖寺)에서 출가득도(出家得度) 하여 사교(四敎)•대교(大敎)를 이수(履修)한후 다시 혜화전문(恵化專門) 일본(日本) 구택대학(駒沢大學)에서 수학(修學)한 그의 학식(學識)을 들출것도 없으며 육영사업(育英事業) 투신( 投身)한 경력(経曆)이나 각사주지(各寺住持) 포교사(布敎師)로서의 활동(活動)은 굳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한 과거( 過去) 사반세기(四半世紀)에 걸친 법이기(法離期) 애교호종(愛敎護宗) 애정(哀情)과 원력(願力)으로 법성(法成)을 수호(守護)한 일들도 재론(再論)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태고종(太古宗) 창종이후 중앙종의회의장(中央宗議会議長으로서 다음은 종승위원장(宗乗委員長)으로서 또 다시 태고종사(太古宗史)함께 한것을 회고(回顧)하여 칭송(称頌)하고 찬사(讃辞)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읍니다.
1974年 봄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던 불교중대회(仏敎中興大会)는 태고종(太古宗)의 종단발전(宗団発展)에 일대전기( 一大転
機)가 되었으며 양차(両次)의 법계고시(法階考試) 개설(開設).
년례적(年例的) 봉행(奉行)하는 방생대법회(放生大法會) 모두 스님이 초원하신 영도력(領導力)의 산물(産物)이었으며 대한불교총련합회일부회(大韓仏教総聯合会一副会) 부회장( 副會長)으로써
또한 세계불교도 우의회(世界仏敎徒 友誼會) 한일불교교류협회 회장(韓日仏教交流協会 会長)으로서 태고종(太古宗)의 위신(威信)을 국내(国內)는 물론 (勿論) 해외(海外)에 까지 널리 떨치면서 한국불교(韓国仏教)를 세계속에 심는 큰 길륜(径綸)을 펼치신 일들은 우리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대색신(四大色身) 부조(不調)하에 본인(本人)과 함께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지마는 이처럼 빨리 세록(世綠)이 다 할줄이야 누가 감히 추측이라도 하였겠읍니까?
한조각 부운(浮雲)처럼 생겨났던 생(生)이 한조각 부운(浮雲)처럼 흩어져서 다비(茶毘)의 연기속에 한줌의 재로 변(変)하게 될것이니 이 색신(色身)의 사바 세계가 이렇게 무상(無常)을 새 삼느끼며 오늘 영결(永訣) 유명(幽明)은 서로 달라지오나, 그러나 법록(法綠)으로서 한, 법맥(法脈)에 이어진는 마음의 세계(世界) 법(法)의 세계(世界)에서 스님은 우리와 함께
영구(永久)히 계실 것이니 남(南虛)스님이시여 고히 명목(冥目) 하옵서서.
번뇌망상(煩惱妄想) 사고팔고(四苦八苦)의 업록(業綠)에세
해탈열반(解脫涅槃)의 길에 오르신 남허(南虛)스님, 여래(如來)의 자비(慈悲)의 품에 안겨 미타(弥陀)의 인도(引導)로서
서방극라(西方極樂) 안양정토(安養淨土)에 편(便)히 쉬시옵고 스님이 거느리고 이끄시던 태고종(太古宗)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어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우리 태고종(太古宗) 승속사부대중(僧俗四部大衆)도 스님의 뜻을 따르고 유훈(遺訓)을 받들어 종풍(宗風)을 드날리어 이땅에 불일(仏日) 증휘(増輝)케하여 이 땅을 불국(仏国土化)하는 대승교화종단(大乘敎化宗団)으로서의 앞날을 다짐 하오니,
남허(南虛), 고이남채대종사(故李南采大宗師)여 저먼 천상도( 天上道)를 부디 편(便)히 쉬옵소서.
인간도(人間道)에 다시 태어나서 태고종(太古宗)의 길잡이가 도소서. 하고 싶은 말은 끝이 없으나 오직 주(炷)의 향(香)을 살라 영결(永訣)의 뜻을 부치며 합장(合掌)을 올립니다.
마하반야바라밀
仏紀2523年11月6日
약력
조사(吊辞)
己未年 秋九月은 우리에게 무한( 無限) 슬픔을 안겨주는 달입니다.
사흘전 국가원수(国家元首)의 영결(永訣)을 맞이했던 우리들이 오늘에 또 종단(宗団)의 지도자(指導者) 남허대종사(古南虛大宗師)의 영경(永訣)에 당(当)하게 되니 홍엽(紅葉)으로 물들인 산하(山河)에 비풍(悲風)의 소연(蕭然)하여 우리몸에 스며옵니다.
일찌기 불조법난(仏祖法難) 시기(時期)에 일선(一線)의 맹수(猛将
)였던 남허화상(南虛和尙)
불조(仏祖)의 혜명(慧命) 받들어 불법(仏法弘布)의 사자후(獅子吼)를 말하던 남허화상(南虛和尙)
태고종(太古宗)이 법당(法幢)을 올리면서 중앙종회의장(中央宗会議長)으로 사회봉(司会棒)을 두드리던 남허화상(南虛和尙) 종무종무총장(宗務総長)으로 총무원장(総務院長)으로 종단행정(宗団
行政)의 통사(統師)로써 지휘( 指軍)하던 남허화상(南虛和尙)
세계불교도우의회(世界仏敎徒友誼会) 한국회장(韓国会長)과 한일불교교류협의회(韓日佛敎交流協議会)의 회장(会長)으로서 한국불교(韓国仏敎)를 세계속에서 빛나게 하던 남허화상(南虛和尙)
더우기 종무총장(宗務総長) 재임시(在任時)에 영화(永華)•선암사( 仙岩寺) 거찰(巨刹) 법정(法廷) 투쟁과 폭력행사로 번져가서 종단의 누란의 위기에 직면 하였을때 그 법난중(法難中)에서 부종수교(扶宗樹敎) 애교호종(愛敎護宗)의 일념(一念)으로서 법성(法城)을 수호(守護)하고 종권(宗権) 견지(堅持)하였으니 남허화상(南虛和尙)이야말로 知•仁•勇을 겸(兼)한 법장(法将)으로
공적(功績) 종사천추(宗史千秋)에 찬연할 것입니다.
하늘은 사자(獅子)에게 뿔을 주지 않아서 이 대화상(大和尙)에게 긴
수명(寿命)이 없으니 육백만(六百万) 종도(宗徒)의 비통만이
창천(蒼天)에 감돌고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고인(古人)의
유덕(遺德) 만을 되씹어 기릴뿐입니다.
남허이남채대종사(南虛李南采大宗師) 직정(真正) 종단(宗団)의 동량이며 교계(敎界) 거성(巨星)이었습니다.
유소시(幼小時) 출가득도(出家得度)하여 강원 이력(履曆)을 모두 필(畢)하고 국내(国內)의 불교대학(仏敎大学) 외국(外国)의 불교대학(仏敎大学) 교학(敎学)을 이수(履修)하고 경륜(経綸)을 길렀으니
온후영명(溫厚英明)한 자질(資質)에 학덕(学德)을 겸비했습니다.
법난시(法難時)에는 늘 출중(出衆)한 지모(智謀)와 용기(勇氣)로서
대처(对処) 했으니 종단행정(宗団行政)에는 심신(信心)과 원력(願力)으로 미래(未來) 대비(対備)한 혜안(慧眼)이 있었습니다.
남허화상(南虛和尙)이여!
화상(和尙)이 종단행정(宗団行政)을 맡고 소납(小衲)이 입법기관(立法機関)을 맡아 항시(恒時) 이마를 맞대고 종단(宗団) 대소사(大小事) 상의(相議)하였건마는 오늘 이후 화상(和尙) 상호(相好)를 대(対) 할 수 없고 그 성해(声咳)에 접(接) 할 수 없으니
오호애재(嗚呼哀哉)라 이 또한 회자정리(会者定離)의 공도(公道)이며 생자필멸(生者必滅) 업고(業古)이던가
장충대회상(奨忠大会上)에서 사자후(獅子吼)로 토(吐)하던 화상(和尙)의 음성(音声)과 각처(各処) 수륙대제(水陸大斉)에서의 중후(重厚)한 면모(面貌)를 다시 볼 수 없으며 그 많은 종 종권수호(宗権守護)의 궐기대회(蹶起大会)에서 법음(法音)을 설(說)하던 그 모습이 오늘의 추억(追憶)속에서 전생담(前生譚)이 되어 있으니 이렇게 답답하고 이렇게 슬픈일이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제 선지식(善智識)의 지도자(指導者)는 가합(仮合)했던 사대(四大)가 일편부운(一片浮雲) 처럼 흩어져 우리 앞에 없어지고 그의 유더(遺德)과 유적(遺績)만이 남아서 종도(宗徒)들의 정신적(精神的) 지도표(指導標)가 될 뿐입니다.
남허화상(南虛和尙)이여!
모든 업고(業古)와 세연(世緣)에서 해설(解說)하여 열반적정(涅槃寂靜)속에서 안식(安息)하소서.불타(仏陀)의 자비광명(慈悲光明)과 제체보살(諸天菩薩)의 가호(加護)로 서방미타찰(西方彌陀刹) 상품상생(上品上生) 왕생안양(往生安養)하소서
그리고 금세(今世)에 못다하신 애종호교(愛宗護敎)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어 늘 우리 종단(宗団)을 지켜주소서남아있는 우리 6배만종도(六白万宗徒)들도 가신 화상(和尙)의 뜻을 받들어 홍법불포(弘法仏布)와 종단수호(宗団守護)에 정진(精進)할 것을 다짐하면서 슬프고 답답한 심사(心思)를 한줄기 향(香)과 한장의 글발로 대신(代身)
하오니 고요히 명목왕생(冥目往生)하옵소서
南無常住十方仏
南無常住十方法
南無常住十方僧
불기(仏紀) 2532年 11月 6日
韓國佛敎太古宗
中央宗會議長 •斗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