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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2016.6.2 (오전) 인천 즉문즉설 강연
수행팀 글 | 2016.06.03 15:37:08 올림 | 93,805 읽음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두 번의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부평아트센터에서, 저녁 7시 30분에는 성남시 성남아트센터에서 각각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먼저 부평구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침 9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한 스님은 10시에 부평아트센터에 도착했습니다. 강연 시작 30분 전임에도 불구하고 로비에는 많은 대중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급기야 준비된 1000석이 모두 들어차고 입장하지 못한 200여 명은 로비에서 TV 모니터 화면으로 강연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입장하지 못한 대중들에게 거듭 양해를 구한 후 강연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1000여 명의 청중들이 큰 함성과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2층에 앉은 분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2층에 계시는 분들은 제가 법문 중에는 위를 못 쳐다보니까 스님 머리만 보면서 법문 들으세요?”
“예.”
“죄송합니다. 그리고 지금 200여 명이 이 강연장 안으로 못 들어오시고 밖에서 화면을 통해 법문을 듣고 계세요. 그분들을 위해서 박수 한번 쳐주세요.
술이나 마약은 지금은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건강에 나쁘잖아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들도 마약을 섭취하거나 술을 마시는 것처럼 지금은 좋은데 나중에 나빠지는 삶을 살고 있어요. 즐거움은 반드시 괴로움이라는 과보가 따라요. 그러니 즐거움에서 벗어나야 되는데, 여러분은 즐겁고는 싶고 괴롭기는 싫고, 돈은 빌리고 싶고 갚기는 싫고, 공부는 하기 싫고 좋은 대학은 가고 싶어 하잖아요. 이게 중생의 모순입니다. 이게 윤회예요. 이게 인과이고요. 이렇게 즐거움과 괴로움은 같이 붙어있어요. 분리해서 즐거움만 갖고 괴로움은 버리고 싶은데, 분리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고뇌하는 것들도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의문을 가져야 할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여러분들이 좋아서 한 일이 괴로움이 되는 이유는 뭘까요? 예를 들어, 남편이 ‘나와 결혼하자. 나하고 결혼만 해 주면 내가 다 보살펴 주겠다’라고 맹세를 해 놓고는 결혼하고 나니 전연 딴 짓을 해서 배신감에 잠을 못 이루는 아내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남편이 왜 그럴까?’를 연구할 일이지, ‘나쁜 놈!’ 이렇게 욕할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남편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보기엔 남편이 그때는 결혼하고 싶어서 그런 마음이 들었고, 결혼하고 보니까 다른 마음이 든 거예요. 마음이라는 건 항상 일정해요? 시시때때로 바뀌어요?”
“바뀌어요.”
“그래요. 바뀌는 게 정상이에요. 그래서 옛날 속담에 ‘똥 누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누고 온 뒤의 마음이 다르다’ 라고 하잖아요. 마음이 바뀌는 건 나쁜 게 아니라 정상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뇌하는 것도 ‘괴롭다’는 것으로부터 ‘왜 괴로울까?’를 연구하는 것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부처님의 문제의식도 ‘인생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의 원인이 뭘까?’였습니다. 결국 부처님은 인생이 괴로움이 되는 원인을 밝히셨습니다. 그게 깨달음이에요. 그리고 ‘고집멸도’라는 4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괴로움의 원인을 찾고,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시키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삶, 자유로운 삶을 불교에서는 해탈과 열반이라고 합니다.
지금 강연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계시는 분들도 여기 올 때는 ‘야, 스님 법문 듣는다’ 하면서 기분 좋게 왔는데 ‘자리가 없다. 못 들어온다’고 하니까 ‘왜 자리도 마련해 놓지도 않았으면서 오라고 해!’라면서 기분이 팍 나빠졌을 수도 있겠지요. 즐거움이 괴로움으로 금방 바뀐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너무 빨리 바뀐 경우입니다.
반면에 아이 키우는 것은 지금은 좋은데 한참 있다가 괴로움으로 바뀌죠. 병에도 잠복기라는 게 있잖아요. 원인이 발생하고 결과가 나타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데, 어떤 건 금방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건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건 이 생에서 짓고 저 생에서 받는 것도 있어요.
그래서 지은 인연을 모르면 원통하고 원망도 생기지만, 자기가 지은 인연을 알면 원통하거나 원망할 일이 없는 겁니다. 누가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해서 ‘왜 나한테 돈을 달라는 거야?’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그 사람한테 돈을 빌린 거예요. 그렇게 돈을 빌린 줄 알면 갚으면서 ‘그동안 잘 썼습니다’라며 감사할 줄을 알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이치를 고뇌를 통해서 알 수 있어요. 우리가 고뇌하는 이것이 사실은 깨달음의 길입니다. 그래서 ‘번뇌 즉 보리’라고 하는 겁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괴로울 일이 없는데, 우리 중생들의 현실은 괴로움의 연속이예요. 온갖 게 다 괴로움이지요. 괴로움에 빠져서 허우적대지 말고, 그걸 잘 살펴보는 게 오늘 우리가 함께 대화하면서 할 일입니다. 인생에는 어떤 답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인생에는 답이 없어요. 다만 우리가 대화를 통해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보는 겁니다.”
스님의 여는 말씀이 끝나자 곧바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말로 온갖가지 고민들을 스님에게 물어가며 마음을 가볍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청중석에는 군인들이 20여 명 참석해 시작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에도 군인 한 분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해서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어머니를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20대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제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는데요. 저희 어머니를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지가 않아요.”
“왜요?”
“저희 어머니가 두 번 결혼을 하셨는데요, 첫 번째 결혼 때는 제가 안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저를 결혼식에 초대할 수 없었겠지만 두 번째 하실 때에는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저를 초대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네가 와봤자 뭘 할 수 있었겠느냐?’라고만 얘기하십니다. 그래도 저는 꼭 초대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질문자는 애기 하나 데리고 살다가 다시 결혼하게 됐을 때 사람들이 많은 곳에 그 애기 손 잡고 들어가고 싶겠어요?(모두 웃음)
질문자가 당시 어머니 마음을 깨달으려면 질문자도 이혼을 하고 애 손 잡고 재혼을 해봐야 돼요.(모두 웃음) 그래야 ‘아이고, 어머니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어머니한테 복수를 하려는 건 좋지 않아요. 그 심보가 못 됐어요.”
“예, 정말 어린애 같은 마음이라는 걸 저도 아는데, 제가 저희 어머니를 많이 용서하려고 애썼지만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요, 모든 면에서. 하지만 제가 어머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어머니를 인정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평소에도 잘 지내고는 있는데요.”
“질문자가 인정을 안 해도 이미 어머니는 어머니예요. 질문자가 인정하든 말든 질문자의 어머니예요. 그걸 뭘 인정을 하고 말고 해요. 질문자가 저한테 ‘법륜스님, 오늘부터 스님으로 인정해 줄게요’ 하는 거랑 똑같아요.(모두 웃음) 질문자가 인정 안 해도 저는 이미 스님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바보 같은 소리는 그만하세요. 용서할 게 없는 건데, 질문자는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잘못 생각하면 과보가 따릅니다. 무지(無知)에는 여러 가지 과보가 따르거든요.
질문자가 잘못 생각한 것을 확실하게 탁 깨우쳐서 ‘아, 내가 어머니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으려면 질문자도 어머니처럼 애기 손 잡고 재혼을 해봐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보고 깨닫고 싶어요? 아니면 미리 깨닫는 게 낫겠어요?(모두 웃음)
이걸 미리 깨달으면 그렇게 아이 손 잡고 재혼할 일이 안 일어나도 된다는 거예요. 질문자가 자꾸 그런 소리를 하면 어머니도 ‘너도 내 입장 되어봐라’ 그럴 거 아니겠어요? 보통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안 해요?”
“해요.”
“그 말뜻이 뭐예요? 자기 꼴이 되어보라는 거잖아요. 그것도 복수심이에요. 부모들이 살다보면 힘이 드는데, 애까지 말을 안 들으면 ‘너도 나중에 애 낳아봐라’ 그러죠? 이것은 ‘너도 나중에 자식 키우면서 혀가 쑥 빠지게 한번 고생해 봐라. 그러면 내 심정을 알게 될 거다’ 하는 거거든요. 그것도 복수심이에요. 그러니까 부모 자식 간에 복수심을 품고 살면 안 되지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을 위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셨다잖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어머니한테 복수해서 뭐하려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일만 생각하면 순식간에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머니가 미워져요.”
“그게 트라우마예요.”
“저는 그런 상황이라도 아이를 결혼식에 초대할 것 같거든요.”
“할 수 없네요. 질문자 뜻대로 어머니 초대하지 말고 결혼하세요. 그리고 10년 후에 질문자도 애기 손잡고 결혼식 한 번 더 하세요.”(모두 웃음)
“그런데 남자친구도 저한테 왜 결혼식을 하기가 싫으냐고 묻는데, 제가 진짜 이유는 아무에게도 말을 못 하고 있어요. 저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아니까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나는 네가 결혼식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서 우리 집에 뭐라고 얘기를 해야 되느냐?’ 고 묻습니다.
“시어머니 될 사람한테 ‘우리 어머니가 재혼할 때 나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도 어머니를 초대하기 싫어서 결혼식을 올리기 싫다’라고 얘기하면 되지요.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요. 사람이 솔직해야지요.(모두 웃음)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안 하면 사람들은 궁금하니까 물어볼 수밖에 없지요. 스님이 만약 머리카락을 기르면 사람들이 ‘왜 머리카락을 길렀어요?’라고 물을 거 아니에요. 제 입장에서는 ‘자기도 머리카락을 기르면서, 남이야 기르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니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잖아요. 특히 저를 강사로 초청하는 곳에 가보면, 대개 오전에 강연이 끝나면 점심시간쯤 되잖아요. 그러면 저한테 ‘스님, 점심식사는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요. 그걸 왜 묻는 거예요? 그냥 주면 되지요.(모두 웃음)
그냥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가져다주면 먹고 싶으면 알아서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을 텐데, 그렇게 물으니까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잖아요.(모두 웃음) 왜 식사초대를 해 놓고 먹고 싶은 걸 못 먹게 만들어요. 그러려면 아예 처음부터 채식으로 대접을 하든지요. 그러면 저한테 물을 필요도 없잖아요. 또 제가 채식을 좋아하니까 잘 먹을 거 아니겠어요. 또 육식으로 줘도 스님들이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을 텐데, ‘고기 안 드시지요?’ 하면 어떻게 먹겠어요. 그렇다고 ‘나는 먹는다. 이리 줘라’ 이러면서 먹겠어요?(모두 웃음)
사람들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하면,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관념이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스님은 머리를 깎는다’, ‘스님은 고기를 안 먹는다’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묻는 사람이 나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으로서는 물어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저는 그런 일을 거의 매일 당하고 삽니다.(모두 웃음)
그러니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결혼식을 안 하는 문화라면 질문자가 결혼식을 하든, 안 하든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질 텐데, 일반적으로 결혼식을 하는 문화란 말이에요. 스님처럼 일상적인 관념을 조금 뛰어넘는 사람들이라면 질문자한테 그런 질문을 안 하겠지요. 그런데 질문자가 볼 때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특수한 사람들이에요?”
“평범하세요.”
“그러니 당연히 묻지요. 거짓말을 할 순 없으니까 솔직하게 얘기하든지, 아니면 어머니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든지 하면 되지요.”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어머니를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든 말든 그건 질문자의 자유예요. 그런데 어머니를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는 게 질문자가 편합니다. 이 세상의 문화를 질문자 혼자 거스르려면 좀 힘들잖아요. 그리고 결혼한 뒤에 남편이 질문자와 사는 게 좀 힘들면 성질을 내면서 그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걸어올 겁니다. 예를 들어 질문자가 뭔가 문제제기를 하면 남편은 ‘네가 그러려고 결혼식도 올리지 말자고 했구나?’라거나 ‘네가 결국 나랑 이혼하려고 처음부터 결혼식을 하지 말자고 했던 거구나’라고 할 거고, 시어머니도 ‘네가 우리 아들과 안 살려고 결혼식을 안 올렸구나’라고 나올 겁니다. 사람이 마음이 좋을 땐 다 좋아 보이지만, 마음이 딱 틀어지면 온갖 걸 가지고 시비를 하게 되잖아요. 질문자가 하려는 일은 나중에 시비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질문자는 결혼식에 어머니를 초대할 거예요?”
“예.”
“결혼식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모두 웃음)
“그런데 제가 그날 웃으면서 결혼식을 해낼 수 있을지, 아직 자신이 없어요.”
“울면서 하면 되지요. 결혼식이 뭐 그리 좋은 것도 아니니까요. 요즘 이혼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죽으러 가는 길일 수도 있으니까 울면서 가야지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요? 울면서 결혼식을 치르세요. 사람들이 ‘왜 우느냐?’고 하면 ‘죽으러 가는 길이라서 그렇습니다’라고 얘기하면 되잖아요.(모두 웃음)
질문자에게는 어머니의 까르마가 흐르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해도 어머니처럼 될 확률이 훨씬 높아요. 그러니까 핑계거리, 시비거리를 만들지 마세요. 질문자가 하는 걸 보면 벌써 그렇게 갈 작은 씨앗을 뿌리고 있어요. 사실 결혼식을 하고, 안 하고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질문자의 경우에는 결혼식을 올리는 게 낫습니다. 왜냐하면 질문자에게는 어머니를 모시는 결혼식이 재앙을 미연에 막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식을 울면서 하면 재앙이 우는 쪽으로 나타나고, 웃으면서 하면 웃는 쪽으로 나타나요. 그러니 어머니를 모셔와서 웃으면서 결혼식을 올리면, 그것은 질문자가 가진 까르마를 극복하는 게 됩니다. 질문자가 어머니와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어머니를 결혼식에 초대 안 하려고 하는 까르마를 갖고 결혼을 하게 된다면, 시어머니에게서도 자기 어머니 비슷한 모습을 봤을 때 질문자는 못 살고 이혼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그걸 질문자가 미리 이겨내면 시어머니한테서 그런 모습을 봐도 ‘그 정도야, 뭐’ 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어머니를 모시고 웃으면서 결혼식을 올리면 그게 질문자에게는 약이 되는 거예요.”
“어머니를 결혼식에 초대하겠습니다.”(모두 박수)
“예, 그렇게 해서 질문자는 애기 손잡고 결혼식에 안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아요. 그때 가서 깨달을 게 뭐 있어요? 오늘 깨닫고 치우세요. 알았지요? 오늘 질문 잘하셨어요. 결혼식 두 번 하면 돈만 많이 들어요.(모두 웃음)
그리고 질문자가 혹시 두 번째로 결혼하게 되면 그때는 결혼식을 안 해도 되고, 어머니도 초대 안 해도 돼요. 그러니까 이번에 초대하고 끝내세요. 그때 가서 또 초대하려고 하지 말고요. 저런 사람은 꼭 두 번째에는 초대한다니까요.”(모두 웃음)
스님의 재치있으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대답에 청중들은 넋을 잃고 웃었습니다. 걱정스런 눈빛이 가득했던 질문자도 활짝 웃었습니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마음이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질문자가 어머니를 결혼식에 초대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자 청중들은 뜨겁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어서 6명이 더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와서 질문하기를 기다린 26살의 젊은 여성은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답답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고, 두번째 질문자는 별거 중인 남편이 아들과 같이 지내고 있는데 자기 주장이 강한 남편 아래에서 소심한 성격의 아들이 스테레스를 많이 받을까봐 걱정된다고 질문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사춘기 때 학교 적응을 못했던 아들이 곧 군입대를 하게 되는데 혹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질문했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고1 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 때문에 지금도 남편과 아이에게 사고가 나지 않을까 불안하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물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천당과 지옥이 정말 있는 것인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질문했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사별로 무척 힘들어하는데 자식으로서 어떻게 위로를 해드리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벌써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질문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남았고, 강연을 마치려고 하니 청중들도 아쉬워하는 마음을 강하게 내비쳤습니다.
스님은 “2시간 정도 더 할까요?”라고 묻자 청중들도 “네!” 하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한 사람도 집에 안 가겠다고 약속하면 저도 할 수 있어요”라고 되물었고, 그제서야 청중들도 수긍을 했습니다.
아쉽지만 여기까지만 하고 스님이 마지막 정리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조건 속에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남자든, 여자든, 과거의 경험이 어땠든, 무슨 일이 있었든, 지금 남편이 술을 먹든 바람을 피웠든, 애가 공부를 안 하든, 그런 조건에 관계없이 모두 다 행복할 수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그 권리 행사를 못 하고 있어요. 자기에게 있는 그 권리를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은 그 권리를 팽개치고 괴로움에 빠져있습니다. 구슬이 흙속에 떨어진 뒤에 흙에 묻혀서 아무도 그게 구슬인지 모르고 있는 것처럼 행복할 수 있는 인생인데도 이유를 끝없이 대면서 불행하다는 겁니다. 남편이 죽어서, 어머니가 이혼해서, 군대에 있을 때 상사가 괴롭혀서... 이렇게 이유를 대면서 자기 불행을 합리화합니다. 얼마나 괴롭고 싶으면 없는 이유도 갖다 붙이면서 괴로워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러죠. ‘그러면 괴로워해라. 너가 괴롭고 싶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모두 웃음)
그런데 그게 부처님과 저의 수준 차이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이 아무리 괴로움을 합리화해도 끝까지 ‘아니다, 네가 부처다’, ‘아니다, 네가 부처다’라고 말씀하시고, 저는 여러분이 한 세 번만 되풀이하면 ‘그래, 계속 중생해라. 네가 그러고 싶다는데 어쩌겠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잊지 마시고 그 권리를 향유해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군대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혼자라서 행복하다’, ‘스님은 결혼도 한번 못해 봤는데 나는 결혼해서 행복하다’, ‘나는 결혼을 2번이나 해 봤다, 나는 3번째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고를 가지면 여러분들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해질 겁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행복할 권리를 강조하는 스님의 마지막 메시지에 오랫동안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박수는 스님이 무대 아래로 내려올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강연장을 나가며 스님은 질문한 분들에게 다가가 한 분 한 분에게 “힘내세요!”라며 악수를 건네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무대 위에서는 때론 호통을 치기도 했는데,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는 환한 웃음을 내비치며 따뜻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호통을 친 것도 모두 애정이 듬뿍 담긴 것이었음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로비에서는 책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잠시라도 가까이에서 스님 얼굴을 보고자 사인회장은 순식간에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 속에 스님을 담고자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자기 이름도 써달라, 손도 잠깐 잡아달라, 카메라를 보며 같이 셀카를 찍자 등 대중들은 온갖 요구를 스님에게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님은 오직 웃으면서 사인만 했습니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빠른 속도로 사인회를 마친 후 오늘 강연을 준비한 인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인천정토회 산하에는 부평법당, 인천법당, 강화법당, 송도법당이 있는데, 오늘 강연은 부평법당이 중심이 되어 준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법당에서도 지원을 나와 무사히 강연을 치러냈습니다. 더군다나 광명법당과 김포법당에서도 지원을 나왔다고 해서 스님도 더욱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후 스님은 뒤돌아 서서 봉사자들 각각이 어느 법당 소속인지, 불교대학, 경전반을 다니고 있는지 모두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수행 열심히 하세요” 라고 격려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스님의 밝은 얼굴에 봉사자들도 그동안의 노고가 모두 녹아나는 듯 했습니다.
부평아트센터를 출발한 스님은 다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김밥 한 줄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3시간 가량 강연을 하느라 허기가 지셨는지 김밥을 아주 맛있게 드셨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성남시 성남아트센터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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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2 (저녁) 성남 즉문즉설 강연
수행팀 글 | 2016.06.04 10:38:17 올림 | 103,406 읽음
안녕하세요? 오전에 인천시 부평구에서 열렸던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는 성남시 분당구 성남아트센터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오후 6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한 스님은 6시 30분에 강연이 열리는 성남아트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이 다 되어도 여전히 햇살이 뜨거웠지만, 200여 명에 가까운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습니다. 강연 시작 2시간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강연장 입구가 북적대기 시작했습니다. 좌석이 지정된 입장권을 미리 배부하였기에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부스와 홍보지를 관심있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용인의 한 군부대에서 온 23명의 장병들은 포스터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기도 해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장병 한 명에게 어떤 이유로 왔냐고 묻자 “희망자를 받아 힐링을 받으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일찍 강연장에 도착한 스님은 대기실에서 이재명 성남시장님과 잠시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이재명 시장님은 “정부가 당장 내년부터 경기도 6개 시에서 지방 예산의 일부를 빼앗는 조치를 취해 건전한 지방 재정을 훼손하려 한다”며 이에 반대해 “다음주부터 단식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하면서 스님에게 단식을 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는 시장님에게 스님은 어떤 문제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한편으로 단식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번 즉문즉설 강연은 무대의 품위에 맞게 성남시립 남성 중창단이 멋진 성악 공연을 보여주며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스님은 이재명 성남시장님과 함께 성남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공연장으로 입장했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자 시장님은 인사말을 사양하다가 거듭된 요청에 짧게 자신의 근황을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의 귀한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제가 줄이면 안 되잖아요. 기회를 주시니까 짧게 인사만 올리겠습니다. 스님께서 단식 전문가이신데, 저도 다음주부터 단식을 하게 되어서 스님께 단식하는 법을 전수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좋은 시간 보내고 가시기 바랍니다.”
시장님이 짧게 인사말을 하고 자리에 앉자 스님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스님이 등장하자 1,2,3층을 가득 메운 2000여 명의 성남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단식에 들어가는 시장님에게 단식에 대한 조언을 해주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3층까지 있는 2000석의 좌석이 가득 찼고, 늦게 온 60여 분은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는데요, 오전에 인천 강연에서는 1000석이라 돌아간 사람들이 많아 스님이 직접 인사를 하고 사과의 말씀을 전했다고 하면서 그래도 여기는 자리가 넉넉해 다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술을 공연하는 이곳에서 인생 예술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하며 여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보면 내가 좋아서 했는데 괴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결혼도 내가 좋아서 했는데 살다 보면 괴로워요. 아이도 내가 선택해서 낳았는데 키우다보면 괴로워요. 취직도 내가 선택해서 했는데 직장 다니면 괴로워요. 결혼할 때도 축하받고, 애 낳을 때도 축하받고, 취직했을 때도 축하한다는 소릴 들었는데도 살다 보면 죽겠다고들 해요. 가게나 사업을 여는 것도 내가 원해서 했고, 주위 사람들이 화환을 보내주면서 축하도 해줬는데 나중에는 후회가 되고 괴로워요. 이게 좀 모순이죠. 누가 하란 것도 아니고 자기가 원해서 했잖아요. 그런데도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스님이 될 때 제가 원해서 된 게 아니에요. 저는 안 하려고 1년을 발버둥 쳤는데, 물론 끝에 가서 저도 동의를 했으니 완전 강제는 아니었지만, 스승님께서 반강제로 스님이 되도록 만들었어요. ‘너는 스님이 돼야 한다’ 이렇게 찍혀서 됐는데, 이것도 오래 해보니까 할 만해요. 이제는 안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딱히 지금 다른 걸 할 것도 없고요.(모두 웃음)
이렇게 여러분과 저를 비교해 보면 참 재미있잖아요. 저는 억지로 했는데 지금 만족하고 살고, 여러분들은 자기가 좋아서 했는데 지금 후회하고 살잖아요. 인생이 왜 이럴까요?
부처님도 어느 날 농경제에 참석했다가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광경을 보고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가 죽어야 할까? 같이 사는 길은 없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부모님한테 물어봐도 모르고, 선생님한테 물어봐도 몰라요. 어떻게 하면 내가 이기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쳐주는데, 어떻게 하면 같이 살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그래서 그 길을 찾아서 왕궁을 떠나신 겁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들도 인생의 고뇌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번뇌 즉 보리(煩惱 卽 菩提)’, 즉 ‘번뇌가 곧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힘들고 어려운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대면 고통스럽지만 거기에서 ‘왜 이럴까?’ 하고 잘 살펴보면 깨달음의 길, 진리의 길, 참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그 괴로움에 빠져서 하소연을 하는데, 그 괴로움을 소재로 삼아 잘 살펴보면 진리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첫째, 이런 인생의 고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둘째,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는데 그 의문을 함께 풀어보고자 합니다. 자, 그럼 시작해보죠.”
스님은 반강제로 스님이 되었음에도 즐겁게 잘 살고, 우리들은 내가 원해서 결혼을 했는데 왜 괴로워하느냐는 이야기에 시작부터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청중의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총 8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집이 가난해서 자수성가했지만 자꾸 간섭하는 어머니 때문에 괴롭다는 20대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겠습니다. 스님의 재치있는 답변에 청중석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사이가 무척 안 좋습니다. 저희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저는 자수성가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돈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대학교 4학년 때 과 수석을 해서 15만원만 내면 중국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우수 학생에 뽑혔는데, 그 15만원이 없어서 결국 못 갔습니다. 그런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살다보니 먹고 살만해지자마자 해외여행을 다니고 싶어져서 여러 나라를 놀러 다녔습니다. 다녀오니까 부모님이 엄청 야단을 치셨어요. 저는 집에 돈 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가고 싶었다’라고 하면서 참았습니다.
완전히 인연을 끊게 된 계기는 올해 2월에 고급 승용차를 산 것입니다. 정말로 타보고 싶었어요. 이 때도 부모님께 돈 한 푼 달라는 소리를 안 했고, 오직 제 돈으로 샀어요. 그런데 또 집에서는 ‘겉멋 들었다’, ‘건방지다’ 라고 하는 겁니다. 저도 참았던 게 터져서 ‘내가 언제 집에다가 십원 한 푼 달라고 그랬냐? 왜 내 인생에 관여를 하느냐?’ 하면서 싸웠어요. 그 때 이후로 지금은 연락도 안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 마음이 너무 편안합니다. 그런데 자식 된 도리로서는 아닌 것 같아서 스님께 질문 드립니다.”
“몇 살이에요?”
“28세입니다.”
“28세면 성인이니까 어떤 길을 가든 자기가 결정하면 돼요.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일,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는 일, 성추행이나 성폭행하는 일, 거짓말하거나 욕설하는 일,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부리는 일만 안 하면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그 대신 부모도 부모 좋을 대로 생각할 자유가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자수성가했다고 말하지만 어머니가 안 낳아줬다면 태어날 수도 없었잖아요. 질문자는 남자이고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여자가 아기를 뱃속에 갖고 있는 9개월 반 동안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 얼마나 아픈지 알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배를 갈라서 낳고 진통제도 발달되어 있으니까 통증을 잘 모른다는 것 같긴 해요.(모두 웃음) 그렇게 아기를 한번 낳아보면 막 남편 욕을 하고 다시는 아이 안 낳는다고 하는데 1년쯤 지나면 또 잊어버리고 낳는대요.(모두 웃음) 또 아이를 낳은 뒤에도 오줌 똥 가리도록 키우는 건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도 못할 거예요.
질문자도 이제 결혼해서 한번 키워보세요. 보통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뭐 자수성가했다고요? 아이고, 진짜 시건방지네요.(모두 웃음)
학교 다닐 때 다른 친구들은 집에서 학비를 대줘서 다녔지만, 나는 내가 돈을 벌어 다녔다고 해서 ‘나는 집에 신세진 거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저도 자수성가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희 집 형제들이 하나같이 다 부모를 애먹였어요. 그래서 저는 진짜 하나도 애를 안 먹였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절에 들어가서 그 이후로는 집안 재산을 손실시킨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무슨 애를 먹였겠느냐?’ 이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아들들이 다 공부를 잘해서 크면 뭐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고 주위에서 부러워들 했는데, 저희 아버지 표현대로 ‘면서기 하는 놈도 한 놈 없다’고 할 정도로 다들 속을 썩였다고 이야기해서 제가 저도 모르게 ‘어머니, 저는 애를 안 먹였죠?’ 이랬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네가 애간장을 최고로 많이 녹였다!’라는 거예요.(모두 큰 웃음)
저는 그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애간장을 제일 많이 녹였대요. 제가 어릴 때 절에 들어간 게 부모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자수성가했다는 소리를 못하는 거예요.(모두 웃음) 질문자처럼 생각한다면 저도 자수성가했다고 큰소리칠 수 있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장학금 받고 아르바이트 해서 공부했기 때문에 집의 돈은 진짜 1원도 갖다 쓰지 않았어요. 쌀은 조금 갖다 먹었지만요. 그래서 형제 중에서 저는 정말 애 안 먹인 줄 알았는데 정작 제가 제일 부모 애간장을 태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면 안 돼요. 저도 젊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건방진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그렇게 어렵사리 공부를 시키고 어쨌든 키워줬으니 돈이 좀 생겼으면 부모님을 먼저 챙겨드렸으면 좋았을 거예요. 부모님부터 먼저 해외여행을 시켜드리고, 차도 부모님부터 한 대 사드린 뒤에 질문자가 차를 사고 해외여행을 갔으면 이런 소릴 안 듣지요. 그런데 부모는 놔두고 자기만 덜렁 갔다 오고 하니까 부모가 잔소리를 하는 거예요.(모두 박수)
‘그렇게 해외에 돌아다닐 돈이 있고, 그렇게 차를 살 돈이 있으면, 부모 어려운 거나 좀 해결해주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항상 집을 사든 뭘 사든 부모님에게 더 좋은 걸 사드리면 이런 문제가 없어요. 집도 40평짜리는 부모님 사드리고, 나는 28평짜리에 살면 부모님이 잔소리하지 않아요.(모두 웃음)
시어머니 모실 때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봐서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해 점 찍은 남자라면 길 가던 다른 여자가 봐도 괜찮은 남자인데, 그런 남자를 만든 여자는 얼마나 자랑스럽겠어요?(모두 웃음) 그런데 그걸 빼앗아갔으니 가슴에 말 못할 응어리가 있는 거예요. 시어머니는 항상 마음 속에 약간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며느리에게 삐딱하게 말을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침을 찌르는 말을 해요. 그럴 때 ‘어머니, 죄송합니다’라고 받아주세요. 마음 속으로는 ‘당신의 귀한 아들을 빼앗아가서 죄송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됩니다. 또 ‘이렇게 좋은 아들을 키워서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면 고부간에 갈등 생길 일이 없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며느리한테 어떤 마음을 내야 할까요? 애를 키워보면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은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 ‘아이고, 우리 아들하고 살아주기만 해도 고맙다’라고 해야죠.(모두 웃음)
이렇게 생각하면 갈등이 생길 일이 없는데 다 자기 생각만 하는 거예요. 앞의 질문자들도 보면 전부 자기 생각만 하잖아요. 교회 가면 자기 종교만 옳다 하고 절은 다 귀신 믿는 곳이라고 하고, 절에 가면 또 자기만 옳다 하고, 같은 교회도 교파 따라 다 다르고, 절도 종파 따라 또 다 다릅니다.이래서 이 세상에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처럼 어머니가 잔소리할 때 질문자가 ‘어머니가 왜 저러지?’ 하고 생각해보니 ‘아, 내가 은혜를 먼저 갚지 않았구나’ 이렇게 알았다면, 앞으로 어머니가 또 그럴 때 ‘아이고,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렇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또 ‘그 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해요.
그리고 결혼하면 더 힘들어질 테니까 총각일 때 갚을 걸 빨리 갚아야 해요. 이런 상태에서 결혼하면 고부간의 갈등이 심해서 부인이 힘들어요. 그러니까 미혼일 때 갚을 건 딱 갚고, 결혼한 뒤에는 딱 끊어야 해요. 결혼한 뒤에는 이제 부모가 뭐라고 해도 신경을 안 쓰고 내 가족만 신경을 써야 합니다. 나는 안 주려고 하는데 부인이 ‘그래도 어머니 드려야죠’ 하면 부인이 시키는 만큼만 하면 돼요. 그러면 부인하고 갈등이 없어요.
그리고 결혼한 뒤에는 어머니가 뭐라고 뭐라고 하면 ‘어머니, 그러면 총각으로 계속 살까요? 어머니가 아이 둘 키워주실래요? 요새 여자들은 쉽게 가버린다는데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떡하라고요? 그러니 어머니는 가만히 계세요’ 이렇게 말해야 해요.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좀 잘해놔야 결혼한 뒤에 이렇게 이야기하면 먹히는데, 결혼하기도 전에 벌써 저러면 안 돼요.”(모두 웃음)
“네.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겠습니다.”(모두 박수)
“어머니는 질문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부모들은 자식이 잘 되면 자랑하고 싶잖아요. 반지라도 하나 사서 끼고 동네 할머니들한테 ‘아이고, 이거 우리 아들이 사줬다’ 하고 자랑하고 싶고, 시골에 다니는 조그마한 전동차라도 하나 사서 ‘아이고, 우리 아들은 이거 사줬다’하고 자랑하고 싶은 거예요. 노인들은 이런 재미로 살아요. 그런데 자기가 자수성가했다고요? 아이고, 참. 그러니까 제가 아들 낳고 키우지 말라는 거예요. 저는 영리한 사람이니까 저런 아들 안 보려고 애초에 안 낳았어요.(모두 웃음)
부모에게 매여 살면 안 돼요. 자식은 부모의 노예가 아니니까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은 경청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부모 마음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부모님이 하시는 말을 잘 들어드리고 위로를 해드리면 돼요. 눈치는 보지 말고요.
질문자가 차를 산 것에 대해서는 ‘그래도 내가 내 차 사기 전에 엄마 차를 먼저 사드렸으면 좋았겠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차를 먼저 사드리면 좋았겠지만, 이미 차를 사 버렸으니 어머니를 계속 좀 태워드리세요. 차 산 기념으로 주말마다 가서 어머니를 태워드리고 ‘이거, 엄마 때문에 샀어요’ 이렇게 말해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차 샀다고 부모가 한 마디 했더니 관계도 딱 끊어버렸죠? 그러면 안 돼요.
이렇게 부모님과의 관계를 잘 조율해야 합니다. 아들이라서 그러라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가 결혼할 때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가 축하해주는 게 낫잖아요. 저렇게 관계 끊고 나중에 부모 없이 결혼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부모와 관계를 끊고 살면 마음이 안 좋아요. 잔소리를 안 들으니 편하기는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마음에 걸려요.
그러니 부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알겠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 이렇게 대답하고, 내 마음대로 하면 돼요.(모두 웃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이러지 말고요. 부모는 그런 말이 하고 싶다는데 그걸 갖고 왜 싸워요. 이처럼 사는 데 약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라는 말은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알겠습니다’라는 뜻이에요. 이렇게 어머니 마음을 이해해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니 전화도 하고, 가끔 찾아가고, 잔소리하면 좀 들어주세요. 부모님은 말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가난하게 살아온 어른들은 부드럽게 말을 잘 할 줄 몰라요. 그래서 자식이 와서 반갑다고 나름 말을 하는데 자식이 들을 때는 잔소리하는 걸로 들리는 거예요. 엄마 마음은 잔소리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밖에 배운 게 없어서 말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잘 들어드리고, 내가 좀 듣기 싫거나 힘들면 내색하지 말고 ‘어머니,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오늘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빨리 가겠습니다’ 이러고 오면 돼요.(모두 웃음)
부모님 찾아뵐 때는 항상 이렇게 하는 게 좋아요. ‘어머니, 집에 잠깐 들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바빠서 잠시만 들렀다 가야 합니다’ 항상 이렇게 하고 들리세요. 그래서 괜찮으면 좀 더 있으면 돼요.(모두 박장대소)
연장하는 건 괜찮거든요. 미리 말을 해두었으까 한 시간쯤 있다가 ‘안 되겠다, 내 수준이 안 된다’ 싶으면 가도 돼요. 그런데 애초에 말은 ‘하루 있겠다’, ‘이틀 있겠다’ 해놓고서는 반나절 만에 못 견뎌서 가버리면 서로 마음이 찜찜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이렇게 ‘잠깐 들렀다 가겠습니다’ 하고 미리 이야기하세요. 가봐서 괜찮으면 조금 더 있으면 돼요. 특히 관계가 안 좋을 때는 관계 개선에 너무 욕심내면 안 돼요. 그렇게 해야 관계 개선이 좀 쉽습니다. 너무 한꺼번에 개선하려 들지 말고요.” (모두 박수)
“네.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수성가했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그 표현이 얼마나 오만한 표현이였는지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질문자도 스님의 답변에 공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바로 전화하겠다고 대답하는 질문자에게 청중들도 크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외에도 7명이 스님에게 더 질문을 했습니다. 아내가 마마걸인데다가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이 무척 힘들었는데 딸마저 이런 부모를 닮아 고집스러운 마마걸이 될까봐 걱정된다는 남성분,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성질 때문에 가족들과 갈등이 생긴다며 어떻게 성질을 고칠 수 있는지 묻는 40세 여성, 우울증이 있는 27세 아들에게 어떻게 해줄수 있는지를 질문한 장애인 어머니,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고 있는데 거래처에 돈을 주지 못해 번번히 사죄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괴롭다고 하소연한 한 여성분의, 부모님 대신 학교를 보내준 친정오빠의 회사를 빚갚는 마음으로 20년간 다녔는데 언제까지 계속 빚을 갚아야 하는지 물은 중년 여성, 혼전동거 중인 남성이 어머니와 애착이 너무 강해 결혼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라는 42세 여성까지 다양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펼쳐졌습니다.
질문자를 위한 심리적인 도움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사회에 대한 실용적인 조언까지 해준 스님의 답변에 청중은 진지한 분위기와 유쾌한 분위기를 오가며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 당신의 삶을 예로 들면서 재미있게 다른 관점을 짚어주실 때면 청중석에서는 박수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한편의 재미있는 연극 같았던 강연을 듣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예정된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습니다.
스님의 목소리가 잠기기 시작했지만 마지막으로 한 명의 질문을 더 받기도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고민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자 하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정리 말씀으로는 행복할 수 있는 길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이래서 괴롭다, 저래서 괴롭다’며 질문하신 분들도 이야기하다 보니까 ‘별 일 아니네’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래요. 별 일 아니에요. 등산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면 몸은 힘들어도 갈 만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가면 ‘산이 왜 이리 가팔라? 길은 왜 이렇게 내놨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이 오는 거야?’ 이렇게 올라가는 내내 구시렁댑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부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매사에 이래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긍정적 사고로 좀 바뀌어야 해요.
방금 전 성질 더러워서 괴롭다고 질문한 분도 ‘성질은 더럽지만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걸 아셔야 해요. 행복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성질을 고치면 좋지만, 못 고쳐도 행복할 수가 있어요. 내가 성질 더러운 줄을 알아서 다른 사람이 뭐라 하면 그걸 인정하면 돼요. 화를 벌컥 내었다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성질을 못 참아서요’ 이러면서 자기 머리를 콱 쥐어박으면서 ‘야, 이 년아, 네가 문제야!’ 이렇게 이야기하면 상대편이 웃어요.(모두 웃음)
처음엔 ‘뭐 저런 게 다 있나?’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면 그냥 웃고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성질을 내도 다른 사람들이 ‘아이고, 저건 성질이 급해서 저러는 거지. 뭐’ 하고 용인해주고 웃으며 지나갑니다. 그러니 이걸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세요. 그러면 눈치보고 살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이렇게 좀 가볍게 살아간다면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모두 큰 박수)
스님으로부터 행복의 기운을 듬뿍 받은 청중들은 다시 한 번 큰 함성과 박수갈채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강연장 입구에서는 스님의 새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는데요. 스님은 강연장에서 사인회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군장병들에게 “고생한다”고 말을 건네면서 한 명 한 명에게 격려의 악수를 해주었습니다.
사인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줄은 통로를 막을 정도로 이어졌지만, 스님은 피곤한 기색 없이 웃음을 건네며 사인을 해 주었습니다. 사인을 받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도 한결같이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책 사인회에서 만난 질문자들의 소감을 물었습니다. 자신의 성격을 물려받은 딸과 마마걸인 부인에 대해 고민이라던 첫번째 질문자는 "자기 모순을 직시하게 되었고, 다른 분들의 질문을 통해 더 많이 배웠다"고 답하였고, 자신이 받고 자란 한국의 교육과 부딪히는 미국의 성관념 속에서 갈등하던 유학생인 다섯 번째 질문자는 "몇 년 동안 고민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하면서도 얻지 못한 답을 얻어서 편안해 졌다.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이다."라고 밝은 얼굴로 답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분당정토회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스님은 활동 단위와 소속 법당별로 손을 들어 보라고 하면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드는 봉사자들은 "와!"하고 웃으며 늦은 시간의 피로를 날려 보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춘천 청소년수련관에서 춘천 시민들과 함께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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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3 춘천 통일이야기 강연
수행팀 글 | 2016.06.05 05:06:11 올림 | 6,980 읽음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춘천에서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춘천 시민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갑자기 높아진 기온 탓에 다소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춘천 청소년수련관입니다. 오후 3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오후 6시가 다 되어 춘천에 도착했습니다.
춘천은 의암호, 춘천호, 소양호로 인해 호반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여서 스님은 “호반의 도시에 왔는데 호수를 한번 구경하고 가야지” 라고 했지만, 가는 길에 정체가 심한데다 강연 전에 사전 간담회가 약속되어 있어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호수 구경은 하지 못하고, 국수 한 그릇만 겨우 먹고 청소년수련관으로 향했습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청소년수련관에 다다를 무렵 그 좁은 언덕길에 하늘색 조끼를 입고 주차 안내를 하는 봉사자들이 가장 먼저 스님을 반겼습니다. 더운 날씨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는 봉사자들에게 스님은 창문을 열고 “수고해요” 라며 환한 웃음으로 격려했습니다.
300석 규모의 소박한 강연장은 50여 명의 봉사자들로 가득했습니다. 봉사자는 춘천을 비롯해 양평, 원주, 안산, 성남, 홍천, 서울, 안양, 양주,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통일의병으로 이뤄졌습니다. 통일의병들의 열기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30여분 일찍 도착한 스님은 작은 강당에 가득 찬 봉사자들을 보며 “왜 이렇게 봉사자가 많아” 하며 웃을 정도였습니다.
강연 전에 사전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간담회에는 귀농학교 교사, 소설가, 춘천 친환경연합회 회장님, 언론인, 민주민생 춘천포럼, 북한강생명포럼 등 춘천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 인사분들이 참여했습니다.
참석자들 중에 귀농하신 분들이 있어 대화는 자연스레 농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습니다. 농촌이 붕괴되어 가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자 스님도 평소 생각하고 있던 아이디어를 하나 말했습니다.
“제 생각은 리 단위로 마을마다 농업회사를 하나씩 만들면 어떨까 해요. 한 리를 기준으로 땅을 가진 노인들이 주식처럼 자기 땅을 투자하는 겁니다. 땅은 개인이 소유하고, 경작은 농업회사가 하고, 투자한 면적만큼 생산된 농산물을 직접 배분하거나 팔아서 돈으로 배분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농업회사를 하나 설립해서 젊은이들이 회사에 취직해서 생산 활동을 하고, 생산물을 주식 배분하듯이 배분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거예요. 큰 트랙터 같은 많은 장비들을 회사가 소유하고, 그런 기계들을 젊은이들이 운행하게 하는 겁니다.
이런 생산 활동을 할 젊은이들은 보충역들을 활용할 수도 있어요. 전에는 방위, 공익근무요원이라 불렀는데 요즘은 사회복무요원이라고 하죠? 이런 사람들을 면사무소나 파출소에 배치해서 공무원들 보조나 시키지 말고, 농촌에 보내서 한 3년 정도 대체복무를 하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보통 젊은이더러 농촌에 내려가라고 하면 어렵거든요.”
“탈영할 것 같아요.” (모두 웃음)
“가서 풀을 뽑고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요즘은 농사가 자동화되어서 대부분 기계가 작업하고, 사람은 그 기계 운전을 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3년 복무하고 제대한 뒤 다른 회사에 썩 취직할 곳이 없을 경우 10명 중 1명 정도는 자기가 일했던 농촌 회사에 다시 와서 취업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도시에서 자란 요즘 젊은이들은 농사에 손대본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설령 시골에 집이 있다 하더라도 부모가 농사일에 손대게끔 하지도 않아요. 우리 세대처럼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밭을 매고 풀을 베며 농사일에 익숙해지지 않은 이상은 사실 농사라는 게 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게 3년 전도 대체복무하면서 일하면 놓촌 환경에 좀 익숙해지니까 농사에 접근하기 좀 쉬운데, 무턱대고 그냥 농사지으라고 하면 불가능해요. 그렇게 농업회사에 취직하는 거죠. 회사에 취직하는 거니까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괜찮잖아요. 이런 방식으로 극복을 해보면 어떨까 해요.
저도 시골 출신이니까 생각을 많이 해보는데, 제가 태어난 동네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저보다 한 살 많은 65세예요. 이런 추세면 앞으로 10~15년만 지나면 농촌에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시골에 내려와서 농사 지을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제가 말씀드린 것은 단지 한가지 방법이지만 어찌되었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귀농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분들도 있었고, 회의적인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농촌을 회복하고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해 이런 구상도 하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정토회에서 은퇴하면 마지막으로 해보려고 하는 게 일과 수행의 통일, 다시 말해 농사 짓기와 수행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하는 사람은 주말에 농장에 들어와서 2박 3일 동안 체험하고 가는 거예요. 앞으로 주4일 근무로 바뀔거예요. 월급을 조금 낮추더라도 일 나누기를 해서 주4일 근무를 하게 되면 3일은 유휴노동력인 셈이니까 이것을 활용해서 일과 수행, 여가활동을 결합한 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거예요.
그냥 일하라고 하면 어려우니까 처음 들어오면 먼저 법문 듣고 명상도 좀 하고, 농업전문가에게 설명을 들어요. 모종 만들고, 밭고랑 쳐놓는 작업 같은 건 다 농업전문가가 하고, 자원봉사자들은 농법에 대한 비디오를 보면서 사전교육을 받는 거예요. 교육받고 나면 2~3시간을 일한 뒤 약간의 휴식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다시 일하고, 저녁에는 또 법문 듣고 명상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이렇게 해서 2박 3일 동안의 수련비도 받는 거예요. 일하고 돈 받는 게 아니라 3만원이든 5만원이든 먹고 자는 경비를 내고 일하는 거지요. 마치고 갈 때 시간당 자원봉사 점수를 받아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시간당 100점인데 5시간 일했다면 500점을 받는 식으로요. 그렇게 받아간 점수는 나중에 생산물을 구입할 때 화폐 대신 쓸 수 있게 해주고요. 그렇게 농사 지은 결과물을 시장에 내다 팔 때는 수련에 참가했던 사람이 자기 봉사 점수를 내밀면 그 점수를 돈으로 환산해서 싸게 구입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지금 우리의 여가활동은 전부 낭비잖아요. 놀이라는 게 에너지와 돈을 낭비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또 주말에 너무 놀아버려서 월요일에 출근하면 졸고 힘들어 하잖아요. 원기를 회복하는 게 아니라 낭비하는 걸 여가활동이라 생각하는데 이걸 전환해야 해요. 운동은 운동대로 따로 하고, 수행은 수행대로 따로 하고, 농사는 농사대로 따로 할 게 아니라 건강, 웰빙, 수행, 환경, 농사 이런 걸 전부 연계한 융합적이고 복합적인 방식을 통해 지금의 소비 문명을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저는 그런 일을 하는 시범농장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요. 앞으로 50년이나 100년 뒤에 ‘사람들이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할 때 ‘야, 옛날에 누가 해놓은 그 방식이면 되지 않을까?’ 이런 모델을 하나 만들어놓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런 걸 좀 연구하고 있어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회 문제는 현안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좀 더 크게 멀리 봐야 합니다. 자본주의 문명의 종말 이후에 나타날 새로운 문명은 자본주의 시대 안에서 태동해야 해요. 그래야 다음 문명의 대안이 되지, 자본주의 문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런 대안이 없으면 인류가 멸망하죠.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위기에 처할 때 ‘어, 저 방식이 괜찮다’, ‘야, 저게 살길이다’ 하는 것을 이제 우리가 만들어내야 합니다. 종교적 표현을 빌리면 이것이 바로 구원의 빛이 되는 겁니다.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문명적 대안을 마련하는 노력도 함께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더 멀리 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해요.”
스님이 그리고 있는 더 큰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무척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통일에 대해 대화를 하기로 했는데 농업과 새로운 문명에 대한 대화를 주로 나누면서 사전 간담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통일에 대한 질문은 강연장에서 더 묻기로 하고 다함께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의 인사를 시작으로 통일의병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왔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가뿐한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스님의 모습이 청년 같았습니다. 춘천 시민들은 스님을 큰 박수로 맞이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온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많았습니다. 강원대학교 옆에 위치해서 그런지 대학생들도 다수 보였습니다.
스님은 “통일 강연인지 알고 오셨나요? 정토회에서 주최하는 강연은 개인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데 오늘은 통일이라는 나라의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개인 질문을 하실 분들은 통일의병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셔서 시작부터 청중석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통일 문제에 곁들여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 개인과 공동체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하면서 여는 말씀을 했습니다.
“통일은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계획이 되는 동시에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평화 문제는 국가의 발전에도 기여하지만 개인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통일 문제는 개인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만 특히 국가 발전에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통일지상주의가 되면 안 돼요. 통일지상주의는 전쟁을 하더라도 통일만 되면 된다는 식이거든요. 통일은 우리에게 이익이지만, 어디까지나 그 과정은 평화적이어야 합니다.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만 국민이 행복하고 국가가 발전하는 통일이 돼요. 전쟁을 통해서 통일한다면 통일은 될지 몰라도 국민이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고, 국가가 발전한다고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어요. 전쟁을 통해 남한이 이겨서 통일을 했다 하더라도 현대 자동차나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기업들의 공장이며 핵심시설들이 다 파괴가 돼버렸다면 타격이 너무나 큽니다. 그걸 재건하고 나면 우리는 이미 중국보다 뒤처져버려요. 그러면 영토가 넓어진 것 하나만 빼고는 통일에서 얻는 이익이 조금도 없어요. 그래서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 통일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측면은 물론 국가발전계획에도 굉장히 역행하는 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에서 내세우는 통일대박론 같은 주장은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흘러갈 위험이 있어요.
오늘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과 같이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대화는 질의응답 식으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문제제기를 하면 그 문제를 가지고 서로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이어서 청중들의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질문지함에서 스님이 질문을 뽑는 순서대로 즉문즉설이 이뤄졌습니다. 총 3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머리가 하얀 70대 남성 분은 무단횡단하는 사람, 쓰레기 무단투기하는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이 기본질서를 어기는 것을 볼 때 화가 나는 것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물었고, 젊은 직장인은 남북이 통일하기 위한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묘한 계략이 있는지 말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중 두 번째로 질문한 분은 귀농한 50대 남성 분이였는데, 통일이 빈부격차, 남녀차별, 여성혐오 등의 문제들도 완화시키거나 해결할 수 있을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통일이 우리 사회도 바꿀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 사회에는 빈부 격차, 인권의식 부재, 남녀 차별과 여성 혐오 등 수많은 문제들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통일이 우리의 이런 사회 문제를 완화하거나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통일 그 자체는 이런 문제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이 된다고 해서 빈부 격차가 줄어들거나 남녀 차별이 덜해지거나 인권이 신장된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또 반대로 통일이 되면 빈부 격차가 더 늘어난다거나, 통일이 되면 남녀 차별이 더 심해진다거나, 통일이 되면 인권이 더 악화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문제와 통일은 조금 다른 문제예요.
그러니 우리의 관심은 통일을 하긴 하되 어떤 통일을 할 거냐는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할 거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통일된 국가를 어떤 국가로 만들 거냐’가 문제예요. 통일된 국가는 당연히 현재 분단된 상태보다 이익이겠지요. 지금 우리 사회에 문제가 많긴 하지만 지금 이 상태 그대로의 남한 식으로만 통일해도 북한 주민의 기준에서는 먹고 살기도 나아지고 인권도 신장되고 남녀 차별도 줄어들 겁니다.
북한은 관습적 남녀 차별이 굉장히 심합니다. 법률적 차별이 아니라 관습적 차별이 아주 심해요. 이것은 사회주의 제도와는 관계가 없고, 조선 시대의 관습이 그대로 남아서 그래요. 예컨대 북한도 지금은 장마당이 활성화되는 쪽으로 바뀌었는데, 장마당이 처음 생겼을 때는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긴 하지만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게 굉장히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는 가서 못 했어요. 전부 여자와 아이들이 가서 합니다. 여자가 고생고생해서 물건을 마련해 나가서 장사를 하는 동안 남자는 아무 할 일도 없잖아요. 그러면 그걸 도와주면 될 텐데, 체면 때문에 못 도와줘요. 집에서 몰래 도와주는 남자가 간혹 있지만 바깥에는 못 나가요. 또 10명 중 1명 정도는 새벽에 일찍 나가서 짐 나르는 걸 도와준다든지 하지만 그래도 낮에는 얼씬하지 않는 식이에요. 그런 게 다 체면 문화 때문입니다. ‘장사질 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장사를 아주 천하게 보니까요. 우리도 조선 시대에는 ‘장사질’ 하는 걸 천하게 봤잖아요. 그런 관습적인 차별이 있어요.
북한은 이렇게 아직도 인권적 측면에서 열악한 부분이 있으니까, 남한이 문제가 많다고는 하지만 지금 남한식으로만 통일이 돼도 북한 사람이 볼 때는 인권이 신장됐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북쪽에서 와서 사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도 새터민 600명과 함께 놀러도 가고 즉문즉설도 했는데, 그 분들 이야기로는 한국에 와서 보니 좋은 점도 굉장히 많은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 상사의 눈치를 많이 본다고 말하더라고요. 과장이니 부장이니 하며 상사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는 겁니다. ‘당신들은 더 눈치를 보지 않느냐’라고 하니까 아니래요. 자기들은 최고지도자 한 사람한테만 충성하면 되지 나머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최고지도자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불경하면 그건 바로 처벌을 받지만 그 사람 빼고는 위의 상사든 사장이든 비판해도 그걸 갖고 처벌받는 법은 없대요. 마치 하느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듯이 최고지도자 한 사람 앞에서는 일체 주민이 다 평등하다는 거예요.(모두 웃음)
그래서 눈치를 우리보다 훨씬 덜 보고, 상사를 비판해도 되니까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북한이 더 자유롭다는 겁니다. 물론 100퍼센트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참 재미있었어요. ‘어, 왕조 시대가 꼭 나쁜 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모두 웃음)
아무튼 그런 면에서 통일 문제는 사회 문제와는 별개이기 때문에 통일을 하는 우리가 통일 운동을 할 때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통일된 사회는 인권을 신장시키고 빈부 격차를 완화하고 남녀 차별을 줄이는 쪽의 사회가 되도록 통일 운동을 해야 해요. 통일만 한다고 해서 통일이 그걸 보장해주는 건 아닙니다.
만약 지금 재벌이 주역이 되어 통일을 한다면 노동자가 이익을 보는 게 아니라 재벌이 이익을 봅니다. 이것이 지금 묘하게 되어 있어요. 옛날에는 노동자들이 주로 북한과의 관계를 좋게 생각했고 재벌은 정반대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재벌이 훨씬 더 통일의 이익을 볼 수 있는 관계가 되어 있어요. 잘못 통일하면 오히려 노동자들의 이익이 제일 위협받게 될 지도 몰라요. 노동자들이 그동안 싸워서 쟁취한 노동 조건이 통일 후에는 거꾸로 허물어질 위험이 있거든요.
유럽의 예를 보면 노동자들이 가장 진보적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가장 보수적이 됩니다. 지금 난민 입국을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는 게 노동자들이에요. 우리도 앞으로 조금 더 지나면 노동자층이 외국 노동자나 북한 주민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가장 심하게 반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기 개인의 이익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반면 재벌은 통일에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투자와 값싼 노동력과 투자처라고 하는 유리한 국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벌이 통일에 앞장서면 통일된 국가가 재벌 공화국이 되고, 시민이 통일에 앞장서면 통일된 국가가 지금보다 빈부 격차가 더 줄어드는 시민국가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우리 시민들이 통일 문제를 좀 더 다각도로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통일만 되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통일이 되느냐,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되느냐, 누가 주체가 되어 통일이 되느냐에 따라 통일된 이후에 누가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통일만 하면 저절로 우리 세상이 될 거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통일에 누가 얼마나 기여했느냐, 다시 말해 누가 주도적으로 기여했느냐가 통일된 이후 사회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통일된 이후에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의 사회가 되도록 우리가 통일을 만들어가야 해요. 그럴려면 우리가 통일 운동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통일은 정부가 하지만, 그 정부를 구성할 때 우리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반영된 정부를 구성해야 정부가 국민을 위한 통일을 할 겁니다. 지금과 같은 정부가 통일을 한다면 통일도 잘 안 되지만 요행히 통일을 하더라도 일반 시민의 이익이 보장되는 통일국가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이걸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인간 세상이라는 게 다 자기 기여한 만큼 득을 보는 거예요. 저는 통일된 국가가 국민이 행복하고 시민의 권리가 보장된 국가가 되길 바라니까 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지만 그래도 우리가 중심이 돼서 힘을 모아서 통일을 하자고 주장하는 거예요. 통일 그 자체만 생각하면 여기 모인 분들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재벌들을 설득하는 게 효과적이겠죠. 그런데 그렇게 통일이 되면 통일된 이후에 국민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통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좋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자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없어질 거예요. 그러면 민중들이 빈부 격차나 남녀 평등, 인권 문제 등 사회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쉬워집니다. 지금은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걸핏하면 ‘종북이다, 빨갱이다’라고 이야기하니까 논점이 뒤섞여버려서 사회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추진하기 어려워요. 또 통일이라는 문제, 특히 북한에 대한 안보 위협을 제기해서 빈부 격차나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당분간 합리화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 지금처럼 어떤 적을 내세울 수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기득권을 유지할 명분이 적어지죠.
미국의 트럼프 같은 인물을 보면 또 모를 일이긴 합니다. 미국 내 빈부 격차를 샌더스는 제도 개선을 통해 합리적으로 풀자는 주장인데, 트럼프는 멕시코며 중국이며 한국 같은 다른 나라를 적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적개심을 막 쏟아 붇잖아요. 우리가 북한을 적으로 만들 듯이 이렇게 국민들의 분노와 적개심을 불러일으켜서 지지를 끌어올립니다. 현재 우리가 북한을 적으로 내세워서 국민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것도 이와 같은 하나의 방식이에요. 이걸 ‘분노의 정치’ 라고 하죠.
북한도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남한에 대한 위협을 부각시켜서 전쟁이 임박한 것처럼 해서 그 핑계로 군 수뇌부를 자르잖아요. 그냥 자르면 쿠데타를 일으킬 위험이 있으니까 재작년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전쟁할 것처럼 몰아붙여서 계엄령 선포하듯이 해놓고 충성 안 하는 사람들은 다 숙청해버렸거든요.
이건 남북이 다 쓰는 전통적인 수법이에요. 이번 총선 때도 탈북자를 공개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북풍을 좀 써먹으려 했는데 효과가 별로 없었죠. 이런 방식은 예전보다는 효과가 좀 덜해졌으니까 지금 말씀하시는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그 토대는 좀 더 유리해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모두 박수)
통일된 나라가 시민들이 주인이 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료 강연을 하고 있다는 얘기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재벌기업들을 만나서 설득하면 훨씬 효과가 있을텐데, 그런 깊은 뜻을 갖고 통일 강연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씀에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스님은 한반도를 둘러싼 6개국 중 누가 통일의 주체인지 물어보며 그래도 남한이 그 주체가 될 가능성 크다고 강조하면서 다시 한 번 통일 대한민국의 비전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같은 걸 연결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건 다 낭비가 아니라 투자입니다. 통일 경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경제 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 거짓말이라고 보면 됩니다. 통일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노령화는 심화되고, 사회 복지 요구는 커지고, 중국은 점점 치고 올라와서 우리의 무역 흑자가 줄어들고, 앞으로 무역 역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든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든 무역규제와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테니 수출지향적인 우리 사업은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통일은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돌파구입니다.
전에는 그냥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하자, 굳이 통일 안 해도 괜찮지만 그래도 형제가 같이 사는 게 좋지 않느냐는 식으로 접근했지만, 지금은 통일문제를 해결 못 하면 국가의 비전이 없어요.
이건 남한뿐 아니라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도 현재 상태에서는 비전이 없어요. 비전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보장되지 않습니다. 남북한 통합경제로 가야만 남북의 경제가 활로를 찾고 북한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핵이라든지 외교 문제라든지여러 가지 쟁점이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비전을 갖는 속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통일을 아예 외면하면 비전이 없어지는 거예요.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목표의식이 딱 분명한 가운데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현실, 다시 말해 북한의 현실, 중국의 현실, 미국의 현실 등을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 정치력이죠. 그런데 지금은 말만 통일하자고 하지, 목표가 불분명해요.
‘저 여자하고 꼭 결혼하겠다’라고 마음먹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가서 구애를 하니까 뺨을 때리고 욕하고 야단이에요. 그러니까 옆에서들 ‘네가 뭐가 못나서 여자한테 뺨을 맞고 그리 끌려다니고 있냐’라고 합니다. 들어보니 그럴듯해요. 그래서 다음에 여자가 또 욕을 할 때 나도 뺨을 마주 때려버렸어요. 그러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결혼은 안 되는 거예요. 결혼을 하려면 뺨을 때려도 웃으면서 다시 구애를 하고, 선물을 던져도 주워서 또 주고, 옆에서 바보라고들 해도 저 여자하고 결혼하는 게 내가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면 끝까지 가야 합니다. 때리고 싶더라도 결혼식은 끝내놓고 때려야 해요.(모두 웃음)
그런데 결혼해서 자기 배우자가 되었는데 굳이 또 때릴 건 없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상대가 아무리 험하게 나와도 성질내면서 대응하면 안 돼요. 때리더라도 결혼한 후에 해야지, 그 전에 성질내버리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가 하는 걸 보면 아무것도 안 되게 하는 꼴입니다. 통일을 하려면 통일에 대한 목표가 절대 우선인 가운데 나머지를 이리저리 협박도 하고 구슬리기도 하며 헤쳐 나가야 할 텐데, 그러질 않으니 아무리 말로 ‘통일하자’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통일 지향적 정부라는 건 누가 ‘내가 통일을 하겠다’ 이런 말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국가의 방향을 정할 때 경제도 통일 지향적, 외교도 통일 지향적, 안보도 통일 지향적, 이렇게 딱 초점을 맞추고 모든 것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쪽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무기 하나를 배치하더라도 이게 통일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딱 보고 결정해야 해요. ‘북한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는 이게 조금 유리하지만 통일이라는 더 큰 측면에서 보면 중국을 오히려 자극해서 통일에 방해가 되겠다’ 이렇게 볼 수도 있죠. 사드(THAAD) 문제도 이렇게 통일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해요. 미국이 하니까 무조건 찬성하는 게 아니라, 북한의 만약의 사태를 일으키지 않도록 방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되는지, 이것이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 통일의 장애요소가 되는지, 이런 걸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미국이 하라 한다고 하고, 중국이 하지 말라 한다고 안 하는 건 외교의 자주권이 없는 거잖아요.
이런 관점을 갖고 우리가 이 문제를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도 관점을 새롭게 가져야 해요. 북한 개발이 이루어지면 청년 일자리가 늘 수밖에 없어요. 개발에 필요한 단순노동은 북한 사람들이 하더라도 거기 가서 측량하고 설계하는 등 기술이 필요한 일은 다 한국 젊은이들이 가서 해야지, 누가 하겠어요? 북한에 철로를 놓으면 당장 우리나라 포항제철의 철강이 많이 팔리고, 북한에 도로를 닦으면 당장 우리 포크레인들이 많이 들어가야 하잖아요. 돈은 누구 돈을 대든 그건 우선 놔두고 생각해보세요. 2천만 명이 써야 하는 물자가 있으니 당장 여러분들 가게에서도 감이 하나 더 팔리든 귤이 하나 더 팔리든 수요가 늘어납니다.
또 폐허나 다름없는 북한을 개발하려면 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도 이건 다 투자이기 때문에 우리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빌려서 쓰면 돼요. 전 세계적으로 지금 유동자금이 엄청납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재벌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갖고 있는 돈이 400조원이나 돼요. 그러니 통일은 우리가 합당한 투자처를 마련해가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의 나라에도 투자하는데 제 나라 될 땅에 왜 투자를 못 하겠어요?
이제 그런 관점에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처럼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맹목적으로 적대하는 방식은 낡은 방식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좀 바꾸면 좋겠습니다. 통일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저부터도 전 세계로 나가서 좀 활동하고 싶은데 내내 한반도 문제에 붙들려서 여기 묶여 있잖아요. 우리 젊은 세대, 우리 후배, 우리 후손들은 한반도 문제에 너무 붙들려서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고 전 세계로 나가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도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 아닌가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통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통일 비전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후손들은 전 세계로 나가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자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가 오래도록 가슴에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큰 박수로 강연이 마무리 되자, 청중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다함께 불렀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스님의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통일 이야기 강연이여서 그런지 ‘새로운 100년’ 책을 구입하는 분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사인을 받는 긴 줄에 서 있는 분들에게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을 물어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통일을 추진할 주체 세력 강조하셨는데 공감이 되었고, 개인 생활에만 안주하다가 오늘 큰 목표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통일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인다면 통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사인회를 모두 마치고 오늘 강연을 준비한 통일의병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 의병! 의병! 의병!”을 외치는 목소리가 아주 힘찼습니다. 아직 그 힘이 미약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통일의병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그 날을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스님은 통일의병들에게 “수고했어요” 라며 격려의 말과 함께 악수를 건넨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춘천을 출발해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달려 밤 11시가 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대전 동구청에서 열리는 청년학교 수료식에 참석해 지난 상반기 동안 열심히 활동한 청년 250여 명을 위해 졸업 특강과 상장 수여를 해 줄 예정입니다.
※ '2017년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됐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접수 : 2016년 6월2일~24일. 선착순 신청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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