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진(趙廷珍)
조임(趙任)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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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 자중(子重)
호(號) 사월(沙月)
생년 1573(선조 6)
졸년 1644(인조 22)
시대 조선중기
본관 한양(漢陽)
활동분야 학생 > 유생
[상세내용]
조임(趙任)
1573년(선조 6) 12월 5일∼1644년(인조 22) 7월 5일. 조선 중기 유생‧의병장. 자는 자중(子重)이고, 호는 사월(沙月)이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영양읍(英陽邑)이다.
조부는 조원(趙源)이고, 부친 증판윤(贈判尹) 조광인(趙光仁)과 모친 안수인(安壽仁)의 딸 광주안씨(廣州安氏) 사이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수월(水月) 조검(趙儉)과 동생 통정대부(通政大夫) 조적(趙籍)이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권소(權昭)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고, 둘째 부인은 권응주(權應周)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절의(節義)가 있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형 조검과 함께 궐기하여,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휘하에 들어가서 왜적들과 싸웠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620년(광해군 12) 군자감판관(軍咨監判官)에 임명되었고, 다음 해 품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는 가산(家産)을 털어서, 군량미를 공급하였다.
이후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1636년(인조14) 병자호란 때는 화의를 반대하는 척화소(斥和疏)를 올리고, 의병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으로 진군하려고 하였으나 청나라와의 화의소식을 듣고 군대를 해산하고 통탄하였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조정황(趙廷璜)‧조정진(趙廷珍)‧조정숙(趙廷琡)‧조정옥(趙廷玉)이다.
유고로 2권 1책의 시문집 『사월선생문집(沙月先生文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