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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삶을 더불어 꿈꾸기 위해 새들생명울배움터 연구소는 2017년 상반기 정기세미나 ‘오래된 미래-대안을 살다’를 시작한다.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를 재건하고자 노력해 온 잡지, ≪녹색평론≫을 함께 읽으며, 주변의 환경을 가꾸고, 생명을 돌아보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을 고민하는 자리다. ≪녹색평론≫에 실린 글(누리집에 공개된 글과 공개되지 않았으나 녹색평론사의 동의를 구한 글)을 기본으로 하여 아홉 개의 분과-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금융자본주의와 자립경제, 전쟁과 평화, 환경과 에너지, 환경 생태, 안전한 먹거리, 농업과 식량주권, 교육, 문화와 이데올로기-로 나뉘며, 모든 참가자들이 스스로 분과를 선택하고, 해당 주제에 대해 책임지고 먼저 공부한 후, 다른 참가자들에게 발표하는 형식으로 2017년 4월 7일부터 6월 30일까지 총 12회 진행된다.
"그 누가 이렇듯 고집스럽게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겠는가."
<나무를 심은 사람> 이야기에서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이다. 농업과 식량주권 세미나에 앞서 보게 된 이 얘기에서, 어리석어 보이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선한 그 일을 고집스럽게 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감동이 됐다.
유월의 둘째 날 '농업과 식량주권'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는 <나무를 심은 사람> 이야기가 그저 감동스런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고집스럽게 선한 일을 하는 그 이의 이야기가 내 얘기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모두 여덟 부분으로 발제가 이어졌다. 우리는 왜 지금 농업과 식량주권을 주제로 공부를 시작하는지, 해야 하는지, 어떤 과제가 있고 바라볼 곳이 어디인지 이야기했다. 발제는 5년이 지난 2022년의 어느 날 열린 '귀농운동본부'의 특강 형식을 빌려 진행됐다.
착취가 아닌 평안을 줄 것이다
제일 먼저 귀농운동본부의 간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성택 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화면에는 숲 사진이 띄워졌다.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들과 그 아래 식물들이 초록빛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김성택 님은 키 큰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는데도 키 작은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답은 ‘근균’이었다. 햇볕을 보지 못해도 푸르게 자랄 수 있다니, 이렇게 연결된 햇빛과 토양, 나무, 키 작은 식물들의 관계가 탄성을 자아냈다.
김성택 님은 오늘 발제 주제인 '농사'도 지금껏 공부해 온 주제들도 모두 ‘농사’와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바로 전 시간에 공부한 '안전한 먹거리'만 해도 자기가 먹을 걸 자기가 책임지는 것은 농업이 가장 잘 보장할 수 있다.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 중인 김성택 님은 한 가지 큰 전제가 될 만한 얘기를 꺼냈다. 농민은 하나님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지으신 피조물이라는 것이다(시 105:44-45).
그러나 성서가 "각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 것"(왕상4:25; 미4:4)이라고 말한 농민은 주전 8세기에 이미 착취를 당하고 만다. 김성택 님은 '집약농업'으로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중에 휴경지가 사라진 땅은 물론이요, 농민들은 착취를 당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때 농민 계급을 착취한 이들은 귀족층, 상류층들이었고, 그들을 정조준해서 비판한 이들이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이다. 김성택 님은 이때 예언자들의 비판이 오늘날까지 유효하다고 말했다.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도록" 지어진 농민들을 소작인으로 전락시킨 모습은 오늘날에도 옳고 그름을 따질 여력도 없이 고용주의 명령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성택 님은 우리가 민주주의 시민이라면, 또 신앙하는 자라면 자유농민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김성택 님은 최근 느끼는 자연의 섭리를 얘기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지난 3월 학교 앞에서 텃밭 농사를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2번씩 텃밭 일을 할 때마다 작물들의 생명력에 감탄한다고 했다. 소출을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나눠 먹는 기쁨도 더불어 누린다. 김성택 님은 텃밭으로 갈 때마다 근원을 만나는 느낌이 든다며 신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으로 텃밭에 향한다고 말했다.
농부는 원래 가난하다?
뒤이어 새들생명울배움터경당(이하 ‘배움터 경당)의 교사 박현지 선생님이 발제를 시작했다. 무심코 알고 있던 농촌 상황과 또 관련 제도들을 ‘팩트 체크’ 차용해서 박현지 선생님은 사실을 밝혔다.
농업과 농부가 죽어가는 시대, 살농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박현지 선생님은 실제로 20년 후에는 80%의 농가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령화에 따른 현상인데, UN기준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고령화사회를 지나 전체 인구 에서 100명 중 14명 이상이 65세인 고령사회로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농촌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어 현재 농가를 지키고 있는 대부분의 분들은 20년 후에는 다 돌아가시는 것으로 확인이 된다. 이러한 현실을 내다본 시를 함께 읽었다.
농무(農舞) 신경림 <농무, 창작과 비평사>(1971)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민들이, 본래 농민이었던 이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대한민국 온 나라가 산업화에 힘을 실으니, 어려운 농촌 현실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이농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것일까. 한국의 농가 소득은 도시노동자의 소득 59%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박현지 선생님은 산업화와 이농이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니라고 말했다. 독일의 예를 들었다. 독일은 ‘그린 플랜’을 실행해 농가에 보조금을 지원한다. 간접 지원까지 챙김으로써 최소 유지돼야 할 농부 수를 보장한다. 헌법으로 못 박았다. 독일도 농가를 떠나는 농부들은 있다. 수치가 비슷할 정도다. 하지만 생계 때문은 아니다. 그들은 도시 노동자와 비슷한 수입을 거둔다.
그러면 독일은 농업으로 거둬들이는 이익이 많은 걸까? 아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현저히 낮다. 전체 GDP에서 0.8%을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3%다. 박현지 선생님은 독일이 농가를 그런 잣대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네 가지 목표로 농가를 지킨다.
첫째, 농민도 일반 국민과 동등한 삶의 질을 공유하며 발전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 농민들은 일반 국민에게 건강한 식품을 적정한 값에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셋째, 농업을 통해서 국제 식량문제 해결 및 국제 농업 교역에 기여한다. 넷째, 농업을 통해 자연 및 문화 경관을 보존하고 다양한 동식물상을 보존한다.
농사보다 자동차 팔아서 남는 이익이 더 많기 때문에, 농가가 죽더라도 산업화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농가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두 번째로 박현지 선생님이 확인한 것은 ‘쌀 직불금제’다. 일각에서 퍼주기식 제도라고 비판한다. 쌀값 하락만큼 정부에서 보증을 해주니까 농사를 계속 짓게 되니, 그 직불제를 파기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말이다. 박현지 선생님은 우리 쌀이 소비량에 비해 더 많이 생산되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급률 면에서 보면 오히려 부족하다.
직불금제 파기 주장에 따르면 직불금 때문에 농부들이 쌀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다는 건데, 실제로는 생산량을 줄이지 않을 만큼 지급되지 않는다. 농가는 총소득에서 부채를 빼면 연간 8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거둘 뿐이다. 변동 직불금으로 쌀값의 85%를 보전해준다고 하지만 실제 그 비율은 70%에 그친다. 게다가 현재 직불금 제도가 경작 면적 단위로 지급되다보니 농가 양극화라는 문제도 안고 있다.
직불금 제도를 파기했다는 일본의 예도 실상은 달랐다. 직불금 제도는 파기했지만 농부로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월급 농부가 2배 증가했고, 농지법을 개간해서 기업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언뜻 보면 농가의 고령화 문제를 타계하는 최적의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원적인 해결은 되지 못했다. 일자리 창출이란 명목은 세웠지만, 농민은 여전히 농업의 주체로서 농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현지 선생님은 무엇이 근원적인 해결인가 온 국민이 농업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전 이사장의 말을 빌려 농업이 살아야,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1918년 한국의 쌀을 혹독하게 수탈한 이유가 본토 농민들의 이농 현상에 있었다며, 한 나라가 먹거리를 자급할 수 있을 때 이웃나라에까지 샬롬이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현지 선생님은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을 함께 낭독하며 참가자들에게 '쌀 한 톨에 얼마의 가치를 매기고 싶냐' 물었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따뜻한 밥이 된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농민의 저항, 우리의 저항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새들연구소 김별 회원의 발제가 시작됐다. 김별 회원은 발제를 준비하며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선배들을 만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발제 제목도 그들이 노력이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정하게 됐다. 김별 회원은 농민의 저항운동과, 농촌을 지키고 풍요롭게 하기 위한 얘기를 나눴다.
김별 회원은 동학농민운동부터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지금까지를 짤막하게 설명했다. 농민들의 저항 운동이 다만 농사가 아니라, 평등과 민주화, 자주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더 깊이 얘기할 농민들의 저항 운동을 위해 먼저 GATT에서 WTO, FTA로 변화한 체제와 흐름을 설명했다. GATT는 1948년에 발효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으로 법적 기구의 성격은 갖지 못해 협정 참여국들의 불공정 행위와 자위적 행위를 효율적으로 규제하기 어려웠다. 이후 세계무역기구 WTO가 출범하는데, 이 과정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이 결부돼 있다.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쌀 시장 개방을 늦추긴 했지만, 매년 의무적으로 쌀을 수입해야 했다. 수입량은 매해 2만톤씩 늘어 40.9만 톤까지 수입해야 했다. 그마저도 가공용으로만 수입해 오던 쌀을 2006년부터 밥쌀용 시판이 허용되고, 물량 자체도 10%에서 30%로 확대됐다. 그리고 2015년 우리나라는 WTO에 쌀 관세화, 즉 쌀 수입 전면 개방을 공식 선언했다.
농민들은 WTO의 쌀 개방에 저항해 왔다. 2002년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을 펼쳤고, 2005년 총파업투쟁에서는 경찰의 과잉진압에 농민 고 전용철·홍덕표 씨가 숨지기까지 했다. 결국 2015년 쌀 시장은 전면 개방됐고 쌀값은 20~30년 전으로 폭락했다. 마침내 열린 민중총궐기대회로 수많은 농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그 와중에 백남기 농민이 또다시 경찰에 의해 물대포를 맞아 사망했다. 작년에는 쌀값 폭락과 국정농단 사태가 겹치면서 분노한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광화문으로 진격하고자 했다. 동학농민운동의 뜨거운 마음으로 서울에 오른 '전봉준 투쟁단'이다.
쌀 시장이 개방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김별 회원은 대안 사례를 간추려 밝혔다. 그중 도농상생 공공급식은 복잡한 유통구조를 개선해 농가가 안정적으로 판로를 확보할 수 있다 큰 장점을 갖춘 사례다. 올 하반기부터 서울에서 실시된다. 경기도에서 시행하는 청년 창업농 양성 사례는 지난해에 11명의 청년들이 연 1600만 원의 소득을 거두었고, 올해에도 40명을 선발해 실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충남도의 경우 직접 직불금 제도를 도입해 면적당 현물지원(비료)가 농가당 직접지원으로 바뀌어 오는 9~10월경에는 모든 농민들에게 36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전북 완주군이 펼치는 지자체 사업들도 주목이 됐다. 완주군은 경쟁력이 아닌 공동체 복원력을 중시하며 사업을 구상·운영하고 있다.
김별 회원은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정책 제안들도 알렸다. 또 문재인 정부의 농업 정책 공약을 살펴봤다. 문재인 정부는 40세 미만 청년 농민에게 월 100만 원의 정책자금을 지급하는 '청년농민직불금' 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번 정부의 3대 과제 중 하나로 농업을 살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별 회원은 발제를 갈무리하며 지금 여기에서 잘살고 있는 줄 알았지만, 괴멸 직전의 농촌과 자신의 삶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느꼈다고 말했다.
農이 가르쳐 준 답
네 번째로 발제를 시작한 새들연구소 김윤미 회원은 왜 그들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지, 내 이야기로 받아 안지 못했는지 현실을 되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윤미 회원은 그 이유를 주체성이 결여된 현대사회의 삶의 양식에서 찾았다. 아플 땐 병원을 찾고, 궁금할 땐 인터넷에 물으며 비인격적 시스템에 많은 이가 의존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삶의 조언이 필요할 때, 서로 도울 수 없고 함께할 수 없는 비인격적 관계를 만든다. 김윤미 회원은 국가와 시장이라는 비인격적인 시스템에 우리 삶을 내맡기지 말고, 자치자율적인 삶으로 전환해나가자고 했다. 지켜주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그러자고 말했다.
국가와 시장이라는 비인격적 관계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은 다름 아닌 농민들이다. 김윤미 회원은 농민들의 이러한 삶을 일찍이 인지한 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진환 전 장관(이승만 정권 사회부장관)이다. 그는 소련과 미국이 대표하던 특정 사상에 의존하지 않고 창의(민족정신)를 담은 사상을 만들어내자고 주장했다. '자유협동주의 사상'을 내세워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 자유, 너를 위한 협동과 연대 정신을 토대로 제헌헌법에 '이익균점권'을 담았다.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 이익균점권 -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서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노동 상품화를 반대하고, 이익을 균등하게 나눌 권리를 보장하는 이 제도를 통해 노동자와 농민들은 자신의 노동력과 생산력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 이 조항이 삭제되긴 했지만 김윤미 회원은 당시로서도, 지금 다시 봐도 진취적인 법이라고 말했다.
김윤미 회원은 '자유협동주의 사상'이 전진환 전 장관이 말하기 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오래된 사상이라고 말했다. 농사의 농(農) 자를 예로 들었다. 별 진(辰)(해, 달, 별을 통틀어 이르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신’) 자와 밭전(田) 자의 변형인 구부릴 곡(曲)이 합쳐진 말로, 천상의 일월성신과 지상의 논밭[田]이 함께 나무와 풀의 자람과 열매 맺음을 북돋운다는 말이다. 마을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김윤미 회원은 이를 몸소 배운다고 말했다. 농사는 씨 뿌리는 사람과, 햇빛, 바람, 야초, 지나가는 새들까지 유기적 관계를 맺어야 이뤄진다.
초반에 김윤미 회원은 '왜 농민들의 어려움에 우리는 깊이 공감하지 못하나' 물었다. 이제 그 답은 자신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이 삶의 테두리에 대한 성찰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농업 현실에 가닿을 수는 없더라도, 밥 짓고, 아이를 기르는 일, 일체의 모든 관계에서 책임 있게 지내고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을 뿐 이미 서로는 돕는 관계망 속에 있다는 걸 '농(農)'은 가르쳐준다며 농민들이 착취당하고 빼앗기던 때부터 우리 삶도 위험해졌던 게 아닌가 되돌아 물으며 김윤미 회원은 발제를 마쳤다.
식물은 자기가 자라날 땅을 안다
왼편 가슴께에 '김농' 이름표를 붙인 발제자가 물었다. "농부에게 많이 없는 게 무엇일까요?" 답은 시간이었다. 공부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는 말로 좌중을 웃게 만들며 '김농' 김지호 학생이 발제를 시작했다. 배움터 경당 김지호 학생은 고대의 지혜가 담긴 전통 농법과, 녹색혁명, 자연 농법을 이야기해 나갔다.
김지호 학생은 앞서 소개된 ‘자유협동주의사상’의 사례로서 인도의 라자스탄에서 행해진 전통 농법 '조하드'를 소개했다. 조하드는 빗물을 모으려고 비탈에 쌓은 초승달 모양의 오목한 제방을 가리키는 말로, 땅이 말라도 한번 내렸던 빗물을 지하 깊숙이까지 흐르게 해 식물을 자라게 하고 우물을 마르지 않게 한다. 너무나 가문 곳이어서 생명이 살기에는 적합지 않은 땅이었던 라자스탄은 조하드 농법으로 생명이 자라나고 살 수 있는 곳이 됐다. 라자스탄에 인접한 마을까지 조하드 농법을 도입하면서 더 많은 땅이 살아났다. 김지호 학생은 마을 공동체의 오래된 지혜가 담긴 농법이 지역을 살렸다는 점을 강조해 말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녹색혁명'도 경제발전에 필요한 식량자급률을 극복하기 위해 이뤄진 일이다. 김지호 학생은 같은 면적의 땅에서 배 이상의 수확을 가능하게 한 이 혁명은 언뜻 보면, 식량 문제에 획기적인 해결을 가져온 것 같지만, 실상은 ‘녹색혁명’이란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몇 배나 많은 수확을 거둬들이기 위해 과도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하면서 환경을 파괴한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수천 종으로 다양하게 자라오던 작물들은 농약과 비료에 견디는 강한 신품종으로 단일화됐다. 김지호 학생은 품종 개량으로 수확량이 늘어 기아를 해결한 녹색혁명의 공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환경을 파괴한 농법은 사람의 몸에도 해를 끼쳐 피부발진, 변비를 비롯해 불안증 우울증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반면 무제초, 무경작, 무농약, 무비료라는 무위의 농법이 있다. 식물은 스스로 살아갈 땅을 만들어낸다는 이치를 터득해 농사짓는 자연농법이다. 김지호 학생은 자연농법에 관해서 묻는다면 밤새도록 설명해드리겠다며 열정을 드러냈다. 그의 비전이 꼭 자연농법과 닮아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조화와 연대로써 함께 사는 것이 비전이라고 말했다.
먼저 나눈 대화
새들연구소 박한나 회원과 박현지 선생님이 무대로 나왔다. 두 사람은 귀농의 삶을 짧은 단막극으로 보여줬다. 극에서 박현지 선생님은 귀농 3년 차, 박한나 회원은 1년 차였다. 단순히 직업이나 거주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산업 문명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귀농이라는 것을 5년 전 오래된 미래-대안을 살다 세미나에서 배운 이들은,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귀농의 삶을 살게 됐다.
미래의 어느 날을 보는 듯이 대화는 선명하게 진행됐다. 박한나 님은 먼저 귀농해 살고 있는 박현지 선생님에게 어떤 땅을 구해야 할지 물었고, 박현지 선생님은 땅 구하는 그 자체가 농사에서 큰 공부가 될 거라고 알려줬다. 땅을 구하는 일은 그 마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살아온 이들과 인연이 시작된다는 말과 같다. 땅과 인연은 살 집, 만나는 이웃들과 만남까지도 이어진다.
박한나 회원은 박현지 선생님과 함께 5년 전 마을농부에서 함께 농사지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생명의 본질을 쫓는 자연 농법 농사를 위해, 비닐 멀칭도 안 했고, 화학비료 대신 직접 만든 퇴비를 주고, 천연농약으로 진딧물을 쫓아냈다. 박현지 선생님은 귀농한 지금도 그 중심을 붙잡고 농사짓기를 바란다며 응원했다. 우리가 짓는 농사가 모두에게 이로운 농사가 되기를, 자연 만물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쌀 농사를 지어 조만간 안양에 사는 친구들에게도 직접 기른 쌀을 수확해서 보낼 날을 그려보기도 했다.
귀농해서 농사만 잘 지으면 된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박현지 선생님은 농촌생활에서는 다재다능한 기술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공 기술부터 옷 수선, 살림살이 장만 등, 도시처럼 간편하게 생필품을 갖출 수도 기술자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농사만 해도 농부 혼자서 해나가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귀농은 꼭 농사를 지은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의 삶을 함께 일궈나가는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겠다고 박현지 선생님은 말했다. 소박하고 생명력 있는 삶을 농촌에서 살아가고자 이들과 함께 말이다.
발제를 마치고, 발제자들은 핸드벨과 기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꼭 농(農) 글자처럼 다양한 악기가 한데 어우러졌다.
쌀 한 톨의 무게 /홍순관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전체 토론이 이어졌다. 농업과 식량주권 분과에서 '생각할 거리'를 정리해 줬다. 1.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2. 지금 귀농한다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3. 농업과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까, 등을 주제로 9개 분과가 각각 이야기 나누고, 다시 모여 전체 토론으로 이어졌다.
1.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나무를 심은 사람’은 사실 평화를 심었던 게 아닐까. 환경과 생태 분과에서 말했다. 실제로 사막에 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있었다. 삶을 바쳐 생명을 살린 이들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조용한 모습을 인상적으로 나눈 분과들도 있었다.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지 않아도 다정할 수 있고, 침묵으로도 마음을 전해질 수 있다. 우리의 관계성도 그러하길 바란다는 소망이 나눠졌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그처럼 ‘고집스럽게 선한 일’ 할 수 있을까. 금융자본주의 분과에서는 자연농을 하는 것, 야초를 뽑지 않는 것, 대안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것 등을 꼽았다.
2. 지금 귀농한다면 하고 싶은 일 /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뿐 아니라 하고 싶은 일까지 나누니 다양한 소망들이 모였다.
“하루종일 죽을 만큼 힘들 정도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귀농을 하면 그런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삶을 경험해 보고 싶다.”
“여행사를 해서 우리가 꾸려가는 마을을 보여줄 수 있는 여행 가이드를 하고 싶다.”
“흙집을 짓는 다양한 방식들 중에도 전통 가옥들을 살리는 집짓기를 하고 싶다. 도편수 공부를 하고 싶었던 꿈이 예전부터 있었다. 우리 안에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귀촌과 귀농을 하면 좋겠다.”
“농생활에는 창고가 필요한데, 농촌의 창고들은 다 지저분하다.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하지 않고 정갈한 문화를 이루고 싶다. 일단 내 방 책상부터 깨끗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버릇이라 쉽지가 않지만, 하고 싶다.”
“멋진 숲을 만들고 싶다. 풍욕도 하고, 꽃사슴도 키우고, 그네도 만들고, 우리만의 숲을 만들면 좋겠다. 사람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동식물을 다 같이 생각하는 농부가 되고 싶다. 배가 고파 밭을 침범하던 고라니들을 위해 따로 밭을 만들고 싶다.”
“축구장 관리인을 하고 싶다”
“가게가 없는 마을에 생협 매장을 만들고 싶다.”
“집을 만들고 싶다. 폐가를 새롭게 짓는 걸 하고 싶다. 우물을 새롭게 파지 않아도 되고, 절차도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닭이랑 소, 가축을 키우고 싶다” “닭알을 거두는 정도로만 양계장을 하고 싶다”
“소, 돼지들이 지내는 환경이 좋지 않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같이 살 수 있는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마을에서 오래 산 분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가고 싶다.”
“화보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동네를 만들고 싶다.”
“마을 이장을 하고 싶다.”
“피곤함과 노곤함을 풀어주는 목욕탕을 만들겠다. 목욕탕 아저씨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티비가 있는 식상한 목욕탕이 아니라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다. 예를 들어 때를 밀어서 중량을 재서 최고급 이태리 타올을 드린다거나. 세신의 의미가 있다.”
“몸으로 일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친구가 설계를 하면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걸 하고 싶다.”
“농사를 짓고 싶다. 마을농부들이랑 계속 같이 하고 싶다. 그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그 모든 신비와 감탄을 글로 표현하고 싶다. 시로 적고 싶다. 노래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농촌의 삶을 만화로 그려내고 싶다. 만화가 여러 사람에게 퍼질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농산물을 생산-가공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기본적으로 자급자족하는 일을 하고 싶다. 단호박도 심고 황토방도 만들고 싶다. 모두와 함께.”
“한복 만드는 기본을 익혀 개량한복화해, 일하는 분들도 잘 입을 수 있는 옷 만들고 싶다”
“어르신들을 위한 요양병원을 설립하고 싶다. 새참도 나르겠다.”
“활력을 위해 풍물 마당놀이를 개발하고,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들을 열어두어 외지인들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빵을 굽고, 베이커리 아카데미를 열어 돈도 벌고, 산양을 키워서 치즈 만들고 싶다. 지렁이 농법으로 농사도 짓고 농업에 유익한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
3. 농업과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까
농민들의 어려움을 그동안 너무 잘 몰라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농민들의 고된 삶을 생각한다면 불편을 감수할 줄 알아야겠다는 얘기로 나눔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보다 실제적으로 귀농 이후의 삶을 그려봤다. 벌레 때문에 힘들 수 있고 빚을 져야 할 수도 있고, 소출을 거두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이웃들과의 만남이 어려울 수도 있다. 때문에 지금 당장 농으로서의 삶을 전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을 중시하는 삶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이어질 수 있는 실천으로 생협 이용, 유기농법을 이용한 식품 먹기, 두 끼는 쌀밥으로 먹기, 점심 도시락을 싸다니기, 농업을 살릴 수 있는 지속적인 공부와 비판적인 성찰을 계속해 나가기 등이 이야기됐다. 식량 주권과 관련된 정책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도 필요하다. 농가의 적은 소득을 생각하면 앞으로 농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기본 소득 도입에도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농부의 신발을 신은 사람
세미나를 갈무리하며 김지호 학생은 “귀농을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혼자나 둘이 아닌 여럿이 다 함께”를 말했다. 힘이 팔팔한 젊을 때 농사를 지어야 진정한 농부가 된다고 한다. 전혀 환상적인 일이 아니고 깊이 파고들수록 무겁고 귀한 일이 농사다. 귀농을 한다는 건 농사를 짓는다는 것, 농사를 짓는다는 건 우리 주권을 지키는 일이라고 김지호 학생은 말했다.
박현지 선생님은 한 농부의 절실한 음성을 전했다. “농부가 아닌 사람이 제발 농사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농부의 마음으로 말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그랬을까. 박현지 선생님은 부분적으로 아는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더 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라는 말을 영어에서는 ‘그 사람의 신을 신고(in other's shoes)’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막연하게 느껴졌던 농민들의 삶에 일순간 다가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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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름하야 세신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용한 물을 자연에 다시 돌려주고 즐거운 이벤트로 만남이 가득한 목욕탕!! 한글이가 소개한 목욕탕을 상상해 봅니다. 가우디의 구엘공원처럼 자연을 닮은 아름다운 외형이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ㅎㅎ
단 한사람, 단 한무리만 있어도 세상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지금 나 있는 자리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