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무릉도원, 부안을 헤매다
산수국/왕태삼
제19대 대선을 열흘 앞둔 4월의 봄은 꽃들의 전쟁이다. 벚꽃이 터지고, 바야흐로 발걸음을 잡는 철쭉의 전성시대다. 이후 모란이 바짝 번호표를 들고 꽃봉오리에 점등할 차례다. 오늘은 월천문학기행일, 병원을 무단 탈출하여 손목에 병원인식표를 달고 오신 한 시인님도 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왜 문학기행에 발광하는가? 아마도 목줄 푼 강아지가 되어 천방지축 대문을 박차고 새로운 세상을 대면하며 킁킁거릴 수 있는 매력에 있지 않나 싶다. 전주시청 앞에서 아리울 관광버스를 타고 군산의 새만금방조제에 들어섰다. ‘아리울’은 ‘물의 도시’라는 순수 우리말이니 의미가 남달랐다. 군산 김제 부안을 잇는 33.9km 새만금방조제는 간척의 길이다. 새로이 태어나는 끝닿는 데를 모를 저 미래의 땅은 어떻게 그려질까?
100여 년 전 임화 시인은 일제강점기 때 <현해탄>을 ‘검은 바다의 높은 물결’이라며 암담한 현실을 노래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 정군수 시인은 새만금방조제를 ‘세계의 꿈을 모으는’ <빛으로 가는 길>이라 밝은 미래를 노래했다. 두 시인이 바라보는 바다의 물결은 극명히 대조적이다. 그러나 시대의 파고를 저버리지 않는 시인의 자세는 참으로 한결같다. 야미도, 신시도, 가력도 배수갑문을 지나 새만금홍보관 휴게소에 내렸다. ‘서두(西斗)터’라 불리는 그곳에는 부안 출생 신석정 시인의 시비 <파도>도 주먹 진 소년처럼 우뚝 서해를 지키며 한 줄기 빛을 모으고 있었다.
드디어 생거부안의 땅이다. 직소폭포를 키우는 깊은 산, 굽이굽이 파도치는 만과 반도, 기름진 들판을 지나 부안의 명기 매창공원에 도착했다. 아그배꽃이 흩뿌리고 있었다. 한때는 공동묘지였던 이곳이 38세로 생을 마감한 기생을 추모하는 단독묘로 조성되었다니 이것은 무슨 곡절일까? 충과 효를 기리는 정려문도 아닌 기생의 매창공원, 그것은 인류의 탄생 이래 오직 불변한 사랑을 원료로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허물없이 지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예술이 합작하여 매창공원은 태어난 것이다. 유년 시절 막내삼촌이 장가간 날 새 신부는 왜 이리도 배꽃처럼 눈물을 흘렸던가? 그러나 친척들은 다시 우리 집 늙은 배나무 아래 모여 막걸리사발에 배꽃잎을 띄우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렇게 이화우梨花雨는 늘 내 어깨 위로 떨어지고 다시 피어나곤 한다.
부안읍 성황산 아래 2011년 개관한 석정문학관으로 이동했다. 금년 3월 취임하신 정군수 관장님은 석정시인의 고교시절 제자시다. 대한민국의 어느 문학관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제지간의 방연을 이어갈 수 있단 말인가? 문학의 인연이란 가히 존엄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동영상으로 석정의 생애를 시청하고 석정의 시를 낭송하며 잠시 추모의 예를 드렸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석정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은 한국시단의 거성이셨다. 지금도 칼날을 딛고 서 있는 이 시대에 석정 같은 큰 어른은 없는 걸까? 해가 갈수록 대쪽 같은 석정의 정신은 더욱 우리의 폐부를 찌를 지도 모른다. 문학관 앞, 시인의 고택인 청구원으로 나왔다. 아리잠직한 동그란 꽃밭에는 지나수선화등 앙증맞은 꽃들이 모여 있었다. 지나수선화는 석정 시인이 전주 비사벌초사에서 길렀다는 꽃이다.
군청 앞 식당에서 갈치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뼈째 먹는‘풀치’라는 특이한 반찬에 유독 눈길이 쏟아진다. 부안에서만 맛보는 갈치새끼조림으로 마치 가맥집서 나오는 자잘한 노가리 같기도 했다. 새끼손가락만 한 풀치, 전골냄비에 정식으로 오르지 못하고 밑반찬으로 떠도는 존재들은 늘 아리다.
오후 봄햇살이 따갑다. 물때를 잘 기다렸으니 해안도로에서 하차하여 우리는 썰물처럼 해안선으로 내려갔다. 이곳이 바로 암반과 주상절리로 빼어난 적벽강이다. 암반 위엔 동그란 돌개구멍이 물결처럼 치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돌개구멍은 각기 몽돌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마치 개펄의 게들이 각기 구멍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쏙 들어앉았다. 수천 년 동안 바닷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할까? 나도 돌개구멍의 한 몽돌이고 싶다는 뻔뻔한 생각을 하며 적벽강을 빠져나왔다. 벌들이 잉잉거리는 유채밭의 환호를 받으며 바다의 여해신을 모시는 수성당을 돌아 우리는 곧장 금구원조각공원으로 향했다.
김오성 작가가 운영하는 한국 최초 조각공원이다. 화강암으로 조각한 대부분이 나체 여인상이다. 어느새 나는 수십 명의 이브를 거느린 아담이 되었다. 서너 번째 온 나는 그곳 모퉁이 작은 연못가에 사는 지나수선화를 보러 갔다. 보통 수선화는 3월경 한 꽃대에 하나의 꽃이 나팔처럼 핀다. 그러나 지나수선화는 4월경 한 꽃대에 두 개의 금빛 술잔이 차려져 나온다. 가히 이보다 초례청이나 금혼식에 어울리는 축화가 있을까?
꽃대궁 하나에
술잔 둘이 올라
흰 수반 위
금 술잔 둘
첫날밤처럼
흰 잠옷을 입고
쨍
금슬을 높이 든다
- 지나수선화2
우리는 다시 송홧가루처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북학생해양수련원 솔섬으로 떠갔다. 아직 노을은 오지 않는다. 붉은 노을이 올 때까지 느티나무 아래서 꽃잎처럼 동그랗게 마주앉았다. 드디어 월천문학의 판도라상자, 오 시인이 싸온 홍어회 보자기가 사르르 풀리자, 술 한 잔 따르고 받고, 두어 순배 돌자 정군수 지도교수님의 사철가가 터진다. 한 구비 꺾일 때마다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호명하며 시낭송과 트로트와 시조창으로, 우리들은 붉은 노을이 되어 하루의 뜸을 들이고 있었다. 마지막 노정에 있던 내소사는 다음을 도모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금구원조각공원의 ‘미완성’ 동상처럼 천혜의 땅 부안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곰소항을 지날 때 잔뜩 힘이 실린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가 우리 고향이여.” 우리는 버스를 되돌려 이번엔 일정에 없는 선술집에 또 모여 앉았다. 곰소만처럼 깊고 너른 두 시인님의 고향인심이 우연한 일상의 전복을 선사해 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창가에 기대어 생각해 보았다. 예정에 있던 코스는 시간 없다며 미루고, 예정에 없던 일은 아무리 해가 져도 흥에 겨우면 쉬었다 간다는 것을. 그것이 인생의 한 파편이다는 것을.
다행이 여백의 미를 다듬는 시인들이라 우리는 여유로이 출발점에 웃으며 도착하였다.
(2017.4.29.)
첫댓글 무릉도원이 부안에 있었네요 주옥같은 님의 작품이 샛별이 되네요 맨입으로 사회를 잘 보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엿볼 수 잇습니다 항상 감탄이 절로납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최고의 문학 기행이었습니다
왕태삼시인님 께서 세세하게기행문을 써주셔서
더욱 새롭고 기억이 생생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청소년 수련원앞 파도가 소리쳐 우는것은 저의 귀를 의심하고 그소리는 영원히 저의 머리속에 남을것입니다
눈도 머리도 가슴도 행복했던
문핵 기행 이었습니다
주최 하신 정군수 교수님 문우회 회장님 오연미 총무님
그리고 참여하신 여러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자랑 할 수 있는 사람
자랑하고 싶은 사람'
산수국님은 그렇습니다.
산수국처럼의 역할을 다 하는 사람
별처럼 반짝이지 않아도 정오의 빛 같은 사람을 통해
부안을 헤매인 흔적에서 유채 내음새 들리고 몽돌 구르는 소리보이는 파도소리 듣습니다.
주지적 내용이 풍성한 기행문 감명깊게 잘 감상하고 갑니다.
컴푸터처럼 빠짐없이 임력하여
다시기행을 심어주는 존경스런 님의 성실함에 제삼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진솔하고 자상한 님은 ........
만사형통의 행운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어쩜그리 세세히 표현할 수 있으리오
님 만이 가능한 일이라 입만 쩌억 벌어집니다
끝부분의 표현 예정에 있던 일은 시간 없어 미루고 예정에 없던 일은 누가 뭐래도 읊어낸 문우님들 아니신가요
그래요 인생의 파편을 보듬고 웃으며 살아야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