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현재 한사군에 대한 정설입니다.(이제부터 이걸 반박합니다)
한사군의 위치는 낙랑군의 위치를 기준으로 설명되고 있죠(거의 모든 사서에서)
때문에 낙랑군의 위치가 곧 한사군의 위치를 좌우합니다.
기존 이병도가 주장한 낙랑군의 위치가 평양 일대인 근거.
이병도는 "한국고대사연구"에서 낙랑군의 위치를
"지금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고 썼습니다.
문제는 이 위치와 전혀 어긋나는 중국 사서의 내용입니다.
1.[사기] "하본기"에 인용된 "갈석산"에 관한 태강지리지의 주석에는
"낙랑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장성의 기점이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 현재 장성의 기점은 난하근처의 산해관이죠.
2. 중국사회과학원의 [중국역사지도집]에도 갈석산의 위치는 산해관의 바로 남쪽에 표기되어 있습니다.(이건 제가 직접 확인못함;)
3. 또한 [한서] "지리지" '현도군조'에는 "현도군은 유주에 속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도군은 "분명" 낙랑군의 북쪽에 있다고 모든 사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그럼 낙랑군은 기주에??)
마지막으로 [수서] "양제본기"에는
주요 군의 진격로에서
좌군의 제12군은 낙랑도를, 우군의 제4군은 임둔도를 거쳐 평양으로 향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건 제가 위에 올린 지도와 비교하면 평양까지 진격을 뱅뱅 돌아서 가는거죠-_-
(실제로는 두 군대 모두 최단코스로 평양으로 진격함)
즉, 기존 한사군의 위치로는 말이 안되죠.
마지막으로 역시 [후한서] "광무제본기"에 낙랑군에 관한 기록의 주석으로 "낙랑은 군이고 옛조선이며 요동에 있다"(樂浪郡, 故朝鮮國也, 在遼東)이라고 기록되어 있죠...
이 기록들에 따르면
1.한사군은 지금 말하는 것 처럼 한반도 내가 아닌, 고대요동지역(지금의 요동이 아닌)에 있었다.
2.한나라 때의 요동(즉, 고조선&고구려시대의 요동은 지금의 요서지역이다) -> 지금의 "난하"가 고대의 "요수"가 됨.
이 됩니다.
전 이 기록들 간의 오류...특히 제가 찾은 사서 상의 기록은 기존 사학계의 한사군의 한반도설, 요동요수설과는 전혀 틀린 기록이 더 많습니다.
즉, 지금 사학계에서 근거로 하는 기록은 전부 해석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애매한 기록만을 근거로 제시하고 저것처럼 완벽하게 해석상의 문제가 생길 수 없는 기록은 외면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거죠.
뭐...김부식처럼 자기 고정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다른 기록은 다 인정하면서 특정부분만 "이건 오기야!!"라고 우긴다면 할말없이 그저 병진이라고 밖에...;;
첫댓글 어렵다.ㅋ 여친분이 이런모습에 반하셧나
자료의 원문이 보고 싶네요 강독 가능하니까 태강지리지가 그 사기 주석얘기하는거 맞죠? 이 얘기 쌍팔년도 부터 떠돌아디는건데... 여전히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걸 보면...
죄송스럽게도 제가 학교다닐때 친한 사학과 형이 소장하거나 구해서 빌려준 책들입니다. 제게 지금 그 기록이 있으면 사진으로 올리겠죠 ㄱ- 제가 지금 형편에 찾을 수 있는건 인터넷에서인데...이건...올려봤자 인터넷을 믿냐며 물만 먹더군요 ㄱ-
한사군 얘기는 언제나 논란의 정점이죠. 하지만 현재의 한사군이 진짜 한사군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믿지 않음.
그리고 고대 사료는 그 어느것도 100%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바이블처럼 받들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마천의 사기요? 개소리가 태반입죠..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어떠하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글쓰신분 말처럼 유교색에 맞지 않으면 빼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괴이한 이야기는 전부 빼버렸죠 그걸 보충할려고 만든책이 삼국유사구요... 한국의 고대사는 자료가 너무너무 부족합니다... 공부하면 할 수록 자료가 너무 없어서 도대체 알수가 없는 부분이 태반입니다. 고대사도 아니고 고려까지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구라가 태반이라도 '역사서에 실려오는 것을 근거로 한 주장'보다 '한자가 같으니 그럴 것이다 라고 지레짐작한 주장'을 교육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네요 ...-ㅅ-;;;;
제가 문제로 제기하는 모든 점의 원인은 그 사마천의 [사기]의 진실성입니다. 일제때부터 지금까지의 한국사학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이 뭔지 아십니까? [사기]고 [한서]간에 자기 사학관점에 맞는 내용은 근거로 제시하면서 자기 관점에 맞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는 그 진실성에 의문을 표의합니다. 이 얼마나 이중적인 잣대입니까? 전 사기의 내용 중 한족 외의 민족이 조금이라도 연관되는 내용은 아예 믿지를 않습니다. 제가 공부할 때 배제하죠. 위에 근거로 제시한건 지금 [사기]를 토대로 한사군을 주장하는 사학자들에게 "그럼 니네들이 그렇게 근거라고 말하는 사기에 있는 이 내용은 뭔데?"라고 비판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 난하요수설과 한사군의 요동위치설을 믿고, 또 주장하지만 그 주장의 논거를 [사기]에서 찾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선상고사, 제왕운기, 삼성기 등의 국내사서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그 근거를 찾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사마천의 [사기]를 근거로 하는것은 제가 위에 말한 조선상고사, 제왕운기 등은 존경받는 선대 사학자들의 저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학계에서 듣보잡취급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선상고사와 제왕운기를 얘기할 때마다 듣는 말은 "그 책은 사서가 아냐"였습니다.
다시 본문얘기로 돌아가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일단 사기에 주석으로 달린 태강지리지는 실전되었다고 하니 지금 확인이 어렵겠군요. 만리장성은 쭉 만리동안 이어진 성이 아닙니다. 그냥 흉노 막을라고 북방의 여러 기점에 세워놓은 성을 진시황이 연결하려 했고 어느정도 성과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흉노만 막을라고 성을 쌓았을까요 지금의 요동 근처에도 성을 쌓았겠죠. 그럼 그 성의 끝에 한사군이 설치되었다는것은 그냥 엄밀한 사실이 아니라 당시 사람이 그렇게 기록을 남겨볼 수도 있는 일이 되죠
말도 안됩니다. 지금 요동에 성을 쌓았다뇨? 역사적으로 진, 한 시대의 한족의 영역은 지금 산해관으로 한정되었습니다. 이민족국가가 아닌 한족의 국가인 진, 한, 수, 명은 하나같이 그 북쪽 경계를 산해관으로 삼았죠. 또한 요동에 성을 쌓았다는 말은 한족의 주거지가 요동도 포함했다는 얘긴데 이건 고구려와, 부여를 완전 부정하는 소리가 됩니다. 무엇보다 중국에는 많은 산성과 성이 있지만 사서에 "장성"으로 기록하는 경우는 단 하나, "만리장성"을 의미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무엇보다 요동지역은 중국 한족에겐 "적어도" 당나라 이전까지는 "이민족의 땅"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진, 한시대면 더욱 그렇죠. 이민족을 막을려고 지은 장성을 이민족의 땅에 지을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단선생님의 그런 주장은 지금 이병도학파가 주장하고, 또 국사책에도 나온 낙랑군의 위치를 근거로 평양까지 만리장성이 있었으며 그러므로 한강이북지역은 고대 중국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동북공정에 대해 아무런 비판을 가할 수가 없게 됩니다만;
1946년 중국 발굴로 압록강까지 중국의 군사 요새 유적이 발견됩니다. 만리장성 이전의 시기 것도요 이시기에 중국 유적이 압록강유역에서 발굴된다고 해서 고구려, 부여를 부정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네요. 그리고 북방의 이민족을 방어하기 위해서 만든 그 북방에 있는 모든 성들을 통칭하는 말이 '장성' 이기도했구요.
"중국의 유적"이 아니라 "중국식 유적"이겠죠. 지금 제 집에 중국책이 있는데, 이게 1000년 뒤에 서울에서 발견된다면 서울은 중국의 영향에 있던 지역입니까? 그건 아니죠. 또한 그건 중국측의 주장입니다. 동북공정에 미친 중국사학자들이 모든 조사를 끝내고 정리까지 싹한 상태에서 공개한거죠. 또한 그 북방에 있는 모든 성들을 통칭하는 말이 "장성"이고 그게 곧 만리장성입니다.-_- 지금 요동에 만리장성은 그렇게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흔적"조자 없습니다. 진, 한, 수, 당, 명 모든 나라의 사서에도 만리장성의 동쪽 경계는 산해관입니다. 중국역대 사서들이 과장하면 과장하지 자기네 역사를 줄이지는 않는 다는 점에서
그건 믿을만 하겠죠. 하물며 적어도 그 부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산해관"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사서의 기록이 일치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연구된 사서 중에서는요.
"중국의 유적"이 아니라 "중국식 유적"이겠죠. 지금 제 집에 중국책이 있는데, 이게 1000년 뒤에 서울에서 발견된다면 서울은 중국의 영향에 있던 지역입니까? ->이건 말장난 밖에 안되네요 같은 논리로 중국 신라관이 설치되었다고 그 땅이 신라거라고 우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역사를 하는 사람들을 가벼이 보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런 책이 한권 나왔으면 정상적인 결론이라면 '아 한국과 중국 사이의 출판물 교류가 가능했구나' 일케 이해하겠죠.
만리장성이라 칭해진 북방의 성들이 요동지역에 없다는 것이 나온다는 진,한,수,당,명의 모든 나라의 사서를 읽어보신 겁니까?...아니면 그렇게 써놓은 2차사료(가공해놓은 그 당시 이후의 사료)를 보신건지 말을 정확히 해주시고 저는 전해지는 저 사서들의 원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은 확인해보겠습니다.
"감독 휴게실"에서 옮겨 옵니다 2007.11.11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