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 정호승
하모니카를 불며
지하철을 떠돌던 한 시각장애인이
종각역에 내려
흰색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며 길을 걷는다
조계사 앞길엔 젊은 스님들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분주히 행인들에게 팥죽을 나누어준다
교복을 입은 키 작은 여고생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냥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이끌고
팥죽을 얻어와 건넨다
나도 그분 곁에 서서
팥죽 한그릇을 얻어먹는다
곧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
- 정호승,『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4)[출처] 주제별 시 모음 133. 「12월」|작성자 느티나무
겨울 숲에서/ 안도현
https://www.youtube.com/watch?v=ho1yag3MNas
하룻사이에
겨울 돼 버렸다
쌩코롬한 날씨에 눈발까지
자연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겠지
새벽에 일어나 일기써 톡보내고 났더니
배가 살살 아프다
어? 어젠 몸이 좀 나아지는 듯했는데...
화장실에 갔더니 설사를 주르륵
이거 뭐람
좀 있으니 다시 또
집사람도 그런단다
우리가 뭘 잘못 먹었지
어젯밤엔 입맛 없다고 사과와 감 가시오가피 즙만 먹었는데
가시오가피 즙을 먹고 탈이 났나?
참을 수가 없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
나도 모르게 설사가 나와 버리기도
아침을 먹지 않았다
이럴 땐 굶는게 좋을 것같다
잠깐 잠들려면 다시 또 화장실로
참을 수가 없다
10시 다 되어 그래도 동물 먹이는 주어야겠다며 밖으로
넘 춥다
눈발도 날린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봄날씨 같던데...
하룻사이에 한겨울 되었다
사람의 인력으론 할 수 없는 일이겠지
추워서 몸이 오싹 거린다
얼른 모이 한바가지씩 주고 방으로
다시 또 화장실
안되겠어 상비약으로 놔두었던 양귀비대를 꺼내 삶았다
설사할 땐 양귀비 삶은 물이 잘 들을 때가 있다
물을 한사발 마셔도 마찬가지
설사가 멈출 줄 모른다
힘은 점점 빠져가고
병원에라도 가서 약을 지어 볼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10분 걸러 화장실가니 병원엘 갈 수가 없다
집사람이 발 아프지 않으면 대신 다녀 올 수 있겠지만 그도 어렵다
어떻게든 나아야겠는데...
양귀비 물을 다 마셔도 효과가 없다
예전 같은면 한컵만 마셔도 즉방이었는데 단단히 탈이 났나보다
계속 화장실만 들락거리며 옷만 버리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점심 때가 훌쩍 지났다
밥을 끓여 한술 먹어 볼까?
집사람이 밥을 끓여 주는데 한 술 뜨니 더 생각없다
장염엔 머위 뿌리도 약이란다
머위 뿌리를 캐와 집사람에게 달여주라고
머위 뿌리 달인 물을 마시니 한시간쯤 설사가 멈춘다
그러더니 다시 또
잠을 잘 수도 없고
가만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몸은 점점 지쳐가고
머리는 띵
이리 몸이 망가져 버리다니
집사람은 술 때문이라며 이젠 술을 참으란다
내가 어디 아프기만 하면 모두 술과 연관 짓는다
그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전혀 아프지 않을까?
술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모든 걸 거기에 결부시켜 버리는 건 좀 그렇다
자치위원장 전화
내일 저녁에 재봉동생이랑 같이 저녁식사하잔다
내일은 설사가 낫겠지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자고
또 화장실로 직행하여 주르륵
물한잔 만 마셔도 줄줄
설사는 그칠 기미 없다
약봉지를 찾아 보니 장염에 먹는 약이 있다
예전 집사람이 먹던 약이란다
우선 그거라도 한봉지
매실차도 한잔 끓여 마셨다
먹자마자 또 화장실로 직행
뭐 이런 설사도 있나?
내일은 치과 예약있는데 설사를 이리 한다면 가기 어렵겠다
하루 아침에 몸이 엉망 돼버렸다
모두다 주의하지 못한 내 탓이겠지
뒤척거리며 깨다 보니 새벽 두시
또 설사가 시작한다
이놈의 설사를 어떻게 잡는담
어제 새벽부터 시작한 설사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설사를 해 본 건 처음인 것같다
오늘은 치과보다 내과에 가야할까보다
창문을 여니 냉기가 쑥
짙은 어둠속 저멀리 가로등 불빛만 추위에 떨고 있는 것같다
님이여!
올 마지막 달이 문을 열었습니다
새해 계획했던 일들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시고
이 달에는 못 이룬 것들을 다 이루시기 바라며
이달 내내 늘 건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