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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웜(Blueworm)-12
25.
호텔 7층의 연회장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요란스럽게 화려하였다. 다이나믹한 중동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하였다. 키스의 또 다른 친구에 의하여 3명은 별 문제없이 연회장에 들어 갈수 있었다. 7층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연회장이었다. 그 시각 즉 오후 7시부터 3번 엘리베이터는 7층 전용이 되어있었다. 그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흰색 양복을 입고 노란색의 넥타이를 한 건장한 청년 두명이 좌우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로 걸어오고 있는 지영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깨에 흐르는 검은 머리까락이 지영의 흰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으며 검푸른 실크 원피스는 지영의 균형이 잘 잡힌 몸매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나타내었다. 검고 크다란 눈은 오히려 빛났다. 4대 5의 비율을 가진 붉고 생동감있는 입술을 포함한 지영의 얼굴 모습은 순정하고 아름다운 미인으로 가히 그들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들 중의 큰 덩치가 키스를 아는 척 하였다.
그들이 연회장에 들어섰을 때는 막 연회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호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쿠르타이스 박사는 좌측편 부페식 음식들이 진열된 테이블 앞에서 와인을 골라 잡고 있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지영이 눈짖을 하며 그에게 다가가자 제임스는 지영의 두 발걸음 정도 거리에서 접근해 오는 남성들을 막았다. 키스는 지영의 왼쪽에 서서 같이 움직였다.
"오 마이 갓! Who is a nice gentleman? Dr. Kurtais. It’syou? Nice meet you. What are you doing here?"
"Oh! Dr. Kim, Jiyeong! So happy to see you a beautyful lady at here. Youare a perfect beauty. What's happening?"
쿠르타이스 박사는 지영을 보자 혼 나간듯 지영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레스토랑에서의 김지영 박사가 아니었다. 지영은 오른 손을 내밀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중간쯤 높이의 하이힐로도 그와 눈을 마출 수 있었다. 쿠르타이스는 손바닥을 펴서 지영의 내민 손을 잡으려했다. 그러나 지영은 손바닥으로 그의 손가락을 모아 잡았다. 원샷투킬이었다. 그때 키스가 끼어 들자 지영은 키스에게 쿠르타이스 박사를 소개하였다.
"I already heard about you from Dr. Kim. So good to see you. How are you,today?"
"Good to see you, too and I'm fine. Thank you."
"How can I call you, sir?"
"Oh. You can call me Dr. Kurtais. Mr.?"
"Please call me Kiss."
엉겹결에 쿠르타이스 박사는 키스와 통성명을 하게 되었고, 그가 이런 연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은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이 연회는 리쎄펀 회원을 위한 연회이자 그를 소개하는 연회로 연맹 회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키스가 쿠르타이스 박사와 말하는 동안 제임스와 지영은 호텔 밖으로 나왔다.
"제임스 아저씨. 쿠르타이스 박사에게 인사라도 하고 나와야 했어요."
지영이 제임스를 보며 야속하다는 듯 말했다.
"적과의 작별인사라... 김 박사 다운 말이군."
그렇게 혼잣말 처럼 했지만 지영은 놓치지 않았다. 제임스는 아차 하는 마음으로 지영을 보며미소지었다.
"그렇게 빈정되며 기분 좋아서 웃는거죠? 아저씨 나빠요."
"지영아. 그건 아니야. 그곳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어. 다음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거든."
"이걸 말하는 거예요?"
지영이 손바닥에 쥔 블루프린트 페퍼와 검지로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때 키스가 급히 달려왔다.
"다 잘되었지요?"
그들은 키스의 벤에 올라탓다.
“두 사람이 들어갈테니 올려보내게.”
키스는 운전을 하며 두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영어로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비슷해요. 그런데, 그들이 쉽게 문을 열어줄까요?”
지영이 말하며 걱정스러운듯 물었다.
“그리스어로 말하는 대부분의 4-50대 남자들 목소리는 비슷하지요. 그 말에 억양과 톤을 조금만바꾸면 거의 같을 수 있습니다. 잠시 후 제가 확인시켜드리지요.”
키스가 음성을 조심해서 조절하며 김지영 박사에게 천천히 말했다.
“아하. 비숫해요. 저는 금방 구별할 수가 없는데요.”
지영이 놀란듯 말하며 고개를 돌려 제임스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엉뚱한 말이 제임스에게서 돌아왔다.
"지영아 지금 우린 세사람이 아니야. 너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야하니까 실수가 없어야돼."
지영은 아무말도 할 수없었다. 쿠르타이스 박사의 연구실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고설사 들어갔다고 하여도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런지 무사히 그 건물을 빠져 나올 수 있을런지 등 지영으로서는 전혀 처음 겪는 일이라서 불안하고걱정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하기도 하였다. 지영은 머리속으로 호텔방에서 잠깐 제임스가 긴급할 때 사용할 수 있다는 호신술 몇가지를 생각하며 몸을 움찔하였다. 늘 무관심한듯 지켜보고 있던 제임스가 놀라서물었다.
"지영아. 몸이 불편하니?"
제임스의 물음에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제임스는 가슴이 쿵쾅대는 것을 느꼈다. 선애였다. 젊었을 때의 선애를 보는 것 같았다. 해맑고 티없는 순정한 아이같은 미소였다.
"아저씨! 왜 그렇게 보세요? 저는 요. 아저씨가 아르켜준 호신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용할 급한 때가 없으면 좋겠어요."
그 때 키스가 아련한 추억의 분위기를 깼다.
"연락이 왔습니다. 찾았습니다."
"현재 시각이 21시 20분. 정각 22에 침투합니다. 오케이?"
제임스는 키스에게 말하고 지영을 돌아봤다. 수줍듯 지영이 제임스의 의도를 눈치채고 말했다.
"호텔에 잠시 들렀다 가요. 아저씨. 저도 준비할 것들이 있어요. 옷도 바꿔입어야 하고..."
26.
한편 그 시각 한국의 죽변항. 오전 일찍부터 하얀색 4인용 모터보트가 방칫골 마축간에서 새벽의 거울같이 맑은 수면을 가르며 천천히 어항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 선애 걔는 어떻게 맛치를 다 기억하고 있는거야.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그 맛치를 어디에 쓰려고 한데니?"
"몰라. 자세한 이야기는 다 할 수가 없었겠지.캐나다에서 전화한거니까. 하여튼 무지하게 중요하다고 그러더라."
"걔는 언제 캐나다에 간거야? 나는 대전에 살고 있는 걸로 알았는데. 아주 똑똑하고 인물 잘나서 국제적으로 노네. 언제 고향에 온데?"
"선애의 딸이 박사이고 의사잖아. 걔가 블루웜이라는 것 때문에 캐나다에 가 있는 딸 김지영 박사를 도와주러 간걸거야. 하여튼 잘나고 똑똑해도 힘들어.그나 저나 맛치가 제대로 있을려나 모르겠다 야."
"있겠지. 없으면 이 넘의 바다 다 뒤져서라도 찾아 보내야지. 객국에 있는 동창이 부탁한 건데 우리가 못해주면 누가 해주냐?"
"그래. 그건 맞다. 해줘야지. 오늘 아침부터 수경쓰고 담방구질 신나게 해보자."
김지영 박사의 어머니 김선애의 고향 동창들이었다. 전화를 받자 곧 팀을 만들어 수경과 수영복을챙겨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운전은 수진이 남편 영호가 맡았고, 담방구질은 정혜와 수진이 둘이서 할 것이다. 남편이 남자가 해야 한다고 우겼지만, 귀하고 귀한 고향 초등학교 동창인데 어찌 남편인 남자 선배에게 맡기겠는가 하며 사양하였다. 지금 비록 나이가 중년이지만 그 까짓 담방구질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보트는 항구 정면에서 파도를 막고있는 방파제와 보트가 출발한 방칫골 마축간. 이제는 없어진 모래사장 터에 만들어진 어판장 그리고 수협건물이 있는 동쪽, 그 네 곳에서 출발한 선이 만나는 바다 중심에 닻을 내렸다. 막 떠오른 아침해가 잔 물결을 비추어 수면은 눈부시었다. 그들은 서둘렀다. 밤새 오징어 잡이 나갔던 배들이 돌아 올 때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정혜와 수진은 비키니 수영복에 달랑 민물 수영장에서 쓰던 수경을 착용하였다. 말이 비키니지 색상 요란한 반소매 면 셔츠에 사각팬티였다. 어촌에 살며 삶에 바뻐서인지 그렇게 날씬하지는 않았지만 꽤 보기가 괜찮았다. 매년 여름이면 그렇게 입고 쓰고 바다와 친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이빙 자세를 취하였다. 그 때였다.
"어이! 잠깐. 그냥 들어가믄 어쩌노? 자 여있다 장갑. 이걸 끼야 이쁜 손 안 다치지."
수진의 남편 영호가 바닥이 고무로 덮혀진 작업용 면장갑 2컬레를 가방에서 꺼내 주었다.
"하이고. 역시 영호 형님이 최고요. 언제 그런거를 다 준비했어요. 이제 손 빌 걱정은 없구마."
"내가 누구요? 후배 여자들 챙기는데는 물 불 안가린다 아닝교."
"됐따. 얼르 들어가자. 그나 저나 맛치가 있을라나 모르겠구마."
정혜가 수진의 장갑낀 팔을 잡았다. 그들은 풍덩 소리를 남기며 바로 바다속으로 입수하여 밑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해가 떠서 그 햇살로 바다밑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은 깨끗한 모래들이 시야까지 깔려 있었다. 부두에는 곧 들어올 고깃배를 맞으려고 분주하기 시작하였고 그 공판장 한 쪽에 주차된 검정색 그랜져에는 두 사람이 망원경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호 형님 보이소.이제 맛치를 다 냉동박스에 넣었니더. 떠나야 안됩니꺼?”
“알았소. 근데, 서울 어디로 가지고 가야하는지 주소를 줘야 가든 말든 할꺼 아니요.?”
“여보! 주소와 정 박사님 전화번호가 여기 있니더. 그리고 맛치는 캐낸 그대로 급속 냉동해서 얼음하고 같이 비닐봉지에 넣 스치로폴박스에 담았다고 전하소. 김지영 박사 어머니. 그 친구가 김선애이니더. 선애가 말한대로 했다고 하면 될낍니더. 정 박사가 맞는지 확실히 확인 잘하고 예. 전해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휭하니 돌아오소. 점심도 기름값도 아무것도 안됩니더. 아셨지요?”
“알았다. 니 동창 일이고 내 후배 일이다. 내가 뭐할라꼬 그런걸 받노 말이다. 그냥 올끼니까 걱정마라. 됐나? 그리고 그쪽에 있는 빈 박스 2개만 더 실어주소. 생물같이 소중해서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영호가 시동걸린 스포티지를 막 타려는데 급히 아내인 수진이 달려왔다.
“여보! 조심하소. 길조심, 차조심 그리고 여자조심. 알았지요? 그리고 선애가 절절히 말하기를, 이맛치가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하다고 했니더. 지체말고 바로 정 박사에게 전해주소. 한시가 급하다 하데요. 전해주고 나와서 바로 전화 해 주소. 선애 이 가시나가 또 전화할낍니더. 알았니껴?”
영호는 스포티지를 출발시키며 생각했다. 어느쪽 길로 가야 가장 안전하고 빨리 갈 수 있는가를. 강릉에서 영동고속도를 이용하는가? 아니면 불영계곡을 거슬러 올라 영주를 거쳐 영동고속 도로를 이용하는가? 어느쪽 길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스포티지가 고등학교 앞을 지날 때 영호는 빽미러로 검정색 그랜져가 같은 간격으로 따라오고 있음을 봤다.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친구 철웅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야. 철웅아. 지금 서울로 가고있다."
"어디쯤 가고 있냐?"
"고등학교 앞을 지나고 있다. 그런데 시내서 부터 검은 그랜져가 따라 오는 것 같다. 기분이 안좋다."
"제수에게 대충 들었다. 그러면 니 동해고속도로에서 좌회전해 울진쪽으로 달려라. 우리가 니 뒤를 따라갈테니."
"우리라니?"
"응. 진우하고 윤중이 같이 간다. 우리는 방칫골로 나가서 니 뒤를 따르겠다. 니 휴대폰 충전. 계속해놔라. 아마도 불영계곡으로 가는게 좋을 것같다."
"알았다. 샛돌쯤에서도 그랜져가 따라오면 맞는거다. 누구 차노?"
"내 차다. 여기가 아우토반도 아니니 충분히 따를 수 있다. 이따가 보자."
영호는 빽 미러를 주시하며 비상용 비행장 활주로가 펼쳐진 동해 준고속도로 진입 신호등을 지나 후정 2리 마을회관 앞에서 좌회전을 하여 서서히 7번 국도로 진입하였다. 빽미러로 보니 그랜져도 같은 라인에 서 있었지만 신호를 받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