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주인공 박군은 중학교도 못다니고 17세의 나이에 대전에 있는 XX영아원 급사로 취직을 해서 야간상고를 다닐 계획이었으나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주간 대전공전에 합격을 하고 계속 그 영아원에서 급사로 고된 생활을 하면서도 면학의 집념을 불태웁니다. 한편 영아원생활 중에 겪었던 갖가지 일화를 생생하게 그려냈는데 그중 선별하여 올려 보겠습니다. 잠실 베레모/박 군
**** 미녀 도둑 - 백 보모 ! ****
영아원에는 보모들은 언제나 열 서너명은 되었고 한 달에도 한 두 명씩은
들어오고 나가고 하였는데 어느 날 아주 그럴 듯한 미녀 백 보모가 들어 왔다.
백 보모는 늘씬한 몸매에 하얀 피부와 갸름한 얼굴에 눈매조차도 매혹적이어서 고참 보모들은,
- 아니, 저런 미인이 왜 영아원에는 다 왔어... 탤런트로 빠지지 않고서...
하면서 시샘할 정도였고 박군이 보기에도 사실,
- 과연 절세가인이로다 !
하고 탄복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다.
백 보모는 눈을 약간 아래로 뜨면서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아니하였는데 처음에는 이 또한 매력포인트의 하나였었다.
그런데 백 보모가 영아원에 온지 한 달쯤 지나고부터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다른 보모들이 백 보모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소위 왕따를 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우리 박군은,
- 쯧 쯧 쯧 ! 다른 보모들이 저렇게 얼굴이 예쁜 백 보모를 시기를 하는구나 !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은 묘하게 터졌으니...
- 아니 ! 박군 !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 !
- 왜요 ? 공 보모 누나 ! 무슨 일이 생겼어요 ?
이른 아침부터 보모들이 무서워 벌벌 떨고 야단들이었다.
- 지금 ! 지금말이야 ! 박군아 ! 영아원에 도둑놈이 들어 와 있다고 !
아이들 목욕실 뒤에 도둑이 숨어 있다고 !
에구머니라... 나 박군도 가슴이 떨려왔다. 세상에 지금 도둑이 한 울타리안에 있다니 이를 어쩐다냐 ? 그래도 불알 달린 사내라고는 나 박군밖에 없다고 나약한(?) 여자들이 이렇게 몰려와서 고해 바치는데 대체 이를 어쩌면 좋지 ?
- 총무 아저씨 한테 ! 아니 간호원 선생님 한테 연락합시다 !
- 박군, 아니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 박군, 어서 가봐 !
- 몽둥이를 들고 갈까 ! 아니야. 부엌칼을 들고 갈 까 ! 아니 그것은 너무 무섭고, 아이구 나도 몰라요 !!
사연은 이러하였다.
보모들 중에는 교회의 새벽예배를 다니는 사람들이 두어명 있었는데 그 날 아침에도 보슬비를 맞으며 교회에 다녀와 비에 젖은 파란색 치마 두 벌을 벗어 아이들 욕실에 널어 놓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그 파란 치마가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다.
실로 눈 깜빡할 순간에 치마를 걷어 간 것으로 보아 지금 도둑놈이 멀리 못가고 욕실 뒤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에구 할 수 없다. 사내자식 체면도 있고 도둑한테 맞아 죽든지 도둑을 때려잡든지 둘 중에 하나겠지...
박군은 연약한 보모들을 대여섯명 뒤 따르게 하고는 - 여차하면 먼저 도망갈 속셈으로 후후후 !, 그래도 폼으로 몽둥이 하나를 손에 들고는 서서히 아이들 욕실로 다가갔다.
... 쉿 ! ... 긴장 .... !
그래도 앞장을 선 우리 박군이 제일 먼저 욕실 주변을 확인하고는,
- 아무 것도 없잖아 !!!
하면서 자랑스럽게 몽둥이를 한 번 휘둘러 보였다. 마치 도둑을 만났더라면 이렇게 때려 잡았을거야 하는 폼으로...
- 아니 ? 그럼, 도대체 치마는 누가 걷어 간거야 ?
당시에 보모들 봉급은 매우 낮아서 2000 ~ 3000원 정도였고 치마 한 벌 값이 한 달 봉급을 초과할 정도였는데 한 보모가 치마를 사자 너무 색깔이 곱고 예쁘다고 다른 보모가 따라서 같은 색을 구입하여 마치 쌍둥이처럼 입고 다니던 파란 치마가 요술을 부리며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 그러면 아무래도 영아원 가족들중에 도둑이 있는 것 같아 !
- 그래, 맞아 ! 우리들 가운데 도둑이 있을지 몰라 !
-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
- 그래, 우리 모두 짐을 뒤져 보자구 !
의견은 순식간에 과격한 방향으로 급진전하였고 당연히 최근에 영아원에 들어온 백 보모에게 시선이 쏠리게 되었다.
당황하는 얼굴빛이 역력한 백 보모는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들어 갔다가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여자들은 눈은 매섭다. 박군은 아무것도 못 보았는데도,
- 저 ! 백 보모 아랫배가 수상하다 ! 화장실 갈 때는 불룩했는데 나올 때는 홀쭉해졌다. 필시 화장실에 치마를 내버리고 왔을 것이다.
- 맞아 ! 그럴 수 있어 !
- 박군 ! 한번 가봐 !
아니? 또 죄없는 박군이야 ! 나보고 냄새나는 화장실 속을 확인하고 오라고 ?
-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은 텐데...
솔직하게 박군은 화장실 속을 들여다 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나 백성이 원하면 이승만 박사도 대통령직을 물러나는 나라인데...
할 수 없이 또 박군은 유일한 사내로서의 책임감때문에 성냥불을 그어 대고는 화장실 안을 들여다 보니,
- 어 ? 진짜로 파란색 치마가 보인다 !
보모들의 육감이 기막히게 적중한 것이다.
- 백 보모 짐을 뒤져라 !
- 그래, 백 보모 방을 조사하자 !
- 박군아 ! 어서와 !
아이구 ! 내가 무슨 경찰도 아니고 남의 짐을 어떻게 뒤지느냐 말이다 ! 아이구 머리야 !
- 안돼요 ! 그것만은 할 수 없어요, 나는 백 보모를 수색할 권한이 없어요 !
그러자, 한 보모가,
- 그러면, 우리 모두의 짐을 뒤지자 !
- 그래 ! 박군 짐부터 조사하자구 !
왝 !! 내 짐부터 조사를 한다고 ? 아니, 내가 도둑이란 말인가 ?
머리 좋은 어느 보모의 아이디어란다. 뒷말이 없도록 모두의 입회하에 모두의 짐을 차례로 조사하되 제일 만만한 박군방 부터 수색을 한단다.
- 어이 오소, 보모 누나들 !
그래서 1차로 박군방을 나무상자 속에 들어있는 빨래도 아니한 팬티하나 까지도 만인이 보는 앞에서 털어 보여야 했다.
아이구 챙피해라...
- 박군방에는 아무 것도 없고 다음은 임보모 방 !
...
- 또 다음은 백 보모 방 !
순간 모두가 긴장을 했지만 성질이 급한 오보모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그녀의 옷장속에서는 별의별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럴 때마다 구경하는 다른 사람들은,
- 어머머 ! 세상에 ! 숟가락도 나오고 !
- 또 ! 아이들 바지도 !
- 에구머니 ! 잃어버린 내 마후라도 나오네 !
- 아이구 어머니 ! 저건 내 티셔츠 아냐 ? 언제 훔쳐갔어 ?
그런데 파란 치마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 왜, 치마가 안보일까 ?
- 야 ! 백 보모 ! 너 내 치마 어디에 숨겼어 ?
이제는 백 보모에게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 ?
- 왜 대답이 없어 ? 이 도둑년아 !
분위기가 매우 험악해졌다.
그 때 조사를 하던 오 보모가,
-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이 운동화 하나뿐인데..
하면서 두짝을 볼록 마주대고는 끈으로 꽁꽁 묶어 놓은 운동화 한 켤례를 손으로 들어 보였다.
- 거기에 무어가 있겠어 ?
어느 보모가 말하자 치마를 잃어버린 보모가,
- 안돼! 이 속에도 확인을 해야 돼 !
하면서 마주댄 운동화 사이를 손가락으로 헤집자마자 불록한 운동화 속에서 파란 치마가 얼굴을 비집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 와 !!!! 와 !!!!
박군도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치마하나가 무얼 그리 값진 물건이라고...
이제는 모두가 들통이 났다. 그동안 물건이 없어져도 서로 쉬 쉬 했는데 수많은 잃어버린 물건이 백 보모 방에서 나왔으니...
자, 지금 까지는 수사관의 몫을 했고 이제는 재판관이 할 일이 남았다.
- 도둑년하고는 하루도 같이 살 수가 없다 !
이것이 민중의 의사였다. 마침 원장님은 서울에 가서 영아원에 안 계시고 난리를 치루는 사이에 총무 아저씨와 간호원 선생님과 침모 아주머니도 출근을 해서 최종으로 의견을 모았다.
- 미녀 도둑 백 보모를 영아원에서 추방함
오늘 저녁이 되기전에 무조건 이곳을 떠날 것
그리하여 백 보모는 자기 가방을 챙겨서 영아원을 떠났는데...
문제는 그녀가 집도 절도 없고 가족도 없는 고아출신이요, 또 도벽증이라는 일종의 환자 - 병적으로 도둑질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병자였음을 뒤늦게 알게된 우리 박군은,
- 지금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최악의 상태로 사건을 매듭짓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텐데... 당시 오갈데 없던 우리 백 보모가 과연 어디로 갔을런고 ???
정말이지 그 때 그일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 백 보모 누나 ! 미안해요....
잠실 베레모
첫댓글 그 배고파하던 시절에... 있었던 추억담... 마음이 서글퍼 지네요...지금쯤 그 백보모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잠시 만났던 인연인데 인상이 깊게 남아있습니다. 도벽증을 치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