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따라 봄 마중
입춘을 하루 앞둔 이월 초순이다. 대한이 지나 뒤늦게 찾아온 동장군이 물러간 이후 날씨는 연일 흐리고 비가 잦은 편이다.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저기압이 정체전선이 되어 남녘 해안 걸쳐진 강수대였다. 내가 기상 정보를 취하는 ‘소박사 유튜브’ 운영자는 제주도에서는 봄철에 잦은 비를 두고 고사리를 돋게 해주어 ‘고사리 장마’로 부른다는데 그 비가 당겨 내리는 양상이라 했다.
웃비는 내리지 않아 우산은 펼쳐 쓰지 않은 채 강가로 가려고 현관을 나섰다. 집 앞에서 동마산병원 앞으로 가는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역 앞에서 내렸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 남지로 가는 농어촌버스로 갈아탈 시각은 여유가 있어 주말 아침에 장이 서는 마산역 노점을 둘러봤다. 설이 가까워서인지 평소 주말과 다른 점은 차례상에 제수로 쓰일 생선이 흔하게 보였다.
노점에서 교외로 가는 농어촌버스가 서는 정류장으로 가서 칠원을 둘러 남지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시골로 가는 몇 노인네들과 같이 차에 올라타 교외로 나가면서 몇몇 승객이 타고 내렸다. 칠원 읍내에서 칠북면 사무소를 거치니 남은 승객은 혼자였다. 논이 적어 밭과 산지를 개간해 포도와 복숭아 과수 농업이 성한 이령을 지난 덕암에서 이룡으로 가니 강변의 평지마을이 나왔다.
강변에는 분교로 격하된 초등학교와 사학 재단 중학교가 폐교되지 않은 채 맥을 이었다. 초등학교 곁 묵혀둔 길을 지나 강둑으로 가니 모래밭 복숭아나무는 수액이 오르는 자주색 가지가 윤이 나면서 꽃눈이 부풀었다. 고구마를 캔 밭은 봄 감지를 심으려는 휴경지였다. 마을 수호신과 같은 느티나무와 문이 닫힌 폐가를 지나 움막과 같은 농장이 나왔는데 닭을 기르는 축사인 듯했다.
강둑으로 올라 강나루 수변공원으로 내려섰다. 대단지로 가꾼 작약 꽃밭은 아직 움이 돋지 않은 채 봄이 오길 기다렸다. 오토캠핑장에는 겨울철이라 텐트를 친 야영객이 적었다. 드넓은 둔치는 가을에 심은 보리가 싹이 돋은 채 겨울을 나면서 파릇한 기색이 보였다. 관계 당국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정비한 둔치에 보리를 심어 늦은 봄 ‘청보리 축제’를 펼쳐 구경꾼이 모이게 했다.
보리밭을 가로질러 나루터를 복원한 곳으로 가 봤다. 강 건너는 창녕 도천면 우강리로 배수장이 바라보였다. 배수장 곁은 임란 의병장 곽재우가 노년에 머문 터를 기린 비각이 보였다. 남강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펼쳤던 홍의장군은 만년을 창녕에서 보내고 사후 그의 집안 집성촌인 달성 현풍 구지 선산에 묻혔다. 오래전 새해 첫날 합천보를 걸어 건너 곽재우 묘역을 참배한 적 있다.
강나루에서 둔치의 산책로 따라 걸으니 국고 5호선이 낙동강을 가로질러 건너는 교각 밑을 지났다. 보리밭에는 쇠기러기들이 날아와 싹을 뜯어 먹었는데 머잖아 북녘으로 날아갈 녀석들로 에너지를 비축해 두어야 할 듯했다. 지난해 봄이 오던 길목 그 보리밭에서 겨울을 난 냉이가 많아 지기들과 같이 캐서 봄내음을 맡았다. 올해는 생태계가 달라져서인지 냉이가 귀해 보이질 않았다.
강나루 생태공원에서 강둑으로 올라 광려천이 흘러온 하류에 놓인 소랑교를 건넜다. 광려천은 샛강이 되어 높이 자란 한 그루 버드나무를 S자로 휘감아 돌아 낙동강 본류로 합류했다. 덕남마을에서 자전거 도로를 겸한 둑길을 걸으니 강 언저리 갯버들 가지에는 수액이 오르는 파릇한 기미를 볼 수 있었다. 밀포교를 건너 창녕함안보로 가니 옛 밀포 나루터는 노거수 팽나무가 지켰다.
창녕함안보 쉼터에서 챙겨간 고구마와 커피로 간식을 겸한 점심을 요기하고 내봉촌으로 향했다. 거기도 강변 마을이지만 논은 한 배미도 없는 산지라 단감 농사만 짓는 농가가 몇 채 나왔다. 내봉촌과 이웃한 오곡은 행정 구역이 달라져 창원으로 하루 몇 차례 마을버스가 들리는 데였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간 내산삼거리서 명촌을 출발해 시내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24.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