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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문학기행
황광국
2017년 4월 29일
08:08 전주시청 민원실 앞에서 월천의 벗님들 30명을 태운 관광버스가 오늘의 일정을 향하여 출발했다. 새만금을 거쳐 부안 일대를 살펴보는 일이다. 녹음은 짙어가기 시작하고 햇빛은 맑고 모든 것이 좋은 날, 차창너머 파릇한 들판에 못자리는 시작되고 물은 하얗고 농부는 허리를 구부려 일 년 농사의 시작에 바쁘다.
월천의 미인, 월천의 느티나무 바람을 몰고 전군가도를 지나 들어서는 새만금 방조제, 파랑의 세월을 넘어온 물결, 멀리 수평선에 안개가 피어오르고 반짝이는 바다를 가로지르며 달린다. 어디를 봐도 푸른 물결 넘실대는 망망한 바다 건너 사이사이 나타나는 섬들, 신시(新市)도 비응(飛鷹)도 등등 고유의 예견(豫見) 있는 이름들을 지나치며 이어지는 세계최장의 방파제를 달리고 있다. 원래는 중간의 섬들을 방문할 계획이기도 하였으나 시간, 여건 등이 여의치 않아 보는 것으로 족하며 일정을 달리한다. 방파제 안에는 그 운명을 알 수 없는 꿈 잃은 돛단배들이 졸고 점점이 바다위의 간석이 펼쳐지고 있다.
새만금 홍보관에 도착하여 바닷바람도 쏘이고 사진도 촬영하는 공간에 우유와 온유의 힘이 서린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나무 그리고 기념 촬영도 뻬놓을 수 없는 과정에 화유의 장을 마련하며 이야기에 정겹다.
09:55 홍보관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부안의 해변길을 나선다. 조선중기의 기녀이면서 예에 능했던 이매창의 유적지를 향하여 달린다. 개성에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의 삼절이 있듯이 변산에도 삼절이 있다고 모 시인이 명명했단다. 바로 이매창, 직소폭포 그리고 유희경이라고 하지만 견지에 따라 재정립 될 법도 하다.
생거부안답게 바다, 산, 평야가 펼쳐지는 고루 갖춘 전형적인 평화로운 정경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매창공원으로 달린다. 매창의 묘소가 있는 지역은 전에 공동묘지였으나 근세에 매창의 묘소를 발견하고서 공동묘지를 정비하고 그 곳에 공원을 부안군에서 조성했단다. 하찮은 기녀라고 조선사회에서 폄하했지만 그 시 정신에 오늘의 이매창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보다 당당했을 그 영혼들은 자리를 내어주고 어디로 갔을까? 부침하는 세월에 변화되는 세상의 아이러니다.
매창의 유일한 시조 이화우에 이어 수많은 한시가 있으니 그녀의 식견이 대단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으리다.
매창이 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미의 기준이 어디일까는 각도의 차이가 있을 터이니 미추가 따로 있겠는가. 불구부정(不垢不淨)인 것을 ...
서서화에 능한 난세(亂世)의 난새(鸞새) 이매창, 곱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매창의 손끝을 타고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가야금의 음과 색을 달리하는 거문고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소리 또한 웅장하게 울리고 있으니 삼국지에 등장하는 일세의 걸물 제갈공명이 전장에서 즐겨 탔다는 그 음률이 오버랩 된다.
숲에 들려 쌓인 매창의 묘소가 단아하게 손질되어 있고 그 옛날에 민초들이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세웠다는 비바람 이겨낸 이끼 낀 비석에 名媛李梅窓之墓(명원이매창지묘)라 각인된 묘비명이 지나간 세월의 애환을 말해주고 있다. 그 맞은편에 보다 웅장한 오석으로 모 단체가 새로이 건립한 비가 대조된다. 무슨 연유로 거기 다시 세웠는지 알듯하면서도 모를 일이다. 낯 내기식의 허울은 아닌지. 아무튼 옥의 티를 넘어서 흠집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그 비가 거기 존재해야할 이유나 의미가 느껴지지 않음은 나만의 심사일까? 문화유산은 거기에 가감하거나 장식을 해서는 문화재로서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것 쯤은 생각해 보았어야 할 일이다. 통영에서 본 묘비명도 없는 토지작가 박경리선생의 묘소를 순방하면서 참 단아한 품위라고 생각했었는데 반추해 볼 일이다.
주변에는 매창의 주옥같은 시들을 한글로 번역하고 그 밑에 원본으로 세운 시비들이 자연석에 새겨 눈길을 끌게 한다. 그것은 잘 한일의 하나가 될테다.
황진이의 한시 중에 직녀를 빗대어 정감을 노래한 시 ‘수단곤산옥(誰斷崑山玉)’을 암송했었는데 그 짝을 이룰 만한 매창의 취객(醉客)에 대한 시를 대하면서 암송한 것은 수확중의 하나다. 모두가 젊은 여인의 한과 결핍된 정과 감성이 배어나는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임진란으로 정인 유희경을 보내고 남긴 시 ‘이화우 흩날릴 제‘는 너무나도 유명하거니와 그 많은 한시를 남기고 3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해 갔어도 그 명성이야 천년을 이어가고 남을 지어니 그것이 바로 시의 향기에 스며도는 강한 힘이 아니겠는가. 매창도 가고 세월도 가고 그래도 그님의 숨결은 영원으로 남아 가슴에 새겨든다.
거문고 칠현금에 울려드는 해어화여
기예의 감성으로 젖어드는 시정으로
불러도 찾아들 수 없는 향취만의 임이어라
10:50 매창공원을 출발하여 다다른 곳이 석정문학관이다.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를 좌우명으로 삼고 일생을 곧곧하게 시와 함께한 시인 신석정, 바로 정군수 관장님의 스승이시기도 하다.
문학관을 둘러보며 전시실 옆에 영상세미나실로 가서 고인의 일생을 담은 영상물을 관람하고 이어서 동행한 시인의 시낭송의 시간도 가졌다 송현시인과 보름달 시인의 낭낭한 시 낭송에 선생의 시정신이 더욱 돋움하고 있다.
12:00 석정문학관을 뒤로하고 부안군청 부근 식당으로 가서 모두 함께 가지는 연석의 시간이야 즐거움의 별미다. 거기 나오는 갈치조림이 맛을 더하기는 하지만 친절도가 조금은 그 맛을 깎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돌아가는 일순배에 흥은 더해가고 정을 공고히 하는 촉매제가 된다. 오찬을 마치고 우리들의 관광버스는 다음 행선지를 향하며 변산마실길 66km의 장정에 들어선다.
변산 마실길
대한제일경 大韓第一景 우리나라 해변풍경에 제일이라는
시백육십리 始百六十里 일백육십리 마실길에 들어서보니
변산해변다 邊山海邊多 굽이굽이 돌아도는 해변의 다채에
화음투명백 和音透明白 화음은 하이얀 투명의 바람을 날린다
파파풍수안 波波風守岸 파도 밀려도는 거친 바람 언덕을 지키며
단애간고송 斷崖看枯松 벼랑난간에 세월을 간직한 늙은 소나무
기기묘기석 奇奇妙怪石 기이하고 기묘한 괴석이 내려다보는
태공척간두 太公擲看短 바위에 드리운 태공의 시선은 하루가 짧은데
백파객선구 白波客船鷗 흰 물결 가르며 울리는 여객선 갈매기
휴휴심심처 休休深心處 쉬면서 흘러가는 마음 깊은 곳에
시심만리파 詩心萬里波 시의 가슴은 만리의 창파를 나르며
여여유유야 如如愉裕惹 여여히 흘러 흘러 끌어들이는 유유의 여유야
송림의 연가 (戀歌)
청정해풍도파도 淸淨海風渡波濤 청정한 바람은 파도를 건너와
해변송림불변청 海邊松林不變靑 해변의 송림은 여전히 푸른데
야연사장염연두 野營沙場染軟豆 캠핑장 모래벌 연두빛 물들던
차시량여하존성 此時量汝何存成 그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세월퇴색세상탁 歲月褪色世上濁 세월은 바래고 세상이 탁해도
선명여여불변야 鮮明如如不變也 새맑음 그대로 변할수 없는데
하시세풍요첨수 何時歲風颻添凁 어느새 바람이 싸늘히 불어와
휘황해변하연가 輝煌海邊霞戀歌 빛나던 해변에 노을빛 연가여
13:30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나며
적벽강의 힐링(healing)
해변파도에 씻겨든천년
적벽가계단 내려서며는
울긋불긋한 색색의향연
바윗길인파 모두다선인
밀어물밀어 세월수려한
해식단애에 주상절리굴
물은유해도 암석뚫으니
돌개구멍에 페퍼라이트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다시보아도 기기미묘해
수성당올라 개양할머니
순간의인연 춤추는신기
인생지사에 마음닿으면
화평하리니 그것이힐링
14:00 적벽강 해변에서
금구원의 연인 (戀人))
마법오성회유심 魔法五星廻慮心 마법의 수수께끼 오성의 가슴을 돌아
천년기침백제녀 千年起寢百濟女 천년숨결 깨어나 눈뜨는 백제의 여인
태풍지류식태양 飂風止流息太陽 불던 바람 멈춰서고 태양도 숨죽이는
사연사냉비은혹 似軟似冷秘隱惑 여린 듯 차가운 듯 은밀한 고혹의 신비여
15:00 금구원조각공원에서
솔섬의 여락 (旅樂)
해안엔 금모래 해양엔 은물결
솔솔솔 바람만 물결을 건넌다
물들면 바닷길 빠지면 육로라
제때를 모르면 돌아갈 지어니
그것이 세사의 아픔인 것이다
큰나무 그늘에 쉼터를 찾아서
모두가 정겹게 둘러서 앉으니
남도맛 홍어회 닭강정 구미에
제비의 가녀린 개여울 건너서
소맥주 한잔에 하루가 시원타
17:00 솔섬수련원에서
모항의 미감 (美感)
청항미가연 淸港美佳衍 청정의 항로에 아름다움 펼쳐지며
전망일가견 展望日佳見 저멀리 햇빛에 장관을 이루니
모항미백파 模港微白波 하얀 파도 몰려드는 저무는 포구에
사사금만사 沙沙金滿瀉 모래 모래 펼치는 금빛의 흐름이여
백운청천하 白雲晴天河 하얀 구름은 맑은 하늘에 돌고
해풍유유림 海風悠悠림 바닷바람은 유유히 산림을 스치니
투명수채안 透明水彩岸 투명 수채화 펼쳐지는 언덕에 들어
유일채호선 留日彩好旋 하루쯤 머무르며 채색해도 좋으리
17:50 모항을 지나가며
곰소항의 여흥 (餘興)
서해바다 작은항
붐벼드는 어시장
송암선생 호기에
무릉도원 여반장
찾아드는 주막집
저무는길 바빠도
돌고도는 순배주
흥에겨운 벗님들
일배일배 부일배
술한잔에 시한수
이만하면 마실길
즐겨본들 어떠리
19:00 곰소항을 떠나며
귀로의 만감 (萬感)
갈때는 새로움에 좋았고
올때는 정들어서 좋아라
아침은 아침이어서 좋고
저녁은 저녁이어서 좋더라
하루의 만남에 익어가는 문향
만나서 좋고 좋아서 만나고
벗님이여 오늘 같은 뜻이라면
가슴에 새겨두며 기억할 일이다.
어제가 있었음에 오늘이 슬기롭고
오늘이 있음에 내일은 어이할까
그것은 그대의 한 생각에 있으니
인생사 흘러감이 그러함 아니련가
20:00 여정을 마치며
첫댓글 님의 글을 보면서 세월을 탓하고 싶은 생각이 늘 나요 대단하십니다
국보급 보물 같아요 박물관에 오래오래 간직한 문화재 같이
귀한 작품 멋집니다.
미리내시인님 귀한글 잘보았습니다
주옥같은 시어들이 가슴다아
행복했습니다
감사 합니다
많은 기행문을 읽었지만 이처럼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기행을 다듬은 글은 처음입니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발길 닿고 눈길 머무는 곳마다 어루만져 새롭게 표현해 주시니 또 다른 감흥으로 지나온 여정을 되밟아봅니다.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미리내 시인님의 글 사랑에 벅찬 찬사를 보냅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항상 님의 글을 대하면 통탄을 금할길이 없어요
천산 유수와 그대로인 글 하나도 빠짐없이 어쩜그리 다
기록했나요 무엇이나 못하는지요푸욱 쉬었다 갑니다
자상하신 미리내님
좋은 글 잘 읽을 수 있게 해주셔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문학 기행을
제가 다녀온듯하네요
못가서 아쉬웠었는데요
다음엔 꼭 참석해서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향에 머물겠습니다
고운 시간이어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