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로마 유학 신학생 및 사제들과 교황의 만남 (Vatican Media)
교황
교황 “사제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0월 24일 로마에서 수학하는 신학생 및 사제들을 만나 여러 가지 질문에 답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함께 아파하는’ 사제들의 삶의 방식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라는 소명 △출세주의 지양 △영성 지도 △새로운 과학기술의 사용 △식별 △과학과 신앙의 대화 △전쟁 중에서 교회의 역할 등 여러 주제를 다뤘다.
Vatican News / 번역 김호열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0월 24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로마 유학 신학생 및 사제들과 긴 대화를 나눴다. 교황은 열 가지 질문에 답했다.
좋은 사제와 하느님의 방식
자비의 구체성에 관한 질문에 교황은 친밀함과 온유한 사랑을 표현하는 행동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강론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행동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여러분의 생각도 굳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강론할 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추상적인 말만 하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성당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교황은 “사람의 성숙함을 나타내는 세 가지 언어, 곧 머리의 언어, 마음의 언어, 손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라고 권고했다. “이 세 가지 언어, 곧 내가 느끼고 행하는 것을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느끼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아울러 하느님의 방식인 친밀함을 몸에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까이로 오셨다”며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의 방식은 “항상 친밀함, 가엾이 여기는 마음, 온유한 사랑”이라며 “여러분이 자애로움과 온유한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면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사제는 가까이 다가가고, 동정심이 많으며, 온유합니다.”
교황의 말을 경청하는 신학생들과 사제들
하느님 백성을 계속 만나십시오
사제 직무에 합당하게 양의 냄새를 잃지 않고 사제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이들에게 교황은 학업이나 교구청 업무에 종사하더라도 “사람들과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을 계속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름부음 받은 하느님 백성이고,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어 하느님 백성에게서 멀어지면 “사상가, 훌륭한 신학자, 훌륭한 철학자, 교구의 모든 일에 능통한 팔방미인”이 될 수 있을지언정 “양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역량”은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될 경우 “여러분의 영혼은 양 냄새를 맡더라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하느님 백성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본당, 공동생활가정이나 요양원”에서 사목 경험을 쌓으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교황은 △하느님과의 친밀함(기도) △주교와의 친밀함 △사제들 간의 친밀함 △하느님 백성과의 친밀함 등 네 가지 친밀함의 원칙을 설명했다. “하느님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여러분은 좋은 사제가 아닙니다.”
질문에 답변하는 교황
사제직은 안락한 생활이나 출세주의를 뜻하지 않습니다
교황은 사제직을 사무직과 혼동하는 사제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러한 공무원 같은 사제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하고 방해받길 원치 않으며 안락한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사제직은 하느님을 향한 거룩한 봉사입니다. 이 봉사의 최고봉은 바로 성찬례입니다. 이 봉사는 또한 공동체에 대한 봉사입니다.” 교황은 사제들에게 교회 내에서 “높은 직책에 오르려고만 하는 출세주의자들”이 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 이들은 결국 봉사자가 아니라 배신자가 됩니다. 자기 자신의 안위를 구하고 타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교황은 다른 많은 이탈리아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가족 구성원을 먹여 살린 것처럼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자신의 할머니에 대한 일화를 들려줬다. 교황은 자신의 할머니가 평범한 “교리 교육”과 같은 간단한 가르침을 주기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저희에게 ‘인생은 발전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벽돌을 장만하고, 땅을 사고, 집을 짓는 발전을 이루거나 사회적 지위 혹은 가정을 꾸리는 발전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을 ‘높이 오르려고만 하는 출세주의’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왜냐하면 출세주의자들은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정상에 올랐을 때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 자신들이 이렇고 저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들이 하는 유일한 일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입니다. 이러한 것이 저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반면, 사제에게는 친교, 참여, 선교,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분은 자신의 쾌락과 안락을 추구하는 위험과 출세주의자의 위험을 분명히 이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주위에는 출세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영적 동행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광범위한 대화에서 교황은 ‘영성 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황은 개인적으로 ‘영성 지도(direzione spirituale)’라는 표현보다 ‘영적 동행(accompagnamento spirituale)’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성 지도는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삶의 여정에 도움이 되며, 고해 사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영적 지도를 받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교황은 영성 지도자와 고해 사제의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러분은 지은 죄를 성찰하고 용서받기 위해 고해 사제를 찾습니다. 여러분은 영적 감정, 기쁨, 분노 등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하기 위해 영성 지도자를 찾습니다. 그런데 영성 지도자 없이 오직 고해 사제와 관계를 맺는다면 영적 성장은 없을 것이며, 이는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반면 오직 영성 지도자, 영적 동반자와 관계를 맺고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두 가지 역할이 다릅니다.” 교황은 ‘영성 지도’는 성직자의 은사가 아니라 세례의 은사라고 설명했다. “영성 지도를 하는 사제는 자신이 사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영성 지도의 은사를 받는 것입니다.” 교황은 “살아가면서 영적으로 동행을 받지 않은 사람은 영혼 안에 ‘곰팡이’가 생기고, 이 곰팡이가 그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며 “질병, 음란한 생각, 많은 나쁜 것들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반면 영적인 동행을 받고, 동행 받아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모든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자신의 영적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주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원하시고, 어디에 유혹이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은총과 유혹을 구별하지 못하는 신학생을 본적이 있다”며, ‘영성 지도(영적 동행)’는 사제나 주교뿐 아니라 지혜로운 수녀나 남녀 평신도들도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교황에게 인사말하는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과학과 신앙의 대화: 모든 것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황은 과학과 신앙의 대화에 대한 질문에 무엇보다도 학자들, 대학생들, 대중이 궁금해하는 관심사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며, 경청하는 자세와 항상 긍정적이고 개방적이며 겸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겸손해야 합니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을 수호하는 접근방식은 더 이상 효과가 없습니다. 시대착오적인 방식입니다. 신앙이 있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총이 있다는 것은 겸손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교황은 신앙인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으며 길을 떠나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아울러 한때 “호교론이 유행했다”며 “교리에 대한 공격에 맞서 방어하기 위한 질문이 있는 책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가 어렸을 때 그것은 방어를 위한 방법론이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들로 이뤄진 책이었죠. 좋은 답변도 있고, 그렇지 않은 답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화하는 데 있어 적합하지 않은 접근법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답변을 하면 승리를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고 교황은 덧붙였다. “아니요, 그러한 방식은 좋지 않습니다.” 교황은 답변이 없더라도 항상 과학과의 대화를 열어 두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어 대화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나는 이것을 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과학자들에게 가십시오.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십시오.” 교황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왜냐하면 이는 나쁜 영에서 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진보를 위한 참된 영이 아닙니다. 인류의 진보는 과학을 발전시키고 신앙을 지킬 것입니다.”
인생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걷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
다른 질문에 대답하면서 교황은 인생을 가리켜 “지속적인 불균형”으로 정의했다. 왜냐하면 인생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걷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그러한 불균형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상적인 불균형을 식별하라고 초대했다. 왜냐하면 “불균형 속에는 선을 행하려는 열망으로 여러분을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불균형 속에서 사는 법을 아는 것”이 하느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는 “다른 균형”, 곧 “역동적인 균형”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교황은 올바른 식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개념을 보완했다. “식별해야 하는 상황은 항상 ‘불균형’합니다. (…) 올바른 식별은 이 불균형에서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구하는 것이지 균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균형은 항상 같은 수준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에서 해소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은총이며, 영적 체험의 은총입니다.” 교황은 식별이 불균형의 해소로 이끌지만 다른 차원에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불균형은 기도 안으로 들어가고, 새로운 조화의 상황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길로 들어갑니다.” 아울러 교황은 신학생 양성, 특히 영성에 대한 양성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공동체 생활에 대해 권고했다. “공동체 안에서 사는 법을 배우십시오. 서로 비난하거나 사제들 사이에서 당파를 만들지 마십시오.”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만남에 참석한 이들
인터넷의 위험성
교황은 과학기술과의 관계 그리고 현대의 디지털 도구에 대한 불편함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나눴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주교로 서품되자마자 휴대전화를 선물로 받았는데,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아 친누이와 한 차례 통화한 후 그 휴대전화를 다시 돌려줬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이어 조심스럽게 참석자들에게 “그러한 것은 나의 세상이 아니”라며 “그러나 여러분은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에게, 심지어 수도자들에게도 유혹으로 다가오는 디지털 음란물과 같은 인터넷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것은 영혼을 약화시킵니다. 영혼을 약화시킵니다. 악마는 거기에서 들어와 사제의 마음을 약화시킵니다.”
전쟁에 직면한 교회
끝으로 교황은 우크라이나 출신 사제에게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전쟁 앞에서 고통을 겪는다”며 “왜냐하면 전쟁이 교회의 자녀들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고통받고, 울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 집을 잃거나 전쟁으로 다친 이들, 목숨을 잃은 이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교회는 어머니입니다. 교회의 역할은 무엇보다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교황은 교회가 “또한 평화를 일구는 어머니”라며 “특정 순간에 평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쉽지 않지만 교회는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이 일에서 편을 가르지 마십시오. 각자 자신의 조국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각자 조국을 수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너머로, 더 보편적인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어머니 교회는 모든 이, 모든 희생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교황은 “내 조국을 파괴하고, 내 가족을 죽이려고 침략하는 이들의 죄를 두고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질문을 한 우크라이나 출신 사제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 모두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침략자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들도 여러분과 같은 희생자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의 영혼에 새겨진 상처를 볼 수 없겠지만,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려 주시어 평화가 오길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