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은 다시 한 번 포도원 주인과 농부들 비유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악과 심판을 말씀합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악한 농부들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많은 종들, 곧 선지자들이 때리고 심지어 죽였습니다. 인내가 많은 포도원 주인은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이 그는 존중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악한 농부들은 결국 그 아들까지 죽여서 포도원 밖으로 내 던집니다. 그 아들은 예수님이시고, 포도원 밖으로 내 던져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문 밖에,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성전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을 말씀합니다(참고. 히브리서 13:12). 이에 포도원 주인은 악한 농부들을 심판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농부들에게 줄 것입니다. 이 비유는 끝까지 믿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과 동시에 이방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 입니다.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가르치고,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지 물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기들에게 대한 것임을 듣고 알았습니다(12). 이 비유를 듣고 알고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그 비유와 같이 예수님을 잡아 가두려고 합니다.
나아가 지도자들은 바리새인과 헤롯 당중에서 사람을 보내 세금 바치는 것에 대해서 묻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로마에 세금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헤롯당은 로마 정부에 협조하는 유대인들이고,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의 로마부터 독립을 원하던 자들입니다. 어떻게 대답을 하던 예수님은 두 집단으로부터 공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동전에 새겨져 있는 그림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동전에는 “티베리우스 카이저,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만인의 주”라는 글귀와 카이저의 형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동전은 황제를 신성시 했고, 바리새인은 그것을 마땅치 않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카이저 혹 시저)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합니다. 세금을 내는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고, 그 동전에 있는 신적인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금을 내는 의무와 하나님을 섬기는 의무를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부활을 믿지 않은 당시 종교 엘리트였던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유대인들은 형이 자식이 없으면 그 동생이 과부로 남은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형의 아내를 사회적, 경제적으로 지켜주고 형의 족보에 아들을 올려 형의 대가 이어지도록 해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만약 일곱 형제가 있다가 첫째가 자식 없이 죽고 그 동생 6명도 똑같이 자식 없이 죽으면 부활할 때 형의 아내가 누구의 아내가 될지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부활이 없다는 증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명령은 틀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 엘리트 층이던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함으로 오해함이다.”라고 말씀하여 그들의 무지함을 고발합니다. 부활 후의 삶은 지상의 삶과 달리 결혼하지 않고 천사와 같이 지낼 것임을 말합니다.
또 서기관 중 한 사람은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계명은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공격하는 질문과 대조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즐겁게 듣습니다(37).
또 예수님은 서기관의 겉으로만 드러나는 신앙생활을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부자가 헌금을 많이 넣는 것과 과부가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보시며 과부가 더 많이 했다고 평가하십니다. 아마도 당시에 헌금할 때는 다 보였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부자들은 많이 넣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판단은 과부가 다른 모든 부자들보다 많이 넣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넣은 헌금은 두 렙돈, 곧 당시 로마의 최소 화폐 단위의 고드란트의 반값인 아주 적은 돈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화폐의 최소 단위가 10원이니 10원을 넣은 것입니다. 네덜란드 단위로는 2센트를 넣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부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부자는 많은 돈을 드렸지만, 과부는 자신의 목숨을 드린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회 자체에서 과부가 재산을 헌금으로 다 드려야만 하는 상황 자체가 부조리한 것입니다. 부자들, 아마도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들은 겉으로 많은 헌금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셨던 이웃사랑의 율법, 곧 이스라엘 안에는 과부들이 없게 하라는 명령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계명을 지키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이런 겉치레만 하는 모습을 고발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먼저, 저와 여러분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이 성경을 곡해해서 읽지 않고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으로 우리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해 제대로 지키는 것보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