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임항선
이월 초순 일요일은 24절기에서 맨 앞자리 든 입춘이었다. 근래 우리 지역은 비가 잦는데 흐린 하늘 웃비는 내리지 않을 포근한 날씨였다. 일전 스마트폰 교육장에 나갔더니 강사로 위촉된 분으로부터 모필로 정성 들여 쓴 입춘첩을 받았으나 아파트라 현관에 붙이기는 어색해 펼쳐만 보고 말았다. 아내가 다니는 절에서도 스님한테 받아온 입춘첩이 있다고 했으나 살펴보지 않았다.
일요일임에도 날이 밝아오기 전 새벽길을 나섰다. 경남대가 위치한 월영동 댓거리에는 일요일 새벽부터 오전 10시까지 장터가 열린다. 근교 농업으로 텃밭에서 가꾼 푸성귀와 바닷가 해산물이 흔했다. 설을 앞둔 대목이라 장사꾼 공급도 넘치고 소비자의 구매 열기도 후끈하지 싶었다. 나는 내가 사는 생활권과는 떨어진 곳이지만 재작년 늦여름에 댓거리 장터를 한번 다녀온 바 있다.
신마산에서 합포만 바다 조망이 가능한 아파트에 사는 초등 친구가 있다. 아직 현업 종사자로 창녕 어딘가로 출퇴근하면서 일요일이면 댓거리 장터로 내려와 시장을 봐 가면서 그때마다 찾는 식당이 있었다. 미로처럼 올망졸망한 신마산시장 상가 ‘희야식당’으로 주인 아낙 친정이 친구 고향 동네 이웃집이었다. 전번 내가 댓거리 장터로 나갔을 적에 친구와 그 집에 한 번 앉았더랬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캄캄한 새벽에 집 근처 버스 정류소에서 불모산동에서 출발해 온 첫차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댓거리까지는 종점에서 종점까지로 봐도 될 정도의 먼 거리였다. 댓거리 못 미친 문화동에 내려 장터로 가니 아직 날이 덜 밝아와 어둑어둑한데도 상인들은 물건을 펼쳐 손님들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할머니들 앞은 손수 키우고 다듬은 푸성귀와 해산물을 진열해 놓았다.
설을 앞두어 차례상 올려 제수로 쓰일 생선이나 과일들도 평소보다 많은 듯했다. 롯데마트 주변을 에워싼 장터를 둘러보며 내가 사 갈 품목으로 정한 표고버섯을 2만 원어치 사서 배낭에 넣었다. 이후 장터 풍경 사진을 친구에게 보냈더니 희야식당에 앉았다고 했다. 고향 마을 이웃집 여동생 이름이 ‘희’자로 끝나 어릴 적 ‘희야!’로 불러 상가 간판에도 그렇게 붙여 장사를 잘해 왔다.
친구는 곡차를 시켜 몰무침과 콩나물국을 안주 삼아 잔을 비우고 있었다. 나는 기본으로 한 잔만 받아 놓고 그간 밀려둔 얘기들이 오갔다. 조금 지나니 대방동에 사는 한 친구는 아내와 같이 시장 본 봉지를 손에 가득 들고 나타났다. 맑은 술과 함께 낙지 안주가 보태져 시간을 거슬러 생생한 어릴 적 추억담으로 회귀했다. 대방동 친구 내외는 먼저 가고 또 다른 친구가 합류했다.
댓거리 친구는 아내와 시장을 봐 가기도 하는데 이번은 동행하지 않고 분부받은 대파와 쪽파를 산 봉지가 보였다. 뒤늦게 합석한 친구는 올여름 지병을 앓던 아내를 여읜 후유증을 추슬러 이겨내려고 애써 마주한 눈빛으로나마 힘이 되어주었다. 아침부터 술잔을 비우기는 해도 넘치지 않을 정도 자제가 되었다. 나는 자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슬그머니 중간 정산하고 일어섰다.
친구와 헤어져 보낼 일정이 기다렸다. 돝섬이 바라보인 합포만 해양공원에서 임항선 그린 웨이로 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와 떨어져 주변 지형지물은 모두 낯설었다. 능수매화가 활활 피어나 향기를 뿜었다. 일제 강점기 경전선 철길이 삼랑진에서 구마산으로 분기된 임항선은 70년대 후반 통합 마산역으로 옮기면서, 쓸모없어진 철길을 산책로로 단장해 시민들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우리나라 장류업을 선도한 고려정 몽고식품을 지난 철길에서 3.15의거탑이 내려다보였다. 추산공원으로 올라 마산시립박물관을 둘러봤는데 뜰엔 월영대를 읊은 한시 17수가 빗돌에 새겨져 눈길을 끌었다. 문신미술관으로 건너가 지역 근현대미술전 ‘바다는 잘 있습니다’ 10인 회화와 거장의 조각품을 살폈다. 교방동 재개발 아파트와 회원동 재개발 현장을 지나 석전동까지 걸었다. 2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