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만나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친근감에 끌리게 된다. 그녀는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수필에 나오는 그런 친구의 표상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찾아가 차 한 잔 마시고 싶다 말하고 싶은 소박함이 그녀만의 마력이다. 어진 아내와 거룩한 어머니로서 뿐이 아닌 ‘박미림’이란 이름을 가진 여성으로 힘 있게 살아가는 작가의 시 세계를 살펴보자.
사람의 마음은
어는 순간
변덕스럽게
심장을 오그라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아닌 벽을 선택했다
「벽을 바라보다」 일부
사람들은 흔히 ‘여자의 마음을 갈대’라 말한다. 이는 자주 변한다는 뜻인데, 그것도 사람 나름이다. 이 시인은 한번 사귀면 그 사람이 변하지 않을 바에야 결코 등지는 일이 없을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시인은 사람의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인간미를 먼저 보는 혜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사람이 아닌 벽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이는 조삼모사 식으로 변하는 우리네 심정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로 사람을 믿느니 차라리 아무 말 없이 담담히 지키고 서 있는 벽을 믿고 의지하겠다는 풍자의 뉘앙스로 들린다. 또한 사람을 못 믿는 다는 뜻이 아니라 면벽을 통하여 참선에 이르는 수도승처럼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안하다”는 말에 눈물 고이고 마는
나
요즘 같아선 어디 가서
언제나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는
큰 빽 하나 사고 싶다
「큰 빽 하나 갖고 싶다」일부
작가는 너무도 솔직 담백하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이라면 누구나 ‘든든한 빽’ 하나 있었으면 한다. 그녀의 시어들은 유미주의나 탐미주의에서처럼 부드러운 보를레르식 시어는 구사하지 않는다. 그녀의 언어는 시장바구니에 담긴 삶의 언어다. ‘언제나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는 큰 빽 하나 사고 싶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작가의 손끝은 우리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는 것이다.
동막 휴게소에서 어느 무명 화가의
그림 한 점을 단 오만 원을 주고 샀다
(중략)
화가는 무얼 위해 밑지는 장사를 해야만 했는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머리 속은 온갖 계산이 오고 갔다
트렁크 안에서는 닭이 울어대는
겨울 하늘 아래에서
「여유를 즐기다 1」일부
허름한 옷차림의 주부가 아이들 준비물 챙겨주랴 살림하랴 빠듯한 생활에도 여행을 다녀오다가 휴게소에서 무명화가의 그림 한 점을 사는 손이 아름답다. 시골에서 챙겨준 토종닭과 함께 자동차 트렁크로 들어가는 그림 액자를 생각하면서 약간의 이질감과 아이러니를 주면서도 그런 풍경이 한 편의 동화를 쓰고 싶은 충동으로 몰아간다. 삶의 여유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작가처럼 틈틈이 책을 사서 읽으며 책꽂이를 채워가는 맛, 이름 없는 도예가가 만든 백자 항아리를 날마다 마른 걸래로 닦는 맛, 무명화가의 그림 한점을 거실 메인에 걸어두고 감상하는 맛, 그런 맛이 진정한 인생의 여유를 즐기는 맛이 아닐까?
* 시장바구니에 담긴 삶의 언어
결국 혼자서 돌아서는 걸까
어긋난 기상예보처럼 돌아앉았음을
내 진즉 알았다면
무덤 바닥에 깔린 공포처럼
바싹바싹 메말라 가진 않았을 텐데
절벽 끝에서 혼자 뒹굴며 목숨 연명한
나날들이 비웃음 던지며
검은 발자국으로 다가서자
독방에 갇힌
나는 미이라가 되어간다
「현실 1」전문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 누구나 위기의식을 느낀다. 이 작가 또한 자신의 인생이, 삶의 방식이 어긋난 기상예보처럼 빗나간 건 아닐까 초조해 한다. 바짝바짝 침이 마르는 것을 느끼며 절벽 끝에서 혼자 뒹굴며 목숨 명한 나날들에 대하여 스스로 조소한다. 그러나 그 조소는 비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독방에 갇혀 점점 굳어지며 미이라가 되어 간다고 말하는 것은 비단 자신이 침체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만은 아니리라. 아마도 그것은 나만의 틀을 형성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말일 것이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하지만 나름대로 적응하면서 자신만의 틀을 짜고 있는 것이다. 그 틀로 눌러낸 이 시집이 순수 토종 콩으로 만든 된장처럼 알싸하고 입맛 당기는 시집 ‘벽을 바라보다’가 아닐까?
길 건너에는 비가 옵니다
내게는 우산이 없습니다
그래도 길을 건너야 하기에
비 오는 거리를 향해 걸어갑니다
「그래도 길을 건너야 합니다」일부
이 작가의 매력은 부딪히면서 나아가는 데 있다. 길 건너에 비가 오고 있음을 알고, 자신에겐 우산이 없는데도 빗속을 가야한다는 의지가 멋지다.
‘그래도 써야한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김태호란 소설가가 어느 신인작품상 수상식장에서 후배 작가들에게 해 주던 말이다. 그 소설가는 작가라면 ‘누가 비아냥대도 써야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써야하고,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써야한다’는 미국의 한 수필가의 말을 인용하던 생각이 난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그래도 길을 건너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한번 태어난 인생은 이미 나 자신만의 것은 아니다. 내가 있는 것은 곧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친지가 있고 친구가 있고 그래서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기에 생이 힘들고 고될지라도 건너야 한다. 그런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삶에 임하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벽난로에 장작을 태우며
흔들의자에 않자
뜨개질을 하던
오래된 CF광고가 그리운 여자
TV 화면 앞에서
소파에 기댄 채
실타래를 풀고 있다
「뜨개질 하는 여자」전문
여자는 누구나 백작부인을 꿈꾼다. 고상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에 살며 뻬치카에 불을 지피고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하는 여유를 꿈꾼다. 그러나 그리 할 수 없는 작가의 현실에도 작가는 절망치 않는다. 작가는 작고 허름한 거실에 나와 앉아 소파에 기댄 채 자신만의 영토에 영역을 표시하는 실타래를 풀고 있는 것이다.
묘지 등이 낮아 보이는 나이가 되어
양지 바른 언덕배기에 선산을 찾은 초겨울
큰댁 아궁이에서 군불을 지피는 지 굴뚝에서
연기 나는 스산한 해질녘
“아따 내 새끼 왔냐”
이미 고인이 된 할머니 나를 반긴다
「해남읍 황산면 성만리 가는 길」일부
작가는 자신의 고향이 전라남도 해남이라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 주변에는 호적을 옮겨와서 자신의 고향을 잊고 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를 낳아준 고향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작가가 과연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낼 수 있을까 생각할 때 이 작가가 고향 ‘해남’을 사랑하는 맘은 더없이 아름답다.
묘지 등이 낮아 보이는 나이… 아마도 그 나이가 불혹이리라. 이제 인생의 눈을 조금 뜨는 나이에 고향을 찾아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쓴 이 시를 읽노라니 절로 가슴이 메인다.
작가는 고전과 현대, 도시와 시골의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시를 매개로 서민의 삶을 솔직하게 표출해 낸다. 여행과 만남을 통하여 자신을 여과하며 비록 짧은 순간일지라도 놓치지 않고 서민의 삶을 소재로 삼아 부지깽이로 부뚜막에 글씨를 쓰는 것 같은 선명함이 돋보인다. 그녀의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며 왕성한 창작과 문단활동을 병행해 나가는 것은 뭇 신인작가들에게 표본이 될만하다.
요즘 소식을 들으니 제 2 시집을 준비 중이란 말을 들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배운 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 학문의 이치라 볼 때, 각고의 노력으로 나오는 그녀의 제 2 시집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이처럼 귀한 시집『벽을 바라보다』를 내게 보내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박미림 시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첫댓글 쇼파탁자 유리밑에 깔아두고 간혹 한번쯤은 새겨볼만한 감명깊은 글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잘보았습니다
김순진 시인님...제 방에만 올려주신 줄 알았는데...너무 과분한 마음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더 열심히 창작의 열에 고뇌하는 계기 삼으라는 뜻으로 알고 먼저 시인이기 전에 인간이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