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프리메이슨 연구 모임 (프.연.모) 원문보기 글쓴이: 송유나
[펌]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 | 인봉된 두루마기 | 2005/04/07 13:34 | |
http://blog.naver.com/pts9228/60011613831 | ||
출처블로그 : bigstar357
- 저자 : 이리유카바 최 (1939년 중국 장춘 출생, 현재 캐나다에서 직장생활) - 출판사 : 대원 출판 # 다음의 내용은 위의 책을 읽고서 중요한 대목만 요약한 것인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성경의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가나안, 시리아, 고대 희랍 등의 신화들 중에서 모방해 왔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며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1. 성경은 수학, 과학, 철학, 심령학, 고고학, 인류학 등 많은 현대의 학문과 합치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지구는 둥글며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죽임을 당해야 했고, 사람은 “환생”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지오다노 브루노(Giodano bruno)" 같은 사람은 불태워져 죽었다. 2. 생략 3. 그리스도교의 종주인 바티칸에서는 수학을 몹시 싫어하여 계산하는 산수(算數)의 영역을 넘어 그 이상의 수학(數學)을 공부하는 것을 무척 꺼려했고, 천기(天氣)를 누설하는 일이라 하여 생각조차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뉴튼 (Isaac newton)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重力)이라는 자연법칙을 찾아냈을 때에야 겨우 영(零)의 관념을 허가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영(零, zero)을 수학이나 철학의 중요한 인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투옥되거나 지하로 들어가야 했다. 4. 그리스도교의 주일(일요일) : 이것은 조로아스터교의 주일을 표절했다. - 유대인들이 중요하고 성스럽다고 여기는 날은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다. 그러나 현대의 크리스천들은 토요일보다 일요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래 일요일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관습이다. 원래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꾼다. 조로아스터교의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 예수 이전 (기원전) 약 600년경에 페르시아에 “조로아스터” (Zoroaster, B.C 628-551)라는 현인이 있어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서양문명의 한 근원을 이루는 중요한 신앙적 사상을 전파하였다. 조로아스터는 12월 25일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는 위대한 방랑교사였고, 기적을 행했으며, 12 제자가 있었다.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부활했다. 그가 부활한 날에 페르시아의 교도들은 축제를 벌였는 데,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과 일치된다. - “그리스도교” 라는 것이 생긴 것은 예수 이후 300여년 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 지하조직으로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와는 본질과 진리의 틀이 완전히 달랐었다. 5. 현대의 신학자들은 왜 세례가 그리 중요한지에 대해 난처해 한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교회에 가서 머리에 물 몇 방울 뿌리지 않았다고 죽은 후 평생 지옥에서 고문을 받고 고생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난처해 한다. 미국 교회에서는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들은 그 사람이 잉태한 요일과 같은 요일에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태어났다는 것은 일요일에 성교를 했다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성교로 몸을 더럽힌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고 부정을 타는 일이라고 믿었다. 6. 성경의 역사에는 중국이나 한국, 또 다른 대륙의 역사는 다루지 않았고, 전 지역을 상대로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유대인의 역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예수의 행적은 유대인을 위한 종교였다. 페르시아의 전성시기에 페르시아제국은 지금의 중동지역에서부터 이집트까지를 영토로 만들었으며 고대 희랍 지역(유럽)은 차지하지 못했었다. 기원전 586년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은 “바빌로니아”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예루살렘”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 후 로마제국 시대에 유대인 민족의 메시아로서 예수가 왔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묶이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겼다. 예수 이 후 로마제국은 크리스천이란 말만 들어도 잡아 가두고 죽였다. 크리스천에 대한 박해는 “네로” 황제 때 극에 달했다. 7. 부활절(Eeaster) : 이것은 토속종교의 부활절을 모방했다. : 부활절의 축제일은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모두 파간(pagan) 토속종교에서 얻어 온 것이며 그래서 그 날짜가 매년 변한다. 토속종교를 크리스천들은 이단이라고 했고, 그들을 파간(Pagan)이라고 했다. 파간은 원래 파구스(pagus, 시골사람)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부활절은 3월 21일 춘분(春分)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지난 후에 첫 월요일을 부활절이라 한다. 파간의 부활절은 음력 달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월요일이었는데, 그리스도교에서 변형하여 일요일로 하였다. 토속종교인들은 월요일을 중시하며 월력(月曆)인 사용하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페르시아의 태양신(男神) 종교를 모방하여 일요일을 중요시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주일을 일요일로 바꿨다. 춘분부터 부활절이 되는 일요일까지의 기간은 에오스트라 여신(Eostra, 라틴어,땅의 여신)의 배란기로서 임신하는 기간이었다. 가나안 지방에서 입춘이 되어 비가 오는 때에 땅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이 임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임신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여 성교를 위한 축제를 했던 풍습과 마찬가지인 신앙이다. 또한, 부활절 때 계란에 붉은 색을 칠하는 것이 관례인데, 서양의 전설에서는 계란은 다시 태어난다는 “환생”과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활절 때 특히 동구 유럽에서는 계란에 붉은 색을 많이 넣어 아름답게 칠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예수 사후 약 500년간의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많은 기독교인 (특히 gnosis파)들이 인간의 환생과 윤회설을 자유로이 신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8. 사탄(Satan)의 근원 : 이것은 고대 이집트 신화와 고대 희랍 신화를 모방했다. - 이집트 신화 : 이집트 신화에서 샤헤르는 태양신의 천국에 들어가는 북문(北門)을 지키는 신이었고 그는 인간에게 광명을 전하는 신이었다. 이 광명 전달의 신은 항상 불사(불사)의 뱀(蛇)의 형상으로 지상에 내려왔는데, 사람들은 사타(Sata)라고 하였다. 이집트의 사타(Sata)가 히브리어인 사탄(Satan)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사탄이 되었다. 9. 연옥(煉獄, Purgatory, 천당과 지옥 사이) : 이것은 불교와 토속종교에서 따온 사상이다. -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연옥(煉獄)은 불교와 토속종교에서 따온 사상이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불교 승려들은 지하세계에서 고생하고 있는 조상의 영혼을 구해 극락으로 가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손이 절에 가서 돈이나 제물을 바치고 자손을 대신하여 중이 제사를 지내고 특별한 주문을 외우면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 유럽의 파간(pagan) 토속 종교인들은 자기네들의 사원 깊숙한 곳에 땅을 파고 창조주의 자궁을 의미하는작은 방을 차려 놓았다. 사람이 죽으면 거기서 하룻 밤을 지낸 후에 다른 곳에 안장(安葬)한다. 묘지에 안장하기 전에 그 작은 방에서 천당으로 갈 자격이 있는지를 심판을 받는다. 이 때 천당으로가게해 달라고 제물을 올린다. 카돌릭의 장례식장에서의 목사안수(按手)는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 한편 카돌릭에서는 연옥의 개념을 인정하고, 개신교에서는 연옥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10. 성모 마리아는 과연 동정녀였는가? :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처녀 동정녀였고, 흰두교의 크리슈나(Krishna)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이집트의 호루스(Horus)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 메소포타미아의 조로아스터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이브의 어머니 소피아(Sophia)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희랍신화의 디오니소스(Dionysos)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고대 신화나 종교의 바탕은 동정녀 출산이었다. 마치 신격화된 숭배의 대상은 모두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래야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고 들어갔다. 그래서 “예수가 동정녀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라고 둔갑시켜 놓았다. 고대 신화나 고대 종교를 모방한 것이다. 11. 성경의 아담과 이브는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의 표상이다. : 유대인 신화에 의하면, 하나님이 흙을 빚어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동시에 만들었고, 남자는 아담(Adam) 여자는 릴리스(Lilith)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담과 릴리스는 성교(性交)를 하면서 곧 싸움을 시작하였다. 릴리스는 아담 밑에 깔리지 않겠다며 꼭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은 “나는 너보다 윗 사람이니, 너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 라고 대꾸했으나, 릴리스는 “우리는 둘 다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등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라고 하면서 조물주에게 입으로 담을 수 없는 욕지꺼리를 하면서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아담은 이 사실을 하느님에게 보고했다. 하느님은 세명의 천사를 보내 릴리스를 데려 오도록 했다. 그러나, 릴리스는 아담에게 돌아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릴리스는 천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고, 마귀와 사탄들 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유대인 풍속으로 릴리스는 밤의 마귀로 통하고 있다. 한편, 릴리스를 포기한 하나님은 이번에는 아담에게 절대 복종하는 여자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고 "이브(Eve)"라고 하였다. 유대인의 문화에는 이런 신화 때문에 철저한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존재하고 있고, 그리스도교 문화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죄의식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이런 남성 우월적인 신화가 마음에 들어서 성경 속에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으니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야 한다” 라는 사상을 집어 넣었다. 이와 반대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그노시스(Gnosis)”에서는 여자는 신(神)을 이해하는 영(靈)을 가졌고, 남자는 신을 이해하는 영(靈)이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영적인 의식을 일깨워 주며, 남자는 영적인 의식을 일깨워 준 여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라고 가르친다. 12.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태아 요셉 (Arimathea Joseph)과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 1) 예수의 아버지 요셉(Joseph)은 예수가 어렸을 때 죽었다. 요셉이 죽은 후 어린 예수를 교육시키고, 예수의 경제적 뒷받침을 해준 사람은 아리마태아 요셉(Arimathea Joseph)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묶이어 죽었을 때 예수의 시체를 거두어 왕릉 형태의 무덤에 안치시킨 후 모든 뒷바라지를 다했고 예수를 소생시킨 사람도 바로 그였다. 예수의 가족을 피신시켜 끝까지 돌보아 주고 그리스도교의 창설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예수가 죽은 후 300년 후에 쓰여진 기독교 성경에서는 이 사실을 왜곡하여 그를 예수의 제자라고 서술하고 있다. 2) 아리마태아 요셉 (Arimathea Joseph)은 원래 유대인으로서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유대인이 많이 사는 예루살렘에 근거를 두기도 했으며 당대 최고 갑부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영국의 주석과 납광산을 비롯하여 중동지방과 인도지방에 광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이었고, 로마제국의 무기제작에 필요한 철 자재를 공급하는 중요한 인물이었고 로마의 상원의원보다 높은 직위도 부여 받았다.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의 의원이었다. 3) 예수의 사형 언도 이 후, 로마 당국과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의 명령에 의하여 예수의 가족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포고령이 내려졌고, 이 때 아리마태아 요셉 (Arimathea Joseph)은 마리아(예수 어머니)와 막달라 마리아(예수 부인), 예수의 유모 등의 가족들을 피신시켰다. 그리고 본인은 예루살렘에서 산헤드린에게 체포되었고, 나중에 부하 직원들에 의해 구출되어 영국에 정착하였으며 거기에서 큰 성당을 짓고 선교사업을 벌였다. 이 때의 그리스도교의 신도들을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이라고 한다. 로마제국이 영국을 점령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 할 때, 이미 영국에 나름대로 크리스천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고 한다. 로마 사람들이 서기 196년경에 크리스천이 되기 시작한 것 보다 훨씬 이전에 영국이 먼저 크리스천화 됐다는 기록이 있다. 13. 크리스마스(12월 25일)와 예수의 진짜 생일은 서로 다르다. 1) 예수의 탄생지는 베들레헴(요르단 서부 도시)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의 여러 곳에 마리아와 요셉의 고향이“나사렛”이고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 당대에는 나사렛이라는 마을이 있지도 않았다. 나사렛이란 마을은 예수가 죽고 800여년이 지난 다음에 생긴 마을이다. 2) 역사적으로 예수 이후 4세기(A.D 300년)까지는 예수의 생일을 1월 6일로 알고 생일 잔치를 했다. 기독교를 최초로 로마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신앙했던 사람이었고,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가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교의 영세를 받게되고, 서기 313년,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인정하며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 신앙의 교리나 의식, 제도, 관습 등을 로마제국에서 국교로 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모방하거나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래서, 그 이 후에 예수님의 생일을 페르시아의 지방의 축제일인 12월 25일이라고 했고, 서기 353년, 로마 교황 리베리우스는 예수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제도화시켰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었고, 12월 25일은 조로아스터의 생일이자 축제일이었다. 12월 25일은 동지(12월 22일)를 지나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태양이 다시 태어난다라고 생각했고 이 날은 고대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축제일이었다. 14.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 라는 부인이 있었다. : 성경을 보면 예수의 결혼이나 그의 성생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런데,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랍비(rabbi, 율법사)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랍비 훈련은 유대인 율법에 의하면 결혼을 하지않은 사람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결혼 상태에 대해서는 자명(自明)한 일이었다. 특히 유대인의 풍습을 보면 성인이 되면 결혼은 당연한 사회조건이었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로 여겼을뿐 아니라, 심지어는 독신생활하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가 선교활동을 하는 초창기인 갈릴리에 있을 때부터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예수와 동행하여 유대아 지방까지 함께 동행한다. 예수 당대의 풍습으로 결혼하지 않은 독신 여성이 혼자 한 남자와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서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 베드로와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는 좋지않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막달라 마리아를 종교의식을 담당하는 사원(寺院)의 여자 따위로 표현해 놓았다. 마가.마태.요한의 세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옆에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예수의 무덤에서 시체가 없어진 것을 처음 발견한 것도 막달라 마리아였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처음 알려준 상대도 막달라 마리아였다. 복음서 전반에 걸쳐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는 독특했다. 그런데, 유대인의 풍습은 원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극심했고, 지금의 이스라엘 여자들도 그 족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인이면서도 대접받는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특히 사도들의 마음에 걸리는 존재였다. 특히 성경의 기록에서 애써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15. 예수는 진정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가? 1) 성경을 보면 예수가 로마의 법을 어기거나 로마 당국과 충돌한 일이 없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원수로 생각했다면 로마 당국의 본디오 빌라도 (Pontius Pilate)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네의 율법으로 직접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법으로 예수를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로마의 사형법인 십자가형으로 죽었다. 그리고 원래의 로마 당국의 십자가 사형법은 죄수의 시체를 말라 비틀어질 때 까지 십자가에 놓아 두는 법인데, 예수의 경우는 죽은 것만 확인하고 곧바로 쉽게 내 주었다. 2) 기존 유대인의 집권층에서 볼 때, 불과 몇 년 사이에 불쑥 나타난 예수라는 사람이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예수가 인도와 티벳 및 이집트에서 수행을 하고, 의술을 배우고, 고전(古典)을 공부하고 돌아오더니, 유대인의 메시아 행세를 하고, 이스라엘에 새 임금 나셨다고 주장하니, 예루살렘의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을 비롯한 기존 유대인의 세력과 로마 당국은 그들의 권익에 위협을 느꼈고, 이들은 예수를 제거하려고 계획했다. 이 때, 예수는 로마의 고위층 인사를 잘 알고 있었으며, 부패한 로마 집권층의 본디오 빌라도를 매수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잔악한 폭군이었으며 반면에 부패하여 뇌물을 좋아했다. 그래서,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가 원하는 형태의 십자가형을 연출해 줄 것으로 추측된다. 3) 마가복음 15장 44절에 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본디오 빌라도 역시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는 것에 대해 놀랐다.” 라고 한다. 요한복음 19장 32절에 보면 “로마 형리들이 예수의 다리를 부러뜨리려 했을 때에 예수는 이미 죽어 있었다.” 라고 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발이 십자가에 고정되어 있었고,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 라고 했으니, 정상적인 십자가형의 경우 2~3일 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이 대목을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묶였을 때 탈진 상태로 의식을 잃었든지 혹은 예수가 시간을 맞추어서 적절하게 죽은 것이다. 4) 이렇게 죽은 혹은 실신 상태의 예수는 미리 준비된 왕릉같은 동굴 형태의 무덤에 안치 되었고, 마태복음 27장 60절에 의하면 “이 무덤은 아리마태아 요셉의 개인 소유”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23장 49절에 보면 “예수의 아는 자들과 따라온 여자들이 모두 멀리 서서 구경했다.” 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형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십자가 사형이었다. 다시 말하면 개인 소유지에서 가족 몇 사람과 로마 당국자들이 모여서 행해진 조작극이었고 깜짝 쇼였다. 그럼으로써 기존 유대인 세력과 로마 당국의 음해의 위협으로부터 모면할 수 있었고, 십자가 부활을 연출하여 유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유대인의 메시아로 믿게할 종교적 필요가 있었고 또한 정치적 필요가 있었다. 5) 예수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 후손이며, 이삭, 야곱, 다윗의 후손이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가 추구한 것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일이었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 자신을 유대인의 메시아로 믿고, 이스라엘의 새 임금으로 받들어 주는 것이었다. 십자가 사형의 연극이 끝나고 날이 어두워진 다음, 미리 준비해 놓은 동굴 형태의 무덤으로 데리고 가서 몇일 후에 신기하게도 시체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3일 후에 부활하여 가까운 소수의 몇 명에게만 나타났다. 이 때, 예수는 부활하고 난 후 모든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진짜 예수가 부활했다면 무엇이 두려워서 대중 앞에 나타나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지 않았을까? 6) 예수는 십자가 부활 사건 이후 어디로 갔는가? 예수는 시리아를 거쳐, 성모 마리아와 가족을 데리고 인도로 갔다. 예수는 인도에서 자연사 했으며 인도의 한 마을 외곽에 매장되었다. 16.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고 조작한 사건의 배경과 예수의 어린시절 : 요셉(Joseph)은 나이가 아주 많아 마리아의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다. 요셉은 이미 리디아(Lydia)와 리시아(Lysia)라는 두 딸이 있었고, 그들은 이미 결혼하여 출가한 상태였다. 그리고 야고보(James)와 시몬(Simon)이라는 두 아들을 가진 홀아비였다. 요셉은 성모 마리아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고자 6월에 정혼했다. 이 때, 요셉은 이스라엘 다윗 왕의 종손이었기 때문에, 요셉과 그의 부인 될 사람은 제사장의 엄격한 규율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정혼이 확정된 다음 3개월 후인 9월에 1차 혼인 선언을 하고, 12월 첫 보름 동안만 두 사람의 동침이 허락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해 9월에 아이를 출산하기 위함이며, 9월은 성스러운 기름부음의 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요셉은 제사장이 명령한 12월 초순까지 기다리지 않고 6월에 정혼을 하자 마자 곧바로 마리아와 동침을 한 것이다. 율법을 어긴 임신을 하자 요셉은 몹시 난처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 뿐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제사장을 찾아갔고, 제사장은 요셉과 마리아의 경우를 특별히 취급하도록 했다. 즉 하느님에 의해 잉태하게 되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느님의 잉태에 의해 태어났다고 알려지게 된 것이다. 2세기나 그 이전에 씌여진 것으로 추측되는 “유아(幼兒)복음서”는 예수가 아주 어렸을 때의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어린 예수가 아주 영리했지만 난폭하고 버릇이 없고 신경질이 대단히 심한 어린이였음이 묘사되고 있다. 그 중에는 자기 심기를 건드린 다른 아이를 죽인 일도 있었고, 자기의 가정교사를 죽도록 두들겨 팬 적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성경을 만드는 목적을 예수의 성(聖)스러움과 예수의 신격화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의 어린시절이나 혈통관계는 성경의 기록에서 일부로 제외시켰다. 17. 성경(Bible)의 역사와 예수 신분의 격상(格上) 및 예수의 신격화 : 예수가 죽은지 4년 후인 36년,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 의회는 한국의 반공법과 같은 반유대인법을 제정하여 예수의 일당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예수의 가족은 물론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피신을 해야했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격상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모두 4세기 때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고 성경을 완결지었다. 성경은 313년에서 325년 사이의 12년간의 세월에 걸쳐 다시 재조합해서 쓰여진 것이다. 다른 안건을 토의했던 일곱 번의 니케아 종교회의는 462년이 걸렸는데 성경을 만드는 데는 12년간의 세월만 소요됐다. 그런데,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때, 의회에서 성서로 발탁된 책들 중에서 45개의 책이 삭제됐다. 야고보(James)서는 예수의 이복 동생 야고보가 쓴 글인데, 이 책은 예수의 어릴적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으나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도마(Thomas)는 예수의 동생이라고 믿어지는 사람인데, 그도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 권이나 썼고 복음서도 썼으나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예수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바울(Paulus)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성령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과오나 모순이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지만, 성경이 쓰여진 내역을 보면 의문과 모순 투성이이다. 예수가 죽은 이후 300여년이 지나서 성경을 만든다고 모임을 가졌지만, 예수 행적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성경의 번역은 하나님이 성령을 내려 다만 사람의 손만 빌린 것이고 누가 쓰든 관계없이 그 결과는 하나님이 쓴 글이기에 모두 똑같다는 교회측의 설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공룡이나 아틀란티스문명, 아즈텍 문명, 고대 4대 문명, 지구와 인류의 역사, 북극과 남극의 유래, 우주와 천체 등의 이야기는 성경의 차원과 맞지 않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더욱이,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는 기존 성경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었다. 그는 1534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성경으로 기독교의 성경을 마름질하고 편집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없던 이야기가 삽입 되었고, 마음에 들지않는 진실은 삭제되었다. 18. 생략 19. 생략
전체 글보기 ☞ http://blog.naver.com/bigstar357/100011716945 출처:http://blog.naver.com/pts9228?Redirect=Log&logNo=60011613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