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로 생각되는 섬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세종실록(世宗實錄)』 이다. 세종 30년(1448) 8월 27일에 안산군에 속한 섬으로서 ‘오질이도 (吾叱耳島)'가 나오고 「지리지(地理志)」안산군조에는 봉화가 있는 곳으로 오질애(吾叱哀)'가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안산 군조에도 ‘오질이도 봉수(吾叱耳島烽燧)'가 나오고 있어 오질이-오질애가 현재의 오이도를 가리키는 이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 오이도(烏耳島)'가 까마귀의 귀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일설은 고유어 ‘오질이'를 간략히 적기위해 차자(借字)한 ‘오이(烏耳)'를 한자식으로 다시 풀어낸 것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자료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안산군조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지도에는 ‘오이도(烏耳島)', 내용에는 ‘오질이도(吾叱耳島)'가 각각 나온다.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이 ‘오질이도'와 '오이도'는 같은 섬이기 때문에『여지도서(輿地圖書)』가 편찬되던 시점에는 ‘오질이도'와 ‘오이도'가 같이 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대동지지(大東地志)』(1864)에는 ‘의이도(衣耳島)'로, 『경기지(京畿誌)』(1843)에 는 ‘옥구도(玉龜島)'로, 『경기읍지(京畿邑誌)(1871)와 『기전읍지(畿甸邑誌)』(1894)에는 ‘오이도(烏耳島)'로 나와 있다. 특히『기전읍지(畿甸邑誌)』(1894) 안산군 산천(山川)조에는 “오질이도는 지금의 오이도로서 군의 서쪽 40리에 있다(吾叱耳島 今烏耳島 在郡西四十里)”라고 서술하여, ‘오질이도'와 ‘오이도'가 같은 섬이란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한편 그림에서 보듯 1910년대에는 ‘오이도'와 함께 ‘옥귀도(玉貴島)'란 이름도 같이 쓰였고,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오이도의 별명이 ‘옥구도(玉龜島)'라는 설명이 있는데, 가깝게 있는 옥구도의 이름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1789년(정조 13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도 ‘오이도리(烏耳島里)'가 나오는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서는 오이리(烏耳里)인 오이도(烏耳島)를 ‘옥재셤'으로 기록했다.
첫댓글 정동진에서 해가뜨고 오이도는 해가 지는 곳이라고요. 감사
지구는 둥글다.둥근것은 눈이다. 조갑이 성님에게 물어봅시다.(간단 명료하게 다시금 보고하세요)
다들 눈이 어두워서 잔글씨가 보이나요?ㅎㅎㅎ성령이 임 할 때까지........감사.
크게 키워서 보면 되지만, 오이도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 필요가...
좋은 자료,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