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골 식당
지난 주말 커피 한잔과 간단한 수프 하나로 아침을 때우고
한계령으로 향했다.
강원도에 살고, 또 이제는 어딜 가나 길이 좋아서 보고 싶는 곳이나 먹고 싶은 곳에 가는 일은 시간과 열정만 있다면 아주 쉬운 일이다.
한계령과 설악산은 수 십 번을 가도 갈 때마다 새롭고 경이롭다.
설악폭포 오색약수 필례약수 흘림골 주전골 곰배령 대청봉 중청봉 용마산장 비룡폭포 계조암 흔들바위 울산바위 공룡능선 등등등...흩어져 있는 그 이름들 또한 얼마나 예쁜가?
골골마다 추억 하나씩이면 또 얼마나 좋은가?!
한계령과 설악산 하면 누구나 첫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산중턱에 걸려있는 운해(雲海)일 것이니, 사시 사계절 마다 달라지는 그 모습은 상상만 해도 기이하고 그윽하다.
아침에는 저쪽에 걸쳐있던 운해가 하산할 때는 골짜기쪽으로 비켜가 있구나. 해가 뜨고 짐에 따라 짙고 옅은 붉은 빛은 그 밝기를 달리하고.
한계령은 그 이름을 寒溪嶺이라 쓰는데, 나는 이 이름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찬 개울물이 흐르는 언덕이란 얘긴데, 한계령은 그 유역(流域)이 짧고 가팔라서 물이 흐르지 않는다. 흘림골만 해도 폭우에 씻겨간 바윗돌로 깔려있을 뿐으로, 물은 흐르지 않는다. 수원이 짧고 경사가 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계령은 寒界嶺으로 써야 옳다고 생각한다.
즉 양양 방면은 동해의 영향으로 비교적 따뜻하고, 영 넘어 인제 쪽은 내륙의 영양을 받아서 춥다.
바람과 비와 기온이 양쪽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대관령이 영동 영서의 기후가 완연히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백두대간으로 갈라진 한계령은 추위와 더위의 경계, 즉 寒界嶺이 바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양양에서 오색에 가기 전, 오색 마을 입구에는 노철수라는 홀애비 지인이 살고 있는데, 그는 가을이 되면 내게 버섯을 공급해주는 담당자가 된다.
송이, 능이, 표고, 느타리 등.
오색의 송이는 도둑질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송이 하나라도 씹어 먹었다가는 입을 벌리는 그 향 때문에 바로 발각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표고차가 심하여 향과 맛이 뛰어나 오색 송이는 양양송이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친다.
노철수는 그 동네 토박이라, 송이꾼들을 모두 다 잘 알아서 산에서 채취해오는 사람을 맞아서 선별도 거치지 않은 것을 흥정해서 내게 공급해준다. 값도 헐하고 싱싱해서 최고의 선물이 된다.
산 버섯 중에서는 표고가 가장 귀하고 훌륭하다.
송이나 능이는 킬로그램으로 채취되고 거래되지만, 자연산 표고는 킬로그램은 꿈도 못꾸고 그저 운 좋은 사람에게 낱개로 발견될 뿐이다. 따라서 공식 가격도 형성되지 못하고
선물로 몇 개씩 거래되거나 심마니가 자가 소비하고 만다.
이 산표고에 약간의 소고기를 볶으면, 그 맛과 향은 필설로는 다 할 수 없다.
삼십 여 년 전, 6.25사변이 터진 줄도 몰랐다는 부연동에서 온 환자를 고쳐주었더니, 그 다음에 약국에 올 때 마른 개똥 같은 걸 몇 개 갖다 주었다. 그게 무언 줄도 모르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한 날 저녁 쇠고기와 함께 볶아서 먹었던 게 여태껏 생각이 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풍미에 정신조차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 맛이 며칠 동안 입안에서 도는 것 같았다.
한계령의 단풍은 절정이었다.
군데군데 포토존에 휴식을 취하면서 사람들은 연식 셔터를 누르고, 만황천자(萬黃千紫)의 단풍은 숨을 멎게 하였다.
공룡의 등뼈 같은 바윗골을 지나 정상에 이르기 직전 좌측으로 난 길로 가면 필례약수(必曳藥水)에 이른다.
필례도 필예가 맞다. 예는 曳라 쓰며. 신발 같은 것을 ‘끌다’라는 것이다. 필예는 고갯길이 너무 가팔라서 신발을 질질 끌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고개라는 뜻이다.
경치가 좋고 약수도 유명하다. 꼭 한 번 가보시라.
도중예미(塗中曳尾)라는 말이 있다.
죽어서 사당에 모셔지는 거북이 보다는 살아서 진흙에 꼬리를 ‘끌며’ 살아가는 거북이가 되겠다는 뜻으로, 저승 보다는 그래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다.
이 이 曳자를 어떤 무식한 이가 ‘례’로 읽어서 필례가 되었음이 안타깝다.
정상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인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계령에서 인제에 이르는 길은 꼬불거리긴 해도 경치도 좋고 평지로 이어져서 운전하기에 좋았다.
백담사 거리를 지나 이른 곳이 황태로 유명한 용대리였다.
아침 요기가 시원치 않았던 탓에 첨심 먹기에 딱 알맞은 시간이었고, 거기서 찾은 곳이 다리골 식당이었다.
명태가 나지 않는 현실에서 대관령의 덕장은 쇠퇴하였고. 이제는 황태하면 용대리가 되었다.
찬바람과 눈이 흔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식당은 황태의 모는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식당이다.
즉 명태을 수입하여 할복 가공하여 그 부산물을 취하고 황태로 만들어서. 다시 황태의 가공물을 이용하는 그런 식당이었다.
반찬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우선 봄에 인근 산에 지천으로 나는 산나물을 채취 가공 건조하였다가 3,4가지가 나오는데, 이는 강원도 산지 식당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지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이다.
나머지는 모두 명태가공 부산물이 반찬으로 나오는데. 써거리(아가미)는 깍두기로, 곤지는 쪄서 간장에 담그고, 명란젓 창란젓은 짜지 않게 양념해서 나온다.
황태구이는 머리를 떼고 뼈와 가시를 발라낸 것을 스테이크판에 구워서 먹는 내내 따뜻하게 제공된다.
다시 말하면 그 식당은 모든 것을 그 동네에서, 그 집에서 나오는 것으로 맛있게 제공된다.
황태는 또 강정으로도 만들어서 파니, 돌아오는 길 내내 술안주가 되었다.
그 집 아들은 내 아들과 잘 아는 사인데, 황태의 대가리며 뼈 등으로 애완견이나 고양이 사료를 만들어서 판다.
어느 하나 버리는 것이 없는 그 사업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마침 각양각색의 가을 국화로 장식해놓은 조경이 식당 안팎에서 잘 어울렸다.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다시 양양을 지나 집으로 오는 길이 마냥 싱그러운 여행이었다.
遠上寒山石俓斜 원상한산 석경사
白雲生處有人家 백운색처유인가
停車坐愛楓林晩 정거좌애풍림만
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
비탈진 돌길로 한산을 오르니
흰구름(운해)이는 곳에 인가가 있구나
차를 멈추고 늦단풍을 구경하나니
서리맞은 그 잎이 이월의 꽃보다 붉구나 (杜牧의 山行)
한시 한 수를 읊조리며 집에 다다랐다.
甲辰 晩秋
豐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