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년
예루살렘수성전..
이스틴은 직접 근위대를 이끌고 적군의 대규모 기병대를 상대했다.
적군의 공성장비가 아군성문을 부수거나 적보병대가 아군성문을 열었을떄 적군의 대규모 기병대가 들어올경우 근위대를
제외하곤 전부 보병대였던 아군이 이길가능성을 희박했기 떄문이다. 적의 대규모 공성장비를 부술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적보병대는 공성장비를 이용해 성벽을 공략하지만 이내 아군의 병력에 밀려 후퇴했다.
이스틴과 근위대에 의해 적군의 기병대가 무너지자 보병대도 후퇴하기 시작했고 아군은 성에서 나와 적군을 추격했고
적장을 죽이는데도 성공했다.
이스틴의 결단력과 근위대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이 빛을 발했던 전투였다.
예루살렘 공성전이 실패했을무렵, 이집트 군대는 알렉산드리아를 공격했다.
이곳은 덴마크나 이집트 양쪽 국가모두에게 중요한 요충지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는 강력한 허스칼기병대와 오버샤이어보병대가 있었다.
적의 대규모 기병대는 낙엽떨어지듯 무너졌다. 기병대가 무너지자 보병대는 그저 걸어다니는
돈덩이에 불과했다.
1112년
이번엔 이집트 군대가 가자를 공격해왔다.
아직 가자에는 얼마전에 있었던 대규모 수성전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상태였다.
특히 병력충원이 안되어 있던 상태였다.
결국 이집트의 끈질긴 공격에 가자는 함락당했다. 끝까지 버티던 덴마크기사대와 구호기사대는 모두
전투중에 사망했다...
(계속해서 가자수성전 도중에 팅기더군요 ㅡ_ㅡ;; 결국 오토로 돌렸습니다...결과는 패배.. 컴터가 일부러 팅겼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가자공성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집트는 덴마크령 예루살렘왕국에 이집트의 속국이 되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해왔다.
물론 대공 이스틴은 거절했고 가자 탈환을 위한 병력을 모집했다. 하지만 지금 예루살렘왕국의 제정상태는
심각했으므로 당분간 가자탈환은 어려울것으로 보여졌다.
1113년
병력을 막 모집하던떄, 이번엔 투르크의 대규모 군대가 아크레를 공격해왔다.
하지만 아크레에는 구호기사대와 경험많은 근위대가 충분히 있었고 덴마크도끼보병대도 있었다.
적군은 성벽과 성문을 동시에 공략했지만 모두 격퇴당했다.
성문에 적장과 대규모 기병대가 공격해왔지만 적장의 죽음과 동시에 뿔뿔히 흩어졌다.
큰피해없이 적군을 막아냈지만 이로써 가자탈환에 필요한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됬다.
빨리 가자탈환을 하지 못한다면 알렉산드리아도 위험해질수 있기 떄문에
가자탈환은 반드시 해야될 필요성이 있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스틴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있는 알렉산드리아수장 발드마르 두사람모두 잘 알고있었다.
이스틴은 덴마크의 왕자 단에게 이러한 고민들을 털어놓고 상의했다. 하지만 경험많은 명장 단또한
속시원한 해답을 낼수 없을만큼 복잡한 상황이였기 떄문에 우선 적군의 공세를 막으면서
꾸준히 병력을 모으는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당분간 알렉산드리아는
자체적으로 대규모 이집트 군대를 막을수 밖에 없었다. 발드미르와 그의 군대는 아직 이사실을 알지 못했고
가자가 다시 탈환되서 원군이 올거란 기대감만으로 알렉산드리아를 지키고 있었다.
같은해 무어와 베니스가 전쟁을 벌였고
신성로마제국과 무어도 전쟁을 시작했다. 무어는 십자군 선포를
받고 계속해서 공격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튀니스지역을 지켜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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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컴터...중요한순간에 계속팅기더니 오토전투하고 넘어가니 안팅기네요..??
이건뭐..ㅡ_ㅡ;;;
첫댓글 ㅎㅎ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이랑 무어랑 전쟁상태로 들어간게 아닌가여?
동맹맺은게 아닌것같은뎅;
으헝; 잘못봤군요;;;; 그래도 지금 계속 신롬이랑 사이가 안좋아지고 있긴합니다..ㅇ_ㅇ;; 수정완료.
우엉 이집트 개물량 ㄷㄷ 저도 프랑스로 할때 예루살렘 주변 먹엇는데 본국에서는 신롬,영국 처들어오고 이집트 개물량에 밀려서 결국 포기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