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야유회
박인하
영혼이랄지 마음이나 슬픔, 그녀가 품은 사랑 같은 건 잘 모르겠어 바깥을 묻혀오는 냄새들에서 바람난 벚꽃과 신록을 느끼기도 해 내가 가닿을 수 없는 어떤 곳들을 맴돌다 왔다는 증거지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빛을 발견할 때 아무도 모르는 어둠을, 어둠을 들켜 부서질 때 부서진 조각들이 반짝이는 걸 봤어
돌아올 곳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너무 늦게 돌아와 오래오래 씻다 흐느끼던 몸 방울방울 맺힌 물기들은 가장 좋은 위로, 애무하듯 닦아주었지만 슬픔까지 닦였는지 그 많은 날들 오기만큼이나 팽팽하던 젖가슴과 실룩이던 엉덩이의 감촉은 얼마나 또 감질나던지 그녀의 몸 위에 남은 애인들의 얼룩진 체취도 토닥토닥 닦아 주면서
찬란의 다른 이름은 슬픔이라 생각했어 젖가슴과 엉덩이의 시간을 지나 웅덩이처럼 패인 쇄골과 푸석이는 살결들 몸의 다른 이름은 쓸쓸함인 것 같아 함께하며 해진 내 몸도 촘촘함을 잃어버리고 우리는 서로의 내부를 통과하지 못한 채 낡아버렸어 문신처럼 희미해진 푸른 글자들, 봄 야유회
웹진 『시인광장』 2023년 7월호 발표
박인하 시인
광주에서 출생. 2018년 《서정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출처] 봄 야유회 - 박인하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7월호 신작시ㅡ통호 제171호|작성자 웹진 시인광장